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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흑인이다, 나는 흑인으로 남을 것이다
원제 : Negre je suis, Negre je resterai
에메 세제르, 프랑수아즈 베르제 저 | 변광배, 김용석 역 | 그린비 | 2016년 07월
ISBN : 9788976824301 / 148쪽 140 x 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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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프랑스 식민지들의 해방 운동에 앞장선 인물로서 ‘네그리튀드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메 세제르. 정치가이자 시인, 극작가, 이론가로 생애 전반에 걸쳐 열정적으로 활동을 벌임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그의 생애와 사유가 제대로 수용되지 못했다. 『식민주의에 대한 담론』, 『귀향 수첩』, 『어떤 태풍』 등의 저작이 여러 권 번역되어 있음에도 그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데는 한국에서 식민주의에 관한 관심이 높지 않다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세제르의 사상과 활동이 어떠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프랑스 식민지들의 해방 운동에 앞장선 인물로서 ‘네그리튀드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메 세제르. 정치가이자 시인, 극작가, 이론가로 생애 전반에 걸쳐 열정적으로 활동을 벌임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그의 생애와 사유가 제대로 수용되지 못했다. 『식민주의에 대한 담론』, 『귀향 수첩』, 『어떤 태풍』 등의 저작이 여러 권 번역되어 있음에도 그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데는 한국에서 식민주의에 관한 관심이 높지 않다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세제르의 사상과 활동이 어떠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알려 주는 자료가 부족했던 탓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에 출간되는 에메 세제르와 런던 대학 정치학 교수인 프랑수아즈 베르제의 대담집 『나는 흑인이다 나는 흑인으로 남을 것이다』는 인터뷰라는 형식을 빌려 세제르의 생애와 활동뿐 아니라 내밀한 속내까지 읽을 기회를 제공해 준다. [출판사 서평] 네그리튀드 운동의 아버지 에메 세제르, ‘식민지 해방 이후’에 대한 그의 내밀한 사유를 육성으로 전해 듣다! 식민주의란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프랑스의 탈식민 운동을 이끈 세제르의 생애와 성찰을 담은 『나는 흑인이다 나는 흑인으로 남을 것이다』 출간! 프랑스 식민지들의 해방 운동에 앞장선 인물로서 ‘네그리튀드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메 세제르. 정치가이자 시인, 극작가, 이론가로 생애 전반에 걸쳐 열정적으로 활동을 벌임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그의 생애와 사유가 제대로 수용되지 못했다. 『식민주의에 대한 담론』, 『귀향 수첩』, 『어떤 태풍』 등의 저작이 여러 권 번역되어 있음에도 그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데는 한국에서 식민주의에 관한 관심이 높지 않다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세제르의 사상과 활동이 어떠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알려 주는 자료가 부족했던 탓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에 출간되는 에메 세제르와 런던 대학 정치학 교수인 프랑수아즈 베르제의 대담집 『나는 흑인이다 나는 흑인으로 남을 것이다』는 인터뷰라는 형식을 빌려 세제르의 생애와 활동뿐 아니라 내밀한 속내까지 읽을 기회를 제공해 준다. 런던 대학의 정치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프랑스의 ‘노예제도 추모 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던 베르제는 2004년에 에메 세제르와 대담을 나누기로 결심하고 그에게 자신의 계획을 알린다. 당시 프랑스 해외도(海外道)인 마르티니크(Martinique)의 시장이던 세제르는 베르제의 제안에 흔쾌히 응하면서도 걱정을 표명한다. 베르제가 대담을 기획한 이유는 세제르가 현재 프랑스에서 거의 잊힌 존재일 뿐 아니라 보수적인 인사로 오해받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세제르가 대담에 우려를 표한 이유 역시 이 같은 분위기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유의미함을 전달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오해를 불식시키고 세제르 사유의 가치를 복원하기 위해 두 사람은 세제르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그의 정치 활동, 식민지 해방운동과 탈식민 이후에 관한 생각 등에 이르는 광범한 주제를 압축적으로 논의한다. 그 과정에서 이 책은 식민주의는 악(惡)이라는 단순한 사고방식을 넘어 인류의 인간성을 말살한 식민화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사고해야 하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성찰을 제시해 준다. 두 사람의 대담을 통해 우리는 식민주의를 종식시키고자 열정적으로 활동하던 세제르가 맞닥뜨린 난관과 고민을 확인할 수 있으며, 나아가 식민화 문제만이 아니라 모든 사회 영역에서 진정한 해방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도 곱씹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식민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 ‘탈식민 이후’까지 고민했던 사상가이자 정치가 세제르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마르티니크에서 1913년 태어난 에메 세제르는 어린 시절을 고향에서 보낸 뒤 프랑스로 유학 가 최고 교육 기관 중 하나인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한다. 세제르가 프랑스로 떠난 이유는 놀랍게도 그가 고향인 마르티니크를 증오했기 때문이다. 그는 유럽인을 모방하는 데 몰두하는 마르티니크의 유색인 프티부르주아들의 속물근성에 진저리를 쳤고 혁명과 진보의 나라인 프랑스로 건너가 비로소 자유로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제국주의 국가였던 프랑스를 찬양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고등사범학교에서 동년배였던 (이후 세네갈 대통령을 지내게 되는)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 등과 함께 ‘흑인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등의 정치적 철학적 질문과 토론을 주고받으며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키워 나가기도 했다. 이후 마르티니크로 돌아와 교편을 잡기도 했던 그는 시인이자 극작가, 이론가, 에세이스트로 이름을 알렸고, 무엇보다도 정치가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게 된다. 처음에는 공산주의에 매력을 느끼고 입당했지만 프랑스 공산당에 팽배한 권위주의와 인종차별주의에 크게 실망한 뒤 마르티니크 진보당(Parti progressiste martiniquais)을 창설해 수십 년 동안 마르티니크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전념한다. 자유와 평등, 박애의 정신을 앞세운 프랑스는 유럽 문명과 진보를 상징하는 나라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프랑스는 ‘단 하나’의 문명, 즉 유럽 문명만이 유의미하다는 공화주의 전통을 고수한 탓에 식민지 문제를 ‘동화’(assimilation)를 통해 해소하고자 했고 이에 많은 구 식민지가 반발했다(프랑스의 동화주의는 현재도 구 식민지나 이민과 관련해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는 원인 중 하나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제르는 다른 이들과 함께 ‘유색인의 고유성’을 지칭하는 네그리튀드 개념을 고안하는 한편, 프랑스 식민지였던 마르티니크, 과들루프, 기아나, 라레위니옹을 프랑스의 ‘해외도’로 편입시키는 운동에 앞장섰다. 인종 정체성을 고착시키는 듯 보이는 네그리튀드 개념을 창안하고, 식민지의 완전한 독립이 아니라 해외도 편입을 주장하고 이끌었다는 이유로 현재 프랑스에서는 세제르를 반동적인 인사로 간주하는 경향이 우세하다. 하지만 당대 현실의 사정은 훨씬 더 복잡했다. 왜냐하면 구 식민지 사회들이 생산수단이나 재정을 전혀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무턱대고 독립을 쟁취해 봤자 빈곤과 기아가 사회를 덮칠 것이 뻔했다. 독립에 성공했지만 곧바로 부정부패와 가난에 시달려야 했던 아이티 사회를 세제르가 비판적으로 바라본 것도 이 때문이며, 그가 동화도 독립도 아닌 ‘자주’(autonomie)를 부르짖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세제르가 제창한 자주란 마르티니크가 프랑스에 속하면서도 자신의 고유한 제도와 이상(理想)을 지니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마르티니크를 비롯한 프랑스 식민지들의 운명에 관한 세제르의 입장은 절충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여지가 있다. 실제로 그는 1946년 자신의 주도로 구 식민지 네 곳을 프랑스의 해외도로 변모시키는 과정에서 여러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하지만 ‘식민지에서 해방된 이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막연히 독립만을 주장하는 태도가 오히려 무책임해 보일 수도 있다. 정치인으로서 현실에 산적한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세제르에게는 이 선택만이 유일하게 현실적이었던 것이다. 식민주의 역사를 종식시킬 유일한 대안, 휴머니즘 그리고 문명 간의 대화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마르티니크의 흑인 세제르와 오늘날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얼핏 아무 관계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 역시 식민화라는 아픈 역사를 겪었으며 여전히 알게 모르게 그 상흔을 안고
이와 같은 자기의식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유럽 문명은 다음과 같은 하나의 이론을 정립하게 되었지요. 유럽에 동화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우선은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내가 가진 관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마르티니크 사람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됩니다. 아주 옷을 잘 입고, 아주 속물근성에 젖어 있던 한 젊은 사람이 내게 와서 손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세제르 씨, 난 당신을 좋아하고, 당신이 한 행동을 아주 좋아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비난합니다. 왜 당신은 자꾸 아프리카를 입에 담습니까? 우리는 그들과 아무런 공통점도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들은 원시인이고 우리는 그들과 다릅니다.” 하지만 그 젊은 사람은 피부색이 나보다도 더 ‘밤색’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작자는 상당할 정도로 인종적 위계질서에 빠져 있었던 것이죠. 내가 보기에 동화는 소외이고, 이는 가장 중차대한 것입니다. (29쪽)
정부의 공식적인 주장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당신들은 프랑스인이다.” 해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우리가 프랑스인이라면 우리에게 프랑스인에 해당하는 봉급을 달라, 우리에게 프랑스인에 해당하는 보조금을 달라 등등. 이와 같은 논리에 그들이 어떻게 맞설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베르제 및 지라르와 더불어 이 지역을 프랑스의 도로 승격하는 문제에 대해 뜻을 같이했습니다. ‘동화’라는 표현이 아니라 ‘도화’라는 표현을 내가 제일 먼저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비록 한 세기 전부터 이곳의 시골 지역들이 동화에 유리한 쪽으로 유도되고 있었어도 말입니다. (37쪽)
반복하건대 내가 보기에 노예제도와 식민지 피해는 배상이 불가능합니다. 수많은 악행에 희생된 민족들을 돕는 것은 당연하고도 명백한 결론입니다. 나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추론하지 결코 배상 차원에서 추론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적용되는 논리는 다음과 같은 것이 될 겁니다. “좋다. 동의한다.” 그러고 나서 “이제 꺼져 버려. 네 몫은 받았잖아” 혹은 “이 여자의 할아버지가 내 가족을 팔아먹었잖아. 자, 직접 처단해야지……”. (40쪽)
목차
서문
대담
후기 _ 프랑수아즈 베르제
옮긴이 후기
에메 세제르 연보
참고문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