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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 화가로 살고 어머니로 기억된 여인

이숙인 저 | 문학동네 | 2017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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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4644297 / 128쪽 141 x 1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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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역사상 가장 뜨거운 여인이 남긴 예술과 그를 향한 기억 신사임당은 어떻게 천재 화가이자 위대한 어머니로 기록되었나? 시대의 요청이 여성을 기억하는 방식 사임당은…… 천재 화가다, 위대한 어머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임당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책이다. 실제로 남겨진 그림, 기록 위에 또 많은 것들이 더해지고 변주되며 그녀에 관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그녀는 그림과 글을 남겼고 당대 유력 정계 남성들은 때에 따라 그녀를 뛰어난 화가로, 무엇보다 율곡 이이를 낳고 기른 부덕 높으신 어... 역사상 가장 뜨거운 여인이 남긴 예술과 그를 향한 기억 신사임당은 어떻게 천재 화가이자 위대한 어머니로 기록되었나? 시대의 요청이 여성을 기억하는 방식 사임당은…… 천재 화가다, 위대한 어머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임당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책이다. 실제로 남겨진 그림, 기록 위에 또 많은 것들이 더해지고 변주되며 그녀에 관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그녀는 그림과 글을 남겼고 당대 유력 정계 남성들은 때에 따라 그녀를 뛰어난 화가로, 무엇보다 율곡 이이를 낳고 기른 부덕 높으신 어머니로 칭송했다. 그런 현상 속에 그녀는 여성이 추구해야 할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어머니이기 전에 예술가 그림에 글이 얽힌 화가 신사임당의 역사 신사임당은 우리에게 현모양처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대학자 율곡 이이를 낳고 기른 어머니, 남편 이원수를 바른 길로 내조한 현명한 아내, 첩첩산중 너머 강릉에 있는 어머니를 늘 그리워한 효녀. 무엇보다 신사임당은 그림과 서예에 능했던 뛰어난 예술가였다. 신사임당은 산수화와 포도, 난초 그림에 능했다. 그녀의 나이 45세 때,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던 소세양이 그녀의 그림을 보고 감탄하며 시를 지었을 정도였다. 어숙권은 당대의 예술 동향을 기록한 『패관잡기』에서 그녀를 안견 다음가는 화가로 평가했다. 근대 이전 4세기 동안 40명 넘는 사람이 사임당에 관한 글을 썼다. 그들은 주로 제題, 발跋 등의 형태로 된 그림 품평 글을 통해 사임당을 이야기했다. 이 이야기들에는 예술과 정치와 여성을 보는 관점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데, 어느 요소에 더 비중을 두었는가는 사람마다 시대마다 조금씩 달랐다. 어떤 이는 화가 사임당에 주목했고, 어떤 이는 여성 사임당에 집중했다. 또 어떤 이는 사임당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관철하고자 했다. 그것은 개별적인 차원이기보다 특정한 그룹을 통해 담론을 형성하는 방식이었다. 사임당의 이야기는 시대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데, 그가 살았던 16세기에는 그림에 주목하는 경향이 주를 이루었다. 사임당의 그림을 품평한 소세양, 정사룡, 어숙권 등은 그녀의 시종숙 이행과 가까운 문화·학술계 인사들이었다. 그들은 예술적 관심사를 공유하면서 친밀감을 나누는 사이였다. (109쪽) 아들 율곡 이이가 직접 남긴 어머니 이야기, 『선비행장』 사임당에 대한 이야기는 많고 많지만, 무엇보다 아들 율곡 이이가 어머니에 대해 쓴 글인 『선비행장』을 주목해서 읽어야 할 것이다. 7백여 자로 구성된 율곡의 「선비행장」은 사임당을 기억하고 재생하는 5백 년 역사에서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어머니는 평소에 글씨 쓰기나 그림 그리기를 매우 좋아하셨다. 일곱 살 때부터 안견의 그림을 본으로 삼아 산수도를 그렸는데, 매우 정밀하였다. 특히 포도를 그리면 모두 진짜 같다고들 했는데, 병풍과 족자 형태로 세상에 많이 전하고 있다. (율곡 이이, 『선비행장』 중. 책 73쪽) 율곡이 기술한 어머니 사임당의 특성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성품에 관한 것으로, 사임당은 온화하고 고상했으며 태도는 조용하고 섬세하며 신중하고 겸손했다. 두번째로 사임당은 어릴 때부터 경전과 문장을 익히는 등 학구열이 높았으며 바느질과 자수, 그림 등에서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다. 마지막으로 인간관계에서의 진정성을 들 수 있는데, 부모에 대한 효성, 시어머니에 대한 예의, 남편에 대한 충언, 자녀에게 주는 교훈, 아랫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여기서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사임당이 어린 시절부터 효심이 깊었고, 혼인하여 친정을 떠날 때는 홀로 남겨진 어머니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서울 시댁에서는 강릉의 친정어머니를 늘 그리워하여 밤을 지새우는 일이 잦았다는 점이다. 여기서 본 사임당은 무엇보다 효녀의 이미지가 강하다. 송시열의 율곡 높이기 프로젝트 중국 후부인에 비견될 어머니의 탄생 하지만 이이가 서인의 학문적 스승이자 정신적 버팀목이 되면서 신사임당에 대한 평가는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서인은 자신들의 정통성을 위해 이이의 명예를 격상시키고 그를 신화적 존재로 만들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신사임당은 자신의 업적이 아니라 이이의 어머니로 평가받게 되었다. 여기에는 조선시대에 여성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인정받기 힘든 일이었다는 이유도 있었다. 이이를 높이는 작업에 가장 힘을 쓴 사람은 송시열이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신사임당을 이상적인 어머니로 부각시키면서, 신사임당이 그림을 “마지못해” 그렸다고 적었다. 송시열이 원하는 이이의 이미지에 화가 신사임당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서인은 송시열이 잡은 방향대로 율곡과 신사임당을 이상화시켰고, 나중에 가서는 신사임당이 풀과 벌레 그림을 그린 이유도 그녀가 『시경』에 수록된 시 「초충」을 형상화하기 위해서였다는 주장도 나왔다. 신사임당이 유교적 덕을 충실히 수행한 여성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17세기의 사임당은 율곡을 종주로 한 서인의 결집이 요청되던 시대의 산물이다. 처음에 사임당은 행장이나 비지 등의 율곡 관련 서술에서 그의 어머니로 언급되다가, 후반으로 가면서 구체적인 그림 작품과 함께 부덕을 갖춘 여성으로 서술된다. 송시열의 노력으로 사임당과 율곡은 모범적인 모자로 역사에 이름을 올리는데, 이것은 서인들에게 이념적인 정통성을 담보해주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노론이 정국을 주도하다시피 한 18세기에는 사임당의 인기가 가히 폭발적이었다. 송시열의 문인이거나 그로부터 파생된 정통 서인 계열 인사들은 경쟁하듯 사임당의 그림에 관심을 표명했다. 그들은 대폭 늘어난 전傳 사임당의 그림을 감상하는 가운데 당파적 결속을 다졌던 것이다. 사임당이 동인 계열 인사들에게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한 것을 보면 분명 그녀는 율곡을 종주로 하는 서인의 전유물이었다. 여기서 사임당은 유교 윤리로 재구성되며 중국 고대의 성녀들과 맞먹는 위상을 갖게 된다. 19세기의 사임당 이야기는 후손인 신씨와 송시열의 후손들이 주도했다. 이 시기의 이야기는 새롭다기보다 기존에 나온 내용을 종합하면서 심화한 것이다. 그들은 노론에 연원을 둔 인사들이었지만 당파적 결속보다는 서화 소장에 대한 관심이 더 컸다. 역사적 인물로 이미 명성이 난 사임당의 작품을 만나거나 소장하는 것이 이 시기의 인사들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 (109, 110쪽) ‘신사임당’ 하면 초충도? 너무 많은 그림이 사임당이 그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늘날 신사임당의 작품이라고 전해지는 그림은 상당수가 18세기 이후에 나온 것들이다. 우연히 발견되었거나, 혹은 신사임당의 후손이 갖고 있었다는 식으로 등장한 작품들이다. 그림의 종류 또한 산수화, 포도, 난초, 풀과 벌레, 꽃과 풀, 물고기, 대나무, 매화 등으로 다양하다. 이 그림들에는 진짜냐 가짜냐 하는 논란이 따라다녔고, 유명한 사람들의 글을 실어서 진짜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과연 그중에 진짜 신사임당의 작품은 얼마나 될까. 신사임당의 7대손인 이언유와 이선해는, 세상에 떠도는 신사임당의 그림은 대개 가짜라고 말했다. 진본은 대개 한두 점 정도만을 명문가에서 보배롭게 소장한다고 말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신사임당’ 하면 반사적으로 떠올리는 초충도에 관한 부분이다. 아들 이이는 어머니가 산수화나 포도 그림을 잘 그렸다고 했는데 풀과 벌레를 소재로 한 초충도는 18세기 이후로 ‘새로 나온’ 그림이 많다. 과연 전부 사임당이 그린 그림인지 확신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18세기 이후 새로

저자 소개


성균관대 철학박사.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재직하고 있다. 여성과 유교, 두 가지가 포함된 모든 주제에 관심이 있다. 유교경전 오경五經 및 중국고대의 제자서諸子書를 여성과 역사의 관점에서 읽어낸 후,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과 생각’으로 관심이 이동하였다. ‘지금 우리’의 기원을 밝혀보고자 조선 여성의 역사를 현실․이념․제도로 다각화하고, 여기에 신분ㆍ시대ㆍ지역 등의 차이를 적용시켜 읽어내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저서로 ≪동아시아 고대의 여성사상≫(2005)이 있고, 역주로 ≪여사서≫(2003)와 ≪열녀전≫(2013) 등이 있다. 공저로 ≪조선여성의 일생≫, ≪선비의 멋, 규방의 맛≫ 등 다수와 많은 연구 논문이 있다. 

목차

목차
머리말
1_ 화가 신사임당
그림 품평 4세기의 역사?산수화가 신씨?하늘이 내린 신부인의 붓
2_ 그림을 둘러싼 이야기
그림과 품평?진짜인가 가짜인가
3_ 어머니 신사임당
율곡의 「선비행장」?김장생의 「율곡행장」?송시열의 율곡 높이기 프로젝트?초충도와 여성의 일?중국에는 후부인, 조선에는 신부인
4_ 교육가 또는 효녀
자녀 교육에 성공한 어머니?지극한 효녀
5_ 만들어진 기억
부록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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