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외면하고 회피했다 세월호 책임 주체들

세월호특조위 조사관 모임 저 | 북콤마 | 2017년 06월

미리보기 북트리

닫기 조사관 후속 모임의 첫 번재 공동 작업. 참사의 순간에는 수많은 이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 책임자, 책임져야 할 조직이 명확히 존재한다. 분명 그들을 가려낼 수 있다. 세월호 참사 앞에 선 책임 행위의 주체들, 대통령에서 하급 관료에 이르기까지 참사 당일 이들의 모습은 '자기 보신'이었다. - 책 속에서

정가
$25.00
판매가
$13.75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0.28 (2%P)
출고예상일
2026년 10월 08일 수령예상일 안내
북카트 담기 바로구매하기 위시리스트담기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북셀프

1시간도 길다! 5분만에 OK! 매장에서 직넙 책을 찾아가세요. 500원 추가적립!(선착순 천명/일)

가능매장 : 신세계강남점

북셀프로 구매하기 북셀프란?

ISBN : 9791187572039 / 208쪽 140 x 210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 17,010
  • 16,200
  • 20,700
  • 20,700

책 소개

출판사 리뷰

조사관 후속 모임의 첫 번째 공동 작업! 세월호특조위가 강제 종료된 뒤 민간인 신분으로 조사 활동을 계속한 조사관들 31명, 첫 번째 결과물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책임 주체들 그리고 책임의 계보를 썼다. 세월호특조위가 활동 기간 1년 6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2016년 9월 30일 이후 강제 종료되자, 진상 규명 활동을 지속할 의지가 있는 조사관 31명이 결의해 후속 모임을 만들었고, 첫 번째 결과물이다. ‘내 관할, 내 소관이 아니다’ 부처 간 책임 떠넘기며… ‘부처 칸막이’로 상황 전파가 지체된 전형적인 사례 ... 조사관 후속 모임의 첫 번째 공동 작업! 세월호특조위가 강제 종료된 뒤 민간인 신분으로 조사 활동을 계속한 조사관들 31명, 첫 번째 결과물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책임 주체들 그리고 책임의 계보를 썼다. 세월호특조위가 활동 기간 1년 6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2016년 9월 30일 이후 강제 종료되자, 진상 규명 활동을 지속할 의지가 있는 조사관 31명이 결의해 후속 모임을 만들었고, 첫 번째 결과물이다. ‘내 관할, 내 소관이 아니다’ 부처 간 책임 떠넘기며… ‘부처 칸막이’로 상황 전파가 지체된 전형적인 사례 참사의 순간에는 수많은 이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 책임자, 책임져야 할 조직이 명확히 존재한다. 분명 그들을 가려낼 수 있다. 조사관들은 세월호 참사 당일 정부가 어떻게 대응했고 어떤 책임이 있는지를 밝히는 데 우선 집중했다. 인명을 구조할 핵심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이유를 먼저 조사하기로 했다. 세월호특조위가 공개한 문건, 동영상, 중간조사보고서 등에 기초해 기록과 자료를 분석하면서, 구조 기관과 책임자들의 동선을 추적해나갔다. 공개된 자료를 중심으로 2016년 11월부터 2017년 1월까지 조사를 진행했다. 여기에 국정원과 국방부, 해경 측이 세월호특조위에 자료 제출을 끝내 거부한 까닭에 빠진 부분 등은 일정한 한계를 갖는다. ‘국민의 안전 불감증’이 재난을 부른 것이 아니다. 탈출하지 못한 친구를 찾으러 다시 배 안에 들어간 학생의 책임감이 참사 당일 정부 기관이나 관료들에게는 부재했기에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구조 기관들은 참사 당일 ‘내 관할, 내 소관’이 아니라는 이류로 자신들은 몸을 빼면서 다른 곳에 책임을 떠넘겼다. 참사 당일 승객들의 신고 전화가 정부 각 기관으로 넘어가면서 사실이 축소되고 왜곡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구조 기관의 지휘부는 서로 소임을 미루었고, 일선 현장의 구조자들은 문책을 피하기 위해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아무도 지휘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아니라도 누구든 지휘하면 된다고 미루어놓고서 막상 아무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다른 부처, 다른 직원들에게 그냥 구조를 맡겨두고 있었다. 이러한 행태는 해경뿐 아니라 정부 재난 대응 기관들에서 공통으로 나타났다. 자신들의 업무가 아닌 일에 그토록 적극 나설 필요가 없다는 것. 이는 세월호 참사 당시 충격과 혼돈 속에서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관성처럼, 그리고 그동안 수많은 대형 참사를 겪는 과정에서 줄곧 유지되어온 방식이었다. 조직의 위계와 속성상 그렇게 부처들끼리 관할과 영역을 서로 미루면서 재난 대응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말았다. 주된 관심사는 ‘상부 보고’ 청와대 없는 컨트롤 타워? 세월호 참사에서 컨트롤 타워의 주체들인 대통령과 장관, 해경 지휘부, 중간 관료, 하급 관료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살펴보면, 그날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상부를 위해서만 관리되는 정보의 흐름’이었다. 참사 당일 관련 공무원들이 각자의 부서에서 수많은 업무를 수행했다고 했지만, 사실 그 일은 상부 기관이나 상급자를 위한 정보 수집과 보고 활동에 지나지 않았다. 구조 활동과 별 관련이 없었다. 해당 부처에서 파견 나온 인력들이 중대본이라는 한 공간에 모여 구조자 수를 집계해서, 언론에 브리핑을 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세월호 참사에서 관료들은 자연 재난에나 적용될 법한 기술적 관리?감독 시스템으로 움직였다. 세월호 참사 당일 대응 기관들은 수치와 규모 자체를 관리하기 위해 대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피해 수치와 규모 자체를 관리하기 위해 정부의 역량을 총동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럴 때 보고서에 숫자를 채우는 데 급급해하는 그들의 행위를 멈출게 할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당시 관할과 소속이라는 그들만의 영역 싸움을 중지시키고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권한이 주어진 곳은 대통령과 청와대밖에 없었다. 실제로 참사 당일 상황에 대한 핵심 정보와 보고는 대통령과 청와대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적절한 지시와와 조치가 나오지 않았다.

저자 소개

  • 저자 : 세월호특조위 조사관 모임
세월호특조위(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 모임은 세월호특조위에서 근무했던 조사관들이 민간인 신분으로 조직한 후속 모임이다.
세월호진상규명법에 따라 만들어진 세월호특조위는 2015년 8월이 되어서야 예산과 인력을 갖춰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2016년 6월 30일 박근혜 정부는 조사 활동을 강제 종료시켰고, 이후 세월호특조위는 3개월간 단식 농성, 조사 활동, 3차 청문회까지 진행하면서 부당한 폐쇄에 항의했다. 결국 9월 30일 이후 기본 업무 시스템이 정지되고, 사무실 출입조차 불가능해지면서 세월호특조위는 법이 보장하는 활동 기간 1년 6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국가 기구로서의 활동을 마치게 되었고, 이후 진상 규명 활동을 지속할 의지가 있는 조사관 31명이 결의해 후속 모임을 만들었다.
‘세월호특조위 조사관 모임’은 현재까지 ‘참사 당일 정부 대응 체계 정리’, ‘세월호 인양 과정 점검’, ‘사고 원인’ 등 조사 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진실을 향해 흔들리지 않고 세월호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이어갈 계획이다. 이 책은 ‘참사 당일 정부 대응 체계 정리’를 기초로 하고 있는데, 공동 작업에 참여한 조사관들은 진상규명국 김성훈·박상은·서희정 조사관, 안전사회과 김진희·전수경 조사관, 피해자지원점검과 김경민 조사관이다. 책임 집필은 안전사회과 김선애 팀장이 맡았다.

머리말

저 바다 위에서 죽어도 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그렇게 믿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다시 그렇게 믿고 싶다. 그 믿음이 잘못이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진실을 포기할 수 없다. 진짜 잘못이 무엇인지 밝혀야 하겠다. 그래서 이 자리에 서 있다. 그런데 혹시 이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여러분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니, 바다 위에서 배가 침몰해도 구조할 줄 모르는 국가에 살고 있는 모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을 살릴 줄 모르는 국가에서 살고 싶지 않은 여러분 모두가 이 자리에 함께 서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__전명선(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무엇보다 지휘부가 적극적인 확인 조치를 하지 않은 탓이 크다. TRS에서 전개되는 상황을 듣기만 하고, 퇴선 준비 같은 구체적 상황을 적극 확인하지 않았다. 직접 개입해 지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진도VTS에게 맡기고, 목포서에 맡기고, 세월호 선장한테 맡기고, 123정장에게 맡겨두면, 다들 알아서 잘할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뭐 하려고 상황실이 필요하고, 지휘 체계가 필요하겠는가. 대형 참사가 발생했는데 지휘부는 현장 상황에 집중하지 않았고, 재확인, 대조 확인을 하지 않았다.__세월호특조위 조사관 후속 모임

책 속에서

 

목차

발문
출간에 즈음하여

그날 누구도 지휘하지 않았다: 초기 구조에서 해경의 책임
책임자 없는 현장, 서로에게 떠넘겼다
목포서 상황실이 직접 세월호와 교신하지 않았다
서해청 상황실도 지시하지 않았다
목포서장도 교신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해경 본청 상황실
9시 18분, ‘교신되지 않는다’
9시 27분, ‘대부분 배 안에 있다’

현장에 도착한 123정, 9시 30분부터 9시 45분까지 34
123정과 세월호와의 교신, 없었다
퇴선 방송을 하지 않았다
9시 44분, 결정적 시간

위기에 어떤 지시를 내렸는가
처음에 구조한 사람들이 선원들이라는 사실
3009함을 타고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목포서장
9시 14분 목포서장의 지시
9시 30분 이후 목포서장은
9시 30분 이후 해경 지휘부들은

배 밖에서 국가는 무엇을 했는가
세월호 참사에서 국가의 책무
1. ‘내 관할, 내 소관이 아니다’
집행 없는 행정
주된 관심사는 ‘상부 보고’
지휘 공백 사태
대다수의 승객들이 선내에 있다는 사실
2. 책임 행위의 주체들
책임자와 책임질 조직, 가려낼 수 있다
현재까지 드러난 기관들의 법적 책임
검찰 수사와 감사원 조사
대통령의 직무 책임
청와대의 법적 책임
안전행정부와 해양수산부의 법적 책임
3. 핵심 정보와 보고가 청와대에 집중되었다
그들만의 ‘안전’
참사 당일 청와대와 대통령의 타임라인
참사 당일 상황 분석
유선보고 왜곡
4. 전형적인 관료주의에 빠진 사람들
청와대 없는 컨트롤 타워
중대본, 관료제에 막혔다
5. 청해진해운의 전화번호를 추가했을 뿐이다
해양수산부는 해경을 지휘하지 않았다
6. 군을 초동 단계에서 투입하지 못했다
조사를 받지 않는 해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