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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2143806 / 176쪽 144 x 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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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이 책은 특별하거나 독창적이지 않다. 일반적이고 개론적이다. 그러나 신앙교육의 관점에서 예수님의 사역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들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게다가, 오늘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랑하면서 자기 삶과 믿음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세워가고 복음을 전하는 기독교 신앙 교사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은 소박한 바람 때문에 이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 오래 전에 드렸던 소원 기도와 그에 따라 얻게 된 배움의 기회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았다.
출판사 리뷰
복음의 출발점은 하나님이다. 그리고 복음의 귀결점도 하나님이다. 복음은 오직 구원의 주이신 하나님께 속하는 신적 영역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복음”(막 1:14)인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인류의 구원자가 있다. 그래서기독교 “신앙의 기본 조항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과 구세주로서 인정하는 것이다” 교육은 가르침과 배움의 상호작용이다. 그래서 교육의 결과는가르치는 자-교사-와 배우는 자-학생-사이의 협력과 공동의 참여와 실천으로 이루어진다. 그런 이유로, 교육은 교사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마찬가지로 학생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오직 교사와 학생이 함께 노력할 때 생기는 공동의 열매이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교육이다. 교육은 그렇게 작용한다.본서는 그러한 점을 강조하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행하셨던 교육에 대하여 성서적으로 접목을 시키면서 하나님께서 최고의 교사이신 점을 강종한다.
그리스도인은 복음의 그리스도인이고 교회는 복음의 교회이다. 근본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복음과 나뉠 수 없다.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복음 때문에 존재하게 되었다. 그 복음은 또한 교육에서 비롯되며 참 제자도에서 나오는 것이다. 본서는 이러한 점들을 강조하면서 하나님과의 제자 관계 형성에 대하여 까지 깊이 다룬 도서이다.
5. 책 속으로
기독교 신앙의 중심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빼놓고 기독교 신앙을 말할 수 없고, 복음을 빼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할 수 없다. 기독교 신앙을 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은 복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아담 해밀턴(Adam Hamilton)은 이렇게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죽으심 그리고 부활은 복음의 절정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완성을 나타낸다.” 이것이 복음이다.
복음은 죄와 사망 가운데 있는 인간과 이 세상을 위한 하늘의 구원방식이다. 복음이 없는 세상은 죄와 사망 가운데 있는 세상이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없기에 절망과 멸망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세상은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해방과 생명을 위해 절대적으로 복음을 필요로 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 세상에 복음을 주신 이유이다. 그리스도인들로서 우리는 이것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복음은 절대 진리이다.
신앙에 대한 배움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바탕으로 한다. 우리는 성서를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게 된다. 하나님은 성서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를 가르치신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가르치시는 교사이다. 교사이시되, 참 교사이고 최고의 교사이시다.
더욱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진리를 가장 잘 알고 계신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가르침이고 하나님의 가르침은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알게 된다. 곧 영적 삶과 관련하여 최고의 배움은 예수님께 배우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도 교사이다. 교사이시되, 교사 중의 교사이고 완전하신 교사이다.
예수님께 배우는 것(learning from Jesus),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 가르침을 따르면 온전한 제자-제자는 배우는 자, 곧 학생을 의미한다-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완전한 가르침이다. 완전한 가르침이 완전한 배움을 낳는다. 그리고 그 가르침은 우리 안에서 생명과 변화를 낳는다.
실제로, 4복음서는 예수님을 89회나 교사로 언급하는 반면에 설교자로는 단지 12번 언급한다. 물론, 호칭의 사용 횟수가 많다고 해서 예수님의 사역에서 교사의 역할이 설교자의 역할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할 수 없고, 게다가 예수님의 사역에서 가르침과 설교는 함께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 둘은 연결되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가르침의 사역은 언제나 그가 하는 모든 것에서 중심적이었다”(H. Colson and R. Rigdon). 예를 들면, 흔히 산상설교로 불리는 마태복음 5-7장은 가르침이 말씀을 전하는 주요한 수단이었음을 말해준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마 5:1-2).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마 7:28-29). 이런 점에서 보면, 그것은 산상설교보다는 산상수훈, 곧 산상 가르침으로 불리는 것이 더 나을 듯싶다.
이처럼, 예수님에게 교육/가르침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주된 방법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교사로, 그것도 교사 중의 교사로 불리는 것은 마땅하다. 그리고 우리는 교사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 곧 믿음과 삶에 관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유념할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교육/가르침의 사역의 관점에서 한 사람의 교사로, 그것도 교사 중의 교사로 이해한다고 해서 그분을 그저 한 사람의 인간 교사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탁월한 도덕 교사로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도덕 교사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도널드 거스리(Donald Guthrie)가 정확하게 지적하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히 탁월한 인간적 교사가 아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교육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할 때, 그 의도는 우리는 그분을 많은 사람들 가운데 탁월한 한 사람의 교사로 보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으로 믿되 그분의 지상에서의 사역 형태와 관련하여 교육/가르침이 그분의 사역의 주된 방법이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거스리의 말은 매우 중요하다.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신앙 교육(religious teaching)을 강조해왔다. 왜냐하면 예수 그 자신이 그 기능(art)의 최고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그가 교회에서의 교육에 미친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수 없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예수는 교육자 이상이었다는 것이다. 비록 그가 지성의 계몽자라고 할지라도, 그의 임무는 더 근본적이었다. 그는 구원하러 오셨고, 그 구원은 그의 가르침의 열쇠였다. 비록 그가 구원자로 오지 않았을지라도, 그의 가르침은 그것의 내용과 방법에서 비길 데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탁월하다고 실제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것은 그의 가르침의 실제성(practicality)과 타당성이 그의 구속 사역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다음의 논의에서 결코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니고데모가 말하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요 3:2)이다. 그러나 거스리가 강조하듯이, 그분은 단순히 인간적 지식을 가르치러 오신 분은 아니다. 오히려 그분은 신적 지식을 가르치러 오셨고 더욱이 하나님의 구원자로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사/선생이기 이전에 구원자이시다. 그래서 그분의 가르침의 사역은 바로 구원사역 안에 위치한다. 그분의 사역에서 가르침은 구원을 섬긴다. 구원사역 안에서만 가르침의 사역이 참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빼놓고 기독교 신앙을 말할 수 없고, 복음을 빼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할 수 없다. 기독교 신앙을 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은 복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아담 해밀턴(Adam Hamilton)은 이렇게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죽으심 그리고 부활은 복음의 절정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완성을 나타낸다.” 이것이 복음이다.
복음은 죄와 사망 가운데 있는 인간과 이 세상을 위한 하늘의 구원방식이다. 복음이 없는 세상은 죄와 사망 가운데 있는 세상이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없기에 절망과 멸망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세상은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해방과 생명을 위해 절대적으로 복음을 필요로 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 세상에 복음을 주신 이유이다. 그리스도인들로서 우리는 이것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복음은 절대 진리이다.
신앙에 대한 배움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바탕으로 한다. 우리는 성서를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게 된다. 하나님은 성서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를 가르치신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가르치시는 교사이다. 교사이시되, 참 교사이고 최고의 교사이시다.
더욱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진리를 가장 잘 알고 계신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가르침이고 하나님의 가르침은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알게 된다. 곧 영적 삶과 관련하여 최고의 배움은 예수님께 배우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도 교사이다. 교사이시되, 교사 중의 교사이고 완전하신 교사이다.
예수님께 배우는 것(learning from Jesus),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 가르침을 따르면 온전한 제자-제자는 배우는 자, 곧 학생을 의미한다-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완전한 가르침이다. 완전한 가르침이 완전한 배움을 낳는다. 그리고 그 가르침은 우리 안에서 생명과 변화를 낳는다.
실제로, 4복음서는 예수님을 89회나 교사로 언급하는 반면에 설교자로는 단지 12번 언급한다. 물론, 호칭의 사용 횟수가 많다고 해서 예수님의 사역에서 교사의 역할이 설교자의 역할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할 수 없고, 게다가 예수님의 사역에서 가르침과 설교는 함께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 둘은 연결되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가르침의 사역은 언제나 그가 하는 모든 것에서 중심적이었다”(H. Colson and R. Rigdon). 예를 들면, 흔히 산상설교로 불리는 마태복음 5-7장은 가르침이 말씀을 전하는 주요한 수단이었음을 말해준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마 5:1-2).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마 7:28-29). 이런 점에서 보면, 그것은 산상설교보다는 산상수훈, 곧 산상 가르침으로 불리는 것이 더 나을 듯싶다.
이처럼, 예수님에게 교육/가르침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주된 방법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교사로, 그것도 교사 중의 교사로 불리는 것은 마땅하다. 그리고 우리는 교사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 곧 믿음과 삶에 관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유념할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교육/가르침의 사역의 관점에서 한 사람의 교사로, 그것도 교사 중의 교사로 이해한다고 해서 그분을 그저 한 사람의 인간 교사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탁월한 도덕 교사로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도덕 교사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도널드 거스리(Donald Guthrie)가 정확하게 지적하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히 탁월한 인간적 교사가 아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교육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할 때, 그 의도는 우리는 그분을 많은 사람들 가운데 탁월한 한 사람의 교사로 보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으로 믿되 그분의 지상에서의 사역 형태와 관련하여 교육/가르침이 그분의 사역의 주된 방법이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거스리의 말은 매우 중요하다.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신앙 교육(religious teaching)을 강조해왔다. 왜냐하면 예수 그 자신이 그 기능(art)의 최고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그가 교회에서의 교육에 미친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수 없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예수는 교육자 이상이었다는 것이다. 비록 그가 지성의 계몽자라고 할지라도, 그의 임무는 더 근본적이었다. 그는 구원하러 오셨고, 그 구원은 그의 가르침의 열쇠였다. 비록 그가 구원자로 오지 않았을지라도, 그의 가르침은 그것의 내용과 방법에서 비길 데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탁월하다고 실제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것은 그의 가르침의 실제성(practicality)과 타당성이 그의 구속 사역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다음의 논의에서 결코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니고데모가 말하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요 3:2)이다. 그러나 거스리가 강조하듯이, 그분은 단순히 인간적 지식을 가르치러 오신 분은 아니다. 오히려 그분은 신적 지식을 가르치러 오셨고 더욱이 하나님의 구원자로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사/선생이기 이전에 구원자이시다. 그래서 그분의 가르침의 사역은 바로 구원사역 안에 위치한다. 그분의 사역에서 가르침은 구원을 섬긴다. 구원사역 안에서만 가르침의 사역이 참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서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시금 확언하기 9
교사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의 가르침의 사역 15
하나님은 교사다: 하늘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라서 29
예수님의 제자들, 따르면서 배우면서 가르치면서 42
가르치는 사역의 신학적 중심원리:하나님의 나라(1) 52
가르치는 사역의 신학적 중심원리: 하나님의 나라(2) 60
복음, 기독교 신앙과 신앙교육의 중심 내용 75
예수 그리스도, 신앙교육의 중심: 기독교적 형성 83
기독교 신앙교육의 실천적 목표로서의 제자도(1):
제자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닮는 삶 93
기독교 신앙교육의 실천적 목표로서의 제자도(2): 105
제자 삼는 가르침 105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 주제들 117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육: 성령의 가르침을 따르기 129
삶을 변화시키는 가르침 140
예수님의 가르침의 방법들 150
가르침 후의 물음: 제대로 가르치고 제대로 배웠는가? 1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