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고예상일 안내
주문하신 상품이 한국에서 현지 배송을 위한 출고단계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날짜입니다. 상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부적인 사정으로 인해 출고예상일에 다소 오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여러 상품(예약상품포함)을 함께 주문하신 경우 출고예상일이 가장 늦은 날짜에 맞춰 함께 배송됩니다.

ISBN : 9788959064250 / 332쪽 / 485g / 152 x 226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
DK 제2차 세계대전 편집위원회
-
김도형(별별역사)
-
니토 아쓰시
- 21,600
- 47,700
- 16,920
- 18,000
- [시리즈] 북한 현대사 산책 [5]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사실과 기록을 바탕으로 집필한 가장 객관적인 북한 현대사! 북한 현대사의 모든 것, 70여 년의 사건과 사실을 생생하게 읽는다! “1945년 해방부터 2016년 제5차 핵실험까지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군사 등을 한눈에 보다” 우리에게 북한은 무엇인가? 원수인가, 동포인가? 그런데 보수 정부 10년의 언행을 보면 북한을 원수로 보는 것 같다.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하면 대화하겠다는 북한의 요구를 묵살하고 대결 국면으로 가더니, 북한이 2016년 1월 제4차 핵실험을 하고 장거리로켓을 발사하자 개... 사실과 기록을 바탕으로 집필한 가장 객관적인 북한 현대사! 북한 현대사의 모든 것, 70여 년의 사건과 사실을 생생하게 읽는다! “1945년 해방부터 2016년 제5차 핵실험까지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군사 등을 한눈에 보다” 우리에게 북한은 무엇인가? 원수인가, 동포인가? 그런데 보수 정부 10년의 언행을 보면 북한을 원수로 보는 것 같다.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하면 대화하겠다는 북한의 요구를 묵살하고 대결 국면으로 가더니, 북한이 2016년 1월 제4차 핵실험을 하고 장거리로켓을 발사하자 개성공단마저 중단시켰다. 보수 정부는 대화하자고 말로는 했지만 대화를 위해 북한이 요구한 어느 것 하나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놓고는 대화를 제의했는데 북한이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북한이 각각의 정부를 세운 이후 제2공화국 11개월과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제외하고 60여 년 동안은 그런 식으로 북한을 대해왔다. 어떻게 하면 북한이 발가벗은 채 손들고 나오게 만들 것인지, 어떻게 하면 북한이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하도록 할 것인지 골몰해왔다. 가진 것 없이 자존심만 남은 북한은 “굶을지언정 무릎 꿇진 않겠다”는 태도를 견지해왔다. 그러니 남북의 역사는 대결의 역사가 주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그런 대결의 역사가 실제로 시작된 것은 정부 수립 훨씬 이전인 1945년이다. 해방의 해(年)에 벌써 대결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남북을 각각 점령한 미국과 소련이, 그 이후에는 남한과 북한이 서로 확연히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이념적으로 완전히 다른 당을 세워나가고, 찬탁과 반탁으로 나뉘면서 대결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1945년이 이후 한반도의 상황을 대부분 규정해버렸다.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안문석 교수가 원고지 5,500매 분량으로 북한 현대사를 전5권으로 집필했다. 국내 최초로 북한 현대사를 사건과 사실과 기록을 바탕으로 가장 객관적으로 집필한 것이다. 수많은 자료에서 사실(史實)을 찾아내서 기자의 눈과 학자의 눈으로 북한 현대사를 꿰뚫고 있다. 북한의 대표적인 역사서인 『조선통사』, 『조선전사』 등과 『김일성 선집』, 『김일성 저작 선집』, 『인민의 지도자』, 『김정일 위인상』 등 북한 자료의 진위를 정밀하게 파악하고 통찰력 있게 북한 현대사를 분석했다. 또한 남한의 학자들의 논문과 단행본, 조선인민군의 수기를 통해 균형 잡힌 시각과 안목으로 왜곡되고 잘못된 사실들을 바로잡기도 했다. 북한 현대사 70여 년을 탁월한 안목으로 꿰뚫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1권 : 해방과 김일성 체제 (1945~1949년) 북한의 1940년대는 김일성의 역사라 해도 좋을 만큼 그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그는 민주기지론을 제기하고, 북한을 사회주의화한 뒤 남한으로 확산시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는 정부 수립 이후 국토완정론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려고 전쟁을 일으켰다. 1945년을 깊이 보면 아쉬움이 많다. 소련이 태평양전쟁에 뒤늦게 참전해 북한에 들어오게 된 것이 답답하고, 미군 대령 2명이 한반도 위에 그은 선 하나로 분단이 되었다는 것도 원통하다. 패전국 독일이 분단된 것처럼 패전국 일본이 분할 점령되었어야 했는데, 한반도가 나뉘었다는 것도 분한 일이다. 하지만 1940년대 한국 현대사의 아픈 점은 남북한의 핵심 인물들이 통일의 기회를 마련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단을 도모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좌우 합작을 이루고 통일임시정부를 마련하는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다. 여운형과 김구다. 하지만 힘이 없었다. 먹을 것이 많은 데로 몰리는 것이 정치의 생리 아닌가. 이들 곁엔 먹을 것이 많지 않았다. 결국 둘 다 권총을 맞고 한국 현대사의 뒤안길로 처연히 사라져갔다. 하긴 이들보다 먼저 간 이가 있었다. 현준혁이다. 누구보다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던 그도 민족주의자 조만식과 협력하다가 총을 맞았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2권 : 전쟁과 사회주의 건설 (1950~1959년) 북한의 1950년대는 전쟁, 김일성 권력 공고화, 숙청, 종파투쟁, 독자성 추구의 역사였다. 하지만 민족의 단일성과 동질성이라는 측량하기 어려운 가치를 잃었고, 북한 사회의 다양성이라는 어느 것에 못지않은 가치도 상실했다. 1953년 휴전은 우여곡절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다. 이승만은 반대하고, 김일성과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 유엔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가 협정에 서명했다. 한반도 통일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제네바 정치 회담은 당시 세계를 지휘하던 인물들이 모두 모였지만 아무런 소득 없이 막을 내렸다. 그렇게 굳어진 정전 체제가 지금도 한반도를 규정하고 있다. 한편 김일성 세력의 중공업 우선 정책에 대해 연안파와 소련파 가운데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김일성 개인숭배에 대해서도 반감을 품은 세력들도 있었다. 북한의 1950년대 후반은 김일성 세력이 이들 반대파에 대한 제거 과정의 시기이기도 했다. 1961년 제4차 당대회에서 김일성 세력이 승리를 선언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3권 : 주체사상과 후계체제 (1960~1979년) 북한의 1960∼1970년대는 전제정치 체제와 세습 체제를 완성하는 시기였다. 1960년대에는 김일성 유일사상 체계와 김일성 유일지도 체계를 세웠고, 1970년대 중반에는 김일성이 주장하는 여러 혁명 이론과 대중지도 방법 등이 보태져 ‘김일성주의’가 되었다. 김일성 유일체제 형성 과정은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 과정과 동전의 양면이었다. 유일체제를 만들어가면서 김정일 후계체제를 구축해갔다. 그래서 김정일은 김일성 유일체제 형성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아버지를 세우는 것은 곧 자신을 세우는 것이었다. 갑산파를 비롯한 유일체제 반대 세력에 대한 숙청을 주도한 것도 김정일이었다. 김일성 개인숭배 작업을 지휘한 것도 김정일이었다. 1960년대 중후반에는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와 수교를 확대하면서 비동맹 외교에 적극성을 보였다. 하지만 깊이와 폭에서 한계가 많았다. 북한의 관심은 북한식의 사회주의 체제를 세우는 데에만 있었다. 그것이 북한의 현실이었다. 그 핵심에는 물론 김일성이 있었다. 김일성 주변에는 가산제 국가 체제하에서 권력과 부를 분여받은 항일빨치산 세력들이 있었다. 이들에게는 김일성 유일체제가 바람직했고, 김정일의 권력 승계도 나쁘지 않았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4권 : 김정일과 고난의 행군 (1980~1999년) 북한의 1980∼1990년대는 권력 이양기이면서 체제 위기의 시기였다. 1980년 김정일이 대중에게 공개되면서 후계자로 확정되어 군권과 국가기관을 장악했다. 김일성의 권력은 김정일로 서서히 옮아갔다. 김정일은 국가기관을 중심으로 권력을 이어받으면서 1983년에는 중국을 방문해 중국의 지도부와 대면 교류도 시작했다. 1990년에는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선출되고, 1991년에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올라 군권을 장악했다. 1990년대의 북한 경제는 훨씬 어려워졌다. 1990년대 중반에는 특히 식량난이 극심했다. 배급 체계는 붕괴되고 주민들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장마당으로, 산으로, 심지어는 중국으로 가야 했다. 굶어죽는 사람도 많았다. 북한 당국은 ‘고난의 행군’을 외치며 주민들의 희생과 악전고투를 요구했지만, 당국의 장악력은 떨어지고 사회 이완 현상은 점점 심해졌다. 서구와 중국의 지원으로 위기를 겨우 넘길 수 있었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5권 : 김정은과 북핵 위기 (2000~2016년) 북한의 2000∼2010년대는 변화의 시기였다. 실리사회주의를 추구하거나 남북 관계
1959년 1월 대규모 예비군 노농적위대를 창설한 북한은 1960년에는 정규군에 대한 대대적인 혁신운동을 전개했다. 군 전반에 대한 혁신 캠페인을 통해 정규군을 질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1960년 8월 25일 김일성은 조선인민군 제109부대를 찾았다. 여기서 그는 ‘붉은기중대운동’을 제의했다. 당시 모범중대운동이란 것을 전개하고 있었는데, 다른 중대에 비해 훈련과 운영이 앞서는 중대에 대해 칭찬하고 이를 따라 배우도록 한 것이다. 이를 한층 강화해 정신개혁에 중점을 두고 전개한 것이 ‘붉은기중대운동’이다. 김일성이 9월 당 인민군위원회 확대전원회의에서 ‘붉은기중대운동’의 전개를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운동은 조선인민군 전체에서 본격 시작되었다. 「제1장 김일성 세력의 승리 선언」 - P.28~29
김일성주의는 본래의 주체사상에 김일성이 북한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중시한 여러 혁명 이론, 영도자로서 수령에 대한 강조, 수령의 영도를 위한 구체적인 시스템, 영도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까지 더해지면서 김일성 유일체제를 탄탄하게 받쳐주는 이론적 기반으로 작용했다. 특히 사회역사 원리와 혁명적 수령관이 결합되어 인민대중은 ‘옳은 지도’를 받을 때 역사 발전의 진정한 주체로 역할을 다할 수 있고, ‘옳은 지도’는 수령만이 할 수 있다는 내용이 핵심 주장이 되면서 주체사상은 김일성 유일체제를 뒷받침하는 수단으로서 그 성격을 분명히 하게 되었다. 「제2장 주체사상의 출현」 - P.79~80
북한의 농업현물세는 곡물을 세금으로 받아 노동자와 사무원들의 식량을 지원하고, 공업 발전에 필요한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소련에서도 토지개혁 이후 농업현물세 제도를 실시했지만, 농민들의 반발이 심해 집단농장화 과정에서 폐지되었다. 그럼에도 북한이 이 제도를 실시한 것은 국가에 현물자산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무상몰수 무상분배’에 대한 지주들의 저항과 불만을 줄이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농민들이 무상으로 토지를 받는다지만, 25퍼센트라는 높은 농업현물세를 내는 것은 유상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지주들의 불만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도입된 농업현물세가 점차 줄다가 1966년에 완전히 없어진 것은 무엇보다 북한의 경제 사정이 나아졌기 때문이다. 1960년대 농업 생산이 증대되어 농업현물세를 받지 않아도 정부가 수매 등의 방법으로 노동자와 사무원의 식량을 충당할 수 있었다. 「제4장 유일사상 체계 확립」 - P.109~110
목차
머리말 · 4
제1장 김일성 세력의 승리 선언 : 1960~1961년
농촌 관리의 혁신, ‘청산리방법’ 17 · 모든 리에 진료소를 설치하다 19 · 연방제 통일 방안 제의 21 · 통일 정책의 변천 24 · 붉은기중대운동 28 · 제4차 당대회는 ‘승리자 대회’ 30 · 유격대 국가로 34 · 중소 분쟁과 중국 지지 37 · 비날론 생산 40 · ‘자력갱생’의 등장 43 · 집단적 공장관리시스템, ‘대안의 사업 체계’ 45
김정일 처형 성혜랑의 1960년 · 49
제2장 주체사상의 출현 : 1962~1963년
만주파가 내각을 장악하다 55 · 백두산 국경 획정 57 · 경제·국방 병진 정책 60 · 4대 군사노선 제시 62 · 항일빨치산 소설 인기 65 · 농지의 국유화 지향 68 · 주체사상의 등장 71 · 주체사상이란 무엇인가? 74
산골 농장원의 1962년 · 81
제3장 김정일의 등장 : 1964~1965년
3대 혁명역량 강화론 85 · 김정일의 당 사업 시작 87 · 김정일은 어디서 출생했는가? 91 · 사회단체 전면 정비 94 · 주체사상 정식화 97 · 협동농장 분조관리제 실패 99 · 김일성 유일체제에 대한 내부의 반발 101
민주선전실장의 1965년 · 105
제4장 유일사상 체계 확립 : 1966~1967년
농업현물세 폐지 109 · 문화대혁명과 북중 관계 악화 112 · 베트남전쟁 파병 115 · 일본에 한반도의 분국이 있었다 118 · 월드컵 축구 8강 신화 120 · ‘총비서-비서-비서국’ 체계 124 · 인민경제발전 7개년 계획 연기 126 · 갑산파 숙청과 김정일의 등장 128 · 유일사상 체계 확립 131 · 주체사상은 최고 지도지침 134
김신조가 겪은 1966~1967년 · 138
제5장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 김정일 : 1968~1969년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시요” 143 · 통일혁명당 건설 실패 147 · 미국의 항복을 받다 149 · 주체사상이 ‘김일성 혁명사상’으로 152 · 군 수뇌부 숙청 156 · 강선속도운동 158 · 북중 관계 회복 160 · 최고의 경의를 표하는 호칭 164
방직공장 근로자의 1969년 · 167
제6장 유일사상 체계 가속화 : 1970~1971년
김일성의 마지막 집단 숙청 171 · 전 사회의 유일사상화 173 · 사회주의 공업국가 실현 176 · 100일 전투 178 · 3대 기술혁명 추진 181 · 혁명가극 와 김정일 183 · 8개항 통일 방안과 남북적십자회담 187 · 헨리 키신저의 다극안정론 191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북측 단장의 1971년 · 196
제7장 수령제 완성 : 1972~1973년
7·4 남북공동성명과 고려연방제 통일 방안 201 · 11년 의무교육 시행 207 · ‘사회주의 헌법’ 마련 210 · 수령제의 법적·제도적 완성 212 · ‘수령의 유일적 영도 체계’와 북한식 사회주의 214 · 당증 교환 사업 218 · 3대 혁명소조운동 220 · 국가정치보위부 설치 222 · 김정일의 당 조직 장악 224 · 주체사상이 ‘김일성주의’로 227
유치원장의 1973년 · 230
제8장 후계체제 정비 : 1974~1975년
김정일 후계자 확정 235 · 항일빨치산 세력과 후계 결정 238 · 혁명전통계승론과 후계자론 241 · 김영주의 수난 245 · 군에 대한 통제력 확보 249 · 김일성주의화와 유일사상 체계 10대 원칙 252 · 세금 제도 전면 폐지 256 · 박정희 암살 시도 258 · 3대 혁명 붉은기쟁취운동 260
김일성종합대학 교직원 김덕홍이 본 1974년 · 264
제9장 김일성 군림, 김정일 통치 : 1976~1977년
김일성은 국가, 김정일은 당 269 · 김정일의 강력한 통치력 확보 271 · 김동규의 김정일 후계체제 비판 274 · 8·18 판문점 사건 277 · 1977년은 ‘완충의 해’ 281 · 사회주의 교육헌장 공표 285
평안남도 강동군 협동농장경영위원장의 1977년 · 289
제10장 이중의 난관 : 1978~1979년
제2차 7개년 계획 293 · 최은희·신상옥 납북 295 · 창군기념일 변경 298 · 제3차 화폐개혁 300 · ‘숨은 영웅 따라 배우기’ 운동 303 · 식량 증산을 위한 고육책 306 · 대화 없는 남북 관계 308
최은희가 경험한 1978년 · 311
주 · 314
연표 · 319
찾아보기 · 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