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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곳에서

원제 : There and Then

제임스 설터 저 | 이용재 역 | 마음산책 | 2017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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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 나는 자욱한 아침 안개로 덮인 몽파르나스 공동묘지 위쪽에서 가을과 겨울 한 철씩 살았고, 광활하고 차가운 망자의 숲을 걸어 일하러 갔다... -MD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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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0903197 / 256쪽 141 x 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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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제임스 설터의 국내 첫 산문 “작가의 작가”가 쓴 소설 같은 여행기 작가는 낯설고 이질적인 경험에서 글감을 얻고, 그래서 많은 작가가 디아스포라를 자처하며 여행자에 이방인으로 나섰다. 제임스 설터도 그랬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전투기를 몰았던 굵고 선한 기억이 각인된 이래 미국, 유럽, 아시아 할 것 없이 몇 달, 길게는 몇 년씩 살며 공허함을 채웠고 그 경험들을 동력 삼아 소설을 썼다. 언젠가 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행은 인생을 다른 방식으로 보는 문제예요. 어떤 의미에서 작가는 늘 뭔가를 알려주는 유랑자이고 ... 제임스 설터의 국내 첫 산문 “작가의 작가”가 쓴 소설 같은 여행기 작가는 낯설고 이질적인 경험에서 글감을 얻고, 그래서 많은 작가가 디아스포라를 자처하며 여행자에 이방인으로 나섰다. 제임스 설터도 그랬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전투기를 몰았던 굵고 선한 기억이 각인된 이래 미국, 유럽, 아시아 할 것 없이 몇 달, 길게는 몇 년씩 살며 공허함을 채웠고 그 경험들을 동력 삼아 소설을 썼다. 언젠가 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행은 인생을 다른 방식으로 보는 문제예요. 어떤 의미에서 작가는 늘 뭔가를 알려주는 유랑자이고 아웃사이더여서 계속 이동하는 게 삶의 일부랍니다.” 『그때 그곳에서』는 『어젯밤』 『가벼운 나날』 『스포츠와 여가』 『올 댓 이즈』 『사냥꾼들』 등으로 “작가의 작가”라는 찬사를 받는 제임스 설터의 국내 첫 산문이다. 원체 다작을 하지 않고 자기 경험을 소설로 승화할지언정 자아를 앞세우는 글을 자제했던 작가임을 떠올려볼 때 이 여행기는 소설 작품과는 다른 고유함이 있다. 하지만 『그때 그곳에서』를 더 고유하게 만드는 건 이 책이 여행과 장소와 사람을 담은 자전적 기록이면서도 그의 소설과 같은 정서를 담았고 또 소설처럼 읽힌다는 점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위스, 일본의 도시와 시골을 걷고 머물며 쓴 열여덟 편의 산문에서 제임스 설터는 과거와 현재에 수시로 잠기며 세월 탓에 덧없는 환상처럼 다가오는 사람들과의 일을 떠올리고, 생략을 통해 더 큰 여운을 남기는 그만의 문체로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 시간에 닳아가는 나날 속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기억들을 건져낸다. \"나는 자욱한 아침 안개로 덮인 몽파르나스 공동묘지 위쪽에서 가을과 겨울 한 철씩 살았고, 광활하고 차가운 망자의 숲을 걸어 일하러 갔다. 길은 비어 있었고, 나는 지나치는 모든 것을 들여다보고 낯선 이름들에 잠겨 어지럼증을 느꼈다. 연인과 가족 들이 점심을 하러 들른 일요일 레스토랑의 대화처럼 내가 절대 알 수 없지만 유혹의 파도처럼 다가온 삶의 역사 같은 이름들. 그 이름을 쓴 이상한 글자들에 나는 어리둥절했고, 술 취해 듣는 음악처럼 그것들을 상상했다. 나는 부패의 향이라 여긴 그 희미하고 시큼한 냄새와 더불어 글자들을 들이마셨다. 발레리의 말을 빌리자면 “삶의 선물이 꽃으로 화하는” 그 냄새를 아직도 기억한다.\" -58쪽 \"제임스 설터는 내가 전작을 읽고 싶은 몇 안 되는 북미 작가 중 하나로, 출간 전인 책들을 안달하며 기다리게 된다.\" -수전 손택 조각조각 떠오르는 사람과 장소 예술, 책,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삶의 방식 \"여러 해 동안 나는 스키에 헌신했다. 시간을 들였고 뼈가 많이 부러졌다. 뼈는 아물었고─이제 어느 쪽 어깨나 다리였는지조차 말할 수 없다─시간은 허투루 쓰이지 않았다. 말해줄 것도 회상할 것도 없는 시간이 진정 낭비된 시간일 뿐,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으니 시간은 허투루 쓰인 게 아니다. 오트루트나 버거부엔 못 갔지만 나머지는 나의 일부다. 나는 어린 사내아이와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옛날 버몬트에서 겪은 일이다. 여덟아홉 살쯤 되었고 영국인 같은 금발에 잘생긴 소년이었다. 그가 친구에게 그러듯이 내게 몸을 돌리더니 눈 덮인 세상에 둘러싸여 털어놓았다. '진짜 재밌어요. 그렇지 않나요?' 그가 진짜 맞았다.\" -152쪽 서로 독립적이면서 정서 면에서 일관된 열여덟 편의 글에서는 제임스 설터의 기억 속에 큰 자리를 차지한 사람, 장소, 시절뿐 아니라 문학과 등반과 스키 같은 취미 이상의 것, 건축과 레스토랑과 음식 등의 내밀한 기호가 더없이 절제된 음성으로 회상된다. 중년이 되어 아내와 찾은 파리에서 떠올리는 전쟁 직후 젊었을 적의 파리와 그때 전전하던 저렴한 호텔들. 출판계의 첫 친구로 이제는 고인이 돼버린 지인과 언젠가 저녁을 들기로 약속했던 파리의 식당. 한때 로마에서 만나 냉소를 구축하게 만든 이기적인 여자. 한 해 묵을 집을 찾아 사전답사를 갔던 프랑스의 시골 마을들. 스위스 바젤에서 어느 저녁 슈페츨리를 함께 먹었던 이상적인 여인. 모든 영광을 뒤로하고 조용히 은퇴한 오스트리아의 전 스키 선수와 그가 이끌어준 스키. 번영이 지나고 쇠락해버린 미국 콜로라도의 광산촌과 산골 마을에서 겨울을 기다리던 일. 제2차 세계대전 때 군인으로 처음 발을 들였으나 세월이 흘러 아들과 다시 찾은 일본. 미시마 유키오가 좋아해 이따금 들러 글을 썼다던 도쿄의 힐톱 호텔. 지도를 들고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목초지를 하염없이 걸었던 영국 사우스다운스웨이. 그리고 롱아일랜드로 이름은 바뀌었어도 여전히 시인 월트 휘트먼의 기억을 간직한 포마노크. 제임스 설터의 장소와 사람, 그리고 거기서 가지를 친 숱한 기억은 여행 자체보다 삶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 기억들은 편편이 덧없음의 정서를 띠고 인상파 화가의 그림처럼 전해지지만 진실하며, 삶이 그렇듯 덜 말해졌기에 더 그립고 애틋하고 그 뒷일이 알고 싶어지는 간절함을 자아낸다. \"자기 연민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예술, 책,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최고의 교훈은 여전히 삶의 방식이다. 그녀의 얼굴엔 평정심이 넘쳤다. 나는 그게 보기 좋았다. 그녀는 아는 것의 아주 일부만 말했다. 나는 E. M. 포스터가 재능을 사랑했던 여자를 떠올렸다. 여자란 섬세한 지각과 관용적 판단이 있어야 하며, 도덕적인 우월함과 생생한 성격 묘사 능력을 갖추고 세 가지 분야에서 전문가여야 한다고 그는 묘사했다. 셰에라자드였다. 그런 부류의 여자가 내 앞에 앉아 있었다.\" -129쪽 삶·역사·문학 속 인물들의 호출 시간을 곱씹는 진액 같은 문장 \"우리가 거기에 어떻게 갔는지는 잊었다. 사진이 밖에 걸려 있었다. 분위기를 살피려고 내가 먼저 들어가 보았다. 스타일 괜찮은 곳으로 보였다. “어때?” 내가 나오자 다들 물어봤다. '훌륭해.' 내가 말하자 다들 들어갔다. 나는 “네이트 단골집이래” 하고 설명했다. 예쁜 여자들이 여럿 있었다. 악단이 연주 중이었고 바도 있었을 것이다. '300프랑씩 달라고.' 나는 좀 아는 듯 말했다. '그럼 내가 계산을 책임지지.' 여자들은 이미 자기소개를 시작하고 있었다. 경험이 없지 않은 와이스와 듀발이 ‘자, 그럼’이라 말하는 양 짧은 시선을 나누는 게 보였다. 2차에서 돈은 바닥났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프랑스로의 출항 전날 밤처럼 쏟아지는 행복을 느꼈다. 줄곧 그랬고 지금도 행복의 일부는 선명하게 남아 있지만 그게 어디서 비롯했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이후로 그 거리를 찾아보았지만, 지금은 사라져버렸다.\" -55쪽 제임스 설터의 여느 소설처럼 『그때 그곳에서』의 주된 정서도 덧없음이다. 그는 여행기 곳곳에서 오래전 머물거나 스쳤던 곳들 혹은 역사 속의 장소들을 찾으며 지난날을 떠올리고 세월의 틈을 더듬는다. 과거나 지금이나 장소는 같지만 혼자이던 것이 둘이 되었고, 군용선을 타고 건넜던 바다는 여객기로 이동하게 되었고, 전란으로 폐허였던 곳은 빌딩숲이 되었으며, 영원한 번영을 누릴 것 같던 곳은 터만 남긴 채 사라졌다. 그러는 사이 친구, 연인, 우상이었고 한때 아군이거나 적이었던 기억 속의 수많은 사람이 과거 속으로 떠밀려 갔다. 그리고 그는 더 나이 먹고 더 풍족해지고 세상을 더 많이 알게 됐지만, 그래서 삶은 더욱 불가역적이고 허망한 것임을 제임스 설터는 지인과 역사·문학 속 인물들의 에피소드를 빌려 이야기한다. 한없는 무상함에 흔들리지 않고, “단어를 손바닥에 놓고 곱씹으며 진액만 남도록 문

저자 소개

미국 소설가. 1925년 뉴저지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자랐다.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 졸업 후 전투기 조종사로 수많은 전투에 참전, 비행 중대장까지 지냈다. 한국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군에서 집필한 『헌터스 The Hunters』(1957)를 출간하면서 전역, 전업 작가로 데뷔했다. 1967년 『스포츠와 여가』가 “사실적 에로티즘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작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이후 한동안 시나리오 집필에 몰두해 영화 <다운힐 레이서 Downhill Racer>(1969)와 <어포인트먼트 The Appointment>(1969)의 시나리오를 썼고, <세 타인들 Three>(1969)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했다.
1975년 『가벼운 나날』을 발표, 또 한 번 큰 호평을 받았다. 작가 브렌던 길은 “생존 작가 중 『가벼운 나날』보다 아름다운 소설을 쓴 작가는 생각할 수 없다”라고 밝혔고, 줌파 라히리는 “이 소설에 부끄러울 정도로 큰 빚을 졌다”라고 말했다. 1988년 펴낸 단편집 『황혼 Dusk and Other Stories』으로 이듬해 펜/포크너상을 받았으며, 시집 『스틸 서치 Still Such』(1988), 자서전 『버닝 더 데이즈 Burning the Days』(1997)를 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단편집 『어젯밤』(2005)을 발표해 “삶이라는 터질 듯한 혼돈을 누구도 설터처럼 그려내지 못한다”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 외 작품으로 소설 『암 오브 플레시 The Arm of Flesh』(1961, 개정판 2000년 『캐사다 Cassada』), 『솔로 페이스 Solo Faces』(1979), 여행기 『그때 그곳에서 There and Then』(2005), 부부가 함께 쓴 에세이『위대한 한 스푼 Life is Meals』(2006) 등이 있다. 2013년 소설 『올 댓 이즈』를 발표해 언론으로부터 “더없을 위업” “설터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 등 많은 극찬과 주목을 받았다.
2012년 펜/포크너 재단이 뛰어난 단편 작가에게 수여하는 펜/맬러머드상을 받았고, 2013년에는 예일대에서 제정한 윈덤캠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2015년 6월, 뉴욕 주 새그하버에서 아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역자 소개

번역가. 음식평론가, 건축 칼럼니스트. 한양대학교와 미국 조지아공과대학에서 건축 및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고 애틀랜타 소재 건축 회사 tvdesign에서 일했다. <조선일보>, <에스콰이어> 등 여러 신문과 잡지에 기고했으며 요즘은 홈페이지(www.bluexmas.com)에 주 평균 3회의 글을 올린다. <한식의 품격>, <외식의 품격>, <일상을 지나가다>를 썼고 <에브리 퍼슨 인 뉴욕>, <실버 스푼>, <뉴욕 드로잉>, <그때 그곳에서>, <작가의 창>, <철학이 있는 식탁>, <식탁의 기쁨>, <뉴욕의 맛 모모푸쿠>, <창밖 뉴욕>, <완벽하지 않아>, <모든 것을 먹어본 남자> 등을 옮겼다.
@bluexmas47

책 속에서


파리는 빅토르 위고가 쓴 튈르리 정원의 카트린 드메디시스, 오텔드빌의 앙리 2세, 앵발리드의 루이 14세, 팡테옹의 루이 16세, 그리고 방돔 광장의 나폴레옹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다스리지 않는 자, 즉 시인과 몽상가 들의 파리도 있고, 우리는 헨리 밀러의 파리를 달렸다. 아직 그를 읽지 않았던 때지만, 타이를 매지 않은 낡은 코듀로이 정장 차림으로 취하고 발광하며 모두를 증오하는 마음으로 걸어 집에 돌아오다가 또 어느 순간에는 그 모든 걸 포용하는 그를 볼까 기대했다.
-24쪽

파리에서는 때때로, 지방 마을에서는 그보다 더 자주 위안의 소리, 확신의 소리, 종루와 첨탑의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소리는 정오에 하루를 가르고 자정에 어둠을, 그사이 시간을 가른다. 모두가 유한하지도 육체적이지도 않다는 안정됨이며 경고다. 믿음의 시대가 있었으니, 비록 하얗게 샜지만 그 뼈는 단단해 여전히 유럽이라는 말뭉치의 일부다. 마을에서 자주 종소리가 들리고, 그것이 사소하고 세속적인 것들을 자제시키는 힘을 느낄 수 있다.
-34쪽

누군가 파리에 살며 남서부 언덕바지 마을에 오래된 집을 소유한 스웨덴 여인의 이름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툴루즈와 보르도 사이에 있고 피레네 산맥에 가깝지는 않은 동네였다. 알고 보니 ‘s’를 선호에 따라 발음하기도 안 하기도 한다는 제르(Gers) 지방의 일원이었다. 이중모음을 조금만 잘못 발음해도 전혀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을 짓는 프랑스인들로서는 드물게 무신경한 예다.
-77쪽

헤밍웨이는 이름으로 옷을 엮었다. 산시로, 앙기앵, 세인트클라우드의 경마장. 밀라노, 산세바스티안, 키웨스트 같은 도시들. 늦가을 궂은 날씨가 닥치면 그는 아내와 어린 아들을 데리고 파리를 떠나, 비가 눈으로 바뀌어 소나무에 내리고 추위 속에서 밤길을 걸어 집에 돌아갈 때면 발밑이 뽀드득거리는 지역으로 옮긴다고 했다. 그는 겨울엔 스위스에 가까운 오스트리아 포어알베르크의 슈룬스에서 지냈다. 거기에 대해서는 물론 질브레타, 키츠뷔엘, 엥가딘에서 타는 스키에 대해 썼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도 슈룬스에서 썼다. 그 덕분에 스키가 좋아졌지만 내가 직접 타게 되리라고는 꿈꾸지 않았다.
-153~154쪽

다운클라이밍은 훨씬 어려운 일이다. 내 숨소리가 들리고 내 떨림을 자각하게 된다. 절대적으로 혼자다. 도와줄 사람도 없다. 여기 아닌 다른 곳에 있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감수하려 들 것이다.
육상 선수는 탈락하고 비칠거릴 수 있다. 야구 타자는 헛스윙을 할 수 있고, 테니스 선수는 전력 쏟기를 포기할 수 있다. 가장 높은 수준의 권투 선수조차 포기를 할 수 있다. 등반의 핵심은 때로 탈출구가 없다는 점이다. 포기가 불가능하다. 로베르토 두란이 등반가였다면 추락사했을 것이다. 과장된 위험보다 이 점이 등반에 더 힘을 실어준다. 등반은 원시적이어서, 멍청하고 마초에 이기적일 수 있는 등반가들도 한 가지 공통점을 지니는데, 자신의 영혼, 말하자면 자신의 품성에 관해서 알게 된다는 것.
-186~187쪽

늦은 오후 우리는 포르타니그라로 걸어갔다. 거리는 병원이 많았고 드문드문 은행도 보였다. 나무가 거리 한가운데 심어져 있었고 곧 그 위로 진한 갈색 석재의 로마 대문이 나타났다. 독일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로마 기념물로 높이는 거의 10미터였고 3층 반짜리 커다란 결혼 케이크 같았다. 하지만 건너편의 유명한 호텔은 사라졌다─1967년에 헐렸다고 누군가 나중에 말해줬다. 그 자리에 상자 모양의 새롭고 실용적인 체인 호텔이 들어섰다.
그것이 포르타니그라의 뒤편에 나 있는 새로운 트리어의 첫인상이었다. 고대 시장과 그 너머로 요란한 가게가 빼곡히 줄지어 선 보행 상가. 인파로 붐볐으며 칙칙하고 낡은 것과 천박한 것이 안타깝게 섞여 트리어의 중심은 이제 큰 쇼핑몰 같아 보였다. 958년에 제 개성과 십자가를 얻은 중앙광장 한구석엔 심지어 친숙한 노란색과 빨간색의 맥도날드도 있었다. “예전엔 이렇지 않았다오.” 나는 말했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바뀌었소.”
-226~227쪽

이 모두의 상속자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뻗어 있는 숲, 그 아래 불규칙한 마을, 조용한 지붕. 귀족층은 운전─그들은 일면 좋은 옷을 입고 재규어에 앉아 푸르스름한 앞 유리창을 통해 우아한 얼굴로 힐끗거린다─을 하지만 요즘은 누구나 차를 몬다. 진짜 호사는 그 모두와 동떨어진 것으로, 가로지를 순 있지만 가질 순 없는 땅 위에, 바람 소리만 남은 고요함 속에, 저무는 태양을 제외한 영구함 속에 있다.
-241쪽

 


 

목차

서문

신고 물품 없음
유럽
공동묘지
파리
사이렌의 노래
왕들의 프랑스
프랑스의 여름
바젤의 저녁
스키 타는 삶
고전적인 티롤
유럽의 최장 코스
불멸의 나날
승리 아니면 죽음
잘 안 가는 길
미시마의 선택
트리어
다운스 걷기
포마노크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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