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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46062450 / 432쪽 160 x 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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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책이 삶이 된 사람
1964년 편집에 입문해 고전 번역으로
단절된 문화의 가교가 되기까지
50여 년 전 출판사에 첫발을 내딛은 뒤로 세월의 주름이 내린 그의 손에서 원고와 펜은 떠나지 않았다. 교학도서, 신구문화사, 을유문화사, 창작과비평사, 현대실학사. 그가 지나온 길에 놓인 1000여 권의 책에는 해지도록 사전을 들춘 편집의 역사가 켜켜이 녹아 있다.
문선공, 식자공, 인화지, 필름 ……. 급작스러운 변화 속에 많은 것이 신기루처럼 사라져간 출판계에서 편집인이라는 이름으로 오롯이 한길만을 걷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책이 삶이 된 사람 1964년 편집에 입문해 고전 번역으로 단절된 문화의 가교가 되기까지 출판계의 산증인 정해렴의 반세기 기록 “창비 사장님이셨는데 왜 창비가 아닌 한울에서 책을 내나요?” 이 책을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들을 때마다 머뭇거리기를 반복했으나, 출간을 앞두고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한국 출판 역사의 주춧돌이자 섬돌인 저자의 편집 인생은 한 출판사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답 말이다. 전산 조판 이후의 세대들은 정보에의 접근이 노력의 결실이던 그 시절을 모른다. 클릭... 책이 삶이 된 사람 1964년 편집에 입문해 고전 번역으로 단절된 문화의 가교가 되기까지 출판계의 산증인 정해렴의 반세기 기록 “창비 사장님이셨는데 왜 창비가 아닌 한울에서 책을 내나요?” 이 책을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들을 때마다 머뭇거리기를 반복했으나, 출간을 앞두고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한국 출판 역사의 주춧돌이자 섬돌인 저자의 편집 인생은 한 출판사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답 말이다. 전산 조판 이후의 세대들은 정보에의 접근이 노력의 결실이던 그 시절을 모른다. 클릭 몇 번에 자판만 두드리면 몇 분 아니 몇 초 만에 접근할 수 있는 정보를 찾기 위해 방법을 고민하고 발품을 팔아야 했던 그 시절이 상상이나 가겠는가? 어쩌면 한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수도 없이 사전을 들추며 찾고 또 찾는 지루한 반복을 지치지 않고 해야 했던 그 시절이 과연 있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런 시선으로 보면 이 책은 고리타분하고 너무 오래된, 그저 과거를 추억이라는 틀에 담아 하나씩 꺼냈다 다시 담아버리는 옛날이야기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시대의 끝자락을 스쳐 지났던 이들이라면 이 책이 역사라는 것을, 그래서 한국 출판 역사의 당당히 한 위치에 자리매김되어야 한다는 데 공감할 것이다. ◑ 풋내기 편집자에서 기본에 충실한 편집자로 거듭나다 누구나 그렇듯 그에게도 풋내기인 시절이 있었다. 잔심부름을 하고 현장 견학을 하며 하나하나 익혀야 했던 그 시절, 교정부호 하나 제대로 모르던 그는 『편집과 교정』이라는 책을 읽으며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다. 대선배의 시작에 잘 만들어진 책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편집자로서 새삼스러운 마음이다. 그런데 그의 반세기 외길을 만든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한결같은 그의 노력이 있었다. 초등학교 국어과 교사용 지도서를 만들면서 문교부 편수관실로 담당 편수관에게 원고를 받으러 가거나 교정지를 찾으러 가거나 하면서 국정교과서의 표기 원칙과 관례를 대강 배우게 되었는데, 나는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보조동사를 복합어로 삼아 동사에 붙여 쓰는 사례를 표로 만들어 노트에 정리하면서 문교부 교과서 표기법을 익히고, 이때 배워 익힌 것을 중·고등학교 검인정 교과서 출원 때 잘 써먹게 되었다._39쪽 내 딴에는 거의 2년 가까이 교정을 본 경험으로 그깟 소설 교정쯤이야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교정에 매달렸는데 ‘어마, 뜨거워라’였다. 여태까지 내가 교정한 것은 주로 교재였는데, 교재나 기타 참고서는 기껏 4000 내지 5000단어 안에서 표준어로 서술되어 큰 어려움 없이 사전을 조금만 찾아보아도 되었으나, 소설 문장은 단어가 수만으로 방대하게 확대되고 방언이나 속어가 큰 제약 없이 사용되어 내 어휘력으로 소설 교정은 참으로 감당키 힘겨웠다. 그렇다고 힘겹다고 할 수도 없어 출근해 의자에 앉으면 사전을 수없이 뒤적이고 끙끙거리며 교정을 보다가 점심시간이나 되어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었다._46쪽 시조집이나 논문이 실린 학회지나 기관지가 있는 것은 그 수록된 원전과 대조하면서 무난히 교정을 볼 수 있었으나, 일기 부분은 베껴온 것이라 인명이나 서명 등 잘못 쓴 고유명사는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잘못 고칠 수밖에 없었는데, 나중에 책이 나오고 나서 오자가 많다는 평가를 받고 매우 부끄러웠다. 나는 이때의 경험 때문에 원고나 원문과 반드시 잘 대조하고 나야 안심하는 결벽증이 생겼다._49쪽 나는 신구문화사에서 만 4년, 교학도서에서 1년 반, 그리고 몇 달의 다른 학회지 교정·제작 경험을 한 6년 차 편집·교정자가 되어 있었으나 아직도 새로운 교정지를 처음 대할 때마다 두려움이 앞섰다. 그러나 아무리 낯설고 어려운 교정물이라도 일단 잡기만 하면 부족한 실력이지만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 차차 몸에 배어 정신을 흩뜨리지 않을 만큼 되었다._60쪽 1983년 여름 이후부터는 창비의 경영 실무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편집고문으로 편집·교정 실무만 맡아 처리할 수 있어, 나는 이제 명실공히 원숙한 편집자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제 나는 편집·교정을 회사 경영과 관련시켜 할 수 있는 시각도 비로소 확보한 것이다._217쪽 ◑ 대표로서 문화 탄압의 암울한 시기를 지나다 이 책의 저자는 그의 말대로라면 경력이 많다는 이유로 “등 떠밀려 할 수 없이” 창비의 대표직을 맡았다. 신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 그 시절이었다. 그 엄혹한 시기에 감시의 눈길이 항상 따라 붙는 출판사의 대표였으니, 문화 탄압의 현장에서 혹한의 바람을 견뎌내야 했던 것이다. 이 책의 17면에 기술된 “해방 직전에 3대 독립군사단체가 있었으니 그 하나가 광복군(金九)이었다. 다른 둘은 연안(延安)의 조선혁명군(金武丁)과 간도 장백산의 조선인민혁명군(金日成)이었다”가 문제가 되니, 이 구절을 고치거나 괄호 안에 있는 ‘金日成’에 대해 현재 북한의 ‘김 주석’이 아니라는 주석을 달아 발행하라는 것이었다. …… 나는 이 책을 더 찍지 않겠다고 하여 이 자리를 수습했다._181쪽 이렇게 사무실을 나서 지프차를 타고 가다가 눈을 가리고 남산에 올라간 것이다. 가서는 새벽까지 이런저런 조사를 받고 진술서를 쓰라고 한다. 진술서에 쓸 말이 없어 어떻게 쓰느냐고 물었더니 참으로 딱하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필화 사건으로 들어온 것도 아니고, 또 무슨 사상범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국 사건도 아니고 범죄 사실도 없으니 쓸 말이 없는데 무엇을 쓰라고 하는지 몰랐던 것이다. 그들은 몹시 답답해하다가 편집부장 이시영 씨를 조사해 받은 진술서를 가지고 그것을 보고 말을 맞추며 쓰게 하는 것이었다. 이시영 씨의 글씨는 내가 익히 아는지라 나는 대뜸 알아본 것이다. 그러고도 답답한 듯이 쓰는 요령을 이리저리 불러주는 것이었다. 그분들도 얼른 조사를 끝내고 자거나 쉬어야 할 텐데 내가 꾸물거리니 얼마나 답답하고 맥이 빠졌으랴. 그분들도 나를 추궁해서 공명을 세울 만한 무슨 단서를 얻어낼 수 없다는 것을 진작 알아챘을 테니 이미 김이 샜을 것이다._199쪽 또 내가 나와서 들으니, 이시영 씨는 풀려나와 제책소로 끌려가서 제본하던 책을 재단기로 잘라 폐기하고 지형도 찾아다 재단기에 넣어 작두질하게 했다는 것이다. 기원전에 있었던 진시황(秦始皇)의 분서갱유(焚書坑儒) 같은 시집 절단의 야만적인 문화 탄압의 한 현장을 한 시인이 목격한 것이다. 우리는 ‘문화공보부’를 ‘문화공포부’라고 부르기도 했다. 20세기 말에 그것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한 시인이 그 시집에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라고 썼다고 그 시집과 지형을 난도질하다니, 문화를 발전시키고 북돋워야 할 문화 부서로서는 어떻든 해서는 안 될 역사에 크게 기록될 만한 야만스러운 일을 한 것이다._201쪽 시인 김지하가 오랜 영어 생활을 마치고 나와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열정을 쏟아 새롭게 시도하는 작품이고 나도 온갖 정성을 기울여 편집·교정을 하여 간행했는데, 공을 들인 보람도 없이 또 판매 금지를 당하고 만다. 이때는 문공부 간행물 심의실도 강화되어 매우 엄중히 심의해 가차 없이 판매 금지 처분을 할 때였다. 판매 금지 처분을 내릴 때도 문서로 통고해주는 것이 아니라 발행인을 불러다 팔지 말라고 통고했다. 공문을 보내면 나중에 이를 근거로 삼아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고 골치 아픈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말로 처리하는 듯했다. …… 이로써 세계적인 작가의 붓이 또 꺾이고, 우리 창비도 한 번 더 곤란을 겪는다. 나도 때때로 문공부에 불려가 추궁을
목차
제1부 내 인생의 전반기
제2부 편집의 길로 들어서다: 교학도서, 신구문화사, 을유문화사
제3부 둥지를 옮겨 창비에 몸담다: 창작과비평사 1
제4부 창비와 굴곡을 함께하다: 창작과비평사 2
제5부 편집인으로 홀로 서다: 현대실학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