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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로이드 존스 20세기 최고의 설교자

원제 : The Life of D. Martyn Lloyd-Jones, 1899-1981

이안 머레이 저 | 오현미 역 | 복있는사람 | 2016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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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3601878 / 799쪽 153 x 2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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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이 책은 탁월한 전기 작가 이안 머레이가 새롭게 쓴 로이드 존스 전기의 결정판이다!” 박영선, 이동원, 정근두, 김서택, 화종부, 존 스토트, 제임스 패커, 존 파이퍼, 팀 켈러 추천 로이드 존스?는 세상의 것과 비견될 수 없는 복음의 본질을 자유주의 세력에 대항하여 최전방에서 홀로 지켜 낸 복음의 수호자였다. 그는 우리에게 보내진 하나님의 손길로서, 자기 책임을 다한 위대한 증인이었다. _박영선 남포교회 원로목사 “나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모든 것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복음의 전령으로 ... “이 책은 탁월한 전기 작가 이안 머레이가 새롭게 쓴 로이드 존스 전기의 결정판이다!” 박영선, 이동원, 정근두, 김서택, 화종부, 존 스토트, 제임스 패커, 존 파이퍼, 팀 켈러 추천 로이드 존스는 세상의 것과 비견될 수 없는 복음의 본질을 자유주의 세력에 대항하여 최전방에서 홀로 지켜 낸 복음의 수호자였다. 그는 우리에게 보내진 하나님의 손길로서, 자기 책임을 다한 위대한 증인이었다. _박영선 남포교회 원로목사 “나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모든 것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복음의 전령으로 부르시는 것은 사람에게 주실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_복음 사역을 위해 의사의 길을 접은 ‘희생’에 대해 찬사를 들은 뒤 한 말 탁월한 전기 작가 이안 머레이와 20세기 최고의 설교자 마틴 로이드 존스가 만났다. 저자는 자신이 이전에 쓴 로이드 존스의 전기 두 권을 재구성하고, 압축하고, 부분적으로 새롭게 재집필하여 오늘의 세대를 위해 내놓는다. 기존의 저서가 집필된 이후 로이드 존스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뒤따랐는데, 저자는 이에 대해서 사실에 근거한 숙고를 덧붙인다. 로이드 존스의 최측근이자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그를 보조했던 머레이는 ‘독터’의 진면목을 이 책에서 생생하게 드러낸다. 왕립 주치의의 수석 어시스턴트가 될 정도로 촉망받는 청년 의사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못 이겨 설교자와 복음 전도자로 전심전력했던 그의 삶의 큰 궤적으로 우리를 이끈다. 또한 로이드 존스가 몸담았던 역사적 상황과 더불어, 당대의 영적 기류와 이슈에 대해 그가 대처한 방식을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제공한다. 성경의 권위가 실종되어 버린 교회의 현실과 ‘교회연합’이라는 기치 아래 복음의 핵심 진리들을 타협했던 당대 복음주의자들 가운데서, 진리를 수호하고 참된 연합을 추구하려 했던 그의 외로운 분투를 그린다. 거짓과 오류에 대해서는 단호했으나, 사람에 대해서는 다정다감했던 그의 본모습도 보여준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그가 맞닥뜨렸던 이슈와 논쟁이 오늘날에도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과, 그가 내놓았던 성경적 답변이 여전히 적실하다는 것을 깊이 공감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로이드 존스의 설교’를 읽고 감명받았던 독자들은 이 책에서 ‘설교자 로이드 존스’를 만나 도전받게 될 것이다. 그의 생애와 사역을 마주함으로써 그가 한평생 갈망했던 하나님의 임재와 부흥을 어느새 맛보게 될 것이다. 이 책의 특징 - 로이드 존스의 최측근이자 전기 작가인 이안 머레이가 로이드 존스의 진면목을 객관적으로 그려 냈다. - 저자가 기존에 저술한 로이드 존스의 전기 두 권을 재구성하고, 압축하고, 부분적으로 새롭게 재집필하여 오늘의 세대를 위해 내놓았다. - 박영선 원로목사의 해설의 글 수록. - 로이드 존스의 삶과 사역을 생생히 보여주는 30여 장의 사진과 연표 등의 자료 수록. - 「하나님의 사람」 시리즈 제17권. 독자 대상 - 로이드 존스의 삶과 사역을 깊이 탐구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 - 성경 중심적인 강해설교와 복음 전도의 본질을 깨닫고 이에 매진하고자 하는 기독 사역자. - 20세기 영미권의 영적·시대적 상황과 이슈를 포괄적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목회자, 신학생 및 선교단체 간사. - 로이드 존스 애독자. 마틴 로이드 존스(D. Martyn Lloyd-Jones, 1899-1981) 연보 1899년 12월 20일, 카디프의 도널드 스트리트에서 헨리 로이드 존스와 막달렌의 세 자녀 중 차남으로 태어나다. 1910년 1월, 화재로 인해 가족이 전 재산을 잃게 되다. “아버지가 재정적 어려움에 빠졌다는 사실은 내 마음에 깊은 충격을 남겼다.” 1911년 장학생 선발 시험에서 2등을 하며 트레가론 카운티 스쿨에 입학하다. 트레가론 시절 향수병(‘히라이스’)을 앓다. “그 병은 인생길 내내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1913년 칼뱅주의 감리교 하계 협의회를 랑게이토에서 열다. 이 연합 집회가 마틴 안에 칼뱅주의 감리교 시조들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다. 1914년 칼뱅주의 감리교의 수찬 회원이 되다. 1915년 1월, 가정 경제가 안정세에 접어들자 메릴본 그래머 스쿨에 다시 다니게 되다. 1916년 런던 대학교 시니어 스쿨 시험에서 7개 과목에 합격하고 5개 과목에서 우등을 차지하다. 세인트 바톨로뮤 병원에 지원하여 합격함으로 의학도의 길에 들어서다. 1921년 7월, 왕립외과의협회 회원 자격과 왕립내과의협회 면허를 취득하다. 10월, 내과학사와 외과학사 학위를 받다. 특히 내과학에서 우등을 차지하다. 1923년 당시 왕립 주치의였던 호더 경의 수석 어시스턴트가 되다. 이 무렵 점진적인 회심의 과정을 겪다. “마침내 ‘천국의 사냥개’가 나를 잡아 생명에 이르는 길로 인도했다.” 1925년 2월, ‘문학과 토론회’에서 ‘현대 웨일스의 비극’을 주제로 강연하다. 이 강연으로 웨일스에서 처음으로 대중에게 관심을 받다. 1926년 6월, 세속적인 야망이 죽는 시기를 통과한 후 마침내 설교자로서의 소명에 응답하다. “하나님의 손이 나를 잡아 끌어냈고, 이 일을 할 사람으로 나를 구별하셨다.” 1927년 1월 8일, 채링 크로스 채플에서 베단 필립스와 결혼하다. 2월 4일, 남웨일스 에버라본의 샌드필즈 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취임하다. 10월 26일, 토트넘 코트 로드의 윗필드 채플에서 목사 안수를 받다. 1932년 처음으로 북미를 방문하여 사역하다. 이 방문 중 낙스 신학교 도서관에서 벤자민 B. 워필드의 전집을 발견한 후 개혁주의 신학과 교리의 중요성에 대해 눈을 뜨다. 1935년 1월, 카디프의 우드 스트리트 회중교회의 방송 시민 예배에서 설교하다. 「웨스턴 메일」지는 이 예배를 “1904년 부흥 이래 남웨일스에서 목격한 가장 주목할 만한 예배”라고 평하다. 4월, IVF의 스완윅 총회에서 설교하다. 1938년 샌드필즈 교회를 사임하고 ‘대리 설교자’로서 웨스트민스터 채플 사역에 합류하다. 1939년 4월, 영국 IVF(현 UCCF) 총재로 선출되어 3년간 총재직을 유지하다. 9월,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담임목사 캠벨 모건과 함께 공동 목회를 시작하다. 1941년 기독 사역자들의 교제와 토론을 위해 ‘웨스트민스터 교제회’를 설립하다. 1942년 5월 5일, 세인트 앤드루스 홀에서 열린 ‘성경 증언 대회’에서 ‘성경과 오늘날’을 주제로 강연하다. 1943년 10월 3일,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단독 목회를 시작하다. 1944년 7월 9일, 웨스트민스터 채플 건물이 전쟁 시작 후 최악의 피해를 당하다. “교회에 도착해 보니 예배당 건물이 폭격으로 부서져 있었고 파편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1945년 1월 15일, 글로스터 로드에 복음주의 도서관이 공식 개관식과 함께 개방되다. 5월 8일, 독일이 연합군에 항복하다. 일주일 뒤, 캠벨 모건이 사망하다. 1949년 6월, 우울증과 함께 의심의 ‘불화살’ 형태로 시험이 찾아오다. 아더 W. 핑크의 설교집에서 ‘영광’이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섬광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자신을 에워싸고 있음을 의식하며 황홀하고 기쁜 상태에 들어가다. 9월, 제1차 웨일스 IVF 콘퍼런스에서 ‘성경의 인간론’을 주제로 강연하다. 1950년 12월, 제임스 패커 등과 함께 청교도 콘퍼런스

저자 소개

1931년 잉글랜드 랭커셔에서 태어나 맨 섬의 킹 윌리엄 칼리지와 더럼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1955년에 목회를 시작한 머레이는 시드니 노턴과 함께 「진리의 깃발The Banner of Truth」지를 발행하였고, 마틴 로이드 존스에게 발탁되어 1956-1959년까지 웨스트민스터 교회에서 그를 도와 사역했다. 그 기간 중 1957년에 잭 컬럼과 함께 The Banner of Truth Trust 출판사를 공동 설립했다. 이후 런던 그로브 교회와 시드니 자일즈 장로교회에서 10여 년간 목회를 했다. 청교도 개혁신앙과 부흥신학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이 분야의 권위자로 인정받아 온 그는 「부흥과 부흥주의」「성경적 부흥관 바로 세우기」「오래된 복음주의」(부흥과개혁사) 등 여러 작품을 저술하였고, 특히 조나단 에드워즈, 찰스 스펄전, 마틴 로이드 존스와 같은 교회사의 영적 거장들의 삶을 조명한 탁월한 전기를 저술하여 많은 유익을 끼쳤다. 은퇴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집필활동을 하는 동시에 세계 여러 분야의 그리스도인들을 방문하여 돕고 있다.


 

역자 소개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의 죄, 하나님의 샬롬』 『마틴 로이드 존스』 『조지 윗필드』 『선교사 열전』 『설교자의 서재』 『독트린 매터스』(복 있는 사람), 『하나님의 임재 연습』(좋은씨앗), 『루케이도에게 배우는 복음』(아드폰테스) 등을 번역했다.

책 속에서

한 신문 기사를 읽어 보자.
(그날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로이드 존스는 열렬히 환영해 주셔서 정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 길에 발을 들여놓을 때 그는 환영이나 지지를 기대하지 않았다. 이 일을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을 뿐이었다. 진리를 알게 되자 할 일은 하나뿐이었고, 그것이 그가 따라야 할 길이었다. 앞으로 설교단에 홀로 서게 된다 할지라도, 그의 설교를 듣는 이가 교회당에 단 한 사람뿐이라 할지라도, 그는 계속 그 길을 갈 터였다. (중략) 단 한 순간이라도 그는 자신이 하는 말이나 행동이 부흥이라는 결과를 낳으리라고 생각하거나 바랄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다만,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늘에서 부흥이 임할 경우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그런 방식으로 살아 나가기를 바랐다. 그는 바로 그런 정신으로 목회의 길에 들어섰다.
_ ‘6장. 베단과 에버라본’ 중에서(162쪽)

뉴캐슬 엠린에서 지내던 이 시기, 로이드 존스는 누구에게도 거의 이야기한 적이 없는 개인적인 문제를 겪게 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울증이었는데, 그는 몸 상태가 저하된 것을 원인으로 보았다. 그러나 우울증과 함께, 의심의 ‘불화살’ 형태로 시험이 찾아왔다. 의심은 그의 신앙이나 사역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그에게 호의를 보여주며 평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 (중략) 그래도 시험의 힘이 얼마나 강했던지 그는 깊은 영적 고뇌에 빠졌다. 훗날 그는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원수가 그리스도인 개개인을 집중 공격할 때가 있고, 교회를 집중 공격할 때가 있다.……마귀가 당신을 전면적으로 공격하여 완전히 무너뜨릴 때가 있다.” 하지만 이 맹공격이 마귀에게서 오는 것이란 자각도 그에게 큰 위로가 되지는 못했다. (중략) 그는 이곳 1인 병실에서 거의 2주를 머물렀다. 처음 며칠은 내면의 소용돌이가 계속되었다. 평상시처럼 성경을 읽는 것 외에 아더 W. 핑크(Arthur W. Pink)의 책도 몇 권 가지고 들어와 읽었다. 그동안은 핑크의 책에서 자주 도움을 받곤 했지만 이때는 그 무엇도 그에게 영적 위로를 전혀 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그는 6시가 지나자마자 “더할 수 없는 영혼의 고뇌” 중에 잠이 깨었고, 심지어 방 안에서 악한 기운을 느끼기까지 했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있는데, 침대 옆에 펼쳐져 있던 핑크의 설교집에서 ‘영광’이라는 단어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 순간, “섬광처럼” 그는 하나님의 바로 그 영광이 자신을 에워싸고 있음을 의식했다. 모든 의심과 두려움이 일시에 잠잠해졌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의 마음에 “부은 바” 되었다(롬 5:5). 천국이 가까이 있다는 것, 자신은 천국에 들어갈 근거가 있다는 것이 압도적으로 확실한 사실이 되었다. 그 즉시 그는 황홀하고 기쁜 상태가 되었으며 이 상태는 그 뒤로도 며칠간 지속되었다.
_ ‘20장. 웨일스 그리고 1949년 여름’ 중에서(466-468쪽)

목차

목차
해설의 글
머리말
01. “이제 웨일스 사람이라고!”
02. 학창 시절: 트레가론과 런던
03. 의학의 길로 들어서다
04. 모든 것이 새롭도다
05. 사역자로 부름받다
06. 베단과 에버라본
07. 특이한 설교
08. 샌드필즈 초기 사역
09. 파벌에 매이지 않은 지도자
10. 지역의 신앙부흥
11. 가족 같은 교회
12. 사역을 확장하다
13. 에버라본을 떠나다
14. 잉글랜드 그리고 전쟁
15. 가정생활
16. 지도자로 떠오르다
17. 새로 탄생한 기관들
18. 1943-1945년 웨스트민스터 채플
19. 하나님의 인도를 확인하다
20. 웨일스 그리고 1949년 여름
21. 떠오르는 젊은 세대
22. 1950년대의 주일예배
23. 적대를 당하다
24. 책들이 깨어나다
25. 연합: 에큐메니컬인가, 복음주의인가
26. 위기의 세월
27. 논쟁
28. 한 시대가 종식되다
29. 세계 강단
30. 1970년대
31. “숨을 거두면서도……그는 예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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