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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다쿠미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

박봉 저 | 솔과학 | 2017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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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7124153 / 283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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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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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조선 사람에게 따뜻했고 조선에 뜨거웠던 사람, 자신의 유언대로 조선에 묻혔고 조선인의 손에 의해 망우리에 묻힌 유일한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 그의 삶은 나에게 빚을 지웠다. 그에게 가기로 했다 - 작가의 말

1. 아사카와 다쿠미란 사람

대단한 학자도 정치가도, 영웅은 더더욱 아니었던 평범했던 사람, 아사카와 다쿠미. 그가 죽어 조선에 남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한국의 산과 민예를 사랑하고 한국인의 마음속에 살다간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 망우리 공동묘지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의 무덤에 세운 추모비에 새긴 글이다. 해방 이후 대대적인 일제 잔재 척결이 있었지만 그의 묘는 오히려 보호나 보존의 대상이 되었다. 이 자극적인 비문 또한 한국인들이 새겨놓은 것이다.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일제강점기와 거기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으로 시작되었다. 조선반도는 일본인들의 호기심과 욕망의 대상이 되었다. 경술국치 이후에는 주권을 잃어버린 나라가 되었다. 1919년 3.1독립운동마저도 실패로 돌아갔다. 독립을 위한 투쟁은 국내외적으로 전개되었지만 모든 것이 절망적인 상황. 백성들의 삶엔 빛이 없었다. 생존의 절벽 앞에서 조선의 문화를 돌아본다는 것은 참으로 지난한 일이었다.
그런 시절에 조선으로 건너 온 아사카와 다쿠미는 틈틈이 모은 시간으로 우리에게 두 편의 역작을 남겼다. 『조선소반』과 『조선도자명고』다. 이것은 대단한 철학이나 문학작품이 아니다. 언뜻 보면 그저 우리 조상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던 소반, 그리고 옹기나 도자기 이름에 관한 기록일 뿐이다. 이방인이 왜 낯선 언어로 남의 나라 물건에 대해 그리고 그 모습과 이름들을 기록해 놓았을까. 하지만 그의 말을 들어보면 적어도 우리에겐 ‘역작’임이 분명하다.

- 내가 기록한 것은 계통적으로 연구를 하거나 제대로 고증을 거친 것이 아니다. 조선사람들과 함께 어울린 덕분에 쓰게 된 지극히 통속적인 서술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하지 않으면 더 많은 소반이 사라지게 될 것을 염려하여 일단 기록하게 되었다. -『조선의 소반』서문 중에

그는 ‘지금 하지 않으면 사라지게 될’이라 쓰고 있다. 이 땅에서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인데 왜 그랬을까? 읽어내기 어려운 구절이다. 한국인이 아닌 일본에서 건너 와 산림국에 근무하던 일개 산림기수의 말이었다. 조선사람이라면 뺨이라도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일 것이다.


그는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조선의 절망적인 현실에서 조선민족의 예술의 현실을 특이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일본인들은 조선의 예술품을 마음껏 갖고 싶어 무덤까지도 파헤쳤다. 조선의 불탑을 훔쳐 자신의 정원에 세웠다. 그런 시절에 다쿠미는 달랐다.

- 일본인들은 맹목에 가까울 정도로 이 나라의 차사발이나 청자, 백자를 탐한다고 들었다. 그것이 무슨 전리품이나 기념품이라도 되는 양 ‘돌아갈 때는 멋진 청자 한 점 가지고 가고 싶다’며 안달한다고 한다. 내가 입은 조선옷에 대한 시선과 조선의 도자기를 향한 동경은 왜 그리 다른 것일까. -본문 중에서

다쿠미는 고뇌했다. 필자는 다쿠미를 만나면서 채무의식을 떠올렸다고 한다. 다쿠미를 찾아 나섰다. 무지와 함께 전적으로 반성이 따라야 할 일이었다. 그래서 관심이라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필자는 후기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 우리가 ‘무관심’했다는 것이 나의 관심을 끌었고, ‘최소한’의 것도 몰랐다는 것이 나를 이끌었다. 내 잘못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아예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누구도 책임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떤 책임을 묻자는 게 아니다. 내가 알았으니 말하고 싶었었다는 게 전부이다.

그의 삶은 짧았다. 1931년 봄, 17년간의 조선생활을 끝낸 다쿠미는 마흔 살이었다. 2개월 동안 전국을 돌면서 묘목을 길러내는 방법을 강연하던 다쿠미는 과로로 쓰러졌다. 3월 27일 급성폐렴으로 고열에 시달렸다. 몸은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급속히 나아갔다. 마지막까지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던 것은 이런 것이었다.

- 난데없이 불쑥 끼어든 일본인으로서는 정확성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도자기의 이름들이 점점 사라지는 형편이라 더 이상 방치해 둘 수 없다. 일단 한데 모아 둠으로써 안목 있는 사람의 가르침을 받는 데도 편리하리라 생각하여... 이 책은 너무도 가까운 친구였으며, 나를 존재하게 한 조선 친구들의 사랑에 대한 기념이다. -『조선도자명고』 서문 중에

이것은 다쿠미라는 인물이 연구한 책 속에 남겨 놓은 말이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다쿠미의 절박함을 헤아리긴 정말 어렵다. 앞에서처럼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 글은 다쿠미가 동정심으로 조선을 바라보지 않았으며 오직 인간과 문화를 사랑했다는 전제로 전개된다.

그는 조선에 묻히고자 했고 그렇게 되었다.

가끔이긴 하지만 그의 진정성에 의심을 품는 일도 있다. 풀기 어려운 감정이 켜켜이 쌓인 일본에 대한 우리의 정서로 미루어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이해로 족할 일이다. 왜 이렇게 혹은 저렇게 하지는 못했느냐 요구하는 것은 그런 이해를 넘어서는 선입견이다. 분명한 것을 가지고 이해해야 한다. 그는 돌아가지 않았고, 여기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겼고, 이 땅에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다쿠미는 누구들처럼 이 땅의 민예품을 단 한 점도 일본으로 가지고 가지 않았다. 오히려 사라지는 것들을 모아 조선민족에게 전해 주었다. 이 땅에 세워진 최초의 민간 박물관인 ‘조선민족미술관’이 그것이다. 그의 손때 묻은 수집품들은 지금도 우리 박물관에 남아있다. 이것은 이해할 일이 아니라 알아야 할 일이다. 이 책은 그것을 말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 일본과 한국. 얄궂은 운명으로 맺어진 이웃이다. 둘은 악연으로 맺어진 역사가 도드라지기만 하다. 그것은 이웃이었기에 있을 수 있는 역사였다. 문제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당하기만 했던 우리의 입장에서는 뉘우침과 사과를 요구하겠지만, 강요가 아니라 포용으로 진정한 뉘우침을 끌어내는 것도 미래를 위한 길이다.
둘 사이에는 다리들이 많이 놓여 있다. 거길 오가기만 해도 될 일인데 안타깝게도 다리를 보지 못하고 있다. 아사카와 다쿠미도 바로 그런 다리 중의 하나이다.

저자 소개

(박영봉)


오래 되었다고 한다. 일본사람인 아사카와 다쿠미라는 사람을 쓰겠다고 맘을 먹은 지가 십년 쯤. 모르고 살아도 상관없고, 모르는 것이야 셀 수도 없겠지만 대상이 인류의 걸작인 우리문화라면 간단치 않다. 모르는 것이 잘못은 아니라지만 부끄러울 때가 있다. 필자는 그걸 다쿠미로부터 깨달았다고 한다. 둘 사이의 면죄부라는 생각을 하면서 보낸 십년이라 했다. 

그러는 사이 별난 인간을 만났다. 기타오지 로산진이다. 요리의 반은 그릇이라는 기치로 일본 요리혁명을 일으킨 인물이다. 저서 「요리 그릇으로 살아나다」, 「요리의 길을 묻다 로산진」 (진명출판사), 「로산진 평전」 (아우라)은 그렇게 나왔다. 지금, 음식칼럼을 쓰기도 하며 통도사 자락 시골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살고 있다. 함양에서 자라 거창고와 경북대 국문과를 나왔다. 
e-mail : sogo9257@hanmail.net 

머리말

오랜 시간이 흐른 후
- 국경의 기나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유키구니雪國』의 첫 장면이다. 마구 쏟아놓는 폭설이었다. 니가타新潟를 생각했지만 아오모리靑森행 신칸센은 벌써 모리오카森岡를 지나고 있었다. 아키타秋田행 열차가 눈 속으로 멀어져 갔다. 아키타, 어머니의 소녀시절이 잠든 곳이다. 설원을 담아보려 눈에 힘을 주었다. 꼭 한 번은 함께 가고 싶었는데... 시야가 흐릿해졌다.
- 그 사람은 아키타에 잠시 살았습니다.
- 네? 누구 말입니까?
-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 내 운명 속의 한 사람!
어머니의 영상을 깨뜨린 사람은 아사카와 다쿠미였다. 그는 설국을 지나 어둠으로 떨어지는 절벽처럼 아득했다. 사람에게 따뜻했고 조선에 뜨거웠던 사람, 빚을 졌다는 생각이 파고들었다. 터널을 벗어나 그에게 가기로 했다.
야마나시山梨 다카네조高根町, 다쿠미가 자란 곳이다. 생가는 커녕 그의 무덤조차도 없지만 ‘아사카와 형제기념관’이 있었다. 조선 반닫이와 소반, 달항아리가 있었고, 바지저고리를 입은 사람들이 모형으로 맞아주었다.
1931년 초, 2개월 동안 조선 전국을 돌면서 묘목을 길러내는 방법을 강연하던 일본인 산림기수 아사카와 다쿠미는 과로로 쓰러졌다. 그 길로 마흔이라는 나이에 갔다. 왜 그렇게 일찍 세상을 떠났을까? 왜 망우리 공동묘지에 낯선 이름으로 잠들어 있을까?
많은 시간이 흐르고, 그가 눈을 감지 못할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프게도 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묻힐 수는 없다. 기억으로 엮어 다쿠미 선생에게 드린다.

책 속에서

야마나시山梨 다카네조高根町, 다쿠미가 자란 곳이다. 생가는커녕 그의 무덤조차도 없지만 ‘아사카와 형제기념관’이 있었다. 조선 반닫이와 소반, 달항아리가 있었고, 바지저고리를 입은 사람들이 모형으로 맞아주었다.
1931년 초, 2개월 동안 조선 전국을 돌면서 묘목을 길러내는 방법을 강연하던 일본인 산림기수 아사카와 다쿠미는 과로로 쓰러졌다. 그 길로 마흔이라는 나이에 갔다. 왜 그렇게 일찍 세상을 떠났을까? 왜 망우리 공동묘지에 낯선 이름으로 잠들어 있을까?
많은 시간이 흐르고, 그가 눈을 감지 못할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프게도 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묻힐 수는 없다. 기억으로 엮어 다쿠미 선생에게 드린다. - 글을 쓰기 전에


곧 내려간 바구니에 몇 점의 도자기가 담겨 올라왔다. 곤도는 그 중 하나를 집어 들어 묻은 흙을 닦아내고 횃불 가까이에 비춰 보았다. 나무와 풀숲에 숨어서 보는 내 눈에도 그것이 보였다. 높이가 얼추 30센티 되는 청자 주전자였는데 손잡이와 뚜껑까지 온전했다. 곤도의 눈빛이 불빛 아래 몹시 빛나고 있었다. 청자의 운명이 다시 떠올랐다.
…은폐와 유폐! 이게 말로만 듣던 도굴이라 말인가.
쩡- 머리가 얼음장에 금이 가듯 쪼개졌다. -무덤 속을 좇는 사람들

목차

글을 쓰기 전에 · 8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조선땅에 묻어 주세요 · 12
내 삶의 마지막 날 풍경 · 12
흙으로 돌아가다 · 17

01 다쿠미, 영혼으로 만남 - 하나 · 23
조선을 만나다· 27
이 땅에서 산다는 것은 · 39

02 다쿠미, 영혼으로 만남 - 둘 · 47
조선옷으로 갈아입다 · 51
풍경이 다를 뿐, 같은 길 · 59
조선옷, 그 따뜻함과 무거움 · 67

03. 다쿠미, 영혼으로 만남 - 셋 · 75
한 점 백자 항아리에 빠지다 · 79
청자의 운명을 만나다 · 88
무덤 속을 좇는 사람들 · 99

04 다쿠미, 영혼으로 만남 - 넷 · 113
믿음이 간절한 시절 · 117
진정 돌아가야 할 것은 · 123
임업시험장의 빛과 어둠 · 129
아! 저 산에 봄은 왔건만 · 135

05. 다쿠미, 영혼으로 만남 - 다섯 · 143
피지 못한 꽃, 아내 미쓰에 · 147
광화문은 어디로 가는가 · 157
천사 인형 · 168

06 다쿠미, 영혼으로 만남 - 여섯 · 175
재앙은 또 다른 비극을 부르고 · 179
조 선 분원의 최후 · 187
선술집의 대화 · 197
청자, 그들에게 빛을 · 206

07. 다쿠미, 영혼으로 만남 - 일곱 · 213
그 사발장수처럼 · 217
도미모토 겐키치와의 외출 · 224
조선의 명품 하나, 소반 · 233
도자기, 이름이라도 남길 일 · 241

08 다쿠미와 마지막 대화 · 249
희망을 빚다 · 253
최초의 민간 박물관, 조선민족미술관이 서다 · 259
다시 마지막 날의 풍경 · 275
쓰고 나서 ·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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