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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7889983 / 252쪽 148 x 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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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5·16쿠데타가 만든 테러·감시·가위질의 시대 한국의 민주주의는 퇴행했고, 양심과 사상의 자유도 제약을 받았다 혁명? 5·16은 반혁명 쿠데타일 뿐! 한국 현대사의 문제적 인물 박정희 성찰하기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5권의 주제는 ‘제2공화국과 5·16쿠데타’이다. 서중석 교수는 이 책에서 4월혁명 이후의 제2공화국과 5·16쿠데타가 일어난 상황까지를 다루고 있다. 대체 왜 쿠데타가 일어난 것일까? 왜 장면 정권의 제2공화국은 쿠데타를 막지 못한 것일까? 미국은 왜 쿠데타를 눈감았던 것일까? 당시 대한민국은 어... 5·16쿠데타가 만든 테러·감시·가위질의 시대 한국의 민주주의는 퇴행했고, 양심과 사상의 자유도 제약을 받았다 혁명? 5·16은 반혁명 쿠데타일 뿐! 한국 현대사의 문제적 인물 박정희 성찰하기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5권의 주제는 ‘제2공화국과 5·16쿠데타’이다. 서중석 교수는 이 책에서 4월혁명 이후의 제2공화국과 5·16쿠데타가 일어난 상황까지를 다루고 있다. 대체 왜 쿠데타가 일어난 것일까? 왜 장면 정권의 제2공화국은 쿠데타를 막지 못한 것일까? 미국은 왜 쿠데타를 눈감았던 것일까? 당시 대한민국은 어떤 상황이었을까?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한국 현대사의 문제적 인물이다. 그가 죽은 지 오래되었지만, ‘박정희’라는 이름은 아직도 한국 현대사의 논란거리이다. 반신반인(半神半人)이라는 낯 뜨거운 말로 찬양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박정희 세력이 끼친 폐해를 직시해야 한다며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처럼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그런데 이런 평가가 과연 올바른 형태로 진행되고 있을까? 박정희가 어떤 삶을 살았고, 왜 쿠데타를 일으켰는지, 그 당시 한국 상황은 어땠는지, 그리고 그의 집권기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먼저 성찰하면서 평가가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러나 그래 보이지는 않는다. 박정희를 과도하게 떠받드는 세력들에 의해 그의 우상화가 하나씩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2017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벌써부터 혈세를 쏟아부어 100주년 기념사업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엿보인다. 구미시는 당장 28억 원가량을 들여 박정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창작 뮤지컬을 제작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비판과 성찰은 없이 일방적인 미화와 우상화가 여기저기서 진행되고 있다. 제2공화국의 등장, 4월혁명이 끝나자 모든 것이 뒤집어졌다 4월혁명이 끝나자 모든 것이 뒤집어졌다. 1959년 진보당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조봉암이 재평가되기 시작했고, 혁신 세력이 진보정당을 꾸려 정치 활동을 재개했다. 이승만 집권기 때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집단 학살 문제가 다시 수면 위에 떠올랐고, 여기저기서 진상 규명 운동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김구 암살 사건도 재조명됐다. 김구는 부활해 독립 운동과 민족주의, 통일의 상징이 됐다. 교원 노조가 결성되는 등 노동 운동도 활발해졌다. 데모 규제법과 반공임시특별법에 반대하는 2대 악법 반대 투쟁도 일어났다. 또한 통일 운동과 더불어 반미 운동도 일어났다. 이 당시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라는 그 유명한 구호가 나왔다. 그러나 장면 정부는 이런 4월혁명의 분위기를 이어가지 못했다. 4월혁명의 과실을 대부분 차지한 민주당은 자유당과 마찬가지로 보수 세력이었고, 분단·반공 세력일 뿐이었다. 더군다나 민주당 정권은 부정 선거 원흉이나 발포 책임자, 부정 축재자, 반민주 행위자를 처단하기 위한 특별법인 혁명 입법을 만드는 데 대단히 소극적이었다. 서중석 교수는 장면 정부가 비록 4월혁명의 분위기를 이어가지는 못했지만, 9개월의 짧은 집권 기간 동안 경제 정책을 세우고 공무원을 공채로 뽑은 점, 경찰을 대폭 숙정해 물갈이한 점, 국군 숫자를 대폭 줄여 국방비를 경제 발전에 돌려쓰려고 했던 점은 뛰어난 성과라고 말한다. 1961년에 들어서면서 장면 정부는 점차 안정되지만 곧 쿠데타가 일어나 제2공화국은 막을 내리게 된다. 박정희는 누구인가? “정말 대운을 타고난 사람” 그렇다면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는 누구인가? “많은 사람이 ‘박정희 대통령이 18년이나 집권했기 때문에 적어도 박정희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잘 알 것 아니냐’고 생각한다. 그렇지가 않다. 우선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박정희는 국민에게 너무나도 생소한 사람이었다. 언론계나 지식인층도 잘 몰랐다. 국회의원들도 ‘박정희가 누구야?’ 하고 서로 얘기했다고 그런다.” 서중석 교수의 말처럼 당시 박정희는 그 누구도 정체를 모를 만큼 무명의 군인이었다. 사실 군인 시절에도 박정희는 눈에 띄게 활동한 게 없었다. 한국전쟁 때도 별다른 활약상이 없었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그 이후에도 박정희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박정희의 창씨개명 이름인 오카모토 미노루, 다카키 마사오도 1970년대 후반, 1980년대에 들어와서 알려졌다.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 두 번째 응모하면서 했던 말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의 굳건한 결심입니다”도 2009년에서야 밝혀졌을 만큼 박정희의 과거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런 박정희가 쿠데타를 성공했다. 1961년 5·16쿠데타 과정을 되짚어보면 보안이 철저하지도 않았고, 쿠데타 당일 병력 동원도 매끄럽게 이뤄지지 않았다. 쿠데타군 자체가 그리 많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박정희는 한 나라를 손에 쥐는 데 성공했다. 서중석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그전엔 안 그랬는데 요 근래 박정희 정권에 관해 강의할 때 빠지지 않고 얘기하는 게 있다. ‘박정희는 정말 대운을 타고난 사람이다. 운이 너무나도 좋은 사람이다’, 그런 얘기를 한다. 쿠데타에 성공할 때도 여러 가지가 겹치면서 정말 운이 좋았고, 경제 발전 문제만 해도 그렇다. 국내외 조건이 그야말로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시기에 경제 발전을 이룩해낼 수 있었다. 중화학 공업화를 할 때에도 선진국에서 사양 산업이 된 일부 중화학 공업을 넘겨주기 시작하는 시기와 맞물렸다. 또 정부에서는 중화학 공업에 매진했지만 기업들이 투자를 꺼렸던 1970년대 후반에 중동 건설 경기가 갑자기 일어난 것도 굉장히 운이 좋은 것이다.” 쿠데타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서중석 교수는 쿠데타를 가능케 한 배경으로 다음 두 가지를 꼽고 있다. 하나는 당시 한국군이 굉장히 비대했다는 것. 이승만 대통령은 군인 숫자를 늘리는 게 국방력을 갖추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1953년에 벌써 60만이 넘었고, 나중에는 72만 명까지 늘어났다. 또 하나는 다른 어떤 집단보다도 군인들이 엘리트 의식이 강했다는 것. 당시 어지간한 장교는 모두 미국에서 훈련을 받고 돌아왔다. 박정희, 김종필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미국 유학이란 큰 부자, 특권층이 아니면 갈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 미국을 다녀온 군인들은 강한 엘리트 의식을 갖게 되었고 정권을 넘볼 힘도 갖추게 되었다. 실제로 1959년 미국 콜론 연구소에서 작성한 보고서는 한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하층 경제 계급 출신의 유망한 청년 장교가 한국에서 다수 생겼고, 이들은 특권적 관리나 정치가에게 분노를 품게 된다. 이것이 폭발할 우려도 있다.” 우선 쿠데타 모의는 김종필, 김형욱 등 육사 8기들에서 시작된다. 왜 육사 8기가 쿠데타를 도모했나? 이들은 군 상층의 부패에 불만이 많았고 이를 거세해야 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군 상층부를 바로잡자고 정군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진급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5·16쿠데타가 날 때까지 극소수만 대령 진급을 했고, 좀 괜찮다고 하는 사람들 정도가 중령에 머무르고 있었다. 후에 이들은 쿠데타를 일으킨 이유를 장면 정부의 부패, 군의 부패 등을 들었지만, 서중석 교수는 권력욕과 진급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 등이 가장 직접적인 요인이었을 거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역시 이전부터 쿠데타를 모의하고 있던 박정희를 끌어들였고, 결국 쿠데타를 성공시킨다. 5·16쿠데타, 막을 수는 없었을까 쿠데타 세력이 꿈꾼 나라는? 쿠데타는 분명 막을 수 있었다고 서중석 교수는 말한다. 하지만 장면 정부의 인사 실책



4월혁명 직후, 그러니까 1960년 4월 26일 이승만이 물러났을 때 미국은 어떻게 보면 엉겁결에 문민 체제를 승인해서 허정 과도 정부, 장면 정권이 출범하는 것까지는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미국은 한국을, 소련과 중국을 막아내는 극동의 최첨단 보루로 생각했을 뿐이고 일본을 지키는 데 필수적인 지역으로만 판단했다. 그렇기 때문에 혁신계, 진보 세력의 움직임에 대해 ‘이건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61쪽
그전엔 안 그랬는데 요 근래 박정희 정권에 관해 강의할 때 빠지지 않고 얘기하는 게 있다. ‘박정희는 정말 대운을 타고난 사람이다. 운이 너무나도 좋은 사람이다’, 그런 얘기를 한다. 쿠데타에 성공할 때도 여러 가지가 겹치면서 정말 운이 좋았고, 경제 발전 문제만 해도 그렇다. 국내외 조건이 그야말로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시기에 경제 발전을 이룩해낼 수 있었다. 중화학 공업화를 할 때에도 선진국에서 사양 산업이 된 일부 중화학 공업을 넘겨주기 시작하는 시기와 맞물렸다. 또 정부에서는 중화학 공업에 매진했지만 기업들이 투자를 꺼렸던 1970년대 후반에 중동 건설 경기가 갑자기 일어난 것도 굉장히 운이 좋은 것이다. -83쪽
쿠데타가 성공한 건 쿠데타 세력이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짜고 군 동원을 잘해서가 아니다. 그걸 막아야 할 세력들이 막을 태세를 제대로 못 갖췄거나 막지 않으려 했거나 또는 양다리를 걸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쿠데타 세력이 허술하고 미약했는데도 성공했다. 그런 점에서 박정희는 운이 무지무지하게 좋았다고 얘기할 수 있다. -135쪽
‘박정희는 그를 어려울 때 구해준 동료, 선배, 후배들의 발뒤꿈치를 사정없이 무는 사람이라고 해서 가끔 미군들 사이에서는 스네이크snake(뱀) 박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하우스만은 말한다. 이 사람이 참 재미난 표현을 썼더라. 어려울 때 박정희를 구해준 이들로 하우스만은 정일권, 백선엽, 장도영 등을 꼽았다. 하우스만은 ‘그렇지만 군대 내에 있는 거의 모든 적색 조직을 샅샅이 폭로해 숙군 작업을 손쉽게 진행할 수 있게 한 건 확실히 그의 목숨을 건질 만한 가치가 있다’고 그 당시에 봤다. -173쪽
박정희는 철학을 기반으로 한 정치 사상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5·15쿠데타, 2·26쿠데타에 관심이 있었고 저열하다고 믿은 한국인의 민족성, 식민지 노예근성을 개조해야 한다는 사고, 의회주의와 정당 정치에 대한 반감, 극단적인 반공 정책이 결합한 모습을 보였다. 의회주의와 정당 정치에 대한 반감은 서구 문화, 특히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혐오감과 직결돼 있다. -245쪽
목차
책머리에
연표
첫 번째 마당
4월혁명 덕에 권력 잡은 민주당,
‘혁명 과업’ 수행은 미적미적
두 번째 마당
들불처럼 일어난 통일 운동,
분단 장벽에 도전하다
세 번째 마당
박정희 주장대로
4월혁명 시기는 혼란기였나
네 번째 마당
억세게 운 좋은 박정희,
그의 과거는 비밀이었다
다섯 번째 마당
장면 정부가 정군 안 해 쿠데타?
권력욕과 진급 문제가 직접적 원인
여섯 번째 마당
박정희의 ‘혁명 이념’,
식민 사관과 한국적 민주주의
일곱 번째 마당
쿠데타 막지 못하게 한 양대 걸림돌,
양다리 걸친 장도영과 진압 막은 윤보선
여덟 번째 마당
좌익 경력 때문에 박정희 꺼렸다?
미국이 쿠데타를 묵인한 이유
아홉 번째 마당
정치 깡패 이정재는
진정 죽어 마땅했나
열 번째 마당
장준하는 왜 5·16쿠데타 직후
“군사 혁명”이라 했나
열한 번째 마당
5·16쿠데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장면 정부 따라 한 군사 정권
나가는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