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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꽃 2017 스페이스에세이 대표문집 제4집

김종란 저 | 정은출판 | 2017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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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8243212 / 219쪽 / 423g / 154 x 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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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비꽃》에는 12인 작가의 12색 글 향기가 은은히 피어나는 48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심미적 추구와 감각적 글 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도 수차례 고심과 퇴고의 흔적이 역력하다. 그 진지한 노력이 매년 발전하는 글로 승화되어 읽는 이에게 잔잔한 미소를 불러낸다. 쇠붙이를 벼리어 보검을 만들어내듯, 간결하지만 오롯한 글을 위한 이들의 담금질과 메질은 계속될 것이다.

저자 소개

월간 '한국수필'로 등단(2011년)

책 속에서

자꾸만 문 쪽으로 눈이 간다. 내 머리를 돌리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머리를 숙인 채 나는 계속 곁눈질을 한다. 잊을 만하면 다시 돌아오는 이 두려움과 분노는 뭔가. 문이 열리면 소리를 질러대야지, 어머니를 밀쳐내야지, 나는 입술을 깨물며 어깨를 옹송그린다. 그의 엄지와 네 손가락 사이에선 찰박찰박, 내 기분을 아랑곳 않는 바리캉이 춤추듯 내 머리를 훑는다. (김종란 ‘문 앞의 여자’)

달의 기운이 느껴지는 친구가 있다. 창백한 달과도 같은 그를 좋아한다. 걷는 모습이 조용해서 흐르는 듯 다가온다. 첫인상이 고혹적이었다. 날씬한 체구에 윤기 있는 까만 머리,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은 모습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물속의 달처럼 차가운 모습에 선이 고운 작은 눈과 어렴풋한 그림자는 푸르스름하니 물기를 머금은 밤의 색을 닮았다. (임금희 ‘바다를 품은 달빛 아래서’)

옥수수는 쫀득쫀득하니 맛났다. … 어째 하늘이 수상하다. 먹구름이 몰려오는지 사방이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툭툭 투다닥’ 여기저기서 소리가 났다. 빗방울이다. “비꽃 핀다.” 언니는 반가운 손님을 맞듯이 마당 한가운데로 나섰다. 빗방울이 떨어진 자리마다 동그랗게 번지는 먼지는 마당 가득 ‘비꽃’을 피우고 있었다. (송복련 ‘비꽃 피다’)

‘밥은 먹고 다니니? 가을이다. 아프지 마라.’ 친구에게서 온 문자메시지에 가을이 묻어납니다. … 답장을 보내려다 책 한 권을 챙겨 집을 나섭니다. 맥박조차 느리게 뛰고 싶은 날 찾아가는 곳은 바로 작은 책방입니다. “셰익스피어 한 잔 주세요.” 책방 커피에는 마르케스, 카뮈, 헤밍웨이도 있습니다. (김단혜 ‘책방을 가다’)

가족 경영의 출발은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 로마 집정관 시저가 부인의 만류에도 출타하여 원로원에서 살해당한 사실과, 이방원이 마누라 등 떠밂에 동조하여 왕자의 난을 성공한 일을 상기하자. 남자들이여, ‘여자 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라는 말을 기억하자. 여자들이여, 완성된 ‘如’를 해 주기를 바라노라. (배상운 ‘‘여如’를 생각함’)

나는 혼자 산책하는 걸 좋아합니다. 혼자서 걷다 보면 왜 내가 혼자서 걸어야 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혼자 걷는 길은 곧 나를 있게 해 줍니다. 영감을 받는 것은 오로지 고독 속에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외로움은 우리에게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 줍니다. 그러한 변화는 나 아닌 누군가가 되려고 할 때가 아니라, 나 스스로 무엇이 되려고 할 때에야 비로소 시작됩니다. (유동종 ‘비 오는 날의 수채화’)

그와 허름한 대폿집에 마주 앉았다. 소주를 몇 잔 나눠 마시고 돼지 껍데기를 뒤집어 가며 눈이 마주칠 때마다 우리는 웃었다. 별나라 달나라 이야기 따윈 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잔을 비우고 별로 긴말 하지 않았으나 불편하지 않았다. OOO은 차갑고 도회적인 사람이다. 그는 깔끔하고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바람 같으며 연애도 자유롭게 하되 끈적이지 않는다. (임혜정 ‘책 속을 걷다’)

고체란 ‘그릇에 담았을 때 모양과 크기가 변하지 않는 물질’이다. 액체는 ‘그릇에 담았을 때 모양은 변하지만 크기는 변하지 않는 물질’이고, 기체는 ‘담긴 그릇을 항상 가득 채워주며 그릇의 모양과 크기에 따라 그 모양과 크기가 변하는 물질’이다. 신선했다. 과학적 설명이라기보다 문학적이거나 철학적인 묘사에 가깝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정찬경 ‘그릇’)

불안한 예감은 잘 맞는 법이다. 오늘도 불안하더니 내가 당첨됐다. 당첨된 것이 로또면 얼마나 좋으랴만. 점심을 놈과 둘이 마주 앉아 먹어내야 한다. 재수 옴 붙었다. 눈빛이 쾌감으로 흔들리고 이마는 땀으로 번질거리는 놈의 뒤를 지갑을 들고 타박타박 따라간다. … “사랑합니다. 안아 보고 싶어요.” 눈을 내리깔고 내게 화살을 꽂는다. (김화순 ‘불안, 놈의 정체)

그는 어두컴컴한 속에서 쪼그리고 앉아 땅을 파고 있는 듯했다. … 연탄 잿더미 속에서 나무젓가락을 쥐고 1센티미터 정도의 간격으로 줄을 그어 놓고 연탄재와 흙을 자기 쪽으로 쌀알을 세듯이 한 톨씩 한 톨씩 긁어내고 있었다. 아주 한참 동안을 그렇게. 얼마 후 그가 일어섰다. “다이아몬드를 찾았다!” (김순란 ‘쓰레기더미 속 다이아몬드’)

“제발 문 좀 닫지 마세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에 혼자 자는 훈련을 시작했다. … 아이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단절’ 그것이었다.
“제발 방문 좀 잠그지 마라.” 그랬던 그 아이가 자라서 사춘기를 맞을 즈음부터는 전세가 완전히 역전되었다. 자기 방에 들어가면 바로 문을 닫아거는 것이다. (조은해 ‘문을 열어다오’)

아들이 떠난 빈방을 정리하던 날, 눈에 띄지 않게 구석구석 박혀 있는 비닐도 벗기지 않은 수많은 만화책을 보았다. 수능 준비로 읽을 겨를도 없었던 만화책을, 소장하는 것으로라도 위로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제야 답답했던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버티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순간, 내 몸은 얼음덩이가 되었고 …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대형 ‘맹모, 길을 잃다’)

목차

권남희(초대수필) - 뚜껑
김종란 – 문 앞의 여자 외 3편
임금희 – 불안 들락거리다 외 3편
송복련 – 길을 잃다 외 3편
김단혜 – 나의 사소한 리추얼 외 3편
배상운 – ‘여如’를 생각함 외 3편
유동종 – 비 오는 날의 수채화 외 3편
임혜정 – 열다섯 살, 중2가 되는 딸에게 외 3편
정찬경 – 그가 내게 남긴 것 외 3편
김화순 – 송이 향을 탐하다 외 3편
김순란 – 떠도는 새벽, 소리에 머물다 외 3편
조은해 – 문을 열어다오 외 3편
이대형 – 일탈의 뒤끝 외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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