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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현모양처인가? 조선시대의 여걸인가? 『사임당, 우리가 알지 못했던 신사임당의 모든 것』은 무엇보다도 독창적인 문제의식으로 톡톡 튄다. 다른 책들에서는 쉽사리 볼 수 없는 주제들로서, 저자는 21세기의 시점에서 이런 주제들을 새로이 조명한다. ♣ ‘사임당’이란 호의 뜻은, 주 문왕의 어머니 ‘태임(太任)’을 본받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태임이 처한 상황은 실제로 어떠했으며, 주나라와 은나라 간의 천하쟁탈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는가? ♣ 이율곡을 비롯한 네 형제들의 이름에 ‘임금 왕(王)’자가 들어간 까닭은 무엇인가? ... 현모양처인가? 조선시대의 여걸인가? 『사임당, 우리가 알지 못했던 신사임당의 모든 것』은 무엇보다도 독창적인 문제의식으로 톡톡 튄다. 다른 책들에서는 쉽사리 볼 수 없는 주제들로서, 저자는 21세기의 시점에서 이런 주제들을 새로이 조명한다. ♣ ‘사임당’이란 호의 뜻은, 주 문왕의 어머니 ‘태임(太任)’을 본받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태임이 처한 상황은 실제로 어떠했으며, 주나라와 은나라 간의 천하쟁탈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는가? ♣ 이율곡을 비롯한 네 형제들의 이름에 ‘임금 왕(王)’자가 들어간 까닭은 무엇인가? ♣ 사임당은 어렸을 때부터 안견의 산수화를 교재로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는데, 그렇다면 현재 전해지고 있는 산수화 작품들이 한 손에 꼽을 정도밖에 안 되는 건 왜 그럴까? ♣ 송시열이 신사임당 묘소의 소재지로 기록한 ‘두문리’는 현재의 자운산 자리가 맞는가? 혹시 다른 곳은 아닌가? ♣ 사임당이 동시대의 비범했던 여성들의 삶에서 보고 배운 바는 없을까? ♣ 신사임당 초상화에서 옷매무새와 손 모양 등은 16세기 사대부 부인의 차림새가 맞는가? 저자 이영호는 이 같은 문제들을 놓고 관련 기록과 함께 관계자들을 발로 찾아다니면서 그 답을 모색해 나간다. 그 결과 이제까지의 사임당 상과는 완전히 다른,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사임당 이미지가 구축되어 나간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 책은 대화식으로 풀어나가기에 누구나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다. 또한 곳곳에 사임당의 산수화와 초충도 그리고 서화, 각종 현장 사진 등 풍성한 화보들을 실어놓았기에 독자들이 저자의 탐구에 함께 동참한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사임당은 현모양처인가? 아니면 조선시대의 여걸인가? 저자의 안내에 따라 이제부터 함께 답사여행을 떠나 보자. 독창성이 안겨주는 즐거움 독창적인 문제의식, 특이한 시각은 언제 어느 때나 우리를 즐겁게 한다. 모든 것이 천편일률적인 무미건조함에 빠져 있을 때, 이러한 독창성은 우리의 안일함을 일깨우는 경종을 울린다. 저자 이영호의 문제의식은 사뭇 독창적인 정도를 넘어, 어떤 계기로 이 같은 독창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완전히 다른 사임당 상을 창출해 냈는지 거의 불가사의하다는 인상마저 안겨준다. ‘사임당’이란 당호를 둘러싼 주나라와 은나라 간의 쟁투, 이율곡 형제들의 이름에 들어간 ‘임금 왕(王)’자의 의미, 사임당의 산수화 작품들의 행방에 대한 의문, 사임당의 묘소 자리인 ‘두문리’가 현재 어느 위치인지에 대한 탐구, 동시대의 비범했던 여성들의 삶에 대한 고찰, 신사임당 초상화에 대한 의문 등 독특한 문제의식들이 이 책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 아울러, 이 책에는 저자의 독창적인 문제의식에 걸맞게 참신한 개념들이 자주 등장한다. “여걸 사임당” “태교에 대한 정치적인 의미” “친가와 외가 모두 고려 개국공신들의 후손들” “사임당은 영재교육의 희생자” “원조 한류 스타 황진이” 등등은 이제까지 틀에 박힌 사고방식에 맴돌던 독자들의 뇌리를 세차게 흔들고 지나갈 것이다. 독자들은 마치 흥미진진한 이야기책을 읽어나가는 듯한 기분으로 이 모든 탐구를 저자와 함께 즐기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신사임당의 묘소 자리인‘두문리’는 요즘의 어느 지명을 가리키는가? 학술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신사임당 묘소의 위치 ‘두문리’를 둘러싼 의문은 이 책의 백미로 꼽을 수 있겠다. 흔히들 ‘두문리’의 위치를 현재의 자운산 위치로 알고 있는데, 저자는 이 같은 통념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 답을 모색해 나간다. 그 결과는 근대지도에 생생히 실려 있다. 이것은 너무나 간단하고 명쾌한 결론이라, 한편으로는 왜 이처럼 간단한 문제가 이제까지 전공학자들의 날카로운 눈을 피해 갔는지 불가사의한 느낌마저 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정보가 공개되는 인터넷 시대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한마디로, 경이롭고도 간단 명쾌한 결론이다. 쉽고 재미있고 다채로운 모자이크 이 책의 곳곳에는 현장 답사를 연상시키는 화보들이 풍성하게 실려 있다. 사임당의 주요 그림과 글씨는 말할 것도 없고, 오죽헌이나 율곡선생유적지 등의 사진들, 이율곡의 ‘선비행장(先?行狀)’ 원문, 심지어는 사임당 드라마의 몇몇 촬영지의 사진들까지 눈을 즐겁게 한다. 그야말로 다채로운 모자이크다. 독자들은 쉽고 재미있는 대화식 이야기, 저자의 독창적인 문제의식과 시각, 답사 여행을 함께 떠나는 듯한 화보집 등과 더불어 풍성한 만찬을 즐길 차례이다. 그리하여 이제까지 상투적으로만 생각해 오던 틀을 깨고, 21세기의 시각에서 신사임당의 이미지를 재구성해 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독특한 묘미일 것이다. 바로 이러한 것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신사임당의 모든 것”이 아니겠는가. { 책속으로 추가 } “사임당은 어려서부터 어머니 용인 이씨가 자수 놓는 걸 보고 흉내를 냈는데요. 이사온은 외손녀의 그런 재능을 보고 1510년 무렵이던 일곱 살 때부터는 그림을 가르치면서 교재로 안견의 산수화를 사줬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안견은 세종대왕 시절부터 조선을 대표하는 유명한 화가였거든요.” “그래?” “그렇다면 사임당은 산수화를 먼저 그리면서 그림 실력을 키운 게 맞는 거죠.” “아, 그렇지! 맞네. 산수화를 그리면서 그림 공부를 했으니까.” “그런데 지금까지 전해지는 사임당의 그림들은 풀과 벌레를 그린 초충도(草蟲圖)가 대부분이에요. 그리고 글씨도 일부 있고요. 분명히 산수화를 많이 그렸을 텐데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산수화 작품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밖에 없고요.” 장민석 대표가 입맛을 다셨다. 안타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 나타나는 버릇이었다. (95~97쪽) “그럼 태임의 태교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설명하기로 하지. …… 우선 ‘시경’에는 이렇게 나와. ‘태임의 성품은 단정하고 한결같으며 장중하여 오직 덕을 행했다. 문왕을 임신해서는 눈은 사악한 빛을 보지 않았고 귀는 음란한 소리를 듣지 않았으며 입은 오만스런 말을 하지 않았다. 서 있을 때는 발을 헛딛지 않고 다닐 때는 걸음을 천천히 하며 자리가 바르지 않으면 앉지 않고 고기도 바르게 베인 것이 아니면 먹지 않고 밤이면 소경으로 하여금 글을 읽고 시를 외우게 하여 마음을 화락(和樂)하게 하였다.’ 또, 중국 한나라의 유향(劉向)이 지은 ‘열녀전(烈女傳)’이나 ‘소학’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실려 있지. 태임이 태교를 엄격히 했다는 내용이야. 이런 정도의 책들은 아마 사임당이 10대 시절에 다 마스터했을 거야.” (139~140쪽) 파주 두문리에 사임당 묘소가 있었다는 기록은 송시열이 쓴 ‘신사임당 묘갈’에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그 지명은 바뀌지 않았거든. 신사임당 묘갈의 첫 구절이 ‘파주의 두문리’라는 위치를 명확하게 표기하고 있어. 하지만 문제는 옛 지명과 현재 지명이 다르다는 거야. 그래서 옛 지명이 요즘 어느 곳을 말하는지 그것을 알아내는 게 중요하지. (151쪽) ‘훗날 송시열도 이곳에 와서 봤던 거야. 자신의 스승 이율곡이 태어나고 자란 곳, 오죽헌을 말이지. 그런데 이율곡에 대해 학문적 성과를 기록하고 이론을 정립하다 보니 뭔가 더 많은 자료가 필요했을 거야. 이율곡이 어려서부터 학문에 매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송시열이 이율곡의 아버지 이원수에 대해 조사해보니 별것 없었거든. 그래서 외할아버지 신명화까지 거슬러 올라갔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전형적인 어머니상인 용인 이씨를 자연스레 알게 되었을 거야. 물론 이들의 딸이자 이율곡의 어머니인 사임당까지 내려오게 된 것은 당연한 순서일 테고. 결국 송시
이 책 『사임당, 우리가 알지 못했던 신사임당의 모든 것』은 남다른 시도를 해보았다.
사임당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을 뼈대로 하되 이율곡, 이사온, 신명화, 용인 이씨, 주나라 문왕, 성리학, 송시열, 조선의 당파싸움 등, 사임당의 생애 전후로 벌어진 조선의 역사를 조망하면서 사임당의 모든 것을 담아내고자 최선을 다했다.
특히 서울과 강릉, 파주와 평창 현지를 낱낱이 답사하며 사임당의 발자취를 기록하고, 사임당과 이율곡이 남편이자 아버지 이원수를 만나러 왕래한 길을 뒤따르며 사임당이 친정어머니에 대해 지녔던 애절한 연민과 효성, 아버지 신명화를 극진히 기리던 마음, 남편과 아내의 지조를 이야기하던 배경을 담았다.
사임당이라는 호를 지은 이유와 주나라의 역사적 배경, 사임당 시절에 친영례와 가례의 혼용으로 벌어진 문화적 변혁, 이율곡이 직접 기록한 사임당의 행적, 유교를 숭상하던 조선 시대에 이율곡이 금강산의 절에 잠시 들어가게 되었던 배경과 다시 나온 이유를 설명했다. 이율곡과 송시열의 관계, 그리고 당시의 정치상황 등에 초점을 맞춰 사임당의 자녀 훈육과 혼인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다루었다.
(글 들어가며 중에서)
“…… 어쨌든 사임당이라는 호의 뜻은 주 문왕의 어머니 ‘태임(太任)’을 본받겠다는 것인데, 신사임당이 그렇게 호를 정한 이유는 뭘까요?”
“주(周)나라를 세운 무왕(武王)의 아버지, 즉 주 문왕(사후에 추존됨)을 낳은 태임을 본받겠다 한 거죠. 그래서 사임당은 유명한 서화가나 현모양처로만 알려지기를 원했다기보다는, 제 생각이지만, 조선의 왕을 낳은, 그게 아니면 왕의 아버지를 낳은 어머니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해요. 사임당은 그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현모양처만이 아닌, 그 이상이라는 거죠.”
“조선의 왕을? 아니면 조선의 왕의 아버지를 낳은 어머니? 사임당이라는 호 하나 지은 것을 가지고 너무 비약시킨 억측 아닌가요? 그렇게까지 가정한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사임당 이미지가 확 뒤바뀌게 되는데요? 현모양처 상과는 너무 차이가 나잖아요? 그렇다면 뭐랄까, 국가의 리더를 낳은 어머니? 아무튼 왕권을 바라보는 야심가처럼 보이게 되잖아요?”
고서점 주인은 나를 보며, 말도 안 되는 억측은 하지 말라는 표정이었다. 기존의 사임당 이미지를 내심 유지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36쪽)
“신사임당의 가문은 고려 개국공신들의 후손들이 모인 집안이에요. 그런데 당시의 나라는 조선이란 말이죠. 그런데 신인선이 사임당이란 당호를 짓고 중국의 태임을 본받겠다고 한다?”
“…….”
“보세요, 고려와 조선 사이에 중국의 은나라와 주나라의 역사가 매치되는 거 아니겠어요?”
김영수는 내 표정을 살폈다.
그러니까 김영수의 이야기인즉, 제후국 주나라가 상국인 은나라를 치고 명실공히 주나라 시대를 연 것처럼 사임당의 가문도 고려 개국공신의 정신(?)을 이어받아 조선에서 다시 고려 시대를 열자는 목표가 있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너무 앞서나간 추측이기도 했다. 조선에서 다시 고려 시대를 연다기보다는 조선에서 왕의 신임을 얻어 세력을 넓힌다는 추정이 더 현실성 있을 것이다.
(55쪽)
“사임당은 아마도 영재교육의 피해자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네에?”
“아니, 왜 요즘도 문제잖아요? 부모들이 어린애들을 영재로 키우니 뭐니 하며 여러 학원 보내면서 놀고 싶은 애들 못 괴롭혀서 난리인 가정들이 많잖아요? 초등학생이 학교숙제랑 학원숙제 하느라 새벽 두 시에 잔다는 얘기도 들었던 것 같고, 영어학원이랑 음악학원도 다니는데 피아노 선생이 아이에게 피아노를 왜 치냐고 묻자 ‘그냥 엄마가 시켜서 해요’라고 대답했다고 하잖아요? 그리고 또 뭐라더라? 아이가 뮤지컬 학원엘 다니는데 그거 왜 하냐고 물었더니 ‘내가 이걸 하면 엄마가 좋아해요’라고 대답했다고도 하고. 이 작가님,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거 몰라요? 나도 다 아는데. 고서점을 하고는 있지만 우리가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면 안 되잖아요?”
고서점 주인은 연신 싱글벙글 표정이었다. 사임당에 대해 자기 나름의 판단을 했고 그걸 알려주겠다는 신호였다.
고서점 주인의 이야기인즉, 영재교육이 문제였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사임당이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리고 글을 배우고 했던 게 모두 사임당의 아버지 신명화의 닦달 때문이라는 이야기였다. 요즘 문제가 되는 사교육 같은 것과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영재교육이 조선 시대에도 분명 있었다는 주장이었다.
(60쪽)
“사임당은 어려서부터 어머니 용인 이씨가 자수 놓는 걸 보고 흉내를 냈는데요. 이사온은 외손녀의 그런 재능을 보고 1510년 무렵이던 일곱 살 때부터는 그림을 가르치면서 교재로 안견의 산수화를 사줬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안견은 세종대왕 시절부터 조선을 대표하는 유명한 화가였거든요.”
“그래?”
“그렇다면 사임당은 산수화를 먼저 그리면서 그림 실력을 키운 게 맞는 거죠.”
“아, 그렇지! 맞네. 산수화를 그리면서 그림 공부를 했으니까.”
“그런데 지금까지 전해지는 사임당의 그림들은 풀과 벌레를 그린 초충도(草蟲圖)가 대부분이에요. 그리고 글씨도 일부 있고요. 분명히 산수화를 많이 그렸을 텐데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산수화 작품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밖에 없고요.”
장민석 대표가 입맛을 다셨다. 안타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 나타나는 버릇이었다.
(95~97쪽)
“그럼 태임의 태교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설명하기로 하지. ……
우선 ‘시경’에는 이렇게 나와. ‘태임의 성품은 단정하고 한결같으며 장중하여 오직 덕을 행했다. 문왕을 임신해서는
눈은 사악한 빛을 보지 않았고
귀는 음란한 소리를 듣지 않았으며
입은 오만스런 말을 하지 않았다.
서 있을 때는 발을 헛딛지 않고
다닐 때는 걸음을 천천히 하며
자리가 바르지 않으면 앉지 않고
고기도 바르게 베인 것이 아니면 먹지 않고
밤이면 소경으로 하여금 글을 읽고 시를 외우게 하여
마음을 화락(和樂)하게 하였다.’
또, 중국 한나라의 유향(劉向)이 지은 ‘열녀전(烈女傳)’이나 ‘소학’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실려 있지. 태임이 태교를 엄격히 했다는 내용이야. 이런 정도의 책들은 아마 사임당이 10대 시절에 다 마스터했을 거야.”
(139~140쪽)
파주 두문리에 사임당 묘소가 있었다는 기록은 송시열이 쓴 ‘신사임당 묘갈’에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그 지명은 바뀌지 않았거든. 신사임당 묘갈의 첫 구절이 ‘파주의 두문리’라는 위치를 명확하게 표기하고 있어. 하지만 문제는 옛 지명과 현재 지명이 다르다는 거야. 그래서 옛 지명이 요즘 어느 곳을 말하는지 그것을 알아내는 게 중요하지.
(151쪽)
‘훗날 송시열도 이곳에 와서 봤던 거야. 자신의 스승 이율곡이 태어나고 자란 곳, 오죽헌을 말이지. 그런데 이율곡에 대해 학문적 성과를 기록하고 이론을 정립하다 보니 뭔가 더 많은 자료가 필요했을 거야.
이율곡이 어려서부터 학문에 매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송시열이 이율곡의 아버지 이원수에 대해 조사해보니 별것 없었거든. 그래서 외할아버지 신명화까지 거슬러 올라갔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전형적인 어머니상인 용인 이씨를 자연스레 알게 되었을 거야. 물론 이들의 딸이자 이율곡의 어머니인 사임당까지 내려오게 된 것은 당연한 순서일 테고. 결국 송시열은 이율곡을 대학자로 키워낸 데는 어머니 사임당의 역할이 중요했다는 사실을 간파했을 거야.’
오죽헌을 돌아보고 얻은 소득은 사임당의 모성애뿐만이 아니었다. 사임당이 태어나고 자란 곳, 그곳에서 다시 이율곡을 낳고 키우면서 사임당이 느끼고 생각했던 자녀교육의 목표, 그리고 사임당 스스로의 역할과 임무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이해가 되었다.
(236쪽)
“나는 황진이처럼 뛰어난 여성들에 대해서는 최소한 지위상승만은 시켜줘야 한다고 생각해. 지금은 더 이상 고려 시대도 아니고 조선 시대도 아니잖아? 그렇다면 황진이 같은 여성들은 지금 이 시대에라도 그들의 신분을 계속 기생으로 푸대접할 것이 아니라 최소한 예능인 정도로는 바꿔놔야 한다고 생각해.”
김 박사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지금 그 말, 황진이처럼 당대에 뛰어난 여성 인물들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옛날 그대로 기생이니 첩의 딸이니 하는 인식에만 머물러 있다면 후대에도 별로 나아질 게 없을 거라는 점이다. 자기가 처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능을 키우고 학문과 예술에 정진하여 일가를 이룬 여성 인물들에 대해서는 지금 시점에서라도 그들의 지위를 격상시켜주자는 주장이다.
(281쪽)
어머니는 항상 강릉 친정을 그리워하였는데, 밤이 되어 인기척이 없어진 후에야 눈물로 밤을 지새우고 새벽 때까지도 잠을 못 잔 날들이 있었다. 하루는 심씨 성을 가진 친척어른이 데리고 온 첩(시희侍姬)이 거문고를 연주하였는데 사임당이 눈물을 흘리며 “거문고 소리가 그리움이 있는 사람을 울게 합니다”고 하자 다른 사람들도 같이 슬퍼하였지만 사임당의 속뜻을 알아주는 이는 없었다.
(303~304쪽)
“그래서 우리가 알던 사임당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조망할 시기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모양처 사임당? 맞아요. 하지만 그뿐이었을까요? 조금 더 크게 봐야 해요. 사임당은 나라의 큰 인물을 키워내고자 평생을 바친 진정한 어머니라고 할 수 있고요, 삶의 모든 면에서 자식들에게 자신부터 모범을 보이며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배운다는 도리를 몸소 실천한 이 시대의 어머니인 것이죠.
사임당은 또 고려 개국공신 가문 출신이었잖아요? 아들들의 한자 이름 옆에다 ‘임금 왕(王)’의 의미를 모두 넣은 것만 봐도 그 원대한 포부가 그려져요. 조선 땅에서 자신의 아들들이 주나라의 문왕과 무왕과 같이 당당한 인물로 성장하여 자기 뜻을 펼치길 기원했던 것으로 볼 수 있죠. 그래서 사임당을 가리켜 시대의 여걸이라고 봐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네. 일리가 있게 들리네요.”
“멋지잖아요? 우리 역사에서도 사임당 같은 시대의 여걸이 존재한다는 것이요. 1만 원 권 지폐에는 세종대왕이 있지요? 그럼 5만 원 권 지폐에 사임당이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것이죠. 사임당은 이 시대의 어머니이자 여걸이니까요.”
(322~323쪽)
사임당에 대한 이 같은 궁금증들을 염두에 둔 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동안 새로운 사실들이 하나 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사임당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고, 어쩌면 사임당은 우리가 생각하던 현모양처 이상의, 시대를 내다보고 미래를 준비한,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기억해야 할 여걸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새록새록 피어났다. 사임당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러한 경외감 내지는 깊은 숭고함에 대한 존경심은 이루 말할 것도 없었다. 이 책의 부제를 ‘우리가 알지 못했던 신사임당의 모든 것’이라고 달게 된 이유다.
(글 나오며 중에서)
<출판사 리뷰>
독창성이 안겨주는 즐거움
독창적인 문제의식, 특이한 시각은 언제 어느 때나 우리를 즐겁게 한다. 모든 것이 천편일률적인 무미건조함에 빠져 있을 때, 이러한 독창성은 우리의 안일함을 일깨우는 경종을 울린다.
저자 이영호의 문제의식은 사뭇 독창적인 정도를 넘어, 어떤 계기로 이 같은 독창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완전히 다른 사임당 상을 창출해 냈는지 거의 불가사의하다는 인상마저 안겨준다.
‘사임당’이란 당호를 둘러싼 주나라와 은나라 간의 쟁투, 이율곡 형제들의 이름에 들어간 ‘임금 왕(王)’자의 의미, 사임당의 산수화 작품들의 행방에 대한 의문, 사임당의 묘소 자리인 ‘두문리’가 현재 어느 위치인지에 대한 탐구, 동시대의 비범했던 여성들의 삶에 대한 고찰, 신사임당 초상화에 대한 의문 등 독특한 문제의식들이 이 책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
아울러, 이 책에는 저자의 독창적인 문제의식에 걸맞게 참신한 개념들이 자주 등장한다. “여걸 사임당” “태교에 대한 정치적인 의미” “친가와 외가 모두 고려 개국공신들의 후손들” “사임당은 영재교육의 희생자” “원조 한류 스타 황진이” 등등은 이제까지 틀에 박힌 사고방식에 맴돌던 독자들의 뇌리를 세차게 흔들고 지나갈 것이다.
독자들은 마치 흥미진진한 이야기책을 읽어나가는 듯한 기분으로 이 모든 탐구를 저자와 함께 즐기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신사임당의 묘소 자리인‘두문리’는 요즘의 어느 지명을 가리키는가?
학술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신사임당 묘소의 위치 ‘두문리’를 둘러싼 의문은 이 책의 백미로 꼽을 수 있겠다.
흔히들 ‘두문리’의 위치를 현재의 자운산 위치로 알고 있는데, 저자는 이 같은 통념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 답을 모색해 나간다. 그 결과는 근대지도에 생생히 실려 있다. 이것은 너무나 간단하고 명쾌한 결론이라, 한편으로는 왜 이처럼 간단한 문제가 이제까지 전공학자들의 날카로운 눈을 피해 갔는지 불가사의한 느낌마저 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정보가 공개되는 인터넷 시대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한마디로, 경이롭고도 간단 명쾌한 결론이다.
쉽고 재미있고 다채로운 모자이크
이 책의 곳곳에는 현장 답사를 연상시키는 화보들이 풍성하게 실려 있다. 사임당의 주요 그림과 글씨는 말할 것도 없고, 오죽헌이나 율곡선생유적지 등의 사진들, 이율곡의 ‘선비행장(先妣行狀)’ 원문, 심지어는 사임당 드라마의 몇몇 촬영지의 사진들까지 눈을 즐겁게 한다. 그야말로 다채로운 모자이크다.
독자들은 쉽고 재미있는 대화식 이야기, 저자의 독창적인 문제의식과 시각, 답사 여행을 함께 떠나는 듯한 화보집 등과 더불어 풍성한 만찬을 즐길 차례이다. 그리하여 이제까지 상투적으로만 생각해 오던 틀을 깨고, 21세기의 시각에서 신사임당의 이미지를 재구성해 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독특한 묘미일 것이다.
바로 이러한 것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신사임당의 모든 것”이 아니겠는가.
목차
글 들어가며_
사임당,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녀의 모든 것
제1부 사임당이 되다
내 이름은 ‘신인선’
⇒ 사임당의 가족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들
사임?당(師任堂)이 되다
⇒ 사임당, 태임(太任)을 본받겠다
운명을 가른 역사 ‘기묘사화’
⇒ 신명화, 집안의 여자들을 교육시키기 시작하다
아버지 ‘신명화’와 어머니 ‘용인 이씨’
⇒ 부모의 보살핌 아래 미래를 준비하다
동몽선습, 명심보감, 사서 육경, 주자를 배우다
⇒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배우다
부덕, 소학, 태교, 가례를 배우다
⇒ 부덕(婦德)의 길
제2부 사임당의 발자취를 찾아서
남편 ‘이원수’와의 줄다리기
⇒ 강해지셔야 합니다
이율곡의 심경을 더듬어 보다
⇒ 33세에 얻은 3남 ‘이이’
시댁, 경기도 파주군 율곡리
⇒ 화석정 그리고 파주 율곡선생유적지
친정, 강원도 강릉부 죽헌리 북평촌
⇒ 오죽헌을 반드시 가봐야 하는 이유
잠시 머물다,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백옥포리
⇒ 발길 멈추는 고개 하나 사이에 머물다
제3부 사임당 그리고 네 명의 여성들
문정왕후의 수렴청정
⇒ 서서히 드러나는 인연의 고리
정난정, 첩의 딸로서 신분제도를 철폐하다
⇒ 남편의 의미
예능인 황진이에 대한 재평가
⇒ 신분은 타고나지만 배움은 하기 나름이다
권력 남용으로 몰락한 장녹수
⇒ 정치 그리고 헛된 권력의 끝
제4부 사임당을 기록하다
이율곡, 어머니 ‘사임당’의 행적을 적다
⇒ 신사임당을 기록한 가족의 유일한 이야기
송시열, 사임당을 기억하다
⇒ 신사임당 기록에서 처음 드러나는 이야기
마무리를 하며_
신사임당 초상화에 대한 의문
글 나오며_
사임당, 새로운 시각으로 봐야 하는 이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