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고예상일 안내
주문하신 상품이 한국에서 현지 배송을 위한 출고단계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날짜입니다. 상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부적인 사정으로 인해 출고예상일에 다소 오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여러 상품(예약상품포함)을 함께 주문하신 경우 출고예상일이 가장 늦은 날짜에 맞춰 함께 배송됩니다.

ISBN : 9788967353827 / 472쪽 148 x 221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
스네자나 로렌스
-
송용진
-
유발 하라리
-
김용옥
- 24,300
- 19,800
- 71,280
- 18,000
반디앤루니스 리뷰
가장 신뢰받는 판본의 알렉산드로스 전기 최초 출간
알렉산드로스 부관의 진술을 로마 군 지휘관이 고증하여
신화적 존재로 부각되기 전 알렉산드로스의 사실적 면모를 드러낸다
“그리스 사상과 문학, 나아가 서양 문명과 함께 읽어야 할 책”
“영웅이 아닌 인간 알렉산드로스를 만난다”
“이 책 이후의 알렉산드로스는 신격화되었다”
“무패 행진을 이어간 전쟁 영웅의 원정 과정에 집중한 객관적 원전”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가장 신뢰받는 판본의 알렉산드로스 전기 최초 출간 알렉산드로스 부관의 진술을 로마 군 지휘관이 고증하여 신화적 존재로 부각되기 전 알렉산드로스의 사실적 면모를 드러낸다 “그리스 사상과 문학, 나아가 서양 문명과 함께 읽어야 할 책” “영웅이 아닌 인간 알렉산드로스를 만난다” “이 책 이후의 알렉산드로스는 신격화되었다” “무패 행진을 이어간 전쟁 영웅의 원정 과정에 집중한 객관적 원전” 아리아노스의 『알렉산드로스 원정기』의 주요한 특징은 원정 과정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 아리아노스는 로마시대 카파도키아... 가장 신뢰받는 판본의 알렉산드로스 전기 최초 출간 알렉산드로스 부관의 진술을 로마 군 지휘관이 고증하여 신화적 존재로 부각되기 전 알렉산드로스의 사실적 면모를 드러낸다 “그리스 사상과 문학, 나아가 서양 문명과 함께 읽어야 할 책” “영웅이 아닌 인간 알렉산드로스를 만난다” “이 책 이후의 알렉산드로스는 신격화되었다” “무패 행진을 이어간 전쟁 영웅의 원정 과정에 집중한 객관적 원전” 아리아노스의 『알렉산드로스 원정기』의 주요한 특징은 원정 과정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 아리아노스는 로마시대 카파도키아 총독과 아테네 집정관을 지낸 군사 전문가로, 선대 역사학자의 연구를 철저히 숙지하여 만년의 역작인 『알렉산드로스 원정기』에 녹여냈다. 아리아노스는 오랫동안 편린 상태였던 각종 자료를 수집하여 터무니없는 오류와 모순된 정보를 선별했고, 더욱이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에 직접 참가했던 프톨레마이오스와 아리스토불루스의 진술이 가장 신뢰할 만하다는 판단 아래 그 둘의 역사서를 기초로 삼았다. 그래서 스승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와의 관계나 애마 부케팔로스에 관한 일화 등 신비주의적 내용은 과감히 생략한 채 오로지 출정 기간에 발생한 사건에 몰두했다. 특히 동행했던 지휘관이나 적장들의 이름과 직위, 군대 규모, 전투 과정, 지리와 지형 등을 세밀히 고찰하고 있다. 두 번째 특징은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에도 불구하고 공정한 태도를 유지했다는 점이다. 살인적 폭력을 부르는 주벽과 오만함, 자제력 부족, 신이 되려는 열망, 과도한 정복욕에 대해서는 비판의 칼날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러한 자세로 인해 아리아노스는 가장 공정한 알렉산드로스 분석가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알렉산드로스 원정기』는 가장 신뢰받는 판본의 알렉산드로스 대왕 전기의 최초 출간이라는 데 큰 의의가 있다. 고대 원전으로 알렉산드로스를 만나야 하는 까닭 세상에 널리 알려진 위인은 그 빛나는 업적 때문에 박제화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다. 33년이라는 짧은 생애에 그가 이룬 전적은 가히 놀랍다. 21세의 젊은 나이에 왕좌에 올라 11년 만에 그리스와 페르시아 제국을 평정하고 광활한 아시아 대륙까지 정벌했으며, 그로 인해 인류사에 헬레니즘이라는 국제화 문명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다. 그리하여 그는 비교 불가능한 불세출의 전쟁 영웅으로 추앙돼왔고, 그에 걸맞은 전설적인 일화들이 세상에 뿌려져 있다. 그러나 지난 수십 세기 동안 이러한 기록들이 반복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알렉산드로스라는 인물은 점점 신화적 존재로 화석화된 측면이 있다. 물론 알렉산드로스 본인조차도 자신이 아킬레우스나 디오니소스와 같이 신으로 숭배되기를 염원했으나, 사실 그는 실수와 잘못을 저지른 뒤에 자책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던 약점 많은 인간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알렉산드로스 사후 가장 앞선 시기에 발표된 저작물들을 다시금 재조명해봐야 한다. 이 사료들은 패배할 줄 모르는 전쟁 영웅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내면을 좀더 제대로 살펴볼 수 있는 정황적 근거들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전해지는 가장 앞선 시기의 1차 사료는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지 약 300~500년 뒤 로마제국 당시의 저작들이다. 플루타르코스를 비롯한 디오도로스, 쿠르티우스, 아리아노스 등의 저작이 정통성을 인정받고 있는데, 그중 가장 공정하고 분석적인 전기는 아리아노스의 『알렉산드로스 원정기』로 알려져 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국내 최초로 번역된 이 원전을 통해 알렉산드로스라는 인물의 생생한 면면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아리아노스, 가장 공정하고 분석적으로 영웅을 해부하다 “내 이름은 밝힐 필요가 없고, 나라와 가족 그리고 내가 맡은 관직을 구체적으로 말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가 쓴 이 책이 나의 국가, 친족, 관직의 지위보다 더 중요하다. 어린 시절부터 그러했다. 실제로 내게는 이 책이 나의 국가이며 친족이며 관직이다.” 저자 아리아노스는 2세기 로마시대에 카파도키아 총독과 아테네 집정관을 지낸 행정가이자 역사가이며 철학자였다. 원래 로마의 속주인 비티니아에서 태어난 그에게 『알렉산드로스 원정기』는 그의 삶에서 필생의 과업이었다. 그는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무한한 존경을 품고 있었고, 군사와 행정 분야의 전문가였으며, 선대 역사학자들의 연구를 철저히 숙지한 상태였고, 저술 경험도 풍부했을 뿐 아니라 당대 유명한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제자로서 철학적 기반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의 만년의 역작인 『알렉산드로스 원정기』에는 인간사에 대한 예리한 이해와 상식, 전투 지형이나 전략 등이 깊이 있게 녹아들어 있다. 특히 집필 과정이 원정기의 품격을 더하고 했다. 아리아노스는 오랫동안 편린 상태로 떠도는 각종 자료들을 산더미같이 쌓아놓고 터무니없는 오류와 모순된 정보들을 매의 눈으로 선별하여 취사선택하는 과정을 거쳤다. 더욱이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에 직접 참여했던 프톨레마이오스와 아리스토불루스의 진술이 가장 신뢰할 만하다는 판단 아래 그 둘의 역사서를 기초로 삼았다. 주로 군사 분야에 관해서는 프톨레마이오스의 기록을, 지리학과 자연사에 관한 정보는 아리스토불루스에 근거했다. 원정에 동반한 다른 여러 인물들의 증언과 기록 중에서 개연성이 높은 내용들도 채택하되, 진실이 아니라고 판단한 부분에 대해서는 냉철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선정주의를 피했다. 『알렉산드로스 원정기』의 주요한 특징은 원정 과정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페르시아 원정 이전의 마케도니아와 그리스의 복잡한 동맹관계, 왕자 시절의 스승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와의 관계나 애마 부케팔로스에 관한 일화, 부왕인 필리포스 2세와 어머니 올림피아의 관계나 출생에 얽힌 신비주의적 내용들은 과감히 생략한 채 오로지 출정 기간에 발생한 사건에 몰두하고 있다. 특히 동행했던 지휘관이나 적장들의 이름과 직위, 군대 규모, 전투 과정, 지리와 지형 등을 세밀히 고찰하고 있다. 두 번째 특징은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에도 불구하고 공정한 태도를 유지했다는 점이다. 살인적 폭력을 부르는 주벽과 오만함, 자제력 부족, 신이 되려는 열망, 과도한 정복욕에 대해서는 비판의 칼날을 숨기지 않는다. 이러한 자세로 인해 아리아노스는 가장 공정한 알렉산드로스 분석가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신기에 가까운 동방 원정의 배경에는 ‘왕의 친구들’이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32년 8개월을 사는 동안 12년 8개월간 통치했고, 그중 11년간(기원전 334~323) 출정 길에 있었다. 그의 총 원정 거리는 약 2만7000킬로미터에 달했고, 오늘날의 그리스, 터키, 이집트, 레바논, 이라크,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지역을 차지했다. 맨 먼저 선왕인 필리포스 2세가 죽자 분열의 조짐을 보이는 그리스 동맹을 제압한 알렉산드로스는 바로 소아시아로 출정하여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과 세 번에 걸친 싸움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 그라니코스 전투, 이수스 전투, 가우가멜라 전투가 바로 그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집트 땅을 접수하고 돌아와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 궁전을 불태움으로써 페르시아가 지배하던 소아시아 땅까지 접수했다. 서쪽으로 진군한 알렉산드로스군은 인더스 강과 히다스페스 강을 건너면서 코끼리 군단을 앞세운 수십만의 인도군에 맞서 연전연승했고, 연이어 인도 본토까지 진출하고자 했다. 그러나 오랜 행군과 전투에 지친 병사들의 반발에 밀려 의지를 꺾고 회군길에 올랐다. 그러나 마케도니아에 도착하지 못한 채 바빌론에서 열병에 걸려 최후를 맞았다. 그의 원정
아리아노스의 책은 인내심, 상식, 인간사에 대한 예리한 이해뿐 아니라 군사와 행정에 관한 상당한 경험을 담고 있다. 특히 군사 문제에 관하여 프톨레마이오스의 진술을 주로 채택하여 좋은 결과를 낳았다. 이로써 아리아노스는 마케도니아의 핵심층과 긴밀한 일급 정보원을 둔 셈이다. 아리아노스의 책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서술을 요약한 것에 불과하다며 깎아내리고 싶은 이들도 있겠지만 그러한 폄하는 부당하다. 이수스 전투나 가우가멜라 전투에 대한 아리아노스의 해설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책을 직간접적으로 접했을 퀸투스 쿠르티우스의 해설에 비교했을 때 훨씬 훌륭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_30쪽
한편 알렉산드로스는 아킬레우스의 무덤에 화관을 바치면서 호메로스가 아킬레우스의 위업을 알리고 길이 보전했으니 아킬레우스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알렉산드로스에게는 호메로스 같은 저술가가 없었으므로 그로서는 아킬레우스의 이런 행운을 부러워할 만했다. 알렉산드로스에게 없었던 한 가지, 말하자면 성공이라는 기나긴 연결고리에서 빠져 있는 단 하나의 사슬은 그의 위업을 세상에 알릴 만한 훌륭한 기록자를 얻지 못했다는 점이다. 알렉산드로스에 관한 어떤 산문도 서사시도 쓰이지 않았다. 히에로, 겔로, 테로 혹은 그 외에 알렉산드로스와 비교도 안 되는 많은 사람의 이름과 행적을 칭송하는 노래 가운데 알렉산드로스를 찬양하는 노래는 없었다. 그리하여 오늘날 알렉산드로스의 삶과 놀라운 업적은 고대의 아주 사소한 일들보다 덜 알려져 있다. _75~76쪽
알렉산드로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그대에게 어떻게 해주길 원하는가?” 그러자 포루스가 대답했다. “왕으로 대하라.” 알렉산드로스는 이 대답에 만족하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하겠다. 그런데 자신을 위해 원하는 건 없는가? 말하라.” “이 하나의 요구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이 위엄 있는 대답에 더욱 만족한 알렉산드로스는 포루스에게 왕국을 계속 통치하도록 했고 더 넓은 영토까지 얹어주었다. 이렇게 알렉산드로스는 용맹한 자를 왕으로 세웠고, 그 이후 포루스는 모든 면에서 충직한 친구가 되었다. 히다스페스 강 너머에서 포루스와 인도인들을 상대로 한 전투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헤게몬이 아테네의 집정관이던 5월에 벌어진 일이다. _303쪽
나로서는 알렉산드로스의 정확한 의중을 추측할 만한 자료가 없으며 추측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분명 원대하고 야심 찬 계획이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제국을 아시아에서 유럽까지, 유럽에서 영국 제도까지 확장했다 해도 그것으로 만족하여 편하게 지내기보다는 정복한 영토 너머 미지의 땅을 계속 찾아 나섰을 것이다. 그는 경쟁자가 없으면 자기 자신을 뛰어넘으려는 천성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_373쪽
“알렉산드로스 왕이시여, 모든 사람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만큼의 땅만 소유할 수 있소. 그대는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돌아다니며 성가신 일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느라 항상 바쁜 것을 제외하면 우리와 같은 사람일 뿐이오. 그대는 곧 죽을 것이며, 그러면 그대의 몸이 묻힐 만큼의 땅만을 소유하게 될 것이오.” 알렉산드로스는 이 슬기로운 말에 동의했지만 그의 실제 행동은 정확히 그에 반하는 것이었다. _373쪽
그들은 알렉산드로스가 살아 있는 동안 마지막으로 한 번이라도 직접 보길 원했으며 주검이라도 보고 싶어했다. 알렉산드로스가 이미 죽었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호위대가 왕의 죽음을 감추고 있다고 의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병사들은 왕을 잃는 슬픔과 감당하기 힘든 혼란 속에서 왕을 직접 보고 싶어했으며, 그런 그들의 뜻을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병사들이 줄지어 침상 옆을 지나가는 동안 알렉산드로스는 말없이 누운 채 머리를 들어 올리려 애쓰면서 병사 한 명 한 명에게 알아보았다는 눈빛을 보냈다. _402쪽
누구든 알렉산드로스에게 불리한 증거들을 가지고 그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비판은 그의 삶과 활동 전체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에 대해 악평을 하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먼저 본인과 본인이 비난하는 대상을 비교해보라. 그토록 하찮고 유명하지 않은 자신에 비해 상대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을 만큼 두 대륙의 군주로 군림했으며, 세상 전체에 명성을 드날린 인물이다. 자신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얼마나 사소한 일을 하고 있는지, 심지어 그 일마저 자신의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히 알렉산드로스를 욕할 수 있을까? _425~426쪽
목차
아리아노스와 고대 그리스 문학 | 약어
서문
1권
2권
3권
4권
5권
6권
7권
부록 1 | 부록 2 | 참고문헌 | 출처 | 역자 후기 | 찾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