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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4606446 / 560쪽 153 x 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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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조선시대 당쟁과 인물들에 대한 깊은 성찰 “역사공부는 대의를 찾아가는 과정” 선조 8년~23년, 동서분당에서 기축옥사까지 조선 당쟁의 사실(史實)을 엄밀하게 밝히며 현재적 의미를 탐구한 역작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이정철 박사(국학진흥원 연구원)가『대동법, 조선 최고의 개혁』(2010, 역사비평)을 낸 후 받았던 곤혹스런 질문이었다 한다. 이 책은 그 물음에 대한 저자의 치열한 고민의 결과다. 선조 8년(1575)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사림 내부의 갈등, 이른바 ‘동서분당’이 발생한다. 이... 조선시대 당쟁과 인물들에 대한 깊은 성찰 “역사공부는 대의를 찾아가는 과정” 선조 8년~23년, 동서분당에서 기축옥사까지 조선 당쟁의 사실(史實)을 엄밀하게 밝히며 현재적 의미를 탐구한 역작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이정철 박사(국학진흥원 연구원)가『대동법, 조선 최고의 개혁』(2010, 역사비평)을 낸 후 받았던 곤혹스런 질문이었다 한다. 이 책은 그 물음에 대한 저자의 치열한 고민의 결과다. 선조 8년(1575)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사림 내부의 갈등, 이른바 ‘동서분당’이 발생한다. 이렇게 시작된 당쟁은 정치적 사건들로 끝없이 변주되다가 선조 23년 기축옥사로 파국을 맞는다. 이 책은 이 과정과 인물들에 밀착하여 놀라울 만큼 생생하게 드러낸다. 크게는 이이와 선조의 행적을 중심으로 살피되, 200여명이 넘는 수많은 관련 인물들의 동선을 드러내고 그 동선 아래에 흐르는 의도까지도 밝힌다. 저자는 정치세력의 구조를 중심으로 서술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그렇게 상황을 이해하면 개인적 특성이나 가변성, 현실의 생생함을 놓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즉 귀납적으로 도출되는 구조만이 진짜 현실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쟁사라면 조선후기가 절정인데 저자는 왜 선조 8년 ~ 23년까지 그 15년에 주목했을까? 한 세대 앞선 퇴계 이황이 살았던 문정왕후 시대에는 물론이고, 16세기 초 등장한 이래로 사림(士林)은 정치의 주체라기보다 사화로 집약되는 탄압을 견디며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선조 집권 이후 드디어 사림의 정치적 공간이 열렸던 것이다. 조선시대 통틀어 이 시대만큼 도덕적 확신과 정치적 이상(理想)이 드높이 외쳐진 시대도 드물었다. 그런데 곧 ‘동서분당’ 사태를 시작으로 사림은 분열했다. 왜 도덕적, 정치적 이상에 대한 사림의 오랜 집단적 열망이 그들 중 누구도 원치 않았던 거대한 파국으로 귀결되었는가? 훌륭한 개인의 인격과 무관하게, 그들의 진정성에 독립하여 작동하는 정치적 힘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이정철 박사는 올바른 정치적 대의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당쟁은 큰 차이를 낳는다 한다. 동서분당에 대해 “당연히 정치적 욕망을 가장 큰 동력으로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대의가 그것을 제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며 대의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과거든 현재든 대의는 비록 수적인 우세를 차지하지 못해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한 사회의 공적 합의를 만드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역사공부는 바로 그것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이 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16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 사업 선정작이다. ‘훈척’에 대한 도덕적 비판자의 역할이 아닌 국정과 민생을 책임져야 하는 시대가 열렸지만 선조 5, 6년. 삼사의 청직에서 최고 요직까지 모두 사림이 차지했는데도 좋은 정치가 이뤄지지 않자 이이는 당황하고 고민했다. 그 결과가 선조 7년 1월에 나온 「만언봉사」였다. “정치는 시의(時宜)를 아는 것이 귀하고 일은 실공(實功)을 힘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치를 하면서 시의를 모르고 일을 당하여 실공을 힘쓰지 않으면, 비록 성군(聖君)과 현신(賢臣)이 서로 만나도 성과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수기’된 군자가 집권을 하면 ‘치인’이 된다는 믿음, 성군과 현신이 만나면 좋은 정치가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선조대 초반을 경과하면서 흔들리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의도와 결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 의도가 좋다고 반드시 좋을 결과가 온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의도가 아닌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이는 깨달았던 것이다. 이제 훈척에 대한 도덕적 비판자의 역할이 아닌 국정과 민생을 책임져야 하는, 즉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는 새로운 상황을 맞았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됐다고 생각했을 때 이이는 이 새로운 상황을 정확히 이해했다. 이이가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누구에 대해서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분명히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백성에 대해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이의 그 책임 의식이 상황을 다른 사람과 다르게 보게 했던 단서라고 생각합니다.” 불행하게도 이이만이 그것을 분명히 인식했다. (이이는 다음 시대에 대동법으로 귀결된 개혁의 아이디어를 사실상 처음 공론화 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그들 중 국소수가 살아남아 그것을 이해하게 된다. 역사를 좀더 길게 볼 때 광해군, 인조, 효종대가 대동법 등 정책 생산이 가능했던 시대라면, 선조대는 대동법을 만들어갔던 시대의 아버지 세대로 정치세력이 갈등했던 시대였다. 정책 생산은 정치세력의 형성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도 개혁이 절실하고 그것을 위한 정치세력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과제로 가지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이이의 보합조제론도 이런 맥락이었다. 그는 국정개혁과 정치세력화 둘 다 하려다가 결국 하나도 못 이룬 것이다. 저자는 기존의 당쟁론이나 붕당론이 아닌 이러한 관점에서 선조대의 정치세력의 갈등 양상을 다시 해석한다. 「만언봉사」나 나올 무렵 거의 동시적으로 발발하는 당쟁의 격랑에서 이이에게 국정개혁을 할 정치적 공간과 기회가 과연 있었을까? 사림은 왜 분열했을까? ‘스스로 확신한 도덕적 정당성’으로 분열을 정당화하다 당쟁은 이듬해인 선조 8년에 발생했다. 1월 명종비 인순왕후가 죽자 선조는 비로소 자신의 정치를 시작했다. 같은 해 7월 한 미해결 살인사건에서 시작된 ‘동서분당’ 사태는 김효원과 심의겸을 지방으로 내보내는 것으로 일단락되었지만 사림이 무리지어 공개적으로 갈등하는 양상은 이후 국면을 바뀌며 계속해서 이어졌다. 일시적으로 서인이 승리한 듯했으나 동인세력은 계속해서 확대되고 강해졌다. 선조 11년, 12년은 동서 갈등의 진정한 전환점이었다. 이른바 ‘이수의 옥사’와 ‘백인걸 상소 대필 사건’을 거치면서 동인과 서인은 각각 인적 구성과 그에 상응하는 정치적 신념 혹은 대의명분을 갖추었다. 구신과 결합하기 시작한 동인은 자신들과 서인을 선과 악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당시의 조정이 ‘외척세력 서인’ 대 ‘진정한 사림 동인’으로 대립한다고 인식했다. 즉 서인 전부를 외척 심의겸의 당여라고 주장했으며 나중에는 이이까지도 심의겸의 당여로 보고 또 그렇게 공격했다. 서인을 ‘친심’세력으로 규정하는 것이야말로 동인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공격 방식이었다. 저자는 동서분당 사태 이후 잇달아 벌어지는 사건들과 인물들의 움직임이 만든 당쟁의 사실(史實)을 엄밀하고도 깨알같이 적시해간다. 이이와 선조는 한순간도 빼놓을 수 없겠지만 김효원과 심의겸은 갈등의 언설 속에 있을 뿐 현실에서는 비중이 없다. 대신에 김우옹, 이발, 성혼, 류성룡, 이산해 등이 중요한 인물이었다. 사림은 왜 분열했을까? 물론 어떤 시대의 정치에도 나타나기 마련인 정치권력에 대한 욕망이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한다. 사림의 분열은 스스로에 대한 강력한 도덕적 확신에 기인했다고 한다. 사림(동인)의 강력한 힘은 그들이 가진 도덕성에 있었다. 그 도덕성은 적어도 두 세대에 걸친 사화의 시대를 이겨낸 힘이었다. 이 책의 제목처럼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하고 분열을 정당화 하는 기제는 ‘스스로 확신한 도덕적 정당성’이었다. 젊은 사림이 가졌던 도덕적 확신은 역설적이지만 앞 시대 훈척정치가 물려준 유산이었다. 그들이 가진
선조 대에 활약한 인물들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개념이 ‘책임’이다. 사실, 그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무엇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는각가 바로 그 사람 청체성의 좌표이고, 그가 맺은 사회적 관계의 액면가이다. 유학에서도 책임은 중심 주제이다.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을 성리학만큼 강조한 사유 체계도 드물다. ‘수기치인’에서 치인은 세상에 대한 사대부의 책임감으로 설명된다.
조선왕조는 건국 당시부터 공론을 중시했다. 성리학을 국가 운영 원리로 삼아 건국한 것이 그 이유이다. 그런데 국가적으로 공론을 중시한다고 하여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 헌법에 민주주의의 이상(理想)을 담았다고 해도 현실에서 법률적 갈등을 피할 수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당시 공론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갈등 요소는 누가 공론의 주체인가 하는 문제였다.
조선왕조를 통틀어 보면 공론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인식은 한결같지 않았다. 곡초에는 국왕이나 조정 대신들이 공론의 주체로 인식되었다. 18세기에도 이와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서 공론이 위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두 시기의 중간 즉 16, 17세기에는 공론이 아래 있고, 삼사, 심지어 성균관에 공론이 있다고 생각했다. 16세기는 국초의 공론 소재처에 관한 인식이 바뀌던 시기였다. 주목할 것은 이 시기 격렬하게 이어졌던 사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인식이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16세기에는 공론이 아래에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것이, 사림이 훈척정권을 물리치고 마침내 조정에서 주도권을 확득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이다. 사림은 대신들을 상대로 자신들의 도덕적 우위를 확신했고 자신들의 정치적 주도권을 당당히 주장했다. 문제는 선조 초 구세력이 힘을 잃고, 사림이 조정의 최고위직까지 올라가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치세력의 구도가 전처럼 ‘부도덕한 훈척대신’ 대 ‘도덕적인 사림’으로 나뉘어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 사림 자체의 구조가 진화하여 ‘사림 대신’ 대 ‘사림 언관’으로 분화되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동서분당 이후 상황은 이러한 정치세력의 구조 변동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또 그러한 현실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를 둘러싼 혼란이다. 강경파 동인은 ‘사림 대신’을 ‘부도덕한 훈척’으로 보려 했고, 이이는 ‘사림 대신’과 ‘사림 언관’을 포함한 새로운 구조를 만들려고 했다.
- 본문 195~196쪽 중에서
이윽고 선조에게서 미묘한 태도 변화가 감지되었다. 이이 사후 채 두 달도 안 되서, 홍문관 수찬 심희수는 경연 조강朝講에서 선조의 태도 변화를 언급했다. 그는 “상께서 이이를 대우하시는 것이 살았을 때와 죽은 후가 다르니, 필시 그 뜻이 있으신 듯합니다.”라고 말하였다. 이어서 “당초 상께서 중론衆論을 물리치고 (이이를) 등용하셨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선조는 심희수 말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이이가 죽은 뒤 자신이 그를 다르게 대우한 일이 없고, 중론을 물리치고 이이를 등용했던 것은 아니며 자신은 다만 간신들의 사설邪說을 물리쳤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요컨대, 자신은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보편타당한 원칙을 따랐을 뿐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선조의 주장보다는 심희수의 의문이 조정에서 새롭게 전개되는 상황에 좀 더 가까웠다. 송응개, 박근원, 허봉이 북쪽 변방 오지로 귀양 간 직후, 이조 좌랑 김홍민이 선조의 조치를 비판했었다. 그러자 선조는 “나도 주희의 말을 본받아 이이, 성혼의 당에 들어가기를 바란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나를 이이, 성혼의 당이라고 부르도록 하여라.”라고 말한 바 있다. 불과 반년 만에 선조는 자신의 이전 말과 크게 다른 주장을 하고 있었다. 이이와의 거리를 벌리면서 선조는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확보해 나갔다. 이이를 추가로 포상하는 은전이 필요하다고 박순이 건의했다. 이에 대해 선조는 대신들과 의논하라고 말했다. 당시 좌상은 노수신, 우상은 정유길이었다. 이들은 박순의 건의에 동의했다. 하지만 선조는 약간의 추가적 은전만을 허락했을 뿐, 관직 추증을 포함해서 박순이 요청했던 수준의 은전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이 사망 후 채 두 달이 못 되었을 때 일이다.
- 본문 263~264쪽 중에서
목차
프롤로그
전사前史
1부 사림의 분열 _ 사림의 정치화
리더십
1장 선조 8년~10년 : 분열의 시작
인순왕후 사망
애도의 정치성ㅣ선조, 정치를 시작하다ㅣ“낭천을 폐지하라”
‘동서분당’
미해결 살인사건ㅣ피혐과 처치ㅣ살인사건의 정치적 변주ㅣ이이의 처치ㅣ허봉과 박근원의 결합ㅣ박근원이란 인물ㅣ개성 유수, 경흥 부사ㅣ사건 배후의 구조
2장 선조 11년~13년 : 대립 구도의 성립
이수의 옥사
서인의 짧은 권세ㅣ선조 11년ㅣ같은 사건, 다른 처리ㅣ동인의 새 파트너, 구신
백인걸 상소 대필 사건
시비에서 정사로ㅣ시비와 정사의 여러 거리ㅣ“유자가 도를 행함이 이 정도뿐인가ㅣ이이에 대한 동인의 첫 공격ㅣ김우옹이란 인물
2부 이이의 시간 _ 사림의 이상, 정치의 현실
프레임
3장 선조 13년 말~15년 : 이이의 분투와 좌절
정치의 한복판에 선 정치적이지 않은 이이
선조가 이이를 부른 이유ㅣ이이가 돌아온 이유ㅣ이이에 대한 동인의 시선ㅣ우성전 탄핵 사건ㅣ이경중 탄핵 사건ㅣ순진한 이이, 저돌적인 정인홍, 배후 조정자 이발
심의겸, 정철 탄핵 사건
수면과 저류ㅣ“이는 이발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이다”ㅣ이발, 정치를 하다ㅣ정철 문제에 불을 붙인 정인홍의 한마디
윤승훈 사건
정철은 외척인가ㅣ“윤승훈이 무슨 식견을 지녔겠습니까”ㅣ대신의 권위, 언관의 권위
일진일퇴
복상과 처치ㅣ이이, 선조에게 개혁을 호소하다ㅣ“이 일을 이이와 함께 할 수는 없다”ㅣ성혼 눈에 비친 이이
4장 선조 16년 : 계미삼찬
‘이탕개의 난’이 불러온 효과
여진의 성장, 선조의 충격ㅣ이이 개혁안과 선조의 변화ㅣ경안령 이요 사건
공론은 누구에게 있는가
계속되는 북방 상황ㅣ“전천·만군의 죄”ㅣ이이의 정체성ㅣ이이가 탄핵받은 진짜 이유ㅣ“이이를 공격하는 자가 소인이다”
좌절된 이이의 꿈
성혼의 상소ㅣ송응개의 상소ㅣ송기수라는 인물ㅣ기억의 당파성ㅣ“언관들이 간사한 것은 아닙니다ㅣ동인이 이해한 조제보합론ㅣ김우옹의 뒤늦은 상소ㅣ선조와 동인의 맞대결
대간의 말이라고 다 옳은 것은 아니다
또 하나의 공론ㅣ선조와 승정원의 갈등ㅣ“신들 역시 조종조 노신의 후예들입니다”ㅣ“심의겸이라는 함정”
3부 선조의 시간 _ 나는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한 적이 없다
관점의 현재성
5장 선조 17년~22년 : 불안한 평화
계미삼찬 후 조정 풍경
단호한 선조ㅣ“이이를 그르다고 한 것은 온 나라의 공론입니다ㅣ4월 14일? 4월 17일?ㅣ초조한 이이ㅣ이이의 입장은
조정의 재편
이이의 죽음ㅣ현상 유지ㅣ미묘한 변화ㅣ김우옹과 신응시ㅣ영의정 박순, 탄핵을 받다
선조의 정치
“내 뜻을 말하겠으니 사관은 기록하라”ㅣ선조의 이상한 하문ㅣ조정 밖 목소리ㅣ선조 18년 9월 2일 선조의 전교ㅣ이발의 복귀
6장 선조 22년 : 기축옥사 발발
고변에서 체포까지
고변서 접수 직후ㅣ고변서가 올라오기까지ㅣ정여립 체포에 실패하다ㅣ다복, 10월 14일 저녁에서 밤까지ㅣ온 산을 태워서라도 체포하라ㅣ죽음을 부르는 ‘적가문서’ㅣ주륙과 은택
국면의 전환
전주 생원 양천회의 상소ㅣ선조의 구언ㅣ정철의 복귀ㅣ정집의 진술, 김천일의 상소ㅣ낙안 교생 선홍복
공포의 정치
조정을 지배한 공포ㅣ선조, 사건을 일단락 짓다ㅣ이산해, 용 같은 사람ㅣ성혼의 상소
4부 파국
책임
7장 정개청 옥사
정암수와 배명의 상소
호남의 중심, 나주ㅣ나사침 부자와 그 가문의 내력ㅣ구절의 대 배절의
투옥 과정과 심문의 쟁점들
홍여순이란 인물ㅣ고발 사유는 사라지고ㅣ「절의청담변」을 둘러싼 오해
정개청과 박순
‘배사론’ㅣ저마다의 기억ㅣ진실은?ㅣ향리 가문 출신 서원 원장
8장 최영경 옥사
기축옥사 이전의 최영경
성혼과의 만남ㅣ스승을 빼닮은 제자ㅣ『심경』이라는 책ㅣ최영경이 진주로 간 이유는ㅣ“미움이 규모를 달리하고”ㅣ“박순과 정철을 반드시 효시한 뒤에야”
‘삼봉즉경영설’의 부상
소문ㅣ알리바이
1차 수감, 정철과의 만남
두 가지 쟁점ㅣ정철의 올리지 않은 차자
2차 수감, 이이에 대한 기억
‘하늘 그물’ㅣ“말의 근거를 자세히 아뢰라”ㅣ“신이 한 말이 아닙니다”ㅣ죽음, 그 주변
에필로그
부록_1. 이조 및 삼사三司의 관직|사가독서자 일람표|연표:동서분당에서 기축옥사까지|4. 인물정보
찾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