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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앞에 선 철학자들 사르트르에서 데리다까지

마크 크레퐁, 프레데릭 웜 저 | 배지선 역 | 이숲 | 2017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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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6921395 / 208쪽 130 x 1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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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폭력 앞에 선 철학과 철학자의 역할

세계대전의 비극을 벌써 잊은 듯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전쟁이 일어나고, 모두가 테러 위협 속에서 살아가며, 국민에 대한 공권력의 가해 행위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 책은 이처럼 일상이 되었으나 흔히 그 심각성을 간과하는 ‘폭력’의 본질을 규명하고, 폭력 사용의 한계를 탐색하며, 폭력의 가해자에 대한 희생자의 용서와 화해 가능성을 살피며, 폭력에 맞서 때로 행동으로 저항했던 사르트르부터 데리다까지 열두 명 현대 철학자의 사상과 논쟁과 투쟁을 프랑스의 두 젊은 철학자가 분석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일제 식민지기와 군사독재기 폭력으로 얼룩졌던 슬픈 역사에서 위안부, 사상범, 공권력에 희생된 시민 등 폭력이 남긴 상처가 아물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이 책은 폭력 앞에 선 철학과 철학자의 역할은 무엇인지, 또 무엇이어야 하는지 통찰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얼마 전 ‘위안부 문제를 피해자 허락 없이 임의로 가해자 일본과 ‘돈을 받고 해결한’ 한국 정부의 결정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래 대목은 새겨볼 만하다.
“요컨대, 누가 희생자를 대신해서 용서를 공언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정치가가 희생자들에게서 용서할 권리를 빼앗을 수 있겠습니까? 끔찍한 범죄의 흔적이 ‘기억에 암’처럼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도덕적 권위에 준거해 용서에 동의하라고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고통이 서려 있는 묘비명처럼 간결한 장켈레비치의 이 문장은 널리 알려졌습니다. “용서는 사람들이 죽어간 집단수용소에서 이미 죽었다.”


철학, 폭력을 말하다


저자가 말하듯 1980년대 인문학계에서는 ‘역사와 철학의 종말’이 거론되었다. 하지만 역사는 지속될 뿐 아니라 과거 어느 때보다도 폭력적인 양상을 띠고 있고, 이 폭력적인 세상을 이해하는 데 어느 때보다도 철학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실제로 폭력 문제는 여러 분야에서 논의된다. 도덕 분야에서도 그렇지만 정치 분야에서 그러하다. 예를 들어 국가는 폭력을 수단으로 사용할 권리가 있는지, 어느 지점부터 타자의 폭력에 폭력으로 대항할 권리가 생기는지, 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일은 실제로 가능한지 등의 성찰은 곧 본질적인 자유의 문제로 이어지고, 인간 본성에서 그 근본을 살피게 된다. 그래도 논의의 외연을 너무 넓히지 않고자 이 책의 저자들은 이런 폭력 문제를 특정한 시기에 한정해서 살펴본다. 그렇게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1943년부터 프랑스 5월 혁명이 일어난 1968년 사이에 벌어진 폭력적 상황과 이에 맞서 사유하고 행동했던 열두 명 대표적인 현대 철학자의 사상을, 그리고 그들 사이의 논쟁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물론 이 두 시점은 현대 철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특히 1943년은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가 출간된 해로, 사르트르는 여기서 존재와 의식의 문제를 성찰하면서 그가 이후에 천착하게 될 ‘참여’의 철학적 토대를 닦았다.

사르트르에서 데리다까지


저자는 전쟁 후 정치 문제에 천착한 사르트르의 실존철학, 존재와 무, 자유 개념에서 출발하여 그가 부조리와 저항의 철학자 카뮈와 왜 그리고 어떻게 대립했는지 살펴보며 담론을 전개한다. 이어서 어떤 경우에 폭력을 수용해야 할지 그 필요성을 고민하며 논쟁적 저서를 출간한 메를로-퐁티, 절대적 평화와 필연성의 경험을 강조한 카바이예스, 나치의 폭력 앞에서 절대적 평화주의를 포기해야 했던 시몬 베유, 캉길렘, ‘다양성’을 통해 인간을 새롭게 사유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고, 인간의 역사, 사회,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한 레비-스트로스 등의 사유를 소개한다. 아울러 형이상학과 정치 문제에 천착한 들뢰즈, 감시와 감금 문제를 통해 폭력을 분석하고 권력의 본질을 새롭게 통찰한 푸코, 형이상학과 윤리의 관계에 주목한 레비나스와 이에 대한 엄정한 독해를 통해 또 다른 비판적 관계를 모색한 데리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폭력’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 장켈레비치, 그 사유의 패러다임을 해체하며 궁극의 윤리를 모색한 데리다 등 이 책의 저자는 ‘폭력의 시험에 든’ 철학의 사명, 철학자들의 역할을 매우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폭력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역사는 과거의 어떤 것이 아니라 언제나 현재적인 어떤 것으로 지금 이 순간 우리와 관계를 맺으며 변화한다. 이처럼 기억과 성찰은 중단 없이 계속된다. 철학은 우리에게 사유와 행동을 촉구하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역사의 관계를 조명하고, 행동을 통해 정치에 개입하며, 이념과 체제의 광기에 저항하고, 이를 분석하며 해결책을 모색해왔다.
오늘날에도 탈식민화에서 비롯한 갈등, 종교적·이념적 대립, 무력 혁명, 원자력, 테러 등 현실적으로 폭력적인 상황이 끊임없이 전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철학자들은 전후 세계를 어떻게 성찰하고 그에 따라 어떻게 행동했는지, 그들은 어떻게 서로 대화하고 공감하고 대립했으며, 그 대화가 어떻게 들뢰즈, 데리다, 푸코, 레비나스 등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에게 이어졌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이 책의 특히 흥미로운 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성격의 폭력도 용납하지 않았던 카뮈와 대립한 사르트르가 ‘고문’과 ‘테러리즘’을 같은 차원에서 간주하지 않았던 이유는 오늘날 일어나는 대형 테러 사건들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고, 나치의 폭력에 희생되었던 유대인들이 그 야만성을 어떤 언어로도 용서할 수 없고, 국가가 실제 피해자를 대신해서 ‘정치적으로’ 가해자와 화해할 권리가 없는 이유를 설명한 장켈레비치의 담론과 그에 대한 데리다의 해석은 최근 ‘위안부 문제’를 피해자와 무관하게 가해자와 합의했던 한국 정부의 행태가 얼마나 무모하고 저열했는지 실증적인 깨달음을 준다.
이처럼 이 책을 통해 철학자들 각자가 성찰한 존재의 문제와 정치적 입장이 어떻게 서로 이어져 있거나 대립하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폭력이 상존하는 오늘날 우리가 폭력을 어떻게 파악하고, 폭력에 어떻게 대항해야 하며, 특히 ‘철학자’라는 이름의 지성인들에게 어떤 과제가 부과되는지를 명확히 이해하는 데 더없이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저자 소개

베르그송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릴 3대학 교수를 거쳐 파리 고등사범학교 철학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대 프랑스 철학연구 국제센터를 이끌고 있으며 인문학 분야 부책임자, 생명건강과학 윤리자문위원회 일원이다. 프랑스 현대철학과 도덕철학 분야 전문가이며 생명과 돌봄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 특히, 베르그송 연구자로서 베르그송 전집을 편집했다. 주요 저작으로 베르그송에 관한 다수의 연구서 외에 『20세기 프랑스 철학, 시기들(La philosophie en France au XXe siècle, Moments)』(Gallimard, 2009), 『다시 살기(Revivre)』(Flammarion, 2012), 『연결하고 분리하는 삶(La vie qui unit et qui sépare)』(Payot, 2013) 등이 있고 2016년 공저로 『뉴런적 인간, 30년 후(L'Homme neuronal, trente ans après)』(Édition rue d’Ulm), 『비타 노바 새로운 삶: 텍스트로서 삶, 삶으로서 글쓰기(La vita nova: la vie comme texte, l'écriture comme vie)』(Herman, 2016)를 출간했다. 
파리 고등사범학교 철학과 과장이자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연구 책임자이다. 전문 분야는 프랑스와 독일의 현상학과 정치철학으로 언어와 글쓰기, 번역, 정치와 폭력 문제를 아우르며 데리다 저작에 관한 독해도 잘 알려졌다. 그의 연구는 철학뿐 아니라 문학에서도 영감을 받고 있다. 주요 저작으로 『니체, 정치와 예술의 미래(Nietzsche, l’art et la politique de l’avenir)』(PUF, 2003) 『공포의 문화. 민주주의, 정체성, 치안(La culture de la peur. Démocratie, Identité, sécurité)』(Galilée, 2008) 『살인에의 동의(Le consentement meurtrier)』(Le Cerf, 2012) 『글쓰기의 자질. 폭력의 시험에 놓인 문학과 철학(La Vocation de l’écriture: La littérature et la philosophie à l’épreuve de la violence)』(Odile Jacob, 2014) 『증오의 시험: 폭력에 관한 시론(L'épreuve de la haine: Essai sur la violence)』(Odile Jacob, 2016) 등이 있다. 

역자 소개

프랑스 파리에서 젠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 논문을 『젠더와 역사 다시 쓰기(Genre et réécriture de l'histoire)』(L'Harmattan, 2016)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현재 철학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첫 번째 논문이 글을 모르는 여성들이 자신의 역사와 고통을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여 (역사의) 글쓰기, 증언과 목소리 문제를 ‘모(국)어’의 문제와 겹쳐 다루었다면, 두 번째 논문에서는 데리다의 텍스트에서 그 글쓰기를 통해 동물-들의 자전적 글쓰기에 천착하고 있다. 

 

책 속에서

가령, 혁명이라든가 투쟁이 어떤 ‘절대성’ 차원에서 정의의 이름으로 호소하는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철학자들에게 제기됩니다. 그럴 때 정치의 시험은 폭력의 형태 중에서 역사, 혁명, 혹은 어떤 절대성의 관점에서 정당한 폭력과 폭력투쟁을 선별할 것인지, 아니면 모든 폭력의 정당화를 원칙적으로 거부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문제로 귀착되는 것일까요? 이것
은 우리가 끊임없이 부딪히는 이 시대의 문제, 전 세계 곳곳에서 증폭되는 폭력의 참상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25쪽.

비-폭력을 참여를 원칙으로 삼는 ‘휴머니스트들’에 대한 사르트르의 거의 노골적인 비판은 『반항하는 인간』(1951) 출간 이후 사이가 나빠진 카뮈에게 상당히 불편했습니다. 알제리 전쟁 중에 두 철학자가 보여준 각기 다른 입장은 고문과 테러리즘 문제로 명백히 드러났고, 이로써 그들의 단절은 확고해집니다. 고문과 테러를 규탄해야 할까요, 아니면 정당화해야 할까요? 대립하는 두 세력이 모두 ‘피에 호소하는 방법’ 말고는 어떤 가능성도 보이지 않을 때 어떻게 입장을 정할 수 있을까요? 50쪽

고문은 각각의 개인을 그가 거기 속한다고 가정하는, 혹은 그것과 동일시하는 공동체, 즉 그가 속한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범죄의 공범자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리고 각자는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낫기에 모르는 척합니다. 아무것도 보지 않는 편을 택했으므로 증거가 없는 척합니다. 사르트르 분석의 모든 관심은 참담한 ‘도덕적 타락’을 비판하면서 이를 조장하는 전략, 즉 보편화된 살인에 대한 동의(암묵적 동의를 포함해서)를 치밀하게 조직화하는 전략에 대한 비판에 집중합니다. 51쪽

전쟁은 세계적 관계와 연관된 강대국들의 분쟁일 뿐 아니라 국내 정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전쟁은 병사들이 자신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국가 기구와 군대에 종속되어 있음을 전제합니다. 전쟁은 자유화 수단과는 전혀 관계없이 무엇보다도 강압과 노예화를 전제로 합니다. 따라서 어떻게 정당화하든 간에 전쟁은 우선적으로 ‘전체 국가 기구와 사령부가 무기를 들어도 좋다고 인정한 나이의 남성 전체를 상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주권국가 기구가 국민을 죽음의 전쟁터로 보내는 것은 ‘가장 근본적인 형태의 억압’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한, 확실하게 결정적인 비판입니다. 국가 권력은 구속 수단에 종속된 사람들을 ‘수동적 자원 상태’로 간주하기 때문에 여기서 최소한의 해방이라도 기대하는 것은 헛된 일입니다. 따라서 ‘중대한 적’은 내부에 있습니다. 대중을 노예로 만들어 전쟁으로 내모는 의지에 타협하는 것보다 더한 배신은 없습니다. 90쪽

푸코는 권력 작동의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일반적인 이해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용인할 수 없는 것들이 합법성의 가면 밑에 숨어 있는 곳곳을 쉬지 않고 추적하라고, 계몽주의 궤적을 따라 철학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모든 이를 자극합니다. 휴머니즘 관점에서 카뮈가 그랬듯이 권력은 무엇보다도 가공할 위력으로 폭력적인 행위로 표출되며, 담론의 이데올로기적 성격, 즉 피지배자들을 예속하기 위해 조작된 거짓과 폭정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훈육’을 생각의 길잡이로 삼으면, 권력관계는 필연적으로도 직접적으로도 폭력 행사와 동일시되지 않으며 또한 반드시 억압의 영역에 있지도 않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159쪽.

실제로 레비나스는 도덕적, 혹은 절대적인 윤리적 ‘차이’를 통해 폭력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타자’의 얼굴을 통한 근본적 경험에서 그런 절대적 윤리의 차이가 부여됩니다. 이것이 바로 레비나스에 따른 진정한 ‘차이’입니다. 다른 측면에서 레비나스는 무한으로 향한 윤리가 창설하는 다른 철학과 형이상학을 위해 동일성과 체계의 철학에서, ‘전체성’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데리다는 두 번에 걸쳐 이를 부정하는 듯 보입니다. 폭력은 여전히 형이상학에 있고, 심지어 레비나스의 글에서까지도 폭력이어서 이대로 읽고 해체해야 합니다. (...) 그러나 우리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왜 레비나스의 절대적 차이를 반박할까요? 왜 절대적 차이를 철학, 글, 글쓰기 질서에 포함시켜야 할까요? 이것 또한 폭력은 아닐까요? 166쪽.

이것은 반인류 범죄, 더 명확히 말해 나치의 야만성이 자행한 대량학살과 폭력, 권력 남용, 잔혹 행위 처벌의 무(無)시효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시효’라는 것이 필연적으로 암시하는 망각과 무관심을 경계하는 그는 마치 ‘어서 그것을 치워버리기’보다 더 시급한 일은 없다는 듯이 문제의 범죄를 상대화하고 일반화하려는 사람들에게 분노하면서 두 가지 중요한 이유를 들어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대한 용서에 반대합니다. 첫째, 나치가 자행한 범죄들, “유례없는 잔인함의 발명, 악마적 패륜의 극치, 상상할 수 없는 증오의 정수”라는 특징으로 말을 잃게 하는 범죄들은 엄밀히 말해서 모든 한계를 벗어나므로 그에 합당한 처벌이 있을 수 없고, 따라서 가능한 속죄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시효가 있을 수 없습니다. 사실, 나치의 범죄는 언제 어디서나 모든 전선에서 자행되는 ‘전쟁의 잔혹함’이 아니라, 사람들이 용서할 수 있는 범위로는 공포의 폭을 측정할 수도 없는 ‘증오의 작품’이었습니다. 요컨대, 누가 희생자를 대신해서 용서를 공언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정치가가 희생자들에게서 용서할 권리를 빼앗을 수 있겠습니까? 끔찍한 범죄의 흔적이 ‘기억에 암’처럼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도덕적 권위에 준거해 용서에 동의하라고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고통이 서려 있는 묘비명처럼 간결한 장켈레비치의 이 문장은 널리 알려졌습니다. “용서는 사람들이 죽어간 집단수용소에서 이미 죽었다.” 179쪽.

또한, 여기에는 장켈레비치의 모든 분노와 고통이 응집된 두 번째 논점이 있습니다. 그가 이 책을 쓸 때는 이차대전이 끝나고 20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독일은 재건됐고, 유럽공동체가 성립되는 중이었으며,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는 이미 오래전에 이루어졌습니다. 독일인들은 그만큼 용서받았던 것일까요? 야만적인 나치 지도자들은 마땅히 그래야 했던 대로 기소되어 처벌받았을까요? 아니면 언제나 명백하게 나쁜 의도가 동반된 파렴치한 관용의 평결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까요? 장켈레비치는 독일 총리 빌리 브란트가 바르샤바 게토의 봉기를 기리는 기념비 아래 무릎을 꿇기 5년 전에 이미 모든 것이 진행됐음을 확인합니다. 앞으로 독일인들이 무거운 죄책감에 짓눌려 살지 않도록, 늘 과거의 흔적에 얽매여 살지 않도록 모든 조처를 했다는 것입니다. 가해자가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기를 허망하게 기다린 역사! 독일에 대한 장켈레비치의 분노는 50년 넘게 세계 곳곳에서 지속적인 반향을 얻었습니다. 결의에 찬 민중이나 공동체가 이런 요구의 필연성을 확신하며 살아갈 때 분노는 국제 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고 큰 걸림돌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령, 지금도 일본이 그러듯이, 많은 정부가 과거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데 주저하는 태도를 비판할 수 있고, 용서를 구하거나 허락하는 문제가 개인이 민중과 역사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능력과 얼마나 깊이 연관되어 있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이 기다림의 시간에 장켈레비치의 선고는 준엄합니다. 그렇습니다, 자기가 저지른 죄를 인정하지도 않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지도 않는 사람을 용서할 수는 없습니다. 180쪽.

목차

한국 독자들에게 5
머리말 - 폭력 앞에서 철학은? 9

서론
1. 폭력 앞에 선 철학자들(FW)15
2. 정치의 시험,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MC) 20

1부 제2차 세계대전 전후

I 사르트르, 카뮈
1. 『존재와 무』(FW) 29
2. 고문과 테러리즘, ‘피의 궤변’(MC) 45

II 카뮈, 메를로-퐁티
1. 부조리, 반항, 세계(FW) 59
2. 쟁점이 된 폭력(MC) 74

III 시몬 베유, 캉길렘, 카바이예스
1. 시험에 든 평화주의 (MC) 87
2. 필연성의 경험 (FW) 100

2부 1960년대

IV 레비 스트로스,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1. 다시 생각하는 인간의 다양성(MC) 113
2. 구조, 실존, 역사(FW) 125

V 푸코와 들뢰즈
1. 형이상학적·정치적 비판, 구조와 차이 사이(FW) 139
2. 용인할 수 없는 감금(MC) 150

VI 장켈레비치, 데리다, 레비나스
1. 윤리학과 형이상학, 환원 불가능한 차이(FW) 163
2. 불가능한 용서(MC) 176

결론
1. 오늘날 철학의 과제(FW) 189
2.세계에 대한 염려(MC) 195

옮긴이 말 - ‘철학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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