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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8156671 / 232쪽 153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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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그들은 괴물이 아니다!
조선족 아내를 둔 대한민국 청년이 쓴 현장 보고서
일제 강점기 이후 한민족이 살아가는 곳의 이야기는 모두 조선이라는 나무에서 나온 가지들이다.
윤동주의 고향이자, 김좌진과 홍범도가 활약했던 전장인 연변은 특히 근대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연변이란 지역은 단순히 한반도의 조선인이 강을 건너 이주한 곳이라는 의미만을 갖지 않는다. 민족의 슬픔이 담겨 있는 곳이자 뜨거운 역사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곳이다.
조선족 아내와 만나 새로운 눈을 뜨게 된 저자는 우리에게 연변의 역사와 그 소중함을 알려 준다. 또, 연변에서 활약했던 역사적 인물과 사건 외에 오늘날 연변의 모습을 전한다. 조선족에 대한 잘못된 편견으로 가득 찬 오늘이기에 조선족 그리고 그들의 주요 삶의 터전인 연변을 다시 발견할 필요가 있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뉴스에서 외국인 범죄에 관한 뉴스가 나올 때면 조선족을 추방해야 한다는 댓글이 주를 이룬다. 또한, 조선족 스스로도 필요에 따라서는 중국인 혹은 한국인이라며 자신이 조선족임을 숨긴다. 이해한다. 나 역시 모를 때는 함께 욕하기도 했으며, 아내가 가끔 조선족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를 알고 나니 이는 분명 잘못된 길임을 알게 되었다. 무지가 불러온 부정과 비판에 대해 반성하게 된 것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우리는 조선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조선족은 자신의 역사에 대해 얼마나 알... 뉴스에서 외국인 범죄에 관한 뉴스가 나올 때면 조선족을 추방해야 한다는 댓글이 주를 이룬다. 또한, 조선족 스스로도 필요에 따라서는 중국인 혹은 한국인이라며 자신이 조선족임을 숨긴다. 이해한다. 나 역시 모를 때는 함께 욕하기도 했으며, 아내가 가끔 조선족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를 알고 나니 이는 분명 잘못된 길임을 알게 되었다. 무지가 불러온 부정과 비판에 대해 반성하게 된 것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우리는 조선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조선족은 자신의 역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요즘, 우리 역사에 대한 재인식이 두드러진다. TV에서는 역사에 관한 강연이 이어지고, 역사를 노랫말로 부르며 그 소중함을 전하고 있다. 여기 잊어진 또 다른 역사가 있다. 바로 연변 그리고 조선족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연변으로 부르는 지역은 일제 강점기 이후 오늘날 ‘옌볜’이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인 중국 지린성의 한 자치주가 되었다. 연변이 속한 간도가 원래 조선 땅이라는 주장과 얽혀 한때 주목을 받았던 이곳의 역사는 금세 우리의 머릿속에서 잊히고 말았다. 근대기 조선족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일제 강점기, 연변은 베이징과 상하이로 건너갈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했다.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이곳에서 새로운 계획을 준비했고, 또 여러 학교에서 많은 독립 운동가를 배출했다. 연변은 그 어둡던 시대에 가장 빛나던 곳이었다. 낮은 문맹률과 높은 교육열 두드러져 광복을 맞은 후의 조선족은 현장에서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맹활약했다. 중화민국이 건국될 당시 소수민족 중의 소수에 불과했지만, 연변조선족자치구(이후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세울 수 있었던 건 이런 이유다. 그들의 낮은 문맹률과 높은 중국 명문대 진학률은 중국 사회에 많은 귀감이 되고 있다. 서전서숙, 명동학교에서부터 오늘날 연변대학으로 이어지는 학구열은 이미 연변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실제로 연변 곳곳에는 역사의 흔적이 가득하다. 용정에는 윤동주의 모교인 명동학교가, 도문에는 왕청에는 봉오골 전투가 일어난 봉오골이, 화룡에는 청산리가 있다. 또한, 혼춘에는 장고봉 사건을 기념하는 장고봉 사건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한편, 돈화는 발해 때의 유적이 발견된 지역으로, 오동성지, 통구령산성 등의 유적지가 있다. 안도에서는 구석기 후기의 인류 주거지 및 오호산산성, 보마성 등의 유적지를 만나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연변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역사적 지식 없이 그저 연변을 하나의 관광지로만 찾는 경우가 많다. 역사를 알고 봉오동 전투가 일어났던 작은 골짜기를, 일제의 민간인 학살로 한때 피로 붉게 물들었던 해란강을 다시 바라보자. 이 책에서는 혼춘사건을 비롯하여 3·13 운동 등 큼지막한 사건들과 홍범도, 김좌진, 윤동주, 주덕해 등 연변에서 자랐거나 활약했던 인물들을 읽기 쉽게 다루었다. 우리는 잘못된 편견으로 조선족을 바라보고 있다. 일부의 험악한 범죄 사건은 조선족 전체가 그러하다는 식으로 잘못 전해졌다. 또한 같은 한민족이 아닌, 그저 중국 국적의 북한 말씨를 하는 민족일 뿐이라는 생각이 만연하다. 어쩌면 우리는 조선족 그리고 연변에 대한 짧은 지식으로 그들을 매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의 저자 또한 그러했다. 조선족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짧고 그른 지식으로 조선족을 바라보았다. 이제 우리가 조선족을 재발견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잊어진 역사를 찾고, 조선족과 어울러 지내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과정이다.
조선족에 대해 누군가는 우리와 같은 한민족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중국인이라 말한다. 물론 그들은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법적으로 중국인이긴 하다. 그런데 그들은 중국어가 아닌 한국말을 하고, 중국 문화보다 한국 문화가 더 익숙하다. (14페이지)
중국 정부는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축소하고, 조선족의 역사를 없애기 시작했다. 조선족이 한족 학교에 들어가는 건 어렵지만, 조선족 학교에 한족은 쉽게 입학할 수 있다. 즉, 한족의 사회 진출은 쉬운 반면, 조선족의 중국 내 사회 진출에는 보이지 않는 많은 벽이 존재하는 것이다. (30페이지)
연변의 농촌 인력이 일자리를 찾아, 한국이나 중국 등의 대도시로 떠나면서 조선족의 80퍼센트 이상이 거주하는 동북 3성(지린성, 랴오닝성, 헤이룽장성을 이름)에는 농촌 공동화 현상이 심해졌다. 넓은 농지는 그대로 방치되고, 아예 없어지는 조선족 마을도 생겨났다. (43페이지)
용정의 3·13 운동은 연변 각지는 물론 전국적으로 펴져 있던 조선족의 반일 투지를 일깨워 주었고, 본격적인 반일 투쟁의 시발탄이 되었다. 지금도 용정 동남 교외에 있는 합성리 공동묘지에는 이때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충렬자제공지묘忠烈者諸公之墓’란 묘비가 세워져 있다. (66페이지)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기운 시대에서 반제·반봉건의 깃발을 치켜든 《민성보》는 1920년대 연변에서 유일하게 발간된 진보적 한글 신문이자, 1920년대 말 연변의 역사,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분야 등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이기도 하다. (84페이지)
1919년 국내에서 3·1 운동이 일어나자, 12일 후인 1919년 3월 13일 용정에서도 앞서 말했듯 3·13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 운동에 많은 명동학교 학생들이 참여했다.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여 각지에 보내는가 하면, 시위에 참여하여 희생된 학생도 있었다. 희생자 중에는 당시 열여섯 살밖에 되지 않은 중학부 학생 김홍식도 있었다. (108페이지)
한국 사람에게는 주덕해란 이름이 낯설다. 하지만 연변, 그리고 조선족에 있어 주덕해란 이름은 지금의 연변과 조선족을 있게 해준 고마운 이름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삶은 오직 조선족을 위한 삶이었으며, 오직 타국에서 살아나갈 후손을 위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가 어떤 마음으로 연변을 자치주로 만들었으며, 자치주를 발전시키려 한 것인지를 지금의 조선족들은 많이 잊고 살아가는 것 같다. 마치 지금 한국인 대부분이 독립 운동가를 잊고 지내듯이 말이다. (144페이지)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과 더불어 연변에서는 동북인민해방군 의용군 3지대 선전대를 전신으로 연변문공단이 창립되었다. 이를 계기로 조선 민족 무용이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곧이어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성립되면서 연변 각 현과 시에는 전문 문예단체인 문공단이 창단되었다. 또한, 군중 문예를 지도하는 문화관이 설립되었다. (164페이지)
연변축구팀은 연변 지역의 축구팀이라는 단순한 지역 팀의 의미가 아닌,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연변축구팀은 조선족과 한국 선수들이 주를 이루는 소수민족 팀으로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화합을 통해 민족의 자부심이 되어 주고 있다. (176페이지)
윤동주와 함께 문익환, 송몽규가 다녔던 명동학교는 민족교육의 산실이자 반일운동의 책원지라 불리는데, 많은 독립투사들이 이 학교의 교사와 학생 출신이다. 또한, 많은 독립투사들이 용정에 머물렀으며, 용정은 그들이 상하이로 넘어갈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해주었다. 그러면서 자연적으로 용정은 연변의 중심지가 되었고, 연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184페이지)
북한과 가까운 만큼 도문에는 탈북자가 많은 편인데, 지금은 좀 덜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밤마다 탈북자들이 창문을 두드리며 먹을 것을 달라 했다고 한다. 연길에서 도문으로 가는 길에는 탈북자를 수용하는 수용소가 있으며, 수용소 옆에는 ‘3분이면 조선 도착’이라는 큰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197페이지)
왕청은 1900년대부터 조선인이 대규모로 이주해 살기 시작했으며, 1920년대에는 변방의 요새로서 항일 독립전쟁의 근거지가 되었다. 1911년, 독립 운동가 서일은 국외로 탈출한 의병들을 규합하여 왕청에서 중광단重光團을 결성했다. 또한, 북로군정서도 왕청에 근거지를 두고 사관연성소 등을 운영했다. (219페이지)
목차
프롤로그 ‘조선족 재발견’을 기획하며 · 5
1장 조선의 가지
잊어버린 우리의 가지 · 14
간도가 조선족자치구가 되기까지 · 23
사라지는 조선족 · 29
단일민족의 이중 잣대 · 36
우리의 역사 · 41
2장 함께 싸우다
독립 운동의 시작, 민족 학교 · 50
3·1 운동, 그리고 용정 · 61
독립 자금 15만 원 · 67
노투구 만인갱 · 72
해란강의 슬픔 · 78
연변 민중의 목소리를 담다, 민성보 · 84
3장 그들이 있었다
항일 무장투쟁의 전설, 홍범도 · 92
편안한 삶 대신 투쟁을 택하다, 김좌진 · 98
민족의 교육자, 이상설 · 103
간도 독립 운동가의 스승, 김약연 · 107
별을 노래하다, 윤동주 · 110
저항의 삶을 살다간 청년 문사, 송몽규 · 118
조국 통일을 꿈꾼 민주화 운동가, 문익환 · 124
조국 독립이라는 믿음으로, 정재면 · 128
진정한 언론인, 장덕준 · 133
연변의 선구자, 주덕해 · 139
아리랑의 한을 담아, 나운규 · 145
불운의 여류 작가, 강경애 · 151
4장 연변의 3대 자랑
민족의 학교, 연변대학 · 158
조선 민족 무용의 맥을 잇다, 연변가무단 · 164
백두산 호랑이의 기백, 연변축구팀 · 171
5장 연변의 지도
용의 우물, 용정 · 180
연변의 중심, 연길 · 188
두만강의 슬픔, 도문 · 196
이무기의 승천, 화룡 · 203
북중러 접경 지역, 혼춘 · 209
발해의 흔적, 돈화 · 214
항일운동의 본거지, 왕청 · 218
천혜의 관광 보고, 안도 · 224
에필로그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 · 229
참고 문헌 · 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