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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문헌학

김시덕 저 | 열린책들 | 2017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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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2918242 / 560쪽 162 x 232 (㎜)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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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지식의 형성과 유통, 그 중심에 〈전쟁〉이 있었다! 전쟁과 문헌 일본 고문헌 연구자로 탄탄한 입지를 쌓고 있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김시덕 교수의 신간이다. 30년 넘는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일본 고전 문학 학술상〉을 외국인 최초로 수상해 화제가 된 전작[『이국 정벌 전기의 세계』(2010, 가마사쇼인), 한국어판은 『일본의 대외 전쟁』(2016, 열린책들)]에 이은 두 번째 연구서로 문헌 연구의 시기가 15세기에서 근대기까지, 그 범위가 동북아 전체와 유럽에까지 확장되고 있음이 주목된다. 김 교수는 문헌... 지식의 형성과 유통, 그 중심에 〈전쟁〉이 있었다! 전쟁과 문헌 일본 고문헌 연구자로 탄탄한 입지를 쌓고 있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김시덕 교수의 신간이다. 30년 넘는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일본 고전 문학 학술상〉을 외국인 최초로 수상해 화제가 된 전작[『이국 정벌 전기의 세계』(2010, 가마사쇼인), 한국어판은 『일본의 대외 전쟁』(2016, 열린책들)]에 이은 두 번째 연구서로 문헌 연구의 시기가 15세기에서 근대기까지, 그 범위가 동북아 전체와 유럽에까지 확장되고 있음이 주목된다. 김 교수는 문헌학자로서 특히 〈전쟁〉에 관심이 많다. 그는 전쟁이 〈비정상적이고 발작적인 현상〉이라는 명제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쟁이 정상이며, 〈전쟁과 전쟁 사이에 휴지기로서 평화가 존재〉한다고 본다. 일견 전쟁 옹호론으로 읽힐 수 있겠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즉, 평화는 자연히 유지되지 않으며 전쟁을 막기 위해 비상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홀로코스트를 연구하는 것이 히틀러의 부활을 위한 것이 아니듯, 그는 전쟁 문헌 연구를 통해 평화에 기여하고자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김 교수는 전쟁의 기억이 담긴 문헌을 추적해 왔다. 전작에서 전근대 동아시아 각국이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에 주목했던 그는 신간 『전쟁의 문헌학』에서 전쟁이 문헌의 형성과 유통에 미친 막대한 영향력을 분석한다. 서문에서 김 교수는 〈상대국의 문헌과 정보가 수집되고 담론이 형성된 주요한 원동력은 상대국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나 우호적 감정이〉 아니고, 〈이 지역에서 과거에 발생했던 전쟁,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것이 예상되는 전쟁에 대한 경계와 준비, 즉 무비(武備)가 그 근원에 있다〉고 주장한다. 즉 이 책은 동북 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국제 전쟁이 활발한 문헌 형성과 유통을 촉발시켰고, 이렇게 형성된 문헌(지식)이 또 다른 전쟁을 발생시키는 단초가 되었음을 밝히고 그 메커니즘을 추적한다. 에도 일본의 한국사 교과서, 『동국통감』 임진왜란 이후 상대국의 문헌(지식)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국가는 한중일 삼국 중 일본이었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문헌의 형성과 유통을 분석하는 중심축 또한 일본이다. 저자는 먼저 조선과 중국의 문헌들이 일본으로 전해서 수용된 양상을 분석한다. 특히 중요한 분석 대상은 조선의 『동국통감』이다. 1485년 서거정 등이 편찬한 『동국통감』은 『삼국사기』와 함께 일본에서 가장 널리 읽힌 조선 역사서로, 임진왜란 당시 판목이 약탈되어 일본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최초의 유학자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 1561~1619)가 제자 하야시 라잔(林羅山, 1583~1657)에게 『동국통감』을 빌려 보기를 청한 사연이 유명하다. 『동국통감』은 에도 일본의 한국사 교과서라 할 만한 『신간동국통감』의 저본이 되는데, 1667년에 이를 편찬한 이가 바로 하야시 라잔의 아들 하야시 가호(林?峰, 1618~1680)이다. 이렇듯 『동국통감』은 일본 내 한국사 연구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가호가 편찬한 『신간동국통감』의 판목이 조선에 전해지게 된 사연 또한 흥미로운데, 1919년 제2대 조선 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 1850~1924)가 『신간동국통감』의 판목을 총독부에 기증함으로써 조선-일본-조선의 전래 주기가 완성된다. 그간 존재를 확인할 수 없었던 이 판목을 2014년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발견해 학계에 보고한 바 있는 저자는 그간의 연구를 종합해 한일 간 문헌 교류의 한 흐름을 조명한다. 임진왜란 연의 에도 일본에서 왜 그토록 많은 임진왜란 문헌이 제작되었는가. 『징비록』이 에도 일본의 베스트셀러였음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에도라는 한 시대의 베스트셀러에 그치지 않고 근대 이행기까지 지속적으로 애독되었으며 수많은 다른 임진왜란 문헌의 저본이 되었다. 저자는 징비록을 비롯한 임진왜란 문헌들이 『삼국지연의』나 『수호전』처럼 일본의 무위를 노래한 일종의 〈연의〉, 말하자면 〈임진왜란 연의〉로서 제작되고 읽혔다고 설명한다. 이는 일본 역사에서 임진왜란이 갖는 특수성에서 기인한다. 전례없는 규모의 국제 전쟁, 막대한 피혜를 낳았음에도 승리하지 못한 전쟁에 대해 일본인들은 스스로 납득할 만한 설명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전작 『일본의 대외 전쟁』에서도 밝힌 것처럼, 일본은 전쟁의 필연성과 정당성을 〈진구코고의 삼한 정벌〉이나 〈임나일본부〉로부터 찾고, 기요마사 등의 장군들을 신격화하고, 승리를 꾸며낸다. 이렇듯 반복적으로 칭송된 동아시아의 패권국으로서의 〈무위〉는, 근대의 또다른 전쟁에 정당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조선)징비록』 등의 문헌이 1910년 한일합병과 같은 중요한 시기마다 유행했다는 사실은 흥미를 더한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임진왜란 연의〉가 단지 침략의 명분으로만 기능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세계 열강과의 접촉이 잦아짐에 따라 이들 문헌은 방어의 기제로서, 무비(전쟁을 대비)의 명분으로도 기능하게 된다. 조선의 통신사행에 러시아 스파이가 섞여 있으며, 임진왜란의 복수를 꾀하는 조선이 러시아와 함께 일본을 서쪽과 동쪽에서 협공하려 한다는 소문을 다룬 『북해이담』(1808)과 같은 소설들은 러시아와 영국이 일본을 습격한 사건이 일어난 후 제작/유포된다. 근대 이행기 서구 세력과의 빈번한 접촉과 전쟁은 일본 내에서 그 어느때보다 높은 무비 의식을 형성시켰으며, 무수히 많은 〈임진왜란 연의〉가 끊임없이 형성되는 토양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문헌과 지식인 저자는 문헌의 수용과 형성이 학술적 관심을 넘어 전쟁에 따른 현실적 필요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힌 뒤, 일본 지식인 계급이 임진왜란 및 조선 문헌을 수용하고, 다시 조선 지식인들이 일본 지식인들의 문헌을 수용하는 과정을 검토한다. 특히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조선과 일본의 지식인들을 개괄한다. 먼저 문헌 교류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에도 시대의 일본 지식인들을 살펴본다. 크게 세 그룹의 지식인들 중에 저자가 특히 주목하는 이는 가이바라 엣켄(貝原益軒, 1630~1714)과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 1668~1755)이다. 17세기 서일본을 대표하는 학자인 가이바라 엣켄은 조선 문헌을 일본에서 출판하고 일본의 병학 문헌을 조선에 전달하였다. 아메노모리 호슈는 한?중?일 3개 국어를 자유로이 구사한 당대 동중국해 연안 지역에서 가장 개명한 인물이었다. 조일 관계를 담당한 외교관으로서 조일 양국 간 지식들과 빈번히 접촉한 그가 지식 교류의 가교로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소개한다. 이어서 『이칭일본전』, 『화한삼재도회』 등의 일본 문헌이 조선 지식인 집단에 전해진 양상을 검토한다. 특히 18세기 오사카의 거상 기무라 겐카도(木村??堂, 1736~1802)가 이끌던 지식인 그룹과 조선 지식인들의 교류 양상이 흥미롭다. 1776년 연행사로 간 도승지 서호수(徐浩修)가 일본보다 늦게 『고금고서집성(古今圖書集成)』을 구입해 가자 상인들이 비웃었다는 에피소드는 당시 일본의 높은 지적 수준과 열망은 물론, 일본에 대한 지식 우위를 이미 빼앗긴 조선 지식인들의 충격과 허탈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 밖에 러시아, 네덜란드 등과 접촉이 빈번해진 일본에서 발흥한 러시아학, 난학(蘭學)을 비롯한 유럽 정보가 조선 지식인들에게 전해져 영향을 미친 사례들을 소개한다. 병학(兵學)과 동아시아의 근대 마지막으로 이 책은 문헌(지식)의 유통을 병학, 즉 군사학 관점에서 재검토하고, 근대 이행기 동아시아 각국의 병학에 대한 관점이 근대화에 미친 영향을 고찰한다. 앞서 강조했듯이 저자는 동아시아

저자 소개

1975년 서울 출생. 문헌학자. 일본 국립사료관·국문학연구자료관 문학박사 졸업. 현재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일본의 대외전쟁』(일본어판 『異國征伐戰記の世界』), 『교감해설 징비록』 『전쟁의 문헌학』 『그들이 본 임진왜란』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한 경계인의 고독과 중얼거림』 등이 있다.

책 속에서


병자호란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조선 왕조와 한국은, 대청 제국, 일본, 북한 등에 의한 군사적 위협은 상시적으로 느끼면서도, 실제로는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의 장기적 안정기를 경험하였다. 그 결과, 안정 상태가 정상적인 것이며 전쟁은 비정상적이고 발작적인 현상이라고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 서문, 7쪽

삼한이 조공을 바치고 네덜란드가 오는 것은, 지구의 중심이 일본이라는 증거라는 주장이 에도 시대에 있었다. - 1부 1장, 49쪽

병학자가 『신간동국통감』을 읽었다고 하면, 그것은 단순히 호사가로서의 취미가 아니라, 군사 외교적 관심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병학자인 이소베의 주장은 유학자인 하야시 가호의 주장보다는 덜 감정적이고 더욱 논리적이다. - 1부 1장, 56쪽

쓰루미네 시게노부(鶴峯戊申) 역시 1853년의 『에혼 조선 정벌기』 서문에서, 『삼국사기』, 『동국통감』 등에 진구코고 전설이 보이지 않는 것은 왕화(王化)를 거부한 것이니 다이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공격한 것 역시 불가피한 전쟁, 즉 <정벌>이었다고 논한다. - 1부 1장, 61쪽

남과 북에서 동시에 유럽 세력이 공격하여 둘 다 일본 측이 패배한, 일본판 북로남왜라고 할 만한 이들 사건은 당시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후 일본 지식인들이 작성하는 문헌에서는 외국에 대한 적개감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 1부 1장, 62쪽

『동국통감』을 비롯하여 임진왜란 및 그 이후에 일본으로 유출되어 유통된 한국 문헌의 수는 수백 점에 이르며, 그 가운데 약 50종 정도는 『신간동국통감』과 같이 일본판[和刻本]으로 간행되었다. - 1부 1장, 92쪽

『징비록』은 1910년 이전에는 강화도 조약, 청일 전쟁 등의 주요 사건에 맞추어 간행되었으며, 1910년 이후에도 조선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도쿠토미 소호 등의 번역서와 교양서가 지속적으로 간행되는 한편으로, 이케우치 히로시의 주도하에 『징비록』이 본격적으로 연구에 활용되기 시작한다. - 1부 2장, 127쪽

일본 열도의 주민이 임진왜란에 대한 문헌을 작성하고 유통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좀 더 다층적이다. 사실상 도요토미 정권을 찬탈하는 형태로 등장한 도쿠가와 쇼군 가문과 각 다이묘들 간의 관점 차이, 가토 기요마사 같은 전국적 규모의 영웅의 존재, 상업 출판의 탄생 등을 우선 그 요인으로 들 수 있다. - 1부 2장, 150쪽

세 나라가 뒤엉켜 충돌한다는 국제적인 틀과 각각의 나라에서 영웅들이 집결하고 갈등한다는 국내적인 틀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삼국지 연의』는 일본인들에게 전쟁을 이해하고 서술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공하여 주었다. …… 일본인이 한 축을 이루는 『삼국지 연의』를 만들고 읽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임진왜란을 다루는 에도 시대 일본인들을 자극했다. -1부 2장, 155쪽

서구 세력 간의 잇따른 전쟁 속에서 시국이 불온해지고 막부의 통제력이 약화되자, 이 틈을 타고 임진왜란 관련 문헌의 출판이 재개된다. - 1부 2장, 165쪽

캠퍼는 이른바 진구코고의 삼한 정벌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임진왜란을 명백하게 연속된 두 개의 전쟁으로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1부 2장, 177쪽

가이바라 엣켄은 히데요시의 전쟁에 명분이 없다고 비판하는 동시에, 조선 측이 전쟁에 대비하지 않은 것 역시 잘못이라고 비판한다. - 2부 1장, 192쪽

조선이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한 정치 군사적 맥락과 그 성취를 도외시하고 통신사와 일본 측 파트너 간의 <문화・학술> 교류에만 주목해서는 통신사의 존재 의미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을뿐더러, 17세기 이래로 조선과 일본이 상대국에 대해 쌓아 온 오해와 혐오감을 재확인함으로써 허무주의에 빠질 우려조차 있다. …… 조선 후기와 에도 시대의 양국 지식 계급은 결국 한 번도 온전하게 학술적 교류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2부 1장, 204쪽

조선 지식인 집단은 임진왜란의 상대국이었던 일본, 특히 일본의 병학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 관심을 가졌으며, 그 주요한 수집 루트는 일본으로 파견된 통신사, 그리고 『이칭일본전』 및 『화한삼재도회』 등의 문헌이었다. - 2부 2장, 267쪽

한치윤(1765~1814)이 『해동역사』를 편찬하면서 『이칭일본전』, 『화한삼재도회』와 같은 일본 문헌도 인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전부터 알려져 있는 사실인데, 로널드 토비는 한치윤이 『이칭일본전』을 인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해동역사』라는 책의 체제 자체가 『이칭일본전』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 2부 2장, 281쪽

기무라 겐카도의 평판은 1764~1765년의 제11회 통신사를 통해 조선에도 전해졌다. …… 다이텐의 『평우록』을 번역한 김문경은, 겐카도 그룹이 조선 지식인들에게 준 충격과 영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 계미 통신사절에 참여한 남옥처럼 일본 문인과의 응수시를 자세히 남긴 사람은 그 이전에는 없었으며, 일본을 왜가 아닌 화국이라고 부른 것도 이전에는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 이러한 명명에서는 일본에 대한 일종의 동경마저 느껴진다.> - 2부 2장, 313쪽

조선 시대 후기의 일본 문헌 수용사 연구에서는 특히 이덕무가 주목된다. 그가 당시 조선에서 열람 가능한 일본 문헌을 거의 모두 활용하여 『무예도보통지』, 「청령국지」, 「청비록」, 「앙엽기」 등의 관련 사항을 집필하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 2부 2장, 322쪽

제12회 통신사행이 있었던 1811년의 5년 전인 1806~1807년에는 오호츠크 해에서 흐보스토프 사건이, 1808년에는 나가사키에서 페이튼 호 사건이 있었다. … 이와 같이 바야흐로 일본은 유럽이 주도하는 근대사의 격변에 휘말려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 2부 2장, 331쪽

1806~1808년 사이에 일본이 남북에서 경험한 유럽으로부터의 위협은 나폴레옹 전쟁에 촉발된 바였는데, 이와 같이 간접적으로 일본에 충격을 준 나폴레옹은 한편으로 19세기 전기 일본에서 영웅화되고 있었다. - 2부 2장, 332쪽

한국 학계에 주자학자・고학자・역사학자 등으로만 알려진 에도 시대의 지식인들이, 사실은 병학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해석 가능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으며, 조선에서 파견된 통신사 일행 가운데 이들의 병학자로서의 측면을 파악한 경우가 거의 없었음을 잘 알게 해준다. …… 한국에서 이해되고 있는 에도 시대의 학술이 전혀 다른 관점에서 해석될 여지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 2부 3장, 349쪽

『무예도보통지』에 일본 검법의 역사와 이론이 수록되고, 이덕무가 일본 병학사를 개설하게 된 배경에, 조선 시대 후기에 존재한 일본 병학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 2부 3장, 363쪽

정약용이 기대한 것처럼 일본이 주자학을 배웠다고 해서 조선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은 오류였다. 오히려 문과 무가 균형 있게 갖추어져야 일본의 안전이 지키질 것이며, 나아가 이것이 한국이나 중국보다 일본의 우월한 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근세 일본 지식 계급의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 2부 3장, 369쪽

대청 제국의 질서 속에서 동중국해 연안 지역에 200여 년간 국제 전쟁이 발발하지 않은 상황에서, 임진왜란 직후부터 병자호란 즈음까지 재편 강화되어 가던 조선 왕조의 국방 체제는 군사적 의미보다는 정치・경제적 의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게 되었다. - 2부 3장, 384쪽

서구가 주도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은 사가 번 등 19세기 중기 일본 곳곳에서 확인된다. …… 이후 일본은 철저하게 서구를 추종함으로써 살아남는다는 현실적 노선을 택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메이지 유신은 군사적 승리가 아닌 패배가 초래한 사건이었다. - 2부 3장, 388쪽

17세기 말기 이후 조선 왕조를 지배한 비(非)무사적 지배 집단이, 무사 집단이 국가를 방어한다는 명분을 실제로 발휘하고 있던 대청 제국과 도쿠가와 일본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터이다. - 2부 3장, 388쪽


목차

목차
서문
삽화 목록
제1부 『동국통감』과 『징비록』
제1장 『동국통감』과 일본
제1절 조선본 『동국통감』의 일본 유입
제2절 『신간동국통감』과 하야시 라잔?가호
제3절 『신간동국통감』의 일본 내 유통 양상
제4절 『신간동국통감』의 근대
제5절 한국 문헌 및 한국 관련 중국 문헌의 일본 내 유통
제2장 『징비록』과 세계
제1절 『징비록』과 청?일본
제2절 에도 시대 일본과 〈임진왜란 연의〉의 탄생
제3절 서구권의 임진왜란?조선 정보
제2부 동중국해 연안 지역의 국제 전쟁과 병학
제1장 일본 지식인 집단과 임진왜란?조선 정보
제1절 가이바라 엣켄 그룹
제2절 기노시타 준안 그룹
제3절 이토 진사이 그룹
제2장 조선 지식인 집단과 임진왜란?일본 정보
제1절 『이칭일본전』과 『화한삼재도회』
제2절 기무라 겐카도 그룹
제3절 고가 세이리 그룹
제3장 일본 병학과 조선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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