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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낙은 회고록

정낙은 저 | 책미래 | 2017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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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5134369 / 312쪽 161 x 2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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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대한민국 최초의 로켓 발사, 원자력 연구 보고서, 병기공창과 국방부과학연구소 창설 주역의 회상! [추천의 글] 《정낙은 회고록》은 대한민국 국방과학 분야의 초창기 원로였던 정낙은(1918-2016) 선생의 자서전이다. 1918년 일제하에 태어난 그는 공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자신이 하고 싶어 하던 기계 공부를 위해 일본 구마모토고등공업학교(기계공학과)로 유학을 떠난다. 구마모토고공을 마치고 동경공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후 일본군 기술장교로 일본 본토와 만주 등의 현지 공장에서 다양한 실습 경험을 축적하였다. 그 후 해방된... 대한민국 최초의 로켓 발사, 원자력 연구 보고서, 병기공창과 국방부과학연구소 창설 주역의 회상! [추천의 글] 《정낙은 회고록》은 대한민국 국방과학 분야의 초창기 원로였던 정낙은(1918-2016) 선생의 자서전이다. 1918년 일제하에 태어난 그는 공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자신이 하고 싶어 하던 기계 공부를 위해 일본 구마모토고등공업학교(기계공학과)로 유학을 떠난다. 구마모토고공을 마치고 동경공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후 일본군 기술장교로 일본 본토와 만주 등의 현지 공장에서 다양한 실습 경험을 축적하였다. 그 후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육군 병기공장 창설의 주역을 맡게 된다. 병기공창이란, 군대의 무기를 생산하는 공장으로서 이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과학기술연구소가 필요함을 역설하여 ‘국방부과학연구소’를 만들고 초대 소장으로 취임하였다. 흔히 현재 대한민국의 산업화는 박정희 정부 시절 이루어진 공적으로 치부되지만, 이미 이승만 정부에서 그 발전의 싹이 움텄으니, 정낙은 소장이 이끌고 주도하던 ‘국방부과학연구소’가 바로 그것이었다. 1954년 대통령령으로 설립된 이 연구소는 병기 생산과 각종 국방 과학기술 연구의 총본산으로 기능하였고, 당시 우리나라 최대의 과학기술 전문인력이 모여 있던 곳으로서 후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국방과학연구소(ADD)의 모체가 되었다. 또한, 이곳에서 배출한 많은 과학자들은 우리나라 과학기술과 경제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이 책의 〈부록1〉에 수록된 자료집 《국방부과학연구소》에는 이 연구소를 거쳐 간 여러 분야의 과학자들이 증언한 1950년대 한국과학기술계의 역사가 흥미롭게 펼쳐져 있다. 그중 대표적인 정낙은 소장의 업적들을 살펴보면, 첫째, 1958년 정낙은 소장의 건의로 행해진 구미각국 원자력연구 현황시찰을 통해 《원자력연구보고서》 작성, 둘째, 1956년 미사일 무기의 독자적 연구를 위해 로켓 연구개발 조직을 만들고, 1959년 7월 인천 고잔동에서 3단 로켓 발사시험에 성공하였고, ● 셋째, 한국 최초의 민간자동차 제작업체인 ‘시발자동차회사’ 설립. 이때의 공장 책임자는 서울 공대 화공과 출신인 오원철 기술부장으로서 그는 5.16 혁명 후 상공부 화학과장을 거쳐 박정희대통령 중화학공업담당 수석비서관으로 많은 업적을 쌓았고, 오늘날 한국 경제발전의 기반이 된 중화학공업의 성장에 크게 기여하였다. 넷째, 6.25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국내 과학자와 기술자들의 보호를 위해 부산 피난과 1.4후퇴 시에 특단의 조치를 취하여 최대한 많은 과학 인력들을 안전하게 부산으로 이송시켰으며, 공대 졸업생들을 매년 연구소 문관으로 선발, 채용하여 후일 과학 전문인력으로 양성하였다. 이 밖에도 국가과학기술방면으로 많은 공헌을 하였으며, 이는 물론 여러 과학자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합심하여 이뤄낸 성과들이지만, 그중 정낙은 개인의 능력, 혜안, 국가에 대한 특별한 헌신 등이 돋보임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정낙은 회고록》은 대한민국 과학기술사의 태동기를 증언해 주는 아주 귀한 사료이다.

저자 소개

(鄭樂殷)
1918년 11월 9일 : 충남 논산군 광석면 신당리에서 출생
1936년 : 공주고등보통학교 졸업
1939년 : 일본 구마모토(熊本)고등공업학교 기계공학과 졸업
1938년 12월~1939년 12월 : 조선총독부 철도국 공작과 근무
1942년 9월 : 일본 국립동경공업대학 전기공학과 졸업
1942년 12월~1945년 8월 15일 : 일본 육군연료창 근무
1946년 1월~1948년 12월 : 중앙공업연구소 근무
1948년 12월~1960년 8월 : 한국 육군 복무
1950년 6월~1960년 8월 : 국방부과학연구소장 재직
1961년 7월~1963년 12월 : 한국전력주식회사 부사장 역임
1963년 12월 : 건설부장관 취임
1964년 11월~1968년 2월 : 한국기계공업주식회사(국영) 사장
1969년 2월~1977년 2월 : 인하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
1977년 2월~1979년 3월 : 한국기계금속시험연구소 소장
1993년 12월 9일 : 천주교 세레받음(세례명: 이냐시오)
2016년 8월 2일 : 별세, 국립묘지 안장
•국민훈장 모란장 수여(1972년)
•금성충무무공훈장 수여(1954년)

책 속에서

히다치(日立)조선소에서는 26세의 젊고 경험도 없는 청년(기술장교)으로 그것도 독립된 기관의 책임자로 배운 것도 많고, 일한 보람도 있게 지냈다. 10개월 미만이지만 그 짧은 시일에 내 일생의 지침이 되는 생활철학과 의젓한 인간으로서의 틀이 굳어지는 중요한 시절이었다. 10년을 근무해도 하나도 배울 것이 없을 경우도 있지만, 10개월을 근무해도 많은 것을 배울 수도 있다. 히다치공장 10개월은 내게는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운 시절이었다.
- p.98 <일본군 시절의 회상>에서

만주에서도 …… 8월 15일에 일본이 무조건 항복한다는 방송을 천황이 직접하여
부대도 싹 변하였다. 어제까지 기세당당하던 일본군, 일본인이 하루아침에 패전군
인, 국민으로 변하였다. 여기서 나는 국가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느꼈
다. 국가가 망하면 군인도 국민도 없다. 그 형편없는 소련군에게 일본군이 무장해
제를 당하는 것을 보았으며 …… 정치 지도자, 군인, 행정고위층 특히 정치인은 정
신 차려서 국가를 보전하여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 p.101 8장 <해방후 귀국>에서 -

국방과학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별다른 인식조차 없던 시절, 국방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미국이 공급해 줄 것으로 안이하게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던 시절, 국방에 필요한 각 분야의 과학기술을 기초부터 배우고 연구해야지
만 조국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신념과 사명감만으로 나의 젊은 시
절을 고스란히 바친 국방부과학연구소가 설립된 지 8년여 만에 해체되고 말았으
니 도대체 그 애석함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 p.190 <여러 번 겪은 과학연구소 해체의 위기>에서

목차

머리말
유년기
소년기
중학 시절
전문학교 시절
철도국 시절
대학 시절
일본군 시절
해방 후 귀국
공업연구소 시절
군복무 시절(6.25 사변 전후)
원자력 연구 시찰차 해외출장
로켓 발사
4.19 혁명 후 경전시절
5.16 혁명 후 한전, 건설부 시절
한국기계회사 시절
인하대학과 기계연구소 시절
신화건설 고문 시절
회혼례
전립선암 수술
기타 상황
후기
재후기(再後記)
연보
이현용 박사 추기(追記)
부록1 국방부과학연구소
부록2 간행물 기사모음
병기공창 창설 당시의 추억
우리의 항공 우주 역사
경영기술자가 본 기계공업
원로와의 대담
구마모토 고등공업학교 동창회보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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