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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46062740 / 326쪽 134 x 191 (㎜)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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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무역이 곧 인생이었던
전직 코트라맨의 이야기
이 책은 대한민국의 산업화 시기 해외수출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한 무역인의 역사를 담담히 그리고 있다. 저자는 코트라에서 수출 역군으로 뛰었고, 조국이 요구할 때는 그 이상의 책임을 감당하며 반평생을 보냈다.
저자는 코트라에서 재직한 30년 중 절반에 가까운 14년을 대만, 핀란드, 프랑스, 스웨덴 등 해외 현지에서 근무했다. 그 과정에서 국내 최초로 미국산품전시회를 기획했고, 냉전이 한창일 때 동유럽 한복판에서 공산주의 국가들과 무역관계를 맺기도 했다. 코트라를 떠나서도 10년 넘게 우리나라의 중소 수출업계를 위해 봉사했다.
해외시장 개척의 과정은 영광스러운 만큼 지난한 시간이기도 했다. 대만에서는 산업스파이로 몰렸고, 아프리카에서는 노상강도를 당해 큰일을 겪을 뻔하기도 했다. 소련이 우리 민간여객기를 격추한 다음 날 생존자 확인을 위해 소련 대사관에 들어갔던 이야기, 가족의 죽음을 지구 반대편에서 들었던 이야기는 읽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무엇이 그에게 개인의 안위를 마다하고 나라를 위해 전 세계를 누비게 만들었을까?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코트라 그리고 낯선 땅으로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50여 나라, 60여 도시를 오가며 대한민국의 수출을 위해 분투한 사람이 있다.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살아남기 위해서는 거친 땅, 남의 땅, 낯선 땅으로 나아가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 땀과 눈물의 시간은 숱한 성공과 실패, 희망과 좌절의 이야기로 남았다. 코트라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무역투자 공기업이다. 저자가 코트라에서 무역인의 삶을 시작한 것이 1964년의 일이다. 코트라의 설립연도가 마침 1962년이니 저자와 코트라와의 만남, 무역업으로... 코트라 그리고 낯선 땅으로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50여 나라, 60여 도시를 오가며 대한민국의 수출을 위해 분투한 사람이 있다.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살아남기 위해서는 거친 땅, 남의 땅, 낯선 땅으로 나아가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 땀과 눈물의 시간은 숱한 성공과 실패, 희망과 좌절의 이야기로 남았다. 코트라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무역투자 공기업이다. 저자가 코트라에서 무역인의 삶을 시작한 것이 1964년의 일이다. 코트라의 설립연도가 마침 1962년이니 저자와 코트라와의 만남, 무역업으로의 투신은 운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저자는 코트라의 초창기 모습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이며, 한국의 수출입국(輸出立國) 시기를 기억하는 이제 몇 안 남은 사람이기도 하다. 산업화 시기 대한민국 무역인의 삶은 영광스럽기 이전에 고달팠다. 그것은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러니까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일이었다. 피부색도, 쓰는 말도, 문화와 관습도 다른 사람들과 애써 관계를 맺고 우리가 갓 만들어낸 조악한 품질의 물건을 사달라며 매달리는 일이었다. 낯선 땅에서 일하는 것은 죽을 만큼 힘든 일이었다. 대만에서 근무할 때는 산업스파이로 몰리기도 했고 아프리카로 출장을 갔을 때는 노상강도를 당하기도 했다. 소련 전투기가 우리 여객기를 격추했을 때는 혈혈단신으로 핀란드 주재 소련 대사관에 들어갔던 적도 있다. 아버님의 부음을 머나먼 북유럽의 땅에서 들었을 때의 심정은 뭐라고 표현하지 못하겠다. 익숙한 땅을 버리고 낯선 땅으로 향하는 것은 그렇게 낯선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었다. _13쪽 어떤 때는 나 자신보다 낮은 거래처에게도 몸을 낮춰야 했다. 그들을 끌어안기 위해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바다 건너 먼 해외의 거래처를 놓치기 쉽다. 이 때문에 나는 낮이나 밤이나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내게 부과된 의무를 하나의 위협으로 보고 항상 긴장과 근심 속에 살았다. …… 내가 잠시라도 판단을 잘못 내린다면 거래처는 끊기고 삶은 나를 고달프고 막다른 곳으로 끌고 가리라고 항상 걱정했다. 나는 수출로 돈을 버는 작은 기업의 고문에 불과했지만 그 기업의 사장보다 더 긴장했다. 나는 항상 무섭고 불안한 삶 속에서 살았다. _312쪽 1960~1970년대는 우리가 한창 산업화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던 시기였다. 흔히 ‘월화수목금금금’으로 비유하는 근면성실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야근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지구 반대편의 바이어와 언제나 통화가 가능해야 하는 코트라맨이 밤에 잠을 자고 있어서는 안 되었다. 얼마나 많은 야근의 밤을 보냈을까. 아직 풋내기 무역인이었던 시절 저자는 늦은 밤 불시에 코트라를 찾은 박정희 대통령과 조우한 적도 있었다. 그때 그 시절 우리 무역인에게 휴가나 휴식은 사치였다. 코트라 남대문 본사에서 내가 근무하던 3층 홍보부 창문은 이런저런 일을 혼자 수행하느라고 언제나 늦은 밤까지 불이 켜져 있었다. 당시에는 자정부터 다음 날 새벽 네 시까지 야간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코트라 홍보부의 창문은 항시 환하니 사람들이 의아한 나머지 길을 지나다가 사무실을 방문하는 일이 있었다. 심지어 1967년 늦가을에는 대통령의 방문을 맞이했던 적도 있다. 어느 날 늦은 밤 열한 시쯤 나 홀로 야근하고 있었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이 아무런 예고 없이 코트라 건물 3층의 홍보부 사무실 복도에 나타났다. 경호원인 듯한 사람과 회사 당직 수위와 함께였다. _193쪽 나는 항상 무역관을 지켜야 했고 국내 손님들의 방문 활동을 지원해야 했다. 경쟁국에 비해 불리한 환경이었지만 나는 주어진 여건하에서 항상 각오를 새로이 하며 임무를 무사히 마칠 수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랬기에 정기휴가나 일시적인 휴식도 마음껏 가질 수 없었다. _314쪽 냉전의 시대 동유럽에서 무역관계를 구축하다 우리가 한창 산업화할 때 전 세계는 동서냉전으로 신음하던 중이었다. 냉전은 세계를 무대로 뛰는 무역인들에게 큰 변수였고 북유럽과 서유럽에서 오래 근무한 저자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저자의 교역대상 리스트에는 동유럽 사회주의권과의 관계 맺기가 오랜 숙제로 남아 있었다. 긴 세월 절치부심하던 그는 1983년 마침내 국내 최초로 불가리아의 국영 무역기관과 합작사업 계약을 맺었다. 저자의 업적은 시대를 적어도 10년은 앞서나간 역사적인 쾌거였다. 하지만 동유럽과 어렵사리 맺은 무역관계는 어이없게도 당시 우리의 국내정치적 요인으로 좌초되고 말았다. 나는 2년여 동안 프랑스와 불가리아를 여러 차례 오갔다.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디네브를 통해 불가리아 불가쿠프와 한국 국제상사 간에 신발류 부품의 합작공장 설립에 관한 의정서를 교환하게 되었다. 소피아에서 불가쿠프와 국제상사가 합작으로 공장을 세우기 위한 정식계약을 체결하기로 합의했다. …… 나는 여러 달 동안 쌓인 피로가 그제야 풀리는 듯했으나 이 사업이 공산권과의 최초의 시범적인 사업일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이념대립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대의명분 때문에 일순간도 긴장을 풀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계약은 당시에는 성공적으로 이뤄졌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불행하게도 우리 쪽에서 국제상사가 돌연히 해체되면서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_117~118쪽 국내 최초로 미국산품전시회를 기획하다 수출을 하는 만큼 수입도 하는 것이 무역과 통상의 기본이다. 물건을 팔기만 살 뿐 사지는 않는 나라를 좋아할 상대국은 없다. 1987년 무역적자로 고생하던 미국이 한국을 상대로 그랬다. 당시 한국은 미국을 상대로 상당한 규모의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었고 양국 사이의 무역불균형을 시정하겠다는 미국의 통상압력은 거셌다. 당시 저자는 20년이 넘는 경력의 무역인이자 코트라 해외협력사업부장으로서 국내 최초로 이른바 ‘미국산품특별전시회’를 제안했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 나랏돈을 써서 ‘미국 상품을 알리고 사주는 운동’을 하자는 기획이었다. 1990년대까지도 ‘외국담배는 사지도 팔지도 맙시다’라는 식의 구호가 횡행하던 우리나라에서 이미 1980년대에 이런 주장을 내놓은 것은 가히 파격적인 일이었다. 청와대에서, 재계에서, 심지어 코트라 안에까지도 저자의 제안에 반발이 일었지만 그는 뚝심을 가지고 밀어붙였다. 저자의 노력과 헌신으로 미국산품전시회는 성공적으로 개최되었고, 미국의 통상압력은 잦아들었으며, 그 뒤에 우리의 대미수출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한미 양국의 무역갈등을 해결한 공로로 저자에게 주한 미국 대사관이 수여한 감사패는 그 과정에서 얻은 덤이었다. 당시 국내에서는 반미시위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곧이곧대로 미국산 상품의 수입을 늘리기 위한 전시회를 연다고 하면 반대여론이 일어날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전시회 명칭에서 ‘수입’이란 표현을 제외하고 포괄적인 의미로 미국산품특별전시회(U.S. Products Show)로 정했다. …… 당시 한국은 일본과의 무역에서 적자가 극심한 상황으로 강력하게 시장다변화를 추진하던 실정이었다. 미국산품특별전시회는 일본으로 치우친 수입처를 전환해 수입 다변화를 위한 획기적인 조처로 타당한 전략이라고 강조해 일부의 반발과 오해를 무마시켰다. 동시에 미국의 통상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앞뒤를 가리지 않고 취해야 할 이열치열(以熱治熱)의 방법이라고 역설하자 회의 참석자들은 모두 웃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전시회의 본뜻을 이해하게 된 무역업계와 일반 국민들도 크게 환영하고 나섰다. _41~42쪽 코트라맨은 무역일꾼 이상의 존재 흔히 코트라맨은 수출 전문가나 무역 전문가로만 생각한
목차
지은이의 말
프롤로그: 낯선 땅으로
1부 하늘은 세계 어디를 가도 푸르렀다
1장 덧없이 더해가는 노년의 아픔
2장 잊을 수 없이 자주 떠오르는 핀란드에서 살던 시절
3장 한 잔의 술, 스납 야화
4장 어두웠던 소련인들, 밝은 러시아인들
5장 비행기 안 어미젖을 찾아 칭얼대던 해외 입양아들
6장 마케팅 총알과 수출 홍보
7장 대만의 선진적인 중소기업 수출정책 조사와 내가 겪은 수난
2부 노년의 삶과 나
1장 현해탄을 넘으며 비탄에 잠겼던 일
2장 우리의 수출업체 임직원과 사구포 김 사장
3장 보고서로 밤새운 춘장대, 그곳은 언제나 아쉬움만 불러오고
4장 한 중소 수출기업에서의 봉사와 어느 날의 침묵
5장 백합화의 추억과 친절의 교훈
6장 노년의 핀란드 자연인과 외로운 해녀
7장 회상
에필로그: 미래 수출 역군을 위한 조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