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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파문

신철하 저 | 삶창 | 2016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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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6550654 / 232쪽 131 x 1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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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오늘날 이 땅에서 횡행하고 있는 인문(학)에 대한 열기는 명백히 반인문(학)적이다. 직언하여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퍼포먼스, 혹은 학문 수행이다. 언어에 대한 자의식은 인문주의자, 인문에 관해 발화하는 주체들이 습득해야 할 최초의 내면이다. 인문은 언어를 통해 실현되므로 인문에 관해 궁리하기 위해서는 그러므로 문학의 정독이 거의 필수이다. 특별히 모어mother tongue에 대한 성감대의 측면에서, 문학의 도구는 언어이다. 아니 그 언어는 도구를 넘어서는 도구이다.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이 땅에서 횡행하고 있는 인문(학)에 대한 열기는 명백히 반인문(학)적이다. 직언하여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퍼포먼스, 혹은 학문 수행이다. 언어에 대한 자의식은 인문주의자, 인문에 관해 발화하는 주체들이 습득해야 할 최초의 내면이다. 인문은 언어를 통해 실현되므로 인문에 관해 궁리하기 위해서는 그러므로 문학의 정독이 거의 필수이다. 특별히 모어mother tongue에 대한 성감대의 측면에서, 문학의 도구는 언어이다. 아니 그 언어는 도구를 넘어서는 도구이다.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지금-여기의 언어는 자의성이 강한 잉여, 혹은 결여의 언어로 떠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의미를 넘어서는 언어라는 것이다. 그 언어의 정수에 아마도 시가 있을 터이다. 시적 언어란 다시 말해 인문을 인문답게 하는 최종 심급의 언어인 셈이다. 날것의 언어, 생명의 언어, 여백의 언어, 잉여의 언어, 나아가 결여의 언어를 어떻게 재구축할 수 있을까. 전환기의 사유, 사랑의 공동체! 문학평론가 신철하가 ‘사랑’을 화두로 새 책을 내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는 ‘사랑’을 정치적으로 재해석하며 시적 언어의 근원으로 사유하는 수원지를 노자의 『도덕경』으로 삼는다. 나아가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통일이행기의 프레임을 축으로 텍스트를 저작詛嚼하는 과정에서 기획한 기본 프레임은 노자의 담론을 시적 언어로 환원할 수 있는 감수성의 함양이었다.” 말을 돌려 말하면 신철하의 이번 책은 ‘사랑’으로 구성하려는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것이다. 이 일을 위해 노자, 플라톤, 테야르 드 샤르댕이라는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홍상수, 최인훈, 이동하 등의 예술가를 읊조린다. 궁극적으로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분단체제의 해체와 아나키적 마을-꼬뮌의 구축이다. 철학자들에게서 거푸집과 골격을 빌려오고 예술가들에게서 건물의 벽과 마감재를 가져오는 식이다. 하지만 그 공동체의 토대도 사랑이며, 공동체의 운영원리도 사랑이다. 여기서 핵심은 저자가 말하는 사랑은 추상적이고 초월적인 사랑이 아니라 관계를 연결 가능하게 하는 구체적인 사랑 즉 에로스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가 『도덕경』을 재해석하면서, 정확하게 말해 여기서 문은 여성의 생식기, 나아가 생명의 탄생을 주관하는 곡신으로 해석의 대체가 가능하다. 그러니까 특히 포태胞胎한 여성에 대한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이미 도의 경지로 묘사될 수 있는데, 우리는 6장에서 이 모티브의 반복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게 된다. 현빈지문玄牝之門이 그것으로, 여기서 “문”은 여성의 가장 내밀한 곳, 어두컴컴하고 은밀한 곳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에로스를 여성을 키워드로 묘사하는 노자의 사랑관은 근본적으로 언어적 여성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유추까지 가능하게 한다. 맥락적 독서에서 6장은 “여성의 은밀한 문을 달리 현빈이라 한다. 그것은 모든 생명의 뿌리로, 아무리 사랑하여도 늘 처음과 같다. 즉 에너지가 넘친다. 사랑 자체가 생명현상이기 때문이다”와 같이 해석 가능하다. 생명의 에너지로서의 에로스는 여기서 거의 도와 동격으로 상승한다. 그런 이해를 위해서는 전제가 필요하고 몇 가지 다른 맥락을 요구하지만, 궁극적으로 여성성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노자의 에로스가 생명현상 일반으로, 나아가 도를 실천하는 가장 주요한 덕목 중 하나로 평가될 수 있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69~70쪽) 라고 말할 때 저자의 의도는 명약관화하다. 그동안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으로 해석된 『도덕경』을 철저하게 에로스적 관점에서 읽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플라톤의 『향연』과 교차로 독해하면서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미묘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의 생명과 에로스의 관계를 이해하는 수준은 노자의 그것과 유사하게 이해될 수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에로스가 궁극적으로 인간의 불사의 꿈을 위한 동기를 부여한다는 생각은 노자 6장 “여성의 은밀한 문은 불사하니 이를 달리 현빈이라 한다. 그것은 모든 생명의 뿌리로, 아무리 사랑하여도 늘 처음과 같다. 즉 에너지가 넘친다. 사랑 자체가 생명현상이기 때문이다”와 거의 정확하게 겹친다. 그 중첩의 질적 확장을 거쳐 “아주 어렸을 적부터, 자기를 사랑해주는 쓸 만한 사람을 갖는 것보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쓸 만한 소년 애인을 갖는 것보다 더 크게 좋은 어떤 것이 있을지 나로서는 말할 수 없”다는(『향연』 71면) 아름다운 것, 좋아하는 것을 욕망하는 것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기에 이른다. 세밀하게 관찰해보면 그 찬미는 노자 55장의 에로스와 절정에서 호응한다.(51~52쪽)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모두 사랑이 있다 저자의 사랑에 대한 철학적 탐색은 테야르 드 샤르댕에 와서 절정을 이루는데, 테야르 드 샤르댕을 통해서 사랑은 어떤 근본원리로까지 격상된다. 예컨대 테야르 드 샤르댕에 의하면, “만일 아주 미약하나마 분자에게도 서로 하나가 되려는 욕구가 없었다면 높은 단계인 인간에게서 사랑이 나타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사랑이 있다고 하려면 존재하는 것에는 모두 사랑이 있다고 해야 한다. 우리 둘레에서 수렴하며 올라가는 의식들 어디에도 사랑은 빠지지 않는다… 사랑의 힘으로 세상의 조각들이 모여 생명을 이룬다.”(104쪽) 그렇다면 ‘사랑’에 대한 저자의 집요한 천착은 왜 시작된 것일까. 저자는 서문에서 ‘세월호’를 호명하며 시작한다 : “세월호! 생명이 이렇게 헌신짝처럼 허망하게 취급되었던 시대가 있었던가. 물적 풍요가 만개하고 사소한 욕망의 언어로 들끓는 시대의 텅 빈 내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한반도의 미래는 마을 공화국! 저자는 현재 우리 사회를 “사랑이 부재하는 시대의 삶”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이 진단이 낭만적이지 않은 것은, 사랑에 대한 사유를 공동체의 구성 원리로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구체적으로 분단된 우리의 현실 속에서 말이다. 그래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6·15 공동선언이라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이다. 남북관계가 나날이 경직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저자는 역설적으로 “현단계 분단체제는 낮은 단계의 통일시대, 즉 과정으로서의 통일시대이며, 정확하게 통일이행기로 명명할 수 있다”고 한다. 아마도 6·15 공동선언이라는 사건을 만들어본 경험을 능동적으로 평가한 이후에 내려진 판단 같지만, 거꾸로 저자가 우려하는 현상의 출현을 막기 위한 절박한 상황에서 이념으로서 제시된 느낌도 든다. 저자는 말한다. 시대의 끝은 새로운 시대정신과 시대적 과제를 요구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분단체제의 완성 혹은 끝을 향해 서 있는 ‘늑대인간’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괴물에 가까운 그 인간은 ‘짐승과 인간, 퓌시스와 노모스, 배제와 포함 사이의 비식별역, 역설적이게도 두 세계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그 두 세계 모두에 걸쳐 있는 늑대인간의, 인간도 아니고 짐승도 아닌’ 어떤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삶은 밝음과 어둠, 성취와 좌절, 과거와 현재, 분단과 통일, 불안과 희망을 함께 감싸고 있는 고통스런 삶이며, 그만큼 예측하기 어려운 삶이다. 그 시대를 우리는 ‘통일이행기’라고 명명할 수 있다.(99쪽) 그런데 저자는 왜 마을-꼬뮌을 통일 우리 사회의 대안으로 삼는 것일까. 이 부분에서 저자는 국가란 것은 기본적으로 폭력적이며 그것도 사실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타국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게 아니라 자국민에게 더 많은 그리고 더 가혹한 폭력을 휘둘러 왔다고 말한다. 그래서 간디의 ‘마을 공화국’을 현대에 다시 검토할

저자 소개

충북 충주 생. 『자연과 생태』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강원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이미지와 욕망』(2012), 『미완의 시대와 문학』(2007), 『역사의 천사』(2001), 『한국 근대문학의 이상과 현실』(2000), 『문학과 디스토피아』(1997), 『사랑의 파문』(2016) 등이 있다.


 

머리말

시대와 맞서는 두려움을 이기는 방편으로, 혹은 그 시대로부터 도주하는 방법적 전략으로,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는 읽기의 리듬을 어렴풋이 감지하게 되면서, 가느다란 실핏줄처럼 이어지고 있는 생명의 흐름에 대한 감각의 ‘리트로넬로’를 예감하면서 도Tao의 아포리아aporia에 가까워졌다. 단언컨대, 노자를 읽고 쓰는 일은 내가 감당할 일이 아니다. 그러니 작업은 지극히 위태롭고 불안하며…, 그 와중에도 흡사 관음의 상황이 연출하는 미묘한 감정 상태를 지속하는 마음, 향유jouissance가 있었다. 그 에로스가 없었다면 돌팔매의 각오를 견디지는 못했을 것이다. 내 일은 근본적으로, 무엇보다 관행적 노자 해석과는 거리가 멀다. 분단체제 이후 즉 ‘통일이행기의 한국: 문학과 정치-에코 아나키’ 프레임에 관한 지도를 그려가기에도 힘겨운 나로서는 외람되지만 이 토픽을 부여잡고 방황할 약간의 시간까지도 숨가쁘고, 그만큼 난감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어찌하여 불안을 견디는 리비도가 작동한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노자 해석이 아니라 노자의 리듬에서 느껴지는 생명에 관한 모티브 때문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머리말」 중에서



책 속에서

노자의 언어적 감수성은 투명하고 깊으며 넓다. 『도덕경』10장을 면밀하게 응시해보면, 이 텍스트의 언어가 일차적으로 리듬의 언어(댓구, 호응)라는 사실을 놓치기 쉬운데, 몇 번 음송하다보면 그 외연을 싸고 있는 형식적 조건은 의미의 반복성으로까지 진화한다는 발견에 이를 수도 있다. 반복은 단순한 기계적 고정성을 띤 소리의 반복, 리듬의 반복이 아니라 그 실천의 시간의 차이와 행위의 차원에서 미세하게 드러나는 간극을 인식하는 단계로 발전한다. 그럴 때 주체는 의식의 차이를 연출하는 과정을 통해 질적 확산을 꾀함으로써 관계의 역동성에 이른다.
―「도Tao와 사랑」, 65쪽.

노자의 소국과민의 현대적 해석으로 평가되는 간디의 ‘마을공화국(판챠야트)’은 70만 개의 마을로 구성된, 영국으로부터의 해방 이후 자유인도의 미래를 위한 평화헌법을 통하여 면밀하게 주석되고 있다. “자유인도의 행정 기본단위는 자급자족 및 자치의 마을이 된다”라는 서문으로 시작되는 『자유 인도를 위한 간디의 헌법안』에는 시장자본주의와 병영국가주의로 포장된 근대국가 체제 이후의 국가구조에 대한 성찰적 기획과 함께 국가기능, 교육, 치안, 산업, 무역과 상업, 위생, 의료제도, 사법, 재무 및 과세 나아가 그 하위단위인 레크리에이션까지를 포괄하는 정치과정을 면밀하게 구성하고 있다.
―「도Tao와 사랑」, 92쪽.

우리는 그 신비를 샤르댕이 언명한 ‘오메가 포인트’와 같은 선상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는 생명의 진화를 의식의 상승으로 이해하면서, 의식의 상승인 생명현상의 본바탕을 이루는 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생물계 전체에서 사랑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포유류에게서 가장 강력하지만, “아주 미약하나마 분자에게도 서로 하나가 되려는 욕구가 없었다면 높은 진화 단계인 사람에게서 사랑이 나타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사랑이 있다고 하려면 존재하는 것에는 모두 사랑이 있다고 해야 한다. 우리 둘레에서 수렴하며 올라가는 의식들 어디에도 사랑은 빠지지 않는다. (…) 사랑의 힘으로 세상의 조각들이 모여 세계를”51 이룬다고 역설한다.
―「이중구속과 “도”」, 136쪽.

정치적 생태주의가 지향하는 궁극 목표는 인간해방의 윤리이다. 원칙적으로 생태주의 운동은 “경제권력의 도구들이 일상문화를 파괴하는 데 대한 자발적 항거에서 탄생”했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 도구들이 한 개인이 주체적으로 이 세계와 스스로 함께 살아가는 방법,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법을 결정할 권리를 빼앗고 자본과 국가가 유린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토착어와 지역문화 수호운동, 대안의학 운동, 낙태권리 운동, 지역화폐 운동, 소수자의 상호 부조 운동, 도농직거래 운동, 존엄성 있게 죽을 권리를 위한 운동 등 권력, 전문가, 자본의 지배에 대항하는, “공동체의 실존적 자율성의 파괴에 대한 저항이 생태주의 운동을 규정짓는 특별한 구성요소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정치적 생태주의 운동은 민주주의의 문제로 수렴된다. 이 문제의 핵심 현안이 자본과 국가주의의 폭력인 이유이다.
―「생태와 정치」, 169쪽.

전환기는 위기의 시대이기도 하다. 위기를 피해갈 방법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위기를 몸으로 살아야 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문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새로운 유목적 사유와 행동이 꼬뮌, 혹은 마을자치를 향해 열려 있다.84 새로운 삶의 비전으로 한국적 전통과 새로운 현실에 부응할 수 있는 마을꼬뮌의 기획은 통일이행기를 향한 정치적 비전으로 유효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언어적 무의식」, 186쪽.



목차

목차
머리말에 대신하여_ 사랑의 파문 5
Ⅰ. 사랑에 관한 연역, 혹은 인문적인 것의 학
〈자유의 언덕〉 29
에로스, 혹은 플라톤의 지philosophia 45
도Tao와 사랑 65
인문적인 것의 학 97
Ⅱ. 이중구속과 도
자연의 정치 119
이중구속과 ‘도’ 130
다시, 왜 아나키인가 144
마을공화국 153
Ⅲ. 분단체제를 넘어서 - 사랑의 원리로서의 소국과민
엔트로피와 은유 159
생태와 정치 169
언어적 무의식 176
병영국가(주의)로부터 꼬뮌으로 190
Ⅳ. 에필로그 - 동시대, 왜 노자인가
잠재성 197
사건 202
과정으로서의 통일시대-통일이행기 208
노자-에로스 214
미주 221
참고문헌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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