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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대학에 가는가 대학은 우리에게 무엇이었고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
원제 : College: What It Was, Is, and Should Be
ISBN : 9788954642002 / 312쪽 140 x 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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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인류가 유한성을 극복하고자 고안한 최고의 솔루션, 교육 스무 살 젊은이는 텅 빈 자서전에 무엇을 채워넣을 수 있을까 1945년 대한민국의 대학생 수는 9960명으로, 지금 기준으로는 1개 대학의 정원에도 못 미치는 규모였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의 비율은 1970년에 9%였고, 1980년대까지도 30%가 채 되지 않았다. 그러다 대학진학율은 1990년대 들어 두 배로 껑충 뛰었고, 2009년 (등록자 기준으로) 77.8%로 정점에 달했던 대학진학율은 지난해 70.8%를 기록했다. 광복 이후 근대사회에 들어선... 인류가 유한성을 극복하고자 고안한 최고의 솔루션, 교육 스무 살 젊은이는 텅 빈 자서전에 무엇을 채워넣을 수 있을까 1945년 대한민국의 대학생 수는 9960명으로, 지금 기준으로는 1개 대학의 정원에도 못 미치는 규모였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의 비율은 1970년에 9%였고, 1980년대까지도 30%가 채 되지 않았다. 그러다 대학진학율은 1990년대 들어 두 배로 껑충 뛰었고, 2009년 (등록자 기준으로) 77.8%로 정점에 달했던 대학진학율은 지난해 70.8%를 기록했다. 광복 이후 근대사회에 들어선 대한민국에서 교육은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 이동’의 가장 강력한 수단 중 하나였다. 지난 70여 년의 대학진학율 그래프에는 대한민국의 ‘사회 이동’ 욕망이 상징적으로 반영되어 있는 셈이다. 문제는 ‘대학’에서 시작해 ‘취업’과 ‘성공’으로 이어지는 사회 이동 구조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7년째 OECD 회원국 중 대학진학율 1위를 기록중이지만, 고등교육 이수자 고용률은 76%로 OECD 회원국 중 밑에서 다섯번째이다. 대한민국의 고등교육은 외형적으로 세계 최고의 수준을 이뤘지만, 그 역할과 내실에 대한 의문은 거꾸로 점차 증폭되고 있다. 국가는 취업난을 타개하고자 잇따라 대학 구조조정 대책을 내놓고 대학은 앞장서서 이 대책을 실행하려 하지만, 취업 중심의 대학 구조조정안을 반대하는 건 역설적으로 대학생들이다(최근의 평생교육단과대학 사업, 프라임 사업, 코어 사업 등을 둘러싼 학교-학생 간 갈등이 그 단적인 예이다). 그러한 구조조정안으로 지금의 취업난이 해소될 수 없다는 판단도 있겠지만, 학생들은 무엇보다 대학은 취업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기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참된 대학은 한 가지 목표만을 추구한다. 그것은 고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고기가 살찌우는 인생의 목적과 이치를 아는 것이다.” _W. E. B. 듀보이스 대학을 둘러싼 이 역설을 이해하고 해소하자면 우리는 ‘대학’에 대해 좀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대학은 왜 존재하는가, 우리는 왜 대학에 가는가, 지금 대학이 당면한 문제는 무엇이고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등등. 컬럼비아대 영문과 교수 앤드루 델반코의 『왜 대학에 가는가』는 이 한보따리의 근원적 질문들을 던지고 답할 목적으로 쓰여졌다. 델반코 교수가 염두에 둔 현실은 당연히 미국의 대학과 대학교육에 관한 것이지만, “그가 제기하는 것은 동시에, 에누리 없이, 우리 대학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이기도 하다.” 추천사를 쓴 도정일의 말마따나 앤드루 델반코의 비판적 분석은 “에누리 없이” 한국 현실에 조응한다. 델반코가 제기한 미국 대학의 문제는 지금 전 세계 공통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대학은 어떻게 여기까지 왔고,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하나 앤드루 델반코 교수는 십여 년 전 ‘미국 최고의 사회비평가’ ‘올해의 뉴욕 주 학자’로 선정된 바 있고, 2012년에는 고등교육에 대한 그간의 저술을 인정받아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인문 메달’을 수여받았다. 저자가 「들어가며」에서 술회하듯, ‘대학’에 대한 책들은 주로 고등교육 연구자나 은퇴한 총장이 쓰는 경우가 많지만, 대학교수가 30여 년 가까이 몸담아온 대학에 대해 또 학생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저자 주변의 우려(미국문학 전공자가 왜 한눈을 팔아?)와는 달리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고 또 필요한 일이다. 그만큼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 『왜 대학에 가는가』는 가장 최근에 쓰여진, 고등교육 전반에 대한 탁월한 안내서이자 비판서이다. 델반코는 현재를 이해하려면 먼저 과거의 문제를 파악해야 한다는 자신의 교육 원칙을 따라 『왜 대학에 가는가』를 집필했다. 그래서 이 책에는 미국에서 대학이 언제 처음으로, 무슨 목적으로 생겨났는지, 그렇게 생겨난 대학이 400여 년 가까이 어떤 궤적을 밟아왔는지, 그리고 그간 저질러온 실책들은 무엇이었는지를 먼저 다룬다. 1장 「대학의 목적」, 2장 「대학의 기원」, 3장 「칼리지에서 대학으로」는 주로 미국 고등교육의 역사를 개괄하며, 흥미로운 역사적 근거들을 풍성하게 제시한다. 4장 「낮춰도 낮춰도 높아지는 문턱」과 5장 「멋진 신세계」는 미국 고등교육의 현주소를 가감 없이 드러내 보인다. ‘사회 이동’의 엔진이기보다는 외려 불평등 구조를 공고히 하는 대학, 대학 진학을 위한 맹목적 경쟁, 천문학적인 사교육비, 취업 유예기간을 얻고자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들, 인문학 같은 ‘쓸모없는’ 과목을 외면하고 ‘시장성 있는’ 과목으로 우르르 몰려간 학생들, 학점 인플레이션 등, 델반코가 폭로한 미국 대학의 현주소는 우리네 대학 풍경으로 읽어도 전혀 이질감이 없다. 6장 「무엇을 할 것인가」는 각 대학 현장에서 이 위기들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그리고 위기 돌파 해법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대학’의 희망적인 지점들을 살펴본다. ‘대학은 우리에게 무엇이었고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What It Was, Is, and Should Be’라는 부제처럼 저자는 대학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 책 한 권에 담아냈다. 미국 대학의 기원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탄 영국 청교도들은 영국국교회에 저항해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이주했다. 신대륙에 일종의 유토피아를 건설하고 싶었던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교육(그중에서도 신학 교육)이었는데, 신대륙 이주 16년 만에 이들은 영국의 대학을 모델 삼아 뉴잉글랜드의 뉴타운에 대학을 세우게 된다. 청교도 상인인 존 하버드는 이 뜻에 동참하고자 자신의 재산 절반과 장서 모두를 이 대학에 기증한다. 이후 윌리엄 앤드 메리 칼리지(1693년 설립), 예일대(1701년), 프린스턴대(1746년), 컬럼비아대(1754년) 등이 차례로 설립된다. 저자가 ‘미국 대학의 기원’을 먼저 살피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종교적 열정이 (유대인 차별 같은 문제도 많았지만) 미국 특유의 대학을 만들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대학은 종교 너머의 폭넓은 영역까지 아우르는 교육기관이었다는 것이다. 대학교수를 뜻하는 프로페서(professor)가 원래 “청교도 교회에서 일종의 공식적인 교회 입문의 뜻으로 신도들 앞에서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을 가리킨 것처럼 델반코는 미국 대학의 기원에 종교가 자리잡고 있다는 (지금의 대학 총장들이 불편해하는) 증거들을 들추어내 그 기원의 명과 암을 재평가한다. 그리고 지성과 인성을 아우르는 전인교육을 시행했던 초기 미국의 ‘칼리지’가 남북전쟁 이후 ‘대학’으로 변모하면서 어떻게 전문화를 지향해왔는지, 그 과정에서 잃은 것은 무엇인지를 저자는 짚어 보인다. 사실 미국에서는 대학을 가리킬 때 ‘칼리지college’와 ‘대학university’이라는 용어를 특별히 구별하지 않고 혼용한다. “미시간에 다닌다”거나 “오벌린에 다닌다”처럼 뒤에 나오는 말을 생략하는 게 일반적이다. ‘대학’과 ‘칼리지’가 같은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둘은 같지 않다. 물론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오늘날 ‘칼리지’ 교수 대부분은 ‘대학’ 석사학위 이상의 교육과정을 밟았다), ‘칼리지’가 ‘대학’ 내의 학부나 단과대학으로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칼리지’와 ‘대학’은 설립 목적이 다르며, 또 마땅히 달라야만 한다. ‘칼리지’의 설립 목적은 학부 학생들에게 과거의 지식을 전수해 이를 미래에 살아 있는 지식으로 활용하게 하는 데 있다. 반면 교수와 대학원생이 이끄는 다양한 연구 활동의 주무대가 되는 ‘대학’은 시대에 뒤처진 과거 지식을 대체하기 위
나는 이 책이 현재와 미래의 교수들은 물론이고 학생들에게도 유익하게 읽히기를 바란다. 또 오늘날은 우리네 ‘칼리지’와 ‘대학’의 문제에 대한 온갖 촌평과 반쪽짜리 진실—높은 교육비, 학생들의 낮은 학업성취도, (세평에 따르면) 콧대만 높은 교수 등—이 넘쳐나고 있는 시대이기에 나는 일반 독자들 또한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썼다. 공화국의 시민을 교육한다는 것의 의미와 조건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 _「들어가며」에서
오늘날 많은 학부생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책 한 권 완독하라는 요구를 조깅 정도나 하는 사람에게 마라톤 풀코스를 뛰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부당한 처사”로 받아들인다. _칼린 로마노(문화비평가, 2010년) 42쪽
이곳에서 배우는 것들 중 졸업 후 여러분의 인생에서 실용적으로 쓰일 것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단, 이것 한 가지는 있어요. 여러분이 열심히 영리하게 공부한다면, 앞으로 누군가 헛소리(rot)를 할 때 이를 알아챌 수 있을 거라는 점입니다. 그것이 대학교육의 유일한 목적까지는 아니더라도 주요한 목적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_존 알렉산더 스미스(옥스퍼드대 철학과 교수, 1914년) 53쪽
“여러분들은 앞으로 남은 인생 동안 사용할 여러분들의 머릿속을 흥미로운 장소로 만들어야 합니다.” _주디스 샤피로(전 바너드 칼리지 총장) 57쪽
“나는 여기서 우리 나이에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을 벌이려고 한다. 그건 그냥 빈둥거리는 것이다.” _『예일대의 스토버』(1912) 주인공 59쪽
“교사의 영향력이 지닌 비밀의 전부는 인간이 변할 수 있다는 확신에 있다. 그리고 실제로 학생들은 변한다. 그들은 깨달음을 원한다.” 교사들이 항상 노력해온 일은 “영혼을 침대에서 일으켜 깊은 습관의 잠에서 깨우는” 것이다. _랠프 월도 에머슨(1834년 4월 20일의 일기) 74쪽
“교육이란 영혼을 이끌어내는 일이다.” _랠프 월도 에머슨(1831년 9월 13일의 일기) 76쪽
진정한 교육이란 “불확실성, 역설, 거대한 복잡성에 대한 부담 등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극단적인 흑백논리와 선악을 구분 짓는 태도로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단순한 형태로 시작하지만, 가변적 지식과 상대적 가치가 혼재하는 세계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확립하고자 노력하는 복잡한 형태로 끝난다.” _윌리엄 페리(교육심리학자, 1970년) 76쪽
“다른 영혼에게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어떤 자극이지 가르침이 아니다.” _랠프 월도 에머슨(1838년 7월 15일) 97쪽
“하버드는 아무것도 가르쳐준 것 없이, 설사 있다 해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채 텅 빈 자서전과 같은 나를 세상 속으로 내보냈다.” _헨리 애덤스(1918년) 109쪽
“오늘날의 대학교육이란 다른 행성의 생명체에게나 어울릴 한물간 아이디어와 죽은 말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_앤드루 카네기, 『사업의 왕국』(1902년) 114쪽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주는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우주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 _어사이너스 칼리지 요람에서 127쪽
“‘대학’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인류의 축적된 지식을 저장하는 것이다. 이로써 젊은 세대들은 이전 세대들이 이뤄낸 모든 성취를 등에 업고 출발하게 될 것이다.” _찰스 W. 엘리엇, 「교육의 자유」(1885년) 139쪽
“학업성취도는 가장 낮고 사회경제적으로는 최고의 위치에 있는 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학업성취도가 가장 높고 경제적으로는 가장 빈곤한 학생들의 대학 진학률과 같다.” _도널드 헬러,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교수 168쪽
“오늘날 저명한 전문가들은 성공이 그들 자신의 능력, 노력, 그리고 뚜렷이 보여준 성과에 대한 보상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중요성에 몹시 심취한 나머지 그들이 지배하고 있는 타인들에 대한 연민을 망각한다.” _마이클 영, 『능력주의 사회의 등장』(1958년) 197~198쪽
지배 계층은 언제나 자신들에게 지배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만큼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은 한때 이렇게 이해했다. 사회체제 내에서 자신의 위치는 임의적인 것으로, 우주적 정의(正義)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디에서 태어나 자라는가라는 우연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이상은 신이(또는 순전한 행운이) 엘리트들에게 꼭 그들이 누려 마땅하다고만 볼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주었다는 판단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 [그러나 오늘날,] 그러한 인식은 일소되었다. 현대사회에서 엘리트의 지배는 임의적인 것이 아니라 정당하고 옳으며 참된 것으로 여겨진다. 적어도 능력주의의 논리를 따라가면, [오늘날의 엘리트들은] 그들이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는… 암묵적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표준화된 시험과 대학 입학처 담당자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그 말이 곧 결론인 것이다. _로스 다우덧,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201~202쪽
“교수들은 오늘날 학부생들을 민주 시민으로 성장시키는 데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한때 교양교육의 기본 목표라 일컬어지던 과제였으며 지금 이 순간 미국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과제인데도 말이다.” _데릭 복, 『시장에 나온 대학들』(2003년) 215쪽
“우리는 교실에 갇혀 있다… 진저리날 정도로 많은 말을 들었지만 단 하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마침내 교실을 빠져나온다… 우리는 숲에서 먹을 수 있는 식물이 무엇인지 모른다. 별이 가리키는 방향도 해가 가리키는 시간도 식별할 줄 모른다.” _랠프 월도 에머슨(1839년 9월 14일의 일기) 234쪽
“저명한 학자가 선생으로서는 지독하게 형편없을 수 있다.” _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학문』(1917년) 239쪽
“대학은 불씨처럼 반짝이는 개개의 특별한 재능(genius)들을 한데 모아 젊은이들의 마음에 불길을 일으킬 수 있을… 때 그 본연의 임무를 다하게 된다. … 만일 이 점을 망각한다면 미국의 대학은 해가 갈수록 풍족해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공적 중요성은 위축되고 말 것이다.” _랠프 월도 에머슨(1837년 ‘파이베타카파 소사이어티’ 연설) 245~246쪽
목차
들어가며
서론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이 만든 패턴
1장 대학의 목적
2장 대학의 기원
3장 칼리지에서 대학으로
4장 낮춰도 낮춰도 높아지는 문턱
5장 멋진 신세계
6장 무엇을 할 것인가
감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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