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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비유

최승돈 저 | 생명나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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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5930609 / 584쪽 159 x 228 (㎜)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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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하나님 나라의 도리를 올바로 알고 그 토대 위에서 교회아로서 하나님 나라의 존재의 거룩함을 드러내며 아울러 당대에 부여된 역사적 사역의 열매를 맺길 원한다면 일독을 권합니다.” 저자 서문 필자가 선약교회에서 예수님의 비유에 대한 강설을 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김홍전 목사님께서 쓰신 ‘주님께서 쓰신 수사법 몇몇’(1990.1.9. 도서출판 성약)을 읽고 나서였다. 그 책 중에서 필자의 마음에 가장 의미 있게 다가온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 가운데 또한 가장 중요한 일의 하나... “하나님 나라의 도리를 올바로 알고 그 토대 위에서 교회아로서 하나님 나라의 존재의 거룩함을 드러내며 아울러 당대에 부여된 역사적 사역의 열매를 맺길 원한다면 일독을 권합니다.” 저자 서문 필자가 선약교회에서 예수님의 비유에 대한 강설을 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김홍전 목사님께서 쓰신 ‘주님께서 쓰신 수사법 몇몇’(1990.1.9. 도서출판 성약)을 읽고 나서였다. 그 책 중에서 필자의 마음에 가장 의미 있게 다가온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 가운데 또한 가장 중요한 일의 하나가 가르치신 일입니다. 그리고 이 가르치신 여러 말씀을 볼 때 거기에는 주님이 쓰신 독특한 표현법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표현법을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도 꼭 그렇게 쓰지는 않더라도 그들도 역시 그러한 양식에 의한 표현을 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쓰신 바 그 수사양식(修辭樣式), 곧 주께서 수사학상 어떤 형식으로 말씀하셨는가를 우리가 찾아보는 것이 한 가지 유익이 될 줄로 압니다.…”(1강 19쪽) 목회자로서 예수님께서 쓰신 독특한 표현법을 성신님의 깨우침으로 바로 알고 전하여야 하나님 나라의 도리를 올바로 나타내고 성도들도 그 토대 위에서 교회아로서 하나님 나라의 존재의 거룩함을 드러내며 아울러 당대에 부여된 역사적 사역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래서 목회자부터 성신님을 의지하여 예수님의 비유를 하나하나 연구하고 온 몸으로 배워가며 교회 앞에 순차적으로 강설하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필자가 강설할 그 당시에는 예수님의 비유에 대한 참고도서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하여 앞선 몇몇 사역자들의 예수님의 비유 해석들을 부분적으로 참조하였고 난해한 내용들은 좋은 주석서들로 검증하여 객관성을 갖도록 하였다. 무엇보다도 개혁주의적인 성경해석법을 근간으로 하여 강설하되 구체적인 적용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주의하였다. 예수님의 비유 강해의 순서는 공관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비유 중에서 장르상 비유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대략 예수님의 공생애 순서에 맞춰 강해하였다. 그리고 주님께서 비유를 통하여 목표하신 하나님의 형상 회복과 고난의 섬김으로 이루어지는 그 나라의 전진과 완성을 위하여 이 강설을 하였다. 필자의 예수님 비유 강설은 선약교회에서 2003년 10월 19일 주일부터 시작하여 2004년 10월 31일 주일까지 총 39강을 전하였다. 처음 시작할 때는 예수님의 비유의 목록에 포함할 수 있는 49개 정도를 다 강설하려고 마음을 먹었으나 필자의 사정상 38강으로 마쳤다. 마지막 39강은 ‘주님께서 쓰신 수사법 몇몇’에 비춰 전체 비유에 대해 총괄적으로 점검하며 개관하였다(2014년 7월 6일부터 2015년 1월 25일에 복습). 주님께서 또 한 번 기회를 주신다면 못 하고 남겨둔 나머지 몇몇의 비유들도 다 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하튼 필자가 섬기는 이천 선약교회의 대다수의 성도들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이 비유 강설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개혁교회로서 예수님의 품성을 조금이라도 더 드러내려고 하였고 아울러 어떠한 처지에서라도 하나님 나라 본상의 사회상을 누리기 위하여 그동안 성도들 간의 관계성 속에서 미진한 것들을 하나씩 고쳐가려고 부단히 애썼다. 늦었지만 예수님의 비유 강설을 할 수 있도록 필자에게 사상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영향을 주신 선대의 귀한 목사님들께 감사드린다. 그분들은 주님의 교회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따라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필자의 눈앞에 실증하여 보여주셨다. 또한 필자에게 오랫동안 격려와 위로와 지지를 아끼지 아니한 독립개혁장로교회와 독립개신교회 소속 존경하는 목사님들께도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 책이 나오기까지 직접적으로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리고 싶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기도와 성원을 아끼지 아니한 선약교회 성도님들과 편집과 교정과 기도 녹취에 애쓰신 여러분들께 감사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믿음의 식구들에게 이렇게 지면을 빌어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영광을 받으실 주님께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큰 은혜를 주시기를 기도한다. 독자들이 이 강설들을 기초하여 예수님의 비유를 더 풍성하게 깨닫기를 바라고 성신님의 능력으로 교회아로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위해 더욱 헌신하게 되기를 기도드린다. 2016. 9.12. 著者 識

저자 소개

서울 왕십리출생이다. 사춘기 시절 큰 사고를 당하여 좌절과 회의 속에 젊은 시기를 보냈다. 그런 중에 가까운 친구의 전도를 받아 예수님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주님의 복음으로 죄인 중의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저자는 고린도전서 9:16 말씀으로 복음전도자의 소명을 인식했다.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저자는 대한신학교(현 안양대학교)에 입학하여 개혁신학에 대한 이론을 배웠다. 그러나 개혁교회의 실질을 누릴 안목이 없고 그 터전도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갈 길을 찾지 못해 한때 방황하기도 하였다. 졸업(1988년) 후에 주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회개하게 하시고 작은 발걸음이라도 믿음으로 다시금 개혁교회를 열망하며 개혁신앙의 선대(先代)의 발자취를 따르게 되었다. 그러면서 몇 군데 신학교를 다니기도 하였지만 오로지 소수의 무리가 함께 모여 주께서 원하시는 참된 교회상을 누리려고 오랫동안 말씀과 성신님의 인도를 받고자 주력하였다. 
그러던 중 저자는 김홍전 목사님과 최낙재 목사님의 가르침과 사상을 따르는 목사님들로 구성된 독립개혁장로회 사경회(강사 박경수 목사님)에 참석하여 자기부정의 말씀으로 은혜를 누렸다(1997년). 그 후 독립개혁장로회 목사님들과 가깝게 교류하게 되었고 절차를 따라 그 교단에 가입하였으며 목사안수도 받았다. 그 와중에 노회 목사님들과 함께 몇 달 동안 독립개신교회 최낙재 목사님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았고 또 격려도 받았다. 
저자가 섬기는 선약교회는 그간에 주께서 차서 있게 내리시는 명료한 말씀과 함께 성신의 능력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상과 사회상을 누려왔다. 여전히 개별적으로는 미흡하고 연약한 모습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사랑으로 연합하여 주님께서 목표하신 데에로 힘껏 오늘도 전진하고 있다. 

머리말

필자가 선약교회에서 예수님의 비유에 대한 강설을 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김홍전 목사님께서 쓰신 ‘주님께서 쓰신 수사법 몇몇’(1990.1.9. 도서출판 성약)을 읽고 나서였다. 그 책 중에서 필자의 마음에 가장 의미 있게 다가온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 가운데 또한 가장 중요한 일의 하나가 가르치신 일입니다. 그리고 이 가르치신 여러 말씀을 볼 때 거기에는 주님이 쓰신 독특한 표현법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표현법을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도 꼭 그렇게 쓰지는 않더라도 그들도 역시 그러한 양식에 의한 표현을 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쓰신 바 그 수사양식(修辭樣式), 곧 주께서 수사학상 어떤 형식으로 말씀하셨는가를 우리가 찾아보는 것이 한 가지 유익이 될 줄로 압니다.…”(1강 19쪽)

목회자로서 예수님께서 쓰신 독특한 표현법을 성신님의 깨우침으로 바로 알고 전하여야 하나님 나라의 도리를 올바로 나타내고 성도들도 그 토대 위에서 교회아로서 하나님 나라의 존재의 거룩함을 드러내며 아울러 당대에 부여된 역사적 사역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래서 목회자부터 성신님을 의지하여 예수님의 비유를 하나하나 연구하고 온 몸으로 배워가며 교회 앞에 순차적으로 강설하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필자가 강설할 그 당시에는 예수님의 비유에 대한 참고도서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하여 앞선 몇몇 사역자들의 예수님의 비유 해석들을 부분적으로 참조하였고 난해한 내용들은 좋은 주석서들로 검증하여 객관성을 갖도록 하였다. 무엇보다도 개혁주의적인 성경해석법을 근간으로 하여 강설하되 구체적인 적용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주의하였다. 예수님의 비유 강해의 순서는 공관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비유 중에서 장르상 비유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대략 예수님의 공생애 순서에 맞춰 강해하였다. 그리고 주님께서 비유를 통하여 목표하신 하나님의 형상 회복과 고난의 섬김으로 이루어지는 그 나라의 전진과 완성을 위하여 이 강설을 하였다.

필자의 예수님 비유 강설은 선약교회에서 2003년 10월 19일 주일부터 시작하여 2004년 10월 31일 주일까지 총 39강을 전하였다. 처음 시작할 때는 예수님의 비유의 목록에 포함할 수 있는 49개 정도를 다 강설하려고 마음을 먹었으나 필자의 사정상 38강으로 마쳤다. 마지막 39강은 ‘주님께서 쓰신 수사법 몇몇’에 비춰 전체 비유에 대해 총괄적으로 점검하며 개관하였다(2014년 7월 6일부터 2015년 1월 25일에 복습). 주님께서 또 한 번 기회를 주신다면 못 하고 남겨둔 나머지 몇몇의 비유들도 다 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하튼 필자가 섬기는 이천 선약교회의 대다수의 성도들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이 비유 강설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개혁교회로서 예수님의 품성을 조금이라도 더 드러내려고 하였고 아울러 어떠한 처지에서라도 하나님 나라 본상의 사회상을 누리기 위하여 그동안 성도들 간의 관계성 속에서 미진한 것들을 하나씩 고쳐가려고 부단히 애썼다.

늦었지만 예수님의 비유 강설을 할 수 있도록 필자에게 사상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영향을 주신 선대의 귀한 목사님들께 감사드린다. 그분들은 주님의 교회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따라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필자의 눈앞에 실증하여 보여주셨다. 또한 필자에게 오랫동안 격려와 위로와 지지를 아끼지 아니한 독립개혁장로교회와 독립개신교회 소속 존경하는 목사님들께도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 책이 나오기까지 직접적으로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리고 싶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기도와 성원을 아끼지 아니한 선약교회 성도님들과 편집과 교정과 기도 녹취에 애쓰신 여러분들께 감사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믿음의 식구들에게 이렇게 지면을 빌어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영광을 받으실 주님께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큰 은혜를 주시기를 기도한다. 독자들이 이 강설들을 기초하여 예수님의 비유를 더 풍성하게 깨닫기를 바라고 성신님의 능력으로 교회아로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위해 더욱 헌신하게 되기를 기도드린다.

2016. 9.12. 著者 識

책 속에서

제 1 강 – 비유에 대하여

비유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제 이상의 내용을 기억하면서 비유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비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것을 알지 못하면 실제적인 적용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선 주님께서 당시 환경에서 사건의 당사자들에게 의도하신 비유의 뜻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을 알아야 알레고리나 영해라는 그릇된 성경 해석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알레고리나 영적 해석이 전혀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지리적이고 시대적인 배경 하에서 주어진 비유의 실제적인 의미를 알아야 그것이 가리키는 바 궁극적인 내용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첫째, 당시에 사용된 비유의 시제와 문법적인 내용을 잘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청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당시에 통용되던 언어의 방식으로 하셨기에 이것을 아는 것이 매우 필요한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일반적인 교수 경향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가르치심은 구약의 예표적인 내용을 염두에 두고 구약의 실체로서의 새로운 시대 가운데 베풀어진 새로운 가르침입니다. 그런 내용을 모르고 그저 단편적으로 잘라서 그 비유의 가르침을 이해하려고 하면 그 폭이 너무 좁게 되고 깊이가 아주 얕게 됩니다.
셋째,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복음서 저자들이 그 사건들을 취합할 때의 역사적 상황에 대해서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사건들이 어떻게 인용되고 편집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비유의 내용을 보다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주의 백성들의 심성과 태도는 어떠해야 하나

오늘날에는 주께서 이상의 비유들을 어떻게 적용하여 나아가시는가? 지금 시대에서는 교회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날카롭게 꾸짖는 강설자에게 듣고 자신의 영적 질병의 참상을 깨달아 그 치유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밝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최소한의 교회적 질서 가운데 강설자를 통해 내리시는 그 말씀을 따라 자신의 영적 질병을 고치려고 하지 않거나 그저 말씀을 듣되 자극받는 일에만 만족하고 살거나 여전히 세상에 대한 탐욕이나 염려를 버리지 않고 산다면 그런 사람들은 현재에도 장차에도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결코 가담할 수 없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런 하나님의 방식을 존중하고 순종하려고 하는 자들에게만 들을 귀가 열려 그 말씀이 생명을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말씀으로 들리는 것입니다.



제 39 강 – 예수님의 비유에 대한 마무리

주님이 비유로 가르치신 의도

그러면 주님은 왜 이렇게 비유로써 제자들이나 주변의 군중들과 혹은 적대 세력에게까지라도 말씀하셨습니까? 그것은 지난번에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제자들에게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바로 양육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그들의 요구에 따라 특별히 해설까지 하여 가르치셨습니다. 저들이 신약교회의 기둥들이 될 자들로서 올바르게 자라도록 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저들이 진리의 기초를 쌓아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 도래한 하나님 나라의 각양의 바른 내용들을 바로 정립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이지요. 그러나 공관복음서의 비유에 대해 검증을 하여 보면 제자들에게만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감추인 보화와 진주 장사 비유, 잃은 양 비유(누가복음에서는 적대자들에게 한 것으로 나타남=두 번 하신 것으로 추측됨), 무자비한 종 비유, 밤중에 찾아온 친구 비유, 불의한 재판관 비유, 깨어 있는 문지기 비유, 무화과나무 비유, 도적 비유, 지혜로운 청지기 비유, 자비로운 포도원 주인 비유, 열 처녀 비유,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무튼 주님은 군중들이나(두 건축자 비유, 장터에서 피리 부는 아이들 비유,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알곡과 가라지 비유, 은밀히 자라는 씨앗 비유, 겨자씨 비유, 누룩 비유 등) 아니면 적대자들인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두 빚진 자 비유, 큰 잔치 비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잃은 양, 동전, 자비로운 아버지와 두 아들에 대한 비유, 부자와 나사로 비유 등), 그리고 대제사장이나 장로들 앞에서(두 아들의 비유, 악한 농부 비유) 대부분의 비유의 말씀을 하셨고(어리석은 부자 비유, 므나 비유 등) 이제 그것에 대한 해석을 따로 제자들에게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군중들은 대다수가 주님의 비유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주님이 하시는 일을 크게 반대하거나 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목적을 가지고 기쁨으로 주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언제 다른 격랑에 의해 요동할지 알 수 없는 배와 같았습니다. 적대자들은 어떠했는가? 적대자들은 비유에서 자기들에게 해당하는 것이 악역의 일인 줄을 알고 한편으로는 그 진리 앞에 부끄러워했고 한편으로는 그것을 드러낸 주님께 대적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나가는 말; 우리가 알아야 할 것

그러면 이상의 내용들을 보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이 하나님 나라를 가져온 분이시라는 것과 그분 안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이 있다는 것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은 말씀의 생명성에 의한 장성의 실질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그냥 정체되어 있도록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다양한 지식들을 순차적으로 알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정서도 알게 하셔서 능동적인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행동하고 살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순히 개인적인 삶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하시는 것은 아니고 한 지역 교회의 한 분자로서 이런 일들을 경험하여 더욱 부요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교회를 통하여 내리시는 말씀으로 장성하고 한 지역 교회의 회원으로 다른 회원들과 함께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백성들과 신령한 교제를 나누는 가운데 장성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장성하는 것은 단순히 현상적으로 예배를 익숙하게 드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늘어가고 주의 백성들과 친목을 잘 나누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케 하는 말씀의 생명성에 의한 진정한 내적 순종과 항상 성신님을 의지함으로써 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가 그런 사람인지의 여부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주께서 세우신 질서 가운데 내려지는 말씀과 성신님으로 교회아로서의 거룩하고 의로운 열매를 맺게 하시는가를 점검하면 알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가 명백하게 제시된 주님의 진리 안에서 근본적인 회개나 자기점검이 없이 그저 종교적으로 익숙하게 되는 것으로 자기를 자꾸 치장하고 자기를 위안하고 산다면 그것은 매우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배우기는 배우지만 그 말씀이 자기를 지배하지 않기 때문에 진정한 장성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주를 대적하는 데에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겉으로는 거룩하게 보이지만 내면으로는 세상 사람들이 좇는 모든 것을 품고 나아가게 됨으로써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말세의 현상이라고 바울 사도는 말씀했습니다.
이런 자들은 보통 때에는 주의 백성의 흉내를 내지만 자기 유익과 관련하여 결정적인 때에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나 권위를 멸시하고 남을 이용하며 그리스도 안의 구원을 값싸게 만들고 자기 배만 섬기며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렇게 완악하게 되어 점차 자기가 알고 있다고 하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고의적으로 다 잊고 마는 것입니다.

목차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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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서문
제 1 강 비유에 대하여
제 2 강 지혜로운 건축자와 어리석은 건축자
제 3 강 장터에서 피리 부는 아이들
제 4 강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제 5 강 은밀히 자라는 씨 비유
제 6 강 알곡과 가라지 비유
제 7 강 겨자씨 비유
제 8 강 누룩 비유
제 9 강 감추인 보화와 진주 장사 비유
제 10 강 그물 비유
제 11 강 사람을 진짜로 더럽히는 것에 대한 비유
제 12 강 잃은 양 비유
제 13 강 무자비한 종의 비유
제 14 강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제 15 강 주인을 기다리는 충실한 종 비유
제 16 강 도적 비유
제 17 강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 비유
제 18 강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비유
제 19 강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제 20 강 밤중에 찾아온 친구 비유
제 21 강 좁은 문 비유
제 22 강 큰 잔치 비유
제 23 강 동전(열 드라크마) 비유
제 24 강 두 아들(탕자)의 비유
제 25 강 불의한 청지기 비유
제 26 강 부자와 나사로 비유
제 27 강 종의 의무에 대한 비유
제 28 강 불의한 재판관에 대한 비유
제 29 강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비유
제 30 강 자비로운 포도원 주인 비유
제 31 강 므나 비유
제 32 강 아버지의 사역 명령에 대한 두 아들의 비유
제 33 강 악한 농부들의 비유
제 34 강 왕자의 혼인 잔치 비유
제 35 강 무화과나무 비유
제 36 강 열 처녀의 비유
제 37 강 달란트 비유
제 38 강 양과 염소의 비유
제 39 강 예수님의 비유에 대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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