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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풍속 [초판본] 1939년 학예사 오리지널 디자인

김기림 저 | 소와다리 | 2016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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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8046767 / 192쪽 136 x 1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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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역사에서 지원진 근대 한국 모더니스트의 대부
김기림의 흔적을 초판본에서 더듬다
1930년대 정지용과 쌍벽을 이룬 모더니스트 시인 김기림은 전통적 도덕과 권위를 주요 제재로 리듬감을 중시하던 기존 시 형태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등, 도시 문명을 자신만의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모더니즘을 한국에 소개하였으며 이상, 백석, 정지용을 세상에 알리는 등 문학평론도 병행하였다. 일제의 조선어 금지 정책으로 신문, 잡지가 폐간되고 친일 문인들의 글이 전쟁 동원의 수단으로 쓰이자 절필하고 함경도로 귀향하여 해방 때까지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고 광복 후에야 문학 활동을 재개했으나 얼마 후 한국전쟁 일어났다. 임화와의 친분으로 좌익계열 문학 단체에 잠시 이름을 올렸다가 탈퇴하고 좌익에서 전향한 인사들이 모인 반공단체 <보도연맹>에 가입한 이력 때문에 북쪽에서는 변절자, 남쪽에서는 빨갱이라는 낙인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이승만 대통령이 한강다리를 폭파하여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한 채 남아 있다가 인민군에게 납북된 이후로는 생사를 확인할 수 없다.
보도연맹이 인민군에게 협조할 것을 염려한 이승만 정부는 보도연맹원 처형을 지시했는데 이후 국가 차원의 <보도연맹 학살사건> 은폐 과정에서 김기림의 흔적은 근대 문학사에서 지워지고 말았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역사에서 지원진 근대 한국 모더니스트의 대부 김기림의 흔적을 초판본에서 더듬다 1930년대 정지용과 쌍벽을 이룬 모더니스트 시인 김기림은 전통적 도덕과 권위를 주요 제재로 리듬감을 중시하던 기존 시 형태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등, 도시 문명을 자신만의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모더니즘을 한국에 소개하였으며 이상, 백석, 정지용을 세상에 알리는 등 문학평론도 병행하였다. 일제의 조선어 금지 정책으로 신문, 잡지가 폐간되고 친일 문인들의 글이 전쟁 동원의 수단으로 쓰이자 절필하고 함경도로 귀향하여 해방 때까지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고 광복 ... 역사에서 지원진 근대 한국 모더니스트의 대부 김기림의 흔적을 초판본에서 더듬다 1930년대 정지용과 쌍벽을 이룬 모더니스트 시인 김기림은 전통적 도덕과 권위를 주요 제재로 리듬감을 중시하던 기존 시 형태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등, 도시 문명을 자신만의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모더니즘을 한국에 소개하였으며 이상, 백석, 정지용을 세상에 알리는 등 문학평론도 병행하였다. 일제의 조선어 금지 정책으로 신문, 잡지가 폐간되고 친일 문인들의 글이 전쟁 동원의 수단으로 쓰이자 절필하고 함경도로 귀향하여 해방 때까지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고 광복 후에야 문학 활동을 재개했으나 얼마 후 한국전쟁 일어났다. 임화와의 친분으로 좌익계열 문학 단체에 잠시 이름을 올렸다가 탈퇴하고 좌익에서 전향한 인사들이 모인 반공단체 〈보도연맹〉에 가입한 이력 때문에 북쪽에서는 변절자, 남쪽에서는 빨갱이라는 낙인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이승만 대통령이 한강다리를 폭파하여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한 채 남아 있다가 인민군에게 납북된 이후로는 생사를 확인할 수 없다. 보도연맹이 인민군에게 협조할 것을 염려한 이승만 정부는 보도연맹원 처형을 지시했는데 이후 국가 차원의 〈보도연맹 학살사건〉 은폐 과정에서 김기림의 흔적은 근대 문학사에서 지워지고 말았다. 역사에서 지워진 근대 한국 모더니스트의 대부 1908년 함경북도 출생. 1930년대 정지용과 쌍벽을 이룬 모더니스트 시인 김기림金起林, 본명 김인손金仁孫. 보성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도호쿠 제국대 학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일보 기자를 지내면서 작품활동과 문학평론을 병행하였다. 기성 도덕과 전통적 권위를 주요 제재로 리듬감을 중시하던 기존 시 형태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등, 도시 문명을 자신만의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모더니즘을 소개하는 동시에 그를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였다. 이상, 백석, 정지용 등은 그의 평론으로 인해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대 한국 모더니스트의 대부 김기림 김기림은 일제의 병참 기지화 정책으로 급속한 공업화가 이루어지고 서양 문물이 대거 유입되는 상황에서 식민지 조선의 암울한 도시적 정서와 근대화에 대한 환상을 주로 다룬 한국적 모더니즘을 추구하였는데, 1930년대 유행처 럼 번지던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의 경향문학이 일제의 탄압으로 쇠락의 길을 걷자 민족문학에 대한 대안을 모더니즘에서 찾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같은 보성고등보통학교 출신인 이상, 임화 등과 선후배 관계로 가깝게 지냈고 이태준, 정지용, 박태원, 이상, 이효석 등 모더니스트들이 모인 문학 단 체 〈구인회〉가 그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침체된 한국 문단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특히 시인 이상과는 각별한 사이로 이상은 김기림의 저서를 도맡아 편집하 였고 훗날 이상이 세상을 떠나고 한국이 광복을 맞이한 후인 1949년, 김기림은 이상의 작품을 모아 『이상선집』을 출간했다. 김기림의 흔적을 초판본에서 찾다 일제의 조선어 금지 정책이 날로 심해짐에 따라 신문과 잡지가 줄줄이 폐간되고 친일로 돌아선 문인들의 글이 전쟁 동원의 수단으로 쓰이자 절필하고 함경 도로 귀향하여 해방 때까지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광복 후 상경한 김기림은 문단과 학계를 누비며 활동을 재개했지만 그도 잠시, 곧 한국전쟁이 발발하 였다. 임화와의 친분으로 좌익 계열 문학단체에 잠시 이름을 올리기도 했지만 곧 빠져나와 좌익에서 전향한 사람들이 모인 반공 단체 〈보도연맹〉에 가입했 던 김기림은 남과 북 모두에게 변절자로 낙인 찍혔고 이승만 대통령이 한강 다리를 폭파하여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되자 인민군에게 납북된 후 생사를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 보도연맹원이 인민군에게 협조할 것을 염려한 이승만 정부는 연맹원을 처형할 것을 지시, 전쟁이 끝나고 이른바 ‘보도연맹 학살사건’ 을 은폐하는 과정에서 김기림의 흔적은 문학사에서 전부 지워지고 말았다. 김기림 시집 〈태양의 풍속〉은 1939년 9월 초순 학예사에서 문고본으로 처음 출간이 되었으나 보름 후 화가 김만형이 디자인한 양장판이 이어서 출간되었고, 이 책은 양장판을 저본으로 초판본의 활자와 디자인을 충실히 재현하였다.

저자 소개

김기림은 1908년 5월 11일(음력 4월 12일) 함경북도 학성군(후에 성진으로 편입됨) 학중면 임명동 275번지에서 부친 김병연과 모친 밀양 박씨 사이의 6녀 1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아명은 인손(寅孫), 호는 편석촌(片石村)이다. 등단 초기 간간이 G. W.라는 필명으로 활동한 바도 있다.
어린 시절 고향의 임명보통학교에 입학, 졸업하고 한동안 서당에서 한학을 배운 적이 있다. 13세에 성진의 농학교(중등과정)에 진학하였으나 1년 수학 직후 서울로 올라와 보성고보에 다니게 된다. 보성 3학년 재학 도중 갑작스럽게 병을 얻어 고향에 내려와 요양을 하게 되는데, 건강을 회복하고 난 후 학교로 복학하지 않고 곧바로 일본 유학을 떠나 당시 도쿄 소재의 메이쿄(名敎)중학[현재는 도쿄 근처 지바(千葉) 현 우라야스(浦安) 시 소재의 도카이(東海)대학 부속 우라야스고교]에 편입, 졸업한다. 졸업 이후 1926년 봄, 니혼(日本)대학 전문부 문학예술과로 진학하고 1930년 봄에 동 대학을 수료한다.
대학 재학 기간 중 서구 모더니즘의 여러 사조에 깊은 영향을 받은 그는 귀국과 더불어 ≪조선일보≫ 사회부, 학예부 기자로 근무하면서 시 창작과 비평 발표 등의 문필 활동에도 힘쓴다. 지금까지 알려진 그의 최초의 글은 니혼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직후인 1930년 4월 27일에서 5월 3일까지 발표한 <오후와 무명작가들?일기첩에서>로 기록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를 평론으로 분류하기도 하나, 엄밀히 말한다면 문학적 감상을 섞은 단상 형태의 수필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본격적인 의미에서 최초의 평론은 같은 해인 1930년 7월 24일에서 30일까지 ≪조선일보≫ 지상에 편석촌이라는 필명(호)으로 총 6회에 걸쳐서 연재한 <시와 시인의 개념?근본적 의혹에 대하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후 그는 활발하게 서구 모더니즘에 영향을 입은 시작 활동과 비평 활동을 꾸준히 병행하면서 당대 문단의 중심을 향해 자신의 입지를 넓혀 나간다. 그런 와중에 1933년 이태준, 정지용 등과 함께 모더니즘 문인들의 친목 단체인 ‘구인회’를 결성하여 모더니즘문학의 보급과 활성화를 위해 노력한다. 1935년은 그의 문단 활동이 정점에 이른 시기다. 대표작이기도 한 장시 <기상도>를 잡지 ≪중앙≫과 ≪삼천리≫에 연재하는 한편, 그의 초기 모더니즘시론의 핵심을 담았다고 평가받는 <오전의 시론> 시리즈를 ≪조선일보≫ 지면에 장기간에 걸쳐 의욕적으로 연달아 발표한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한 단계 도약을 위해 스스로 모험을 감행한다. 보다 체계적이고 심도 있는 학문 연구를 위해 재도일하여 도호쿠(東北)제대 영문과에 입학한 것이다. 도호쿠제대 재학 기간 동안 조선 내 그의 문단 활동은 잠시 주춤하는 듯한 인상을 보이기도 하나, 이 기간 그는 영문학의 새로운 학문적 원리와 이론들을 받아들여 자신의 문학관을 심화하는 한편, 보다 폭넓은 사회 역사적·철학적 토대 위에 종래 자신이 추구했던 모더니즘문학 운동의 진로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다.
1939년 동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그는 조선일보사 기자로 복직함과 함께 조선 문단 전면에 재등장한다. 복귀 후 한동안 문단 활동에 주력하지만, 1940년대로 넘어서자 점차 조여드는 일제의 압박에 회의와 위기감을 느끼고 고향으로 내려가 한동안 절필 상태로 지내게 된다. 친일 문학인들과 단체의 끈질긴 동참 권유를 뿌리치고 긴 침묵의 기간을 보낸 것이다.
1945년 해방 이후 다시 가족과 더불어 서울로 올라온 그는 그간의 침묵을 만회라도 하듯 문단과 학계 양쪽에서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 준다. 그러나 1950년 6·25동란이 발발된 직후 서울 거리에서 북한 기관원들에게 연행당한다. 그 뒤 북으로 이송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북한 내에서 그의 행적이나 활동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뚜렷하게 드러난 바가 없다. 시론집으로 ≪시론≫(1947)과 ≪시의 이해≫(1950) 등이 있으며 시집으로는 ≪기상도≫(1936), ≪태양의 풍속≫(1939), ≪바다와 나비≫(1946), ≪새 노래≫(1948) 등이 있다.

책 속에서

목차

목차
어떤 『시의 벗에게』
마음의 의상
태양의 풍속 / 기차 / 오후의 꿈은 날줄을 모른다 / 연애의 단면 / 화물자동차 /해상 / 대중화민국행진곡 / 해도에 대하야 / 비 / 방 / 가을의 과수원 / 옥상정원
화술
1. 오후의 예의
향수 / 첫사랑 / 람푸 / 꿈꾸는 진주여 바다로 가자 / 감상풍경 / 이별 / 가거라 새로운 생활로 / 먼 들에서는· 우울한 천사 / 봄은 전보도 안치고 / 기원 / 커피잔을 들고 /
2. 길에서(제물포 풍경)
기차 / 인천역 / 조수 / 고독 / 이방인/밤 항구 / 파선 / 대합실
함경선 오백킬로 여행 풍경
서시 / 대합실 / 식당차 / 마을 / 풍속 / 함흥평야 / 장 / 동해 / 동해수 / 벼록이 / 바위 / 물 / 따리아/ 산촌
3. 오전의 생리
기빨 / 분수 / 바다의 아침 / 제비의 가족 / 나의 소제부 / 들은 우리를 부르오 / 새날이 밝는다 / 출발· 아침비행기 / 일요일행진곡
속도의 시
스케이팅 / 여행
씨네마 풍경
호텔 / 삼월의 씨네마 - 아츰해 / 물레방아깐 / 분광기 / 개 / 강 / 어족 / 비행기 / 북행열차
앨범
오월 / 풍속 / 굴뚝
식료품점
1.초코레-트 / 2.임수 / 3.모과 / 4.밤 파고다공원 / 한강인도교 / 수욕장 / 칠월의 아가씨 / 십오야 / 새벽 / 아스팔트 / 해수욕장의 석양 / 상아의 해안 / 항해 / 가을의 태양은 플라티나의 연미복을 입고 / 하로 일이 끝났을 때 / 황혼
이동건축
훌륭한 아침이 아니냐? / 어둠 속의 노래 / 상공운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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