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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한국사

고성윤 저 | 나는나다 | 2017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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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5682913 / 392쪽 150 x 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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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역사를 무엇 때문에 배우는가? 호기심? 지적 허영? 아니면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필요해서? 그게 무엇이든 옛날 옛적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관심을 가지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뭘 알아야 무슨 느낌이든 생길 것 아닌가. ‘나 이런 것도 알고 있다구.’ 그걸 좀 자랑한다고 흠될 것 전혀 없다. 어떤 자리에서건 과거의 우리 삶이 어땠는지 말할 수 있다는 건 훌륭한 일이다. 모르는 게 문제인 것이지. 게다가 그런 이야기들을 소재로 재미난 자리를 만들 수 있다면 더욱 좋은 일이 아닌가.
 역사 공부를 시작하는 이유가 뭐든 좋다. 일단 시작하자.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잖은가. 시작을 해야 끝을 보든 말든 하게 된다. 하지만 시작이 괴로우면 끝을 보는 건 두말 할 것 없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역사는 쉽게 쓰여야 한다.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쉽거나 말거나 상관없겠지만 역사를 상식으로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어려운 역사는 없는 것과도 같다. 그동안  우리가 그렇게 역사를 배워오지 않았나. 그래서 결국 남는 건 무엇이었나? 역사 회피, ‘그거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야.’ 뭐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역사로부터 도망가는 사람들을 만들어 낼 거면 그런 공부는 안하느니만 못하다.
 그리고 역사는 생겨난 이래 흐름이 끊어져 본 적이 없다. 언제나 앞의 사건은 뒤의 전개에 영향을 주었고, 오늘의 사건은 반드시 내일에 힘을 가한다. 태어나고 살고 죽고 또 후손에 의해 오늘의 삶이 내일의 삶으로 이어지는 인류의 연속성이 역사에 고스란히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왕 시작한 역사 공부라면 먼저 이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지 않겠는가. 외우려 하지도 말자. 외우려 하는 순간부터 당신의 역사 공부는 고역이 된다. 그저 역사의 흐름에 빠져 보자. 가볍게, 가볍게 책장을 넘기자. 그러다 보면 역사가 이해되기 시작한다. 그럼 당신은 역사에 재미를 느끼게 된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역사 읽기가 좀 더 깊은 이해의 욕망으로 당신을 이끌기 시작한다.
 이 책은 반만년 한국의 역사를 하나의 흐름으로 구성하려고 노력했다. 원인과 결과의 인과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통사 맛보기라고나 할까. 지금 우리가 왜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지나간 세월이 어땠는지를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걸 대략이나마 알게 된다면 역사 공부라는 게 얼마나 재밌고 즐겁고 쉬운 건지 깨닫게 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자, 지금부터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도록 하자.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역사를 무엇 때문에 배우는가? 호기심? 지적 허영? 아니면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필요해서? 그게 무엇이든 옛날 옛적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관심을 가지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뭘 알아야 무슨 느낌이든 생길 것 아닌가. ‘나 이런 것도 알고 있다구.’ 그걸 좀 자랑한다고 흠될 것 전혀 없다. 어떤 자리에서건 과거의 우리 삶이 어땠는지 말할 수 있다는 건 훌륭한 일이다. 모르는 게 문제인 것이지. 게다가 그런 이야기들을 소재로 재미난 자리를 만들 수 있다면 더욱 좋은 일이 아닌가. 역사 공부를 시작하는 이... 역사를 무엇 때문에 배우는가? 호기심? 지적 허영? 아니면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필요해서? 그게 무엇이든 옛날 옛적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관심을 가지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뭘 알아야 무슨 느낌이든 생길 것 아닌가. ‘나 이런 것도 알고 있다구.’ 그걸 좀 자랑한다고 흠될 것 전혀 없다. 어떤 자리에서건 과거의 우리 삶이 어땠는지 말할 수 있다는 건 훌륭한 일이다. 모르는 게 문제인 것이지. 게다가 그런 이야기들을 소재로 재미난 자리를 만들 수 있다면 더욱 좋은 일이 아닌가. 역사 공부를 시작하는 이유가 뭐든 좋다. 일단 시작하자.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잖은가. 시작을 해야 끝을 보든 말든 하게 된다. 하지만 시작이 괴로우면 끝을 보는 건 두말 할 것 없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역사는 쉽게 쓰여야 한다.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쉽거나 말거나 상관없겠지만 역사를 상식으로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어려운 역사는 없는 것과도 같다. 그동안 우리가 그렇게 역사를 배워오지 않았나. 그래서 결국 남는 건 무엇이었나? 역사 회피, ‘그거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야.’ 뭐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역사로부터 도망가는 사람들을 만들어 낼 거면 그런 공부는 안하느니만 못하다. 그리고 역사는 생겨난 이래 흐름이 끊어져 본 적이 없다. 언제나 앞의 사건은 뒤의 전개에 영향을 주었고, 오늘의 사건은 반드시 내일에 힘을 가한다. 태어나고 살고 죽고 또 후손에 의해 오늘의 삶이 내일의 삶으로 이어지는 인류의 연속성이 역사에 고스란히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왕 시작한 역사 공부라면 먼저 이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지 않겠는가. 외우려 하지도 말자. 외우려 하는 순간부터 당신의 역사 공부는 고역이 된다. 그저 역사의 흐름에 빠져 보자. 가볍게, 가볍게 책장을 넘기자. 그러다 보면 역사가 이해되기 시작한다. 그럼 당신은 역사에 재미를 느끼게 된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역사 읽기가 좀 더 깊은 이해의 욕망으로 당신을 이끌기 시작한다. 이 책은 반만년 한국의 역사를 하나의 흐름으로 구성하려고 노력했다. 원인과 결과의 인과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통사 맛보기라고나 할까. 지금 우리가 왜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지나간 세월이 어땠는지를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걸 대략이나마 알게 된다면 역사 공부라는 게 얼마나 재밌고 즐겁고 쉬운 건지 깨닫게 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자, 지금부터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도록 하자. ▶ 출판사 리뷰 역사란 이 땅을 살아간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기록이다. 지금 우리와 마찬가지로 숨 쉬고 먹고 웃고 울던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말이다. 당연히 그 속에는 욕구와 욕구가 맞부딪혀 일어난 사건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5천년의 역사 속에서 발생한 그 무수히 많은 사건들을 모조리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시각으로 과거가 재구성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역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역사란 과거라는 프리즘을 통해 현재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시각으로 과거를 재구성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도 해석에는 수많은 갈래가 생기는 건 그에 따른 당연한 결과다. 따라서 ‘국정’ 이라는 말은 존재해서도 안 되고 존재할 필요도 없는 개념에 불과하다. 자신의 세계관을 가지고 역사를 돌이켜 보는 자유를 누릴 때에야 비로소 타당한 토론이 이루어지고 토론과 논쟁을 통해서 좀 더 설득력 있는 역사 해석의 길이 열리게 된다. 역사는 ‘민초’ 즉 백성의 삶이 윤택해지고 풍요로워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삶의 주인공, 역사의 주인공으로 부상해 나가는 과정이라고도 생각한다. 생계를 꾸려 나가는 과정에서나 정치의 영역에서나 피동적인 존재로만 취급받던 사람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주인공으로 역할을 확대해 가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곧 역사 학습의 요체라는 것이다. 백성이야말로 모든 생산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곳 할 것 없이 세상을 사람의 것으로 만드는 모든 행위가 백성에게 속해 있다. 세상의 변화가 바로 그들에게서 연유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따라서 권력은 그들을 위하고 그들에 기반하지 않으면 ‘썩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풀뿌리 한국사’는 이런 점에 근거해서 만들었다. 고조선 이후 우리 역사를 구성한 수많은 인물, 사건 그 모두가 ‘민본’에 근거한 것인가 아닌가를 기준으로 평가한다. ‘국가’라는 것 역시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거꾸로는 아니기 때문이다. 퇴행도 있었고 전진도 있었다. 하지만 ‘민본’을 위한 노력은 중단 없이 이어져 왔다. 이 책을 통해 민본을 위한 중단 없는 노력과 이에 역행하는 시도가 서로 갈등하고 싸우는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져 왔는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사건’은 개별적이지만 결코 하나의 흐름에서 벗어나 존재할 수는 없다. 역사적인 행위, 사건 등 그게 무엇이든 전체 역사의 흐름 속에 위치한다는 전제를 벗어던질 수 없다. ‘풀뿌리 한국사’는 ‘민본’이라는 기준을 씨줄로 하고 개별 사건들을 날줄로 해서 전체 역사를 하나의 흐름으로 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개별 사건들에 대해 현미경을 들이대고 분석하는 대신 우리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려고 했다. 그래서 한국사 공부를 시작하는 데 적당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풀뿌리 한국사’는 한국의 역사를 흐름으로, 사건과 사건의 인과관계를 중심으로 보는 통사이다. 하지만 현대사까지 다루기엔 너무 엄청난 분량이어서 이번엔 1945년 해방까지만 다루었다. 그럼에도 현대 한국을 이해하는데 큰 불편이 없을 거라고 생각된다. 고대사 문제, 친일 청산 문제 등 지금까지도 우리를 괴롭히는 요소들이 다루어지기 때문이다. 군사독재는 현대 편에 가서 다루어지겠지만 일본 제국주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군사독재 청산이 일제 잔재 청산과 연관을 가지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래서 현대 한국의 전사로서 해방 이전까지의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한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자신을 제대로 알게 된다는 말과 같다. 이 책을 통해 독자 여러분이 한국사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저자 소개

제주 출생으로 부산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나오고 서울대학교에서 인류학을 전공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에 대학을 다니면서 우리의 역사가 왜 이 모양으로 전개되고 있는지 궁금증을 품게 되었다. 교과서를 통해서는 배울 수 없었던 우리 역사의 진면목을 하나하나 알게 되면서 우리 역사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가볍고 쉬운 통사에 대한 욕구가 생겼다. 1989년부터 대략 3년간 ‘웅진 애니메이션 한국의 역사’, ‘웅진 애니메이션 세계의 역사’ 작업을 하며 워밍업을 한 후로도 오랜 세월 품어 왔던 욕구를 2017년에 와서야 풀게 되었다. 그 결과물이 ‘풀뿌리 한국사’다. 어떻게 하면 쉬운 역사 서술을 할 수 있는지 고민을 거듭하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책 속에서

 

p175
가장 큰 보상이자 조선 사회에 커다란 해악을 끼친 조치는 따로 있습니다. 이들에게 ‘대납권’이 주어집니다. ‘대납권’이란 백성들에게 부과된 세금과 공납 물품을 권력자들이 대신 낸 뒤 두 배 세 배로 되돌려 받는 권리를 말합니다. 백성들이 직접 납부해야 할 세금과 공납을 대신 납부한 후 몇 배를 불려 받는 권리? 이제 백성들은 세금도 내 손으로 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막장은 막장을 부르는 법입니다. 백성들에게 서너 배의 세금을 미리 받고 그 중에서 세금을 내겠다는 자들도 나타납니다. 중앙 정치 무대에서 권력을 틀어쥔 자들이 결국 백성들의 피와 땀을 착취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게 바로 이 대납권입니다. 불과 수십 년 전의 경험은 듣도 보도 못했다는 듯이 말이죠.


p176
결국 세조가 죽기 직전인 1468년 ‘분경’이 허용되었습니다. 고위관리의 집을 돌아다니며 관직을 청탁하는 행위를 말하는 ‘분경’은 태종이 엄격히 금하였던 것으로서 댓가를 받고 관직을 제공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게 합법화되었습니다. 이것을 요즘 말로 말하면 관직 매매가 허용됐다는 이야기가 되죠.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는 일일까요?


p203
요동으로 들어간다고 하는 것은 곧 조선의 국왕으로서가 아니라 명의 신하로서 한 목숨을 부지하겠다는 의사 표시였습니다. 만일 요동 귀부가 이루어졌다면 조선의 반격은 불가능해졌을 겁니다. 어이없게도 이런 선조의 바램을 무산시킨 것은 명이었습니다. 왜의 출정은 소위 ‘정명가도’를 내어달라는 것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명나라를 정벌하러 가는데 조선이 그 길을 열어주지 않으니 침략한다는 뜻입니다. 명은 선조가 요동으로 들어오게 되면 명의 영토로 왜가 들어온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였고 따라서 선조의 바램은 이루어질 수가 없는 망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소동을 통해 선조는 조선의 국왕으로서 자격을 상실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보여집니다. 선조가 한양을 탈출할 때 백성들은 형조와 노비문서를 다루던 장예원을 불태워 버리는 것으로 응답했습니다. 만일 선조가 의주로 가기 전 평양에서라도 사수 의지를 보였다면 민심이 돌아왔겠지만 그러지를 않았습니다. 이제 조선의 기존 체제는 선조의 한양 포기와 뒤 이은 요동 귀부책으로 완전히 파탄이 나게 되었습니다.


p205
선조가 이 나라를 버리려고 끊임없이 발버둥치던 그 순간에 이순신과 의병들이 나라를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구해냅니다.
...


p207
전쟁에서 보급은 곧 승리를 보장해 주는 원천이라고 말할 정도로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남쪽 바다를 돌아 서해로 올라가 육군에게 식량과 무기를 조달하려 했던 왜의 의도는 이로써 파탄이 났습니다. 호남의 곡창지대 역시 왜군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조선이 전력을 재정비해 반격을 가할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그런데 선조의 머리 속에 그런 계책이 있을 리 없었죠. 그 역할은 유성룡과 의병들이 대신했습니다.


p215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왜적의 총탄을 맞고 전사한 날은 유성룡이 탄핵당한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전쟁의 마무리치고는 참 비극적인 사태가 연이어 벌어진 것이죠. 그리고 선조는 노량해전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수군이 대승리를 거두었다는 이야기는 과장된 듯하다”라고 말입니다. 모든 사람이 죽은 이순신이 산 왜적을 물리쳤다고 기뻐하고 애석해 하는 와중에 조선의 국왕 선조와 이순신을 고문했던 자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이야기죠. 그들에게는 명나라만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유일한 힘이었습니다.


p220
인조반정은 조선을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내던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실리를 기준으로 펼쳐졌던 광해군의 외교적 노력이 송두리째 부인 당했습니다. 명분을 채우기 위해 명 황제에 대한 광해군의 불충을 내세운 반정 세력은 친명반청(후금)을 표방합니다. 조선 국왕과 양반들의 충성 대상이 명 황제가 되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과 이에 반한 조선의 국왕이 신하들에 의해 교체되었음을 명분으로 내건 정권이 바로 인조반정의 주도세력이었습니다. 이는 선조의 임진왜란 평가와 직접 연결되는 인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임란을 계기로 선조 시절 명은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반대하는 등 조선의 국정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었습니다. 선조는 조선의 수많은 충신, 장수, 의병의 힘을 무시하고 그런 명에 머리를 조아렸고요. 이런 요인들이 광해군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세력을 키웠고 결국 인조반정으로 이어집니다. 결국 결정적인 ‘왕권 약화’의 시작이자 일부 집단의 ‘권력의 사유화’가 본격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친명반청의 혹독한 결과물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었습니다.


p241
이런 상황에서 대동법을 실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는 광해군이 즉위할 당시 영의정으로 등용된 이원익이었습니다. 그는 대동법의 실시를 주장하며 그 이유를 이렇게 들었습니다. “각 고을에서 진상하는 공물이 방납인들에 의해 중간에서 막혀 물건 하나의 가격이 몇 배 또는 몇십 배, 몇백 배가 되어 그 폐단이 이미 고질화되었는데...”
앞서 말한 ‘공납’의 폐단을 정확하게 지적한 것입니다. 결국 이원익의 주장대로 경기도에 대동법이 실시되었습니다.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고 있던 양반사대부의 반발도 대동법을 실시하는 것을 막지는 못하였습니다.
...
대동법은 농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대동법의 전국적 실시는 피하기 어려운 시대적 과제가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핵심 지역은 곡창 지대인 ‘하삼도’ 즉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였습니다. 조선의 경제력이 집중된 지역이죠.
대동법의 전국적 실시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 인물이 바로 김육입니다.


p267
정조가 비록 왕위에 오르긴 했지만 사방이 적들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왕세손 시절부터 옷을 벗고 편히 잠들지 못했다고 할 만큼 살해 위협에 시달려 왔던 정조였습니다. 즉위 후라고 별반 달라진 점이 없었죠. 영조가 탕평정치를 표방하면서도 결정적인 상황에선 언제나 노론에 의지한 데다가 노론 출신 외척 가문의 정치 관여를 막지 못한 것이 정조에게는 가장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실제 즉위 다음 해 궁궐 지붕을 타고 자객이 침입한 적도 있었습니다. 조선 왕조 최초의 국왕 암살 시도였죠.
하지만 정조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즉위 후 꺼낸 첫 마디가 바로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이라는 놀라운 이야기였습니다. 사도세자는 노론에 반대하다 노론과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인물입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했습니다. 노론 일당의 권력 독점을 거부하고 탕평정치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p270
우선 화성 건설에 백성들의 강제 부역을 일체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전례 없는 일이었죠. 대신 모든 노역을 임노동으로 대체했습니다. 토지를 잃은 사람들을 돈을 주고 고용함으로써 생활의 방편을 마련해 준 것이자 임금노동의 증가라는 시대의 흐름을 고려한 획기적인 조치였습니다. 그리고 임금노동자 가운데 많은 수가 도망친 노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조가 더 이상 조선에 노비 제도가 불가능함을 깨닫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 정조는 도망간 노비를 잡아오기 위해 존재하던 ‘노비추쇄법’을 양반사대부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폐지했습니다.


p339
그러나 당시 대한제국의 집권층은 어느 누구도 망국의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단 한명도 독립운동에 참가하지 않은 건 물론이고 일제가 합방에 협력한 공로를 인정해 제공한 귀족 작위를 받았습니다. 일제가 수여한 ‘합방공로작’을 거부한 것은 76명 중 단 8명에 불과했습니다. 이씨, 민씨 등의 왕실 인사와 노론 출신이 대부분인 집권층은 귀족 작위와 더불어 주어진 막대한 은사금에 만족하고 일제에 협력했습니다. 지방 유력 유생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라의 멸망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이 이처럼 일제의 회유책에 넘어가 제 목숨을 보전하고 배를 불리며 일제의 수탈에 협력을 아끼지 않고 있을 때 민중은 극도의 고통 속에 살아가야 했습니다.
을사늑약 이후 진행된 식민지 수탈 경제 체제 수립이 합병 이후 모든 영역에서 대규모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입니다.


p354
두 달간에 걸친 3.1독립시위는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결국 막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세계사에 유래 없는 대규모 민족해방투쟁이었던 3.1운동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조선 민중에게 남겨 주었습니다.
우선 애국계몽이나 실력양성론에 경도된 독립투쟁 방식에서 무장독립투쟁을 본격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두 번째로는 입으로만 민족지도자를 자처하면서 정작 결정적인 시기에는 질서를 부르짖으며 발뺌하는 소위 민족대표라는 자들을 보면서 그들의 한계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
세 번째 각 계층의 부문별 조직 활동이 3.1운동의 과정에서 성장합니다. 그와 동시에 조직되지 않은 민중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알게 된 것이죠. 노동운동, 농민운동, 학생운동, 여성운동 등 계층별 조직이 급속하게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반제 반봉건 투쟁이 이 계층별 조직의 투쟁과 결합되어 나갑니다.
네 번째로는 조선 민중의 거센 저항에 놀란 일제가 무단통치를 ‘문화정치’로 바꾸게 된 계기가 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볼 수 있지만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가 제한적으로나마 주어진 것은 3.1운동의 가져온 중요한 성과였습니다. 이런 성과가 다시 민족해방 투쟁의 발전에 귀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선의 독립은 조선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 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31.운동 과정에서 조선의 민중이 피 흘리고 있을 때 미국은 ‘윌슨 대통령의 선언은 일본의 영토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일본은 이미 조선을 제국의 일부분으로 한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오늘날 조선을 이전의 상태로 복귀시키려고 하는 제안은 아무래도 불가능하다’고 언명했습니다. 1차 대전 패전국의 식민지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편의상의 ‘민족자결주의’라는 것이 분명해지게 된 것이죠.

이처럼 3.1운동은 실패했지만 실패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제를 물러나는 날까지 그 빛을 잃지 않고 반짝이는 별이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세계 만방에 고하고 앞으로 다가올 투쟁을 고취하는 큰 북소리가 되었습니다.


p382
1945년 8월 15일 당시 조선에는 대부분의 독립운동 세력들이 주장하고 온 민중이 요구하던 새 나라 건설의 목표는 반드시 우리의 손으로 이루어내야만 하는 과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게다가 해방은 김구의 말대로 너무나 급작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온전하게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낸 해방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과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달성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것만이 완전한 독립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보통 선거를 통한 민주공화국 건설, 토지 개혁, 주요 산업 국유화, 친일파 청산 등이 그 과제였습니다.

목차

목차
01 고조선과 삼국시대? 열국시대?
1_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는 ‘조선’이었다
2_ 고조선을 이은 열국의 시대
3_ 삼국으로 재편되는 우리 역사
4_ 동북아의 강자 고구려, 수와 당의 도전을 물리치다
5_ 신라, 당과 손잡고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리다
02 남북국시대
1_ 신라, 나당전쟁에서 승리하고 발해, 고구려의 뒤를 잇다
2_ 천년왕국 신라와 해동성국 발해, 오랜 평화를 누리다
3_ 되살아난 백제와 고구려, 다시 삼국시대로
03 고려
1_ 왕건의 고려, 황제국의 부활을 꿈꾸다
2_ 광종, 고려의 질서를 다시 세우다
3_ 서희와 강감찬, 윤관의 나라 고려가 어떻게 문약의 나라로 바뀌었는가?
4_ 묘청의 난, 반역인가 혁명인가
5_ 문신들만 사는 나라, 무신의 난을 불러오다
6_ 무너지는 신분 의식, 농민과 노비의 난
7_ 몽골의 거듭되는 침입, 백성들이 나라를 지키다
8_ 30년 항쟁의 끝,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진 고려
04 조선, 시대의 흐름을 바꾸고 역사에 등장하다
1_ 고려, 권문세족의 손아귀에 놀아나다
2_ 공민왕과 신돈의 마지막 개혁 시도
3_ 새로운 세력의 대표 주자, 정도전과 이성계 의기투합하다
4_ 위화도회군, 갈라진 역사의 물줄기
5_ 토지개혁, 혁명파 사대부의 결정타
6_ 정도전, 이성계를 앞세워 조선의 깃발을 세우다
05 조선, 어디로 갈 것인가
1_ 태종이 조선의 질서를 세우고, 세종이 조선의 문화를 꽃피우다
2_ 세조, 태종이 세운 질서를 무너뜨리다
3_ 거듭되는 사화, 훈구와 사림의 격돌
06 조선, 누란의 위기에 빠지다
1_ 사림, 과연 자신의 의무를 다했는가
2_ 임진왜란, 파죽지세의 왜군 앞에 빛의 속도로 나라를 버린 선조
3_ 이순신과 의병 그리고 유성룡, 전세를 역전시키다
4_ 병자호란, 인조반정으로 갈 길을 잃은 조선에 몰아닥친 비극
5_ 소현세자와 효종, 개혁이냐 복수냐
6_ 노론, 조선의 권력을 틀어쥐다
07 개혁을 향한 몸부림
1_ 김육의 대동법, 조선의 경제를 바꾸다
2_ 늘어나는 양반과 도망하는 노비, 신분제 흔들리다
3_ 실학, 조선 개혁의 방향을 제시하다
4_ 영조와 정조, 개혁의 깃발을 올리다
08 흔들리는 조선 그 끝은 어디인가?
1_ 세도정치, 민란과 마주치다
2_ 흥선대원군, 개방과 쇄국의 갈림길에 서다
3_ 강화도조약, 본격적으로 시작된 외세의 침략
4_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조선 개혁의 꿈은 멀어지는가
5_ 갑오농민전쟁, 민중 스스로 조선 개혁의 길에 나서다
6_ 갑오개혁에서 아관파천까지,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리는 조선
7_ 대한제국과 독립협회, 마지막 기회를 잡는가
8_ 을사늑약 그리고 의병 전쟁, 민중은 포기하지 않는다
09 일제, 독립 투쟁 그리고 해방
1_ 무단통치, 한민족 노예 만들기에 광분하는 일제
2_ 3·1운동, 그 찬란한 민족해방투쟁
3_ 문화정치와 식민지경제체제, 당근 그리고 채찍
4_ 임시정부·무장투쟁·의열단·신간회, 새로운 민족해방투쟁을 모색하다
5_ 전시체제에 돌입한 일제, 강화되는 민중 수탈
6_ 해방을 맞이하기 위한 최후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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