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고예상일 안내
주문하신 상품이 한국에서 현지 배송을 위한 출고단계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날짜입니다. 상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부적인 사정으로 인해 출고예상일에 다소 오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여러 상품(예약상품포함)을 함께 주문하신 경우 출고예상일이 가장 늦은 날짜에 맞춰 함께 배송됩니다.

ISBN : 9788967353582 / 276쪽 140 x 209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 21,600
- 16,200
- 32,400
- 19,800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150년 동안 시도된 가장 높고 단단한 유리천장 깨기! 이번에는 과연 깨질 것인가? 하수구란 하수구는 다 끌려다녔던 여성 대권 도전자들 그 도전의 역사는 길었고?야망과 실패,?의구심과 가능성으로? 점철됐다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가장 높은 유리천장은 깨진 적이 없다. 지난 150년 동안 수많은 여성이 도전해온 까닭에 그 천장에 금이 간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처럼 단단한 유리천장을 깨려 했던 여성들은 해진 대걸레처럼 온갖 구정물에 몸을 담궈야만 했다. “얼마나 낯 두꺼운 창부면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겠어요?” 저 유명한... 150년 동안 시도된 가장 높고 단단한 유리천장 깨기! 이번에는 과연 깨질 것인가? 하수구란 하수구는 다 끌려다녔던 여성 대권 도전자들 그 도전의 역사는 길었고?야망과 실패,?의구심과 가능성으로 점철됐다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가장 높은 유리천장은 깨진 적이 없다. 지난 150년 동안 수많은 여성이 도전해온 까닭에 그 천장에 금이 간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처럼 단단한 유리천장을 깨려 했던 여성들은 해진 대걸레처럼 온갖 구정물에 몸을 담궈야만 했다. “얼마나 낯 두꺼운 창부면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겠어요?” 저 유명한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쓴 해리엇 비처 스토의 발언이다. 1972년 대권에 도전했던 셜리 치점에게 사람들은 대놓고 으름장을 놓았다. “여기 말고 집에나 붙어 있으시죠.” 비하 발언은 수십 년이 흘러서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2008년 초 대통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이 뉴햄프셔에서 강연할 때 보스턴의 한 라디오 방송국 직원 두 명은 피켓을 들고 외쳤다. “내 셔츠나 다려라! 내 셔츠나 다려!” 이런 난관에도 당시 힐러리의 선거운동은 선구적인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힐러리보다 앞서 그 길을 닦은, 더 큰 역사에 주의를 기울인 사람은 없었다. 힐러리가 가장 성공한 여성 대통령 후보일진 모르나, 그 뒤엔 더 오랜 투쟁이 숨어 있다. 이 책은 바로 가장 높은 유리천장에 금을 낸 세 명의 도전자에 대해 다룬다. 1871년 첫 번째 도전자, 빅토리아 우드헐 미국 역사에서는 그간 200명을 웃도는 여성이 대통령 후보에 도전해왔는데, 그 시발점은 빅토리아 우드헐이다. 1871년 7월, 뜻밖의 후보가 갓 출범한 정당 대표로 대선 출마에 동의하는 수락서를 쓰는 일이 일어났다. 아직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지기도 전이라 그녀는 범상치 않은 여성임에 분명했다. 당시 미국은 재건시대로 남북 분리와 전쟁, 노예 해방의 결과를 받아들이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격론이 펼쳐졌다. “오늘날의 시대정신은?무한?해방입니다.?노예제의?저주가?이?땅을?뒤덮었을?때는?주춤했지만?끝없는 전투로?노예제가?폐지되고 정의의?목소리가 들리기?시작했습니다.?이제는?흑인과?평등해지고?싶어하는?미국?여성들의?열망을?비웃도록?놔둡시다.” 전국 정치 무대에 서본 여성들 중 빅토리아 우드헐만큼 파란만장한 길을 걸은 사람도 없다. 1838년 오하이오 농촌 마을에서 태어난 그녀는 사기꾼 아버지를 두었고, 어머니 록사나는 “한 번도 제정신인 적이 없는”, 조증과 울증을 널뛰는 여성이었다. 우드헐이 받은 교육은 길어야 3년이다. 열다섯에 결혼해 순탄치 못한 부부관계로 우드헐은 혼자 힘으로 사는 법을 배웠고 그러던 중 ‘심령 치료사’로서 재능을 인정받아 큰돈을 손에 쥐게 되었다. 즉 미 대선의 첫 여성 도전자는 ‘영적 능력’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특히 이때 만난 제임스 블러드 대령은 훗날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이 되면서 대권 가도를 열어주는 조력자가 된다. 심령술로 부와 명성을 얻은 우드헐(그리고 그 동생 클래플린)은 영매능력으로 주식 정보까지 내다봤고, 금과 채권을 사들이면서 엄청난 부를 모았다. 곧이어 우드헐은 여성 참정권 운동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참정권 운동가들은 우드헐 자매에게 마음을 빼앗았다. 그들은 우드헐 자매의 ‘용기, 에너지, 진취성, 외모, 매너, 여성스러운 행동’을 높이 샀다. 특히 한 기자가 썼듯이 “수려한 용모와 기품 있는 모습, 햇빛에 반짝이는 보석 같은 광채, 정신을 아득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로 인해 ‘높은 자리에 오를 여성’이란 평가를 받았다. 더욱이 우드헐이 큰 부를 바탕으로 야망을 이루는 데는 두 명의 급진주의자 남성 뮤즈가 있었다. 한 명은 그녀의 두 번째 남편 블러드 대령으로 그는 철학에 조예가 깊고 공산주의자를 자처하는 인물이었다. 다른 한 사람은 유토피아주의 철학자이자 급진적 노동운동가인 스티븐 앤드루스였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우드헐의 대선 출마를 도왔다. 우드헐의?대통령?출마는?두?단계로 진행됐다.?우선?1870년?봄?『뉴욕?헤럴드』에?편지를?보내?출마?의사를 밝혔다.?그녀가 특이한 후보인 것은 단지?투표권이 없는?여자라거나?헌법에?명시된?대통령 출마?최소?연령(35세)에?못 미쳐서만은 아니었다.?그녀가 ‘자기 지명 후보’인 까닭도 있었다. 우드헐이 1870년 출마 선언을 한 주목적은 “여성이 남성과 정치적 평등을 누릴 권리에 관심을 모으는 것”이었다. 즉 상징적인 출마 선언이었다. 19세기에 여러 사람이 택했던 길이다. 하지만 그녀가 여느 후보들과 차별적이었던 점은, 다른 대통령 후보들이 미덕·겸손·청렴을 앞세웠던 데 비해, 그녀는 사회운동의 화신으로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는 점이다(이는 당시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녀는 특히 다수당인 공화당과 민주당 후보들이 싸움을 붙이기 위해 ‘흑인 평등’ 문제를 들고나오자 “한물간 쟁점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남북전쟁과 재건으로 흑인 평등이 어느 정도 실현됐기 때문이다. 몇몇 언론은 우드헐의 이런 도전을 높이 사면서 ‘진취적’이라고 평가했던 반면, 다른 많은 언론은 그녀를 “뇌쇄적인 우드헐” “어여쁜 환전상” “무당벌레”라 불렀다. 이후 1871년 1월 워싱턴 DC에서 전국참정권대회가 열리던 날 우드헐은 여성 최초로 하원 법사위원회에서 연설을 하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수많은 언론이 우드헐을 사냥감으로 여겨 물어뜯으려 했지만, 우드헐은 “우드헐과 언론의 개들”이라는 헤드라인 기사를 내는 등 강고하게 대응해나갔다. 하지만 1871년 5월 우드헐의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 모두 위태로운 운명에 놓이게 된다. 우드헐의 어머니가 “우드헐은 현 남편과 전남편 둘 다와 동거 중”이라는 폭탄 발언을 한 것이다. 우드헐이 몸져누운 전남편을 돌보기 위해 동거 중이었던 것은 맞지만, “난잡한 행태”로 악의적으로 보도돼 우드헐의 품성이 도마에 오르면서 그녀의 모든 업적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우드헐이 도덕성을 회복하기에는 이미 늦었었다. 어머니가 사위를 고소하고 가정사를 폭로한 지 일주일 만에 우드헐의 삶은 끝났다는 기사가 전국 신문을 도배했다. “딱 걸렸다.” 당시 『애틀랜타 컨스티튜션』의 헤드라인이다. 우드헐의 대선 출마는 대체로 경솔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이 출사표는 그녀의 삶에서나 미국 역사에서나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공화당의 강적”, 마거릿 체이스 스미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죽음을 맞기 일주일 전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기자들로부터 마거릿 체이스 스미스 후보가 뉴햄프셔 선거에 영향을 미칠 걸로 점치냐는 질문을 받았다. 케네디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스미스 의원은 강적입니다. 제가 공화당 후보라면 그녀를 경쟁자로 만나지 않길 바랄 겁니다.” 당시만 해도 여성이 대선에 입후보한다면 기자들조차 웃음을 터뜨렸던 시대이건만 스미스 상원의원의 입후보는 웃을 일이 아니었다. 사실 스미스야말로 예측하기도, 손쓰기도 힘든 ‘진정한 무소속’ 의원이었다. 그녀가 이뤄낸 수많은 ‘최초’는 업적과 고립을 동시에 보여준다. 여성 최초로 혼자 힘으로 상원의원이 된 스미스는 또한 여성 최초로 상하원 의원 모두를 지냈다. 20세기 여성 중 가장 오랜 기간 상원의원을 지낸 경력을 보유하며, 1963년에 이르기까지 총 4명의 대통령을 거쳤다. 용기와 자립심을 타고난 권리로 여긴 스미스는 남편을 통해 상원의원직에 올랐다. 상원의원이었던 남편이 재임 중 사망하자 ‘미망인 승계 관례’에 따라 자리를 물려받았던 것이다. 그녀의 출생 배경도 우
목차
프롤로그_2008년 뉴햄프셔
제1장 빅토리아?우드헐_“모두가?주목하는?자리”
제2장 마거릿 체이스 스미스_“공화당의 매력적인 얼굴”
제3장 셜리 치점_“뒤집어엎어”
에필로그_2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