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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

원제 : Von Bismarck zu Hitler: Ein Rückblick (1987)

제바스티안 하프너 저 | 안인희 역 | 돌베개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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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1997482 / 320쪽 146 x 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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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독일인들이 다른 민족보다 더 전쟁을 좋아했더란 말인가? 나로서는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독일 제국은 대체 왜 몰락했는가? 책의 특징 ■ ‘전쟁제국’의 탄생-완충지대에서 화약고로 거대한 전망을 바탕으로 역사와 세계를 거시적으로 읽어내고 압축하는 데 탁월했던 하프너는 독일 제국 건설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독일 제국의 팽창과 몰락’의 비밀을 파헤친다. 하프너에 따르면, 제국의 건설자인 비스마르크는 결코 ‘전쟁제국’을 의도하지 않았다. 비스마르크가 바란 것은 세계를 지배하는 거대 제국이 아니라, 그저 ‘... 독일인들이 다른 민족보다 더 전쟁을 좋아했더란 말인가? 나로서는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독일 제국은 대체 왜 몰락했는가? 책의 특징 ■ ‘전쟁제국’의 탄생-완충지대에서 화약고로 거대한 전망을 바탕으로 역사와 세계를 거시적으로 읽어내고 압축하는 데 탁월했던 하프너는 독일 제국 건설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독일 제국의 팽창과 몰락’의 비밀을 파헤친다. 하프너에 따르면, 제국의 건설자인 비스마르크는 결코 ‘전쟁제국’을 의도하지 않았다. 비스마르크가 바란 것은 세계를 지배하는 거대 제국이 아니라, 그저 ‘작은 도이칠란트’였다. 즉, 신성로마제국의 해체로 인해,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라는 두 강대국을 위시해 수많은 왕국과 작은 국가와 자유도시들로 분열된 상황에서, ‘골치 아픈 다민족국가 오스트리아’마저 배제하고 독일 민족만의 작은 통일 국가를 세우는 것이 비스마르크의 애초 계획이었고, 실제로 결과도 그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비스마르크의 의도와 달리 독일 제국은 건설 당시부터 전쟁제국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고 또한 하프너는 분석한다. 제국이 거의 처음부터 스스로의 파괴를 추구한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 바로 이 역사에서 무시무시한 요소다. 점점 커지면서 점점 더 예측할 수 없게 되는 제국의 권력 행사와 더불어, 제국은 스스로 적들을 창조했다. 제국은 이 적들에 부딪쳐 부서졌고, 적들 사이에서 둘로 나뉘었다. _19~20쪽(들어가는 말) 하프너는 그 원인을 우선은 지정학적인 위치에서 찾는다. 독일 제국은 처음부터 다른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채, 마치 적들에게 꼼짝없이 포위당한 듯한 형국으로 탄생한다. 서쪽으로는 프랑스와 영국, 남쪽과 남동쪽에는 아직 강대국이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동쪽에는 강력한 러시아가 버티고 있었다. 어디로도 진출할 공간이 없는 상황에서 “도이치 제국은 이제야 비로소 큰 나라가 되었고, 당연히 더 커져야겠다는 큰 나라의 본능도 함께 생겨났다. 이 본능은 말하자면 강대국으로 자라나는 요람 안에 이미 들어 있었던 셈이다.”(본문 18쪽) 게다가 독일 제국은 그들 자신에게는 ‘작은 도이칠란트’였지만, 주변 강대국들에게는 거대한 위협이었다. 주변 국가들은 자신들이 독일 제국보다 약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끊임없이 연합을 맺고 동맹을 찾으려고 애썼다. 실제로 독일 제국은 “유럽의 다른 어떤 강대국보다 군사적으로는 아마도 더욱 강력했다. 하지만 제국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그 어떤 연합보다도 당연히 더 약했다.” 그리하여 이 신생 제국에게 연합은 늘 두려운 존재였다. 그들은 연합의 탄생을 방해하기 위해, 적들의 동맹에서 한 나라라도 떼어내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이 당시에는 전쟁이 “궁극적 이성(理性)의 일, 곧 가장 진지한 최종 정책 수단”이었기에, 오랫동안 완충지대 역할을 했던 이 땅이 화약고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 화약고에 불을 당긴 민족주의 독일 제국의 지정학적인 위치나, 전쟁도 불사하는 제국주의의 속성 외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민족주의다. 물론 민족주의는 어느 날 별안간 생겨나지 않았다. 하프너는 초기 민족주의 운동에 이미 뒷날 나치즘의 전조가 되는 울림들이 담겨 있었다고 말한다. 끔찍한 자만심과 자기 숭배, 독일 민족이 현실적이고 참된 유럽 최고 민족이라는 생각은 이미 오래전부터 뿌리내린 것이었다. 예컨대 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1777~1811)는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끔찍한 미움을 담아 일찍이 이렇게 일갈했다. “놈들을 때려죽여라! 세계 법정은 너희에게 그 원인을 묻지 않으리.”(본문 27~28쪽) 그리고 1890년, 비스마르크가 퇴임하고 빌헬름 2세 황제 시대가 시작되면서 독일인들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민족주의가 꿈틀대기 시작한다. 비스마르크가 물러난 다음에 일종의 ‘대국(大國) 감정’ 같은 것이 생겨났다. 빌헬름 황제 시대에 매우 많은 도이치 사람들이, 그것도 가능한 모든 계층 출신 사람들이 갑자기 원대한 민족적 전망, 민족적 목적을 눈앞에 그렸다. “우리는 세계적 강대국이 된다, 우리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 도이칠란트가 전 세계의 앞장에 선다!”는 전망이었다. 동시에 그들의 애국심은 이전과는 다른 성격이 되었다. 이 시기 도이치 사람들을 고무한 ‘민족주의’는 이제 스스로 아주 특별한 존재, 미래의 강대국이라는 느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의식이었다. _90쪽(황제 시대) 독일 제국은 민족주의를 동력 삼아 파멸을 향해 치닫는다. 승전보만 들려오던 1차 대전에서 패하자 대중들 사이에는 어처구니없는 낭설이 퍼진다. 즉 1차 대전 패배는 전방에서의 군사적인 패배가 아니라 후방에서 평화주의 캠페인을 통해 군의 사기를 떨어뜨려서 나온 것이라는 전설, 이른바 ‘배후에서 단도 휘두르기’ 전설이 창궐한 것이다. 이 낭설을 철석같이 믿었던 인물 중에는 아돌프 히틀러도 있었다. 히틀러는 1차 대전 패전과 그로 인한 독일 혁명과 바이마르 공화국의 출범이라는 혼란 속에서, 정치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도이치 제국의 역사가 그렇게 흘러갔다는 것, 그 마지막 가장 성큼성큼 걷던 시대에 오스트리아 사람이[\u003d히틀러] 총리로 재임했다는 것, 이 마지막 제국총리가 비스마르크의 작은 도이칠란트를 곧바로 큰 도이칠란트로 만들고, 이 큰 도이칠란트는 곧바로 비스마르크가 철저히 반대한 공격적인 확장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비스마르크의 작은 도이칠란트에서는 한 번도, 심지어 1870년에도 맛보지 못한 열광적인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잘 생각해본다면―거의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비스마르크의 최고 승리가 자신의 실패의 뿌리를 포함하고 있었다고, 도이치 제국의 건설은 이미 그 붕괴의 씨앗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말이다. _50쪽(도이치 제국의 성립) ■ 전쟁제국의 종말과 분단 이처럼 독일 제국은 처음부터 파멸의 맹아를 품고 있었지만, 씨앗에 물을 주고 영양을 공급한 것은 사람이다. 이 책에서 하프너는 독일 민족이 몰락의 길을 걷는 동안, 사람들이 각자 제 위치에서 어떻게 잘못 움직였는지 냉철한 시각으로 바라본다. 독일인들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 다 끊임없이 오판했다. 민족의 생존을 위해 주변 강대국의 동맹을 찢어놓으려고 분투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고립되었다. 군 지휘부는 전쟁의 결정적인 국면마다 전략을 잘못 잡았다. 한편 국민들은 양차 대전의 패색을 너무 늦게 알아차렸고, 히틀러를 민족의 구원자로 오인하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독일인들의 실책을 서술하는 하프너의 시선은 냉철하다 못해 냉소적이다. 예컨대 1차 대전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하프너는 이렇게 평가한다. “도이치 전함들은 전쟁의 원인에는 아주 많이 기여했건만, 실제 전쟁에서는 거의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배들은 항구에 정박해 있다가 이따금씩만 북해로 진출해서, 고작 영국인들을 화나게 하는 정도였다. (……) 이 ‘무제한’ 잠수함 전쟁은, 단순히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영국과 프랑스를 매우 강력하게 만들어서 도이치 제국의 모든 승리의 전망을, 심지어는 탈진해서 나오는 평화조약에 대한 전망조차도 사라지게 만들었다. 바로 미국의 참전을 불러들인 것이다.”(본문 123~124쪽) 사민당을 비롯한 좌파와 자유자의자들도 비판의 화살을 피해 가지는 못한다. 예컨대 사민당은 장기간 최대 정당이었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늘 주저하고 후퇴하고 무용한 복마전에 걸려들고 간계를 꾸민다. 예컨대 사민당 당수 프리드리히 에버트는 악명 높은 국방장관 노스케와 손을 잡고 사회주의 혁명

저자 소개

1907년 12월 27일,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라이문트 프레첼(Raimund Pretzel)이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법원과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나치의 폭정이 극으로 치닫던 1938년에 유대인 약혼자와 함께 영국으로 이민했다. 언어장벽과 가난, 나중에 부인이 되는 약혼자의 임신으로 이민 초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독일에 남아 있는 가족들의 피해를 우려해 필명 ‘제바스티안 하프너’로 저술 활동을 시작했다. 이 필명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제바스티안’과 모차르트 교향곡 35번의 곡명 「하프너」를 조합한 것이다. 훗날 하프너는 이 교향곡의 쾨헬 번호 ‘KV 385’를 자동차 번호로 쓰기도 했다.
1941년 하프너는 조지 오웰의 청탁으로 ‘서치라이트 북스’ 시리즈 중 한 권인 『독일 공습』(Offensive Against Germany)을 영어로 집필, 출간했다. 한편 명망 높은 언론인 데이비드 애스터의 후원하에 「옵서버」지에 기고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편집장 자리까지 올랐다. 1954년 편집장에서 물러나 독일로 돌아왔으며,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질 때까지 줄곧 「옵서버」지 베를린 특파원으로 일했다. 쉰 살이 넘어서야 독일 언론을 위해 일하기 시작한 하프너는 1962년까지 「디 벨트」지에 글을 썼고, 1962년부터 1975년까지는 「슈테른」지 칼럼니스트로 일했다. 베스트셀러 역사 교양서를 여러 권 발표했으며, 자유베를린방송(SFB)에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1999년 1월 2일, 세상을 떠났다.
하프너는 독일 제국의 성립부터 1차 세계대전 발발, 바이마르 공화국의 실패, 히틀러의 부상과 몰락에 이르는 독일의 파란만장한 근현대사를 놀라운 통찰력과 신선하고 명료한 언어로 서술하는,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역사 교양서 작가로 평가받는다. 대표작으로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967),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Anmerkungen zu Hitler, 1978),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Von Bismarck zu Hitler, 1987), 『어느 독일인 이야기』(Geschichte eines Deutschen, 2000) 등이 있다.

역자 소개

인문·예술 분야에서 꾸준한 연구로 주목받아 온 인문학자이자, 영어와 독일어권 대표 번역가.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독일 밤베르크 대학에서 공부했다. 게르마니스틱(Germanistik)의 신화와 문학, 예술에 관한 탄탄한 지식을 바탕으로 재미와 감동, 날카로운 통찰력이 돋보이는 강의와 저술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저서로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2003년 올해의 논픽션상),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 『히틀러 평전』, 『광기와 우연의 역사』,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한국번역가협회 번역대상),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한독문학번역상), 『철학의 에스프레소』, 『돈 카를로스』, 『데미안』,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등이 있다.

머리말

옮긴이의 말

이 책에서 말하는 80년은 1871년 또는 1867년 도이치 제국의 성립부터 1945년 또는 1948년의 제국 해체까지를 포함한다. 우리가 흔히 ‘도이치 제국-바이마르 공화국-히틀러 통치 기간’으로 나누는 역사적 시간이다.
이런 용어 사용을 두고 저자는 긴 논의나 근거 제시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의 이런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한 가지 사실이 도출된다. 그가 이 기간을 하나의 통일된 맥락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비록 혁명을 통해 성립되었다고는 하지만, 실은 도이치 제국의 연속선상에 있었던 것을 우리는 책에서 읽을 수 있다. 공화국이 시작될 때 이미 (장군들의 허락을 받아) 정권을 잡고 있던 좌파 사민당 대표들은 황제 시대의 장군들과 연합하여 혁명 세력을 짓누르면서 그 권력을 지켰고, 그 후로도 늘 장군들과 옛날 귀족들을 깍듯이 예우하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좋게, 또는 그들의 저항으로 힘들게 공화국을 꾸려간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공화국의 마지막은 다시 장군들이 배후의 실세로, 또는 아예 무대에 등장하여 활동하는 가운데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한다.
따라서 이 기간을 ‘도이치 제국’이라는 하나의 열쇳말로 묶어서 읽어낸 논리적인 이유는 비교적 분명해진다.

책 속에서


물론 대륙의 모든 강대국은 1차 대전을 대규모 공격으로 시작하면서 제각기 빠른 승리를 희망했지만, 모든 공격은 실패로 돌아갔다.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를 공격하고, 러시아가 오스트리아(갈리치아 지방에서)와 도이칠란트(동프로이센에서)를, 그리고 프랑스가 로렌과 아르덴에서 도이칠란트를 공격했지만 모조리 실패했다. 또한 도이치 군대가 벨기에와 프랑스를 공격한 것도 실패했다. 전쟁 처음 몇 달 동안에 이미 모든 전장에서―모든 나라 참모부의 확신과는 달리!―1차 대전의 경과에 기본이 되는 사실이 드러났다. 곧 당시의 전쟁 기술 수준에서는 방어가 공격보다 우세했다. 공격은 고작해야 토지를 얻을 수 있었을 뿐, 심지어는 적대국이 세르비아나 벨기에같이 작은 나라라 해도 적국을 전쟁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준이 되지 못했다. 덕분에 1차 대전은 소모 전쟁의 우울한 특성을 지녔다. 전략적 수확도 없이 거듭 되풀이되는 학살 전쟁이었을 뿐이다.
_본문 121~122쪽(제1차 세계대전)

바이마르 공화국은 당시 겨우 세 개의 정당으로 유지되었다는 점이다. 1917년의 옛날 황제 시대 의회의 다수당으로서, 이들은 1919년 국민의회에서 3/4의 의석을 차지하여 이른바 바이마르 연합정권을 결성했다. 곧 사민당, 도이치 민주당, 중앙당이다. 오직 이들 세 정당만이 바이마르 헌법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들만이 도이치 사람들이 당시 익숙해 있던 군주국 대신에 공화국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들 세 정당 안에서도 새로운 국가 형태를 정말로 환영했다기보다는 겨우 수용한 사람이 다수였다. 그러니 공화주의자 없는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렇다고 공화주의자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공화국은 말하자면 한 발로만 서 있었다. 중도 좌파만
이 공화국에 찬성했다. 공산주의 좌파는 전혀 다른 공화국을 원했다. 그리고 의회의 의석수로 짐작되는 것보다 실제로는 훨씬 다수였던 우파는 그냥 도로 황제를 원했다.
-본문 196~197쪽(힌덴부르크 시대)


 

목차

목차
옮긴이의 말 6 / 들어가는 말 11 / 도이치 제국의 성립 21 / 비스마르크 시대 51 / 황제 시대 83 / 제1차 세계대전 111 / 1918년 135 / 바이마르와 베르사유 169 / 힌덴부르크 시대 193 / 히틀러 시대 221 / 제?2차 세계대전 265 / 도이치 제국의 사후(事後) 역사 289 / 후기와 감사의 말 309 / 1990년의 후기 311 / 부록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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