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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현대사 산책 5 김정은과 북핵 위기

시리즈 : 북한 현대사 산책 [5]

안문석 저 | 인물과사상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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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9064274 / 292쪽 / 435g / 152 x 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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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사실과 기록을 바탕으로 집필한 가장 객관적인 북한 현대사! 북한 현대사의 모든 것, 70여 년의 사건과 사실을 생생하게 읽는다! “1945년 해방부터 2016년 제5차 핵실험까지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군사 등을 한눈에 보다” 우리에게 북한은 무엇인가? 원수인가, 동포인가? 그런데 보수 정부 10년의 언행을 보면 북한을 원수로 보는 것 같다.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하면 대화하겠다는 북한의 요구를 묵살하고 대결 국면으로 가더니, 북한이 2016년 1월 제4차 핵실험을 하고 장거리로켓을 발사하자 개... 사실과 기록을 바탕으로 집필한 가장 객관적인 북한 현대사! 북한 현대사의 모든 것, 70여 년의 사건과 사실을 생생하게 읽는다! “1945년 해방부터 2016년 제5차 핵실험까지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군사 등을 한눈에 보다” 우리에게 북한은 무엇인가? 원수인가, 동포인가? 그런데 보수 정부 10년의 언행을 보면 북한을 원수로 보는 것 같다.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하면 대화하겠다는 북한의 요구를 묵살하고 대결 국면으로 가더니, 북한이 2016년 1월 제4차 핵실험을 하고 장거리로켓을 발사하자 개성공단마저 중단시켰다. 보수 정부는 대화하자고 말로는 했지만 대화를 위해 북한이 요구한 어느 것 하나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놓고는 대화를 제의했는데 북한이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북한이 각각의 정부를 세운 이후 제2공화국 11개월과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제외하고 60여 년 동안은 그런 식으로 북한을 대해왔다. 어떻게 하면 북한이 발가벗은 채 손들고 나오게 만들 것인지, 어떻게 하면 북한이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하도록 할 것인지 골몰해왔다. 가진 것 없이 자존심만 남은 북한은 “굶을지언정 무릎 꿇진 않겠다”는 태도를 견지해왔다. 그러니 남북의 역사는 대결의 역사가 주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그런 대결의 역사가 실제로 시작된 것은 정부 수립 훨씬 이전인 1945년이다. 해방의 해(年)에 벌써 대결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남북을 각각 점령한 미국과 소련이, 그 이후에는 남한과 북한이 서로 확연히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이념적으로 완전히 다른 당을 세워나가고, 찬탁과 반탁으로 나뉘면서 대결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1945년이 이후 한반도의 상황을 대부분 규정해버렸다.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안문석 교수가 원고지 5,500매 분량으로 북한 현대사를 전5권으로 집필했다. 국내 최초로 북한 현대사를 사건과 사실과 기록을 바탕으로 가장 객관적으로 집필한 것이다. 수많은 자료에서 사실(史實)을 찾아내서 기자의 눈과 학자의 눈으로 북한 현대사를 꿰뚫고 있다. 북한의 대표적인 역사서인 『조선통사』, 『조선전사』 등과 『김일성 선집』, 『김일성 저작 선집』, 『인민의 지도자』, 『김정일 위인상』 등 북한 자료의 진위를 정밀하게 파악하고 통찰력 있게 북한 현대사를 분석했다. 또한 남한의 학자들의 논문과 단행본, 조선인민군의 수기를 통해 균형 잡힌 시각과 안목으로 왜곡되고 잘못된 사실들을 바로잡기도 했다. 북한 현대사 70여 년을 탁월한 안목으로 꿰뚫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1권 : 해방과 김일성 체제 (1945~1949년) 북한의 1940년대는 김일성의 역사라 해도 좋을 만큼 그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그는 민주기지론을 제기하고, 북한을 사회주의화한 뒤 남한으로 확산시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는 정부 수립 이후 국토완정론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려고 전쟁을 일으켰다. 1945년을 깊이 보면 아쉬움이 많다. 소련이 태평양전쟁에 뒤늦게 참전해 북한에 들어오게 된 것이 답답하고, 미군 대령 2명이 한반도 위에 그은 선 하나로 분단이 되었다는 것도 원통하다. 패전국 독일이 분단된 것처럼 패전국 일본이 분할 점령되었어야 했는데, 한반도가 나뉘었다는 것도 분한 일이다. 하지만 1940년대 한국 현대사의 아픈 점은 남북한의 핵심 인물들이 통일의 기회를 마련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단을 도모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좌우 합작을 이루고 통일임시정부를 마련하는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다. 여운형과 김구다. 하지만 힘이 없었다. 먹을 것이 많은 데로 몰리는 것이 정치의 생리 아닌가. 이들 곁엔 먹을 것이 많지 않았다. 결국 둘 다 권총을 맞고 한국 현대사의 뒤안길로 처연히 사라져갔다. 하긴 이들보다 먼저 간 이가 있었다. 현준혁이다. 누구보다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던 그도 민족주의자 조만식과 협력하다가 총을 맞았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2권 : 전쟁과 사회주의 건설 (1950~1959년) 북한의 1950년대는 전쟁, 김일성 권력 공고화, 숙청, 종파투쟁, 독자성 추구의 역사였다. 하지만 민족의 단일성과 동질성이라는 측량하기 어려운 가치를 잃었고, 북한 사회의 다양성이라는 어느 것에 못지않은 가치도 상실했다. 1953년 휴전은 우여곡절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다. 이승만은 반대하고, 김일성과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 유엔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가 협정에 서명했다. 한반도 통일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제네바 정치 회담은 당시 세계를 지휘하던 인물들이 모두 모였지만 아무런 소득 없이 막을 내렸다. 그렇게 굳어진 정전 체제가 지금도 한반도를 규정하고 있다. 한편 김일성 세력의 중공업 우선 정책에 대해 연안파와 소련파 가운데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김일성 개인숭배에 대해서도 반감을 품은 세력들도 있었다. 북한의 1950년대 후반은 김일성 세력이 이들 반대파에 대한 제거 과정의 시기이기도 했다. 1961년 제4차 당대회에서 김일성 세력이 승리를 선언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3권 : 주체사상과 후계체제 (1960~1979년) 북한의 1960∼1970년대는 전제정치 체제와 세습 체제를 완성하는 시기였다. 1960년대에는 김일성 유일사상 체계와 김일성 유일지도 체계를 세웠고, 1970년대 중반에는 김일성이 주장하는 여러 혁명 이론과 대중지도 방법 등이 보태져 ‘김일성주의’가 되었다. 김일성 유일체제 형성 과정은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 과정과 동전의 양면이었다. 유일체제를 만들어가면서 김정일 후계체제를 구축해갔다. 그래서 김정일은 김일성 유일체제 형성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아버지를 세우는 것은 곧 자신을 세우는 것이었다. 갑산파를 비롯한 유일체제 반대 세력에 대한 숙청을 주도한 것도 김정일이었다. 김일성 개인숭배 작업을 지휘한 것도 김정일이었다. 1960년대 중후반에는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와 수교를 확대하면서 비동맹 외교에 적극성을 보였다. 하지만 깊이와 폭에서 한계가 많았다. 북한의 관심은 북한식의 사회주의 체제를 세우는 데에만 있었다. 그것이 북한의 현실이었다. 그 핵심에는 물론 김일성이 있었다. 김일성 주변에는 가산제 국가 체제하에서 권력과 부를 분여받은 항일빨치산 세력들이 있었다. 이들에게는 김일성 유일체제가 바람직했고, 김정일의 권력 승계도 나쁘지 않았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4권 : 김정일과 고난의 행군 (1980~1999년) 북한의 1980∼1990년대는 권력 이양기이면서 체제 위기의 시기였다. 1980년 김정일이 대중에게 공개되면서 후계자로 확정되어 군권과 국가기관을 장악했다. 김일성의 권력은 김정일로 서서히 옮아갔다. 김정일은 국가기관을 중심으로 권력을 이어받으면서 1983년에는 중국을 방문해 중국의 지도부와 대면 교류도 시작했다. 1990년에는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선출되고, 1991년에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올라 군권을 장악했다. 1990년대의 북한 경제는 훨씬 어려워졌다. 1990년대 중반에는 특히 식량난이 극심했다. 배급 체계는 붕괴되고 주민들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장마당으로, 산으로, 심지어는 중국으로 가야 했다. 굶어죽는 사람도 많았다. 북한 당국은 ‘고난의 행군’을 외치며 주민들의 희생과 악전고투를 요구했지만, 당국의 장악력은 떨어지고 사회 이완 현상은 점점 심해졌다. 서구와 중국의 지원으로 위기를 겨우 넘길 수 있었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5권 : 김정은과 북핵 위기 (2000~2016년) 북한의 2000∼2010년대는 변화의 시기였다. 실리사회주의를 추구하거나 남북 관계

저자 소개

1965년 전라북도 진안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KBS 기자로 입사해 사회부, 통일부, 국제부, 정치부 등을 거쳤고 정치부 외교안보데스크로 외교·안보·북한 문제를 총괄했다. KBS 재직 중 영국으로 유학해 요크대학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워릭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된 일을 하다가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고 공부하다가 재미가 붙어 박사학위까지 받게 된 것이다. 
한반도 문제와 국제정치를 깊이 파고 싶은 생각으로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2012년부터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국제정치를 가르치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국제질서가 주요 관심사이고, 그 연장선상에서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외교정책을 관찰하고 있다. 북한의 대외관계, 북한의 내부 권력관계, 국제정치이론, 한국의 외교정책, 미국의 외교정책 등을 주제로 연구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글로벌 정치의 이해》, 《오기섭 평전》, 《이제 만나러 갑니다》, 《김정은의 고민》, 《북한이 필요한 미국, 미국이 필요한 한국》, 《노무현 정부와 미국》 등이 있다. 「북미 불신 구조의 형성 원인과 극복 방안」(《한국동북아논총》, 2016년 9월), 「A Nuclear South Korea?」(《International Journal》, 2014년 3월), 「How Stable is the New Kim Jong-un Regime: a Revolution in North Korea」(《Problems of Post-Communism》, 2013년 1월) 등 북한과 국제정치 관련 논문을 국내외 저널에 계속 발표하고 있다.

책 속에서

남한에 있던 비전향 장기수에 대한 송환도 이루어졌다. 노령의 비전향 장기수 63명은 2000년 9월 2일 오전 8시 서울 평창동 북악파크텔에 모여 버스를 나눠 타고 판문점으로 향했다. 9시 40분 판문점 자유의집에 도착했다. 도중에 전몰군경유가족회의 시위로 도착이 20분 정도 늦어졌다. 판문점 연락관들은 ‘비전향 장기수 인도인수 확인서’를 교환하고 송환 절차에 들어가 15분 만에 마쳤다. 강동근을 시작으로 북한으로 한 명씩 넘어갔다. 조창손은 고열로 휠체어에 몸을 실은 채 링거를 꽂고 북한으로 갔다. 신인영은 노모를 남한에 남긴 채 몸을 북한으로 돌렸다. “북측에 가면 초청장과 신변안전보장 각서를 어머님께 보내 초청할 계획”이라며, “감옥에 있을 때나 나와 있을 때 도와준 남녘 동포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제1장 남북정상회담」 - P.31

미국은 북한에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인정하라고 압박했지만, 북한이 NPT를 탈퇴하고 핵개발의 수순을 밟는 것은 결코 달가운 것이 아니었다. NPT의 완전성을 해치는 것은 미국의 핵 정책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는 것이었다. 북한과 접촉을 해야 했다. 북한도 무조건 핵개발의 길로 가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미국과 양자 회담을 원했다. 미국과 직접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다자 회담을 원했다. 중국이 양측 사이에서 중재에 나섰다. 중국은 경제력이 향상되면서 동북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재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2003년 4월 북한, 중국, 미국의 3자회담이 열렸다. 이후 북한, 남한, 중국, 미국, 러시아, 일본의 6개국이 만나는 6자회담이 열리게 되었다. 「제2장 제2차 북핵 위기」 - P.64~65


미국은 반대했다. 핵 폐기가 먼저 이루어져야 하고, 현존하는 핵시설뿐만 아니라 핵 프로그램 자체를 없애야 하며, 핵의 평화적 이용권 인정에도 부정적이었다. 경수로 제공은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으로 돌아오고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관을 받아들일 때 할 수 있다고 했다. 남한과 일본은 대체로 미국과 같은 의견이었다. 북한도 미국도 쉽게 양보하지 않았다. 7월 26일에 시작된 회담은 8월 7일까지 계속되었다. 하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9월 13일에 회담이 다시 시작되었다. 막판까지 문제가 된 것은 경수로 제공이었다. 북한은 이를 합의문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반대했다. 경수로 제공 시점은 계속 문제가 되었다. 9월 19일에 합의 없이 우여곡절 끝에 공동 선언이 발표되었다. ‘9·19 공동성명’이다. 「제3장 합의와 금융 제재」 - P.89

목차

목차
머리말 · 5
제1장 남북정상회담 : 2000~2001년
17년 만의 중국 방문 17 · 남북정상회담 20 · 6·15 남북공동선언 23 · 남북장관급회담 28 · 비전향 장기수 63명 북송 31 · 무산된 북미정상회담 32 · 유럽과의 수교 봇물 36 · 김정남의 일본 밀입국 시도 38
국가정보원장 임동원이 본 2000년 · 42
제2장 제2차 북핵 위기 : 2002~2003년
개성공단 착공 47 · 7·1 경제관리개선조치 50 · 시장의 합법화와 실리사회주의 53 · 내각 총리, 온건파 박봉주 56 · 북일정상회담 58 · 미국 특사 방북과 제2차 북핵 위기 61 ·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 64
성악가가 본 2003년 · 68
제3장 합의와 금융 제재 : 2004~2005년
세 번째 중국 방문 73 · 두 번째 북일정상회담 76 · 탈북자 468명 입국 79 · 핵무기 보유 선언 81 · 종합시장 통제 83 · 조용필의 평양 공연 85 · 9·19 공동성명 88 · 미국의 금융 제재 92
미국 학자가 관찰한 2005년 · 95
제4장 핵실험과 남북정상회담 : 2006~2007년
네 번째 중국 방문 101 · 대풍국제투자그룹 설립 104 · 제1차 핵실험 106 · 2·13 합의 109 · 첫 남북 합작 드라마 〈사육신〉 111 · 10·3 합의 114 ·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 118
스칼라피노 교수가 본 2006년 · 121
제5장 김정은의 등장 : 2008~2009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125 · 김정일의 뇌졸중과 김정은 후계 내정 128 · 대남강경 노선 131 · 김정은 후계 확정 135 · 명실상부 최고 영도자 139 · 제2차 핵실험 142 · 원자바오 방북 144 · 남북정상회담 무산 147 · 실패한 화폐개혁 149
평양 주재 영국 대사가 본 2008년 · 151
제6장 김정일 사망 : 2010~2011년
종합시장 재개 157 ·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 159 · 김정일·김정은의 김일성 유적지 순례 162 · 김정은 후계 공식화 165 ·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 168 · 김정일 사망 171 · 김정은 승계 완료 174
통일운동가가 본 2010년 · 180
제7장 김정은 체제 공식 출범 : 2012~2013년
2·29 합의와 장거리 로켓 발사 185 · 제4차 당대표자회 187 · 우리식 새로운 경제관리체계 191 · 무상의무교육 12년 193 · 제3차 핵실험 194 · 개성공단 가동 중단 197 · 핵·경제 병진 노선 199 · 박봉주 총리 재기용 202 · 장성택 처형 204
재미 목사가 본 2012년 · 209
제8장 김정은 우상화 : 2014~2015년
21세기의 위대한 태양, 김정은 215 · 3각의 권력 엘리트 체제 형성 217 · 남북고위급회담 220 · 일본과 납치자 재조사 합의 222 · 미녀응원단 불참 224 · 실세 3인방 인천아시안게임 참석 227 · 목함지뢰 도발과 4인 고위급회담 230 · 차관급 당국회담 결렬 233 · 강력한 군부 통제 235
일본 의원이 본 2014년 · 240
제9장 김정은 시대 선포 : 2016년
‘자강력 제일주의’ 제창 245 · 제4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248 · 개성공단 폐쇄 252 · 해외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 254 · 36년 만의 당대회 257 · 사드 배치와 북한의 반발 260 · 태영호 공사 망명 264 · 제5차 핵실험 267
100세 할머니의 2016년 · 270
주 · 272
연표 · 277
찾아보기 ·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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