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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간

산사로 가는 길

박재완 저 | 연암서가 | 2016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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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4054896 / 302쪽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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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시계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햇살이라고 부르고 싶을 때, 지구의 자전 너머로 사라지는 태양을 노을이라고 부르고 싶을 때, 멀고 먼 우주의 돌덩어리를 밤하늘의 별이라고 부르고 싶을 때, 창밖에 내리는? 빗방울이 가슴으로 떨어질 때, 바다의 끝을 수평선이라고 부르고 싶을 때, 우리는 그것들을 풍경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풍경이 글을 쓰게 하는 것이다. 산사에서 아침을 맞을 때 산새 한 마리가 우주를 깨우고 있었고, 거대한 우주는 나비 한 마리에 온 힘을 쏟고 있었다. 소리 없이 내리는 눈송이가 거대한 문명의 모든 결행을 멈추게 했고, ... 시계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햇살이라고 부르고 싶을 때, 지구의 자전 너머로 사라지는 태양을 노을이라고 부르고 싶을 때, 멀고 먼 우주의 돌덩어리를 밤하늘의 별이라고 부르고 싶을 때, 창밖에 내리는 빗방울이 가슴으로 떨어질 때, 바다의 끝을 수평선이라고 부르고 싶을 때, 우리는 그것들을 풍경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풍경이 글을 쓰게 하는 것이다. 산사에서 아침을 맞을 때 산새 한 마리가 우주를 깨우고 있었고, 거대한 우주는 나비 한 마리에 온 힘을 쏟고 있었다. 소리 없이 내리는 눈송이가 거대한 문명의 모든 결행을 멈추게 했고, 빛의 속도로 흐르던 시간은 눈부신 설경의 시간을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는 우리가 있었다. 때론 뒤늦은 생각과 빗나간 마음을 안고, 기어이 겨울을 따라나선 갈대 앞에 서 있었다. 그렇게 나의 글은 풍경에서 왔다. -책머리에 중에서 자기 내면의 흐름을 용서하지 않고 낱낱이 따지는 시선은 가장 박재완적인 시선이다. 자기 엄격성은 작가에게, 특히나 수필작가에겐 필수적인 덕목이다. 그는 이 산행의 경험을 역경을 뚫고 어떤 목표물을 쟁취한 승리의 기록보다는 자기의 비굴을 어쩔 수 없이 목격하고만 자기 격하의 경험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이 작가에게 이런 오기는 왜 생기는 걸까? 극한의 상황에서 나의 허약함을 발견했다면―어디 이게 나만이 갖는 허약함이겠는가. 인간이란 종이 갖는 허약함일 것이다―어떤 경우에도 인간에 대한 재발견이고 그렇다면 진전된 시선 아닌가. 그날 솟아오르는 태양을 보며 감격해서 셔터를 눌렀던 것은 그날의 태양 자체가 특별나서가 아니라 나에게 그 태양이 특별난 의미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 감격은 무너지는 자신을 몸으로 견뎌냈다는, 그리하여 견딘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감격 아닌가. 그런데 박재완은 이 영광을 거부한다. 끝끝내 아무런 일도 없었다고 시치미를 땐다. 그러면서 자기의 허위의식을 눈 똑바로 뜨고 낱낱이 체크한다. -김종완, 「해설: 산승(山僧)이 바랑을 메고 세상을 걷다」 중에서

저자 소개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고 2014년까지 현대불교신문사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비종교인이었던 작가는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불교와 가까워졌다. 많은 시간 천년고찰의 산사를 오가며 그 불가적(佛家的) 풍경의 느낌들을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 재직 중 「박재완 기자의 사찰풍경 1·2」와 「절 속의 문화 읽기」, 「불교 사진 이야기」, 「신 사찰 건축」, 「갤러리 색즉시공」 등을 연재했다. 「박재완 기자의 사찰 풍경 2」와 「절속의 문화읽기」로 2008년과 2010년에 한국불교기자협회가 수여하는 한국불교기자상(사진영상 보도부문)을 수상했다.
2012년 <에세이스트>로 등단했고, 「텅 빈 운동장」으로 2015년 <에세이스트>의 ‘올해의 작품상’을 수상했다. 

책 속에서

밤새 숲에 묵었던 안개가 아침 햇살에 불려간다. 산새 한 마리가 울어 시간을 깨우고 안개를 털어내는 나무와 풀들로 우주는 비로소 뜻을 가지기 시작했다. 산사의 맑은 방에서 잠을 자고 빈손으로 일어나 뜻 깊은 우주를 본다. 알 길 없는 우주에서 삶이란 눈을 감았다 뜨는 사이. 먼 길을 왔어도 길은 없고, 길이 없이도 마음은 틈만 나면 어딘가를, 어딘가를 다녀온다. 언제 날아갈지 모르는 산새의 날개에 또 하루가 달렸다. -12쪽

꽃 피는 담장 뒤에서 누가 울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터지는 입 틀어막고 넘치는 눈물 문질러가며 담장 뒤에 앉아 우는 사람이 지금도 있을지 모른다. 꽃이 필 땐 꽃만 보인다. 담장 뒤에서 누가 울어도 모른다. 산꼭대기 새가 우는 건 알아도 꽃 피는 삼월에 우는 사람이 있는 건 아무도 모른다. 산꼭대기 새도 아는 걸 아무도 모른다. -13쪽

마음은 깊은 곳에 있었으면 좋겠고, 마음 깊은 곳에 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눈빛은 늘 아침 같았으면 좋겠고, 시선은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부는 많이 안 됐어도 게으르지만 않았으면 좋겠고, 할 수 없이 내는 말은 흙이 내는 풀잎 같았으면 좋겠다. 생각은 등불 같았으면 좋겠고, 오늘 생각이 어제 생각보단 밝았으면 좋겠다. 어쩌다 흐르는 눈물은 그 무엇보다 뜨거웠으면 좋겠고, 어쩌다 품은 용기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날이 저물어도 급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아침이 와도 당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늘 독백으로 가슴이 뛰었으면 좋겠고, 힘든 고백 뒤엔 부처님이 있었으면 좋겠다. 사는 게 힘들어도 ‘나’는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고, ‘나’는 힘들어도 나의 ‘자리’는 변함없었으면 좋겠다. 잠든 모습은 절 마당 같았으면 좋겠고, 지나간 하루는 절 마당을 지나간 나무 그림자 같았으면 좋겠다. -18쪽

연못 위에 낙엽이 쌓이고 있었다. 상왕산 개심사. 가을을 보러 온 사람들이 연못을 지날 때마다 낙엽들 사이로 파란 하늘이 내려와 잠겼다. 떨어진 낙엽 위엔 앙상해진 나뭇가지의 그림자가 어른거렸고, 멀리서 울던 산새는 가지를 옮겨 앉았다. 가을엔 자연도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연못에 떨어진 낙엽은 떠나온 가지를 볼 수 있었고, 가지를 옮겨 앉은 산새의 눈엔 떠나온 숲이 보였다. 자연도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이 있었다. 어느 해 가을, 개심사 연못은 시를 써낸 눈동자처럼 깊었고, 쌓이는 낙엽 사이로 하늘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연도 자신을 바라보는 가을. 우리도 이 가을, 한 번쯤은 우리를 진지하게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29쪽

절, 중생과 부처 사이에 있는 절. 나는 한 달에 두어 번 절에 간다. 대부분 오래된 산사에 간다. 불교계 신문사에서 사진기자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사의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으러 간다. 그렇게 산사에 머물면서 사진을 찍고 있으면 그 오래된 풍경들이 문명의 공간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은 우수를 맛볼 수 있는 시간을 준다. 그 깊은 우수는 다름 아닌 ‘나’라는 걸 산사에 다니면서 알게 됐다. 삶이 힘들면 힘들수록 들여다보고 싶어지는 ‘나.’ 그런 나를 산사에 가면 조금씩이라도 볼 수가 있다. 오래된 풍경 속에는 그런 힘이 있다. 그리고 이제 그 오래된 풍경이 나에겐 종교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나를 생각게 하는 그 무엇, 그것이 각자의 종교가 아닐까 생각한다. -76쪽

책을 덮고 나니 그 시절이 떠올랐다. 책을 버리던 시절. 책이 아직 그 시절을 쥐고 있었다. 세월은 사라졌지만 ‘시절’은 그렇지 않았다.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는 한 ‘시절’은 사라지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다. 마흔여섯의 어느 가을밤에 읽은 책 한 권은 열 줄의 글을 쓰게 했다. 그리고 그 책 속에는 잊지 못할 작은 제목이 있었다. 한 장 한 장 읽어가야 하는 책은 하루하루 살아가야 하는 인생과 닮았다. 한 권의 책이 있기까지 작은 제목들이 있듯이 우리의 인생에도 작은 제목들이 있다. 그 제목은 사라지지 않는 시절 앞에 붙어 있다. 버려진 책 속에, 다시 주워온 책 속에 그 시절의 제목이 있었다. -83쪽

초등학교 5학년 1학기가 끝나는 여름방학식 날이었다. 종례 시간에 선생님은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며 성적표를 나눠주었다. 나의 성적표엔 ‘수’가 없었다. ‘우’ 몇 개와 ‘미’ 몇 개, 그리고 없던 ‘양’도 하나 보였다. 그동안의 성적표도 크게 다를 것이 없었지만 그날의 성적은 너무 초라했고,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왠지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식에게 부모란 돌아서 갈 수 없는, 어떤 ‘길목’ 같다. 존재 자체가 들고 있는 회초리인 것이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은 너무나 무거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민’이란 걸 했던 것 같다. -85쪽

어두운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정막이 어둠의 순도를 높여갔다. 짙어가는 어둠과 함께 두려움도 배가 됐다. 정막을 깨뜨리며 칼바람이 지나가면 그 뒤를 마른 낙엽들이 바스락거리며 쫓아갔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낙엽들의 그 가벼운 음향이 나를 떨게 했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었다. 그 작은 소리에 쉰 살을 바라보는 남자가 무서워서 떨다니. 나는 움츠러들며 나의 뒤로, 또 나의 뒤로 숨고 또 숨었다. 나는 무서워서 어린아이처럼 덜덜 떨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길이, 아무도 없는 세상에 혼자 서 있는 것이, 무서웠다. 사나운 짐승, 나쁜 사람 그리고 세상에 없다고 믿었던 것들이 모두 그 두려움 위로 출몰했다. 낙엽 위를 걷는 나의 발소리조차 무서웠다. 한없이 우스워져가는 나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잠자리에 오줌을 싸고 아침에 일어나 자신을 믿지 못하는 아이처럼 나는 ‘나’를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어이없는 ‘나’는 사실이었다. 어둠은 나에게 나의 액면을 보게 했다. 어둠은 모든 것을 지웠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것들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어둠은 밖으로, 밖으로 향하는 모든 존재들의 시선을 안으로, 안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다. 유한의 존재들이 ‘시간’에 무릎을 꿇듯, 어둠 속에 서 있는 모든 존재들은 ‘어둠’이라는 제단 위에 놓여 있었다. -114쪽


∠추천사

박재완의 수필은 맑은 언어로 기록된 구도의 여정기(旅程記)라 할 수 있다. 카메라맨이 피사체를 줌인 하듯 깊은 동굴 속 자기를 응시하며 ‘이 길은 어디로 가는가?’ ‘어디까지가 너이고 어디까지가 나인가?’ 경계를 허물며 끊임없이 거듭되는 질문에 아침은 그냥 오는 게 아니라 모두 밤에 울어서 오는 것, 젖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그 길(娑婆苦)을 몸으로 살아내고 마음을 비워서 새처럼 날 수 있기를 바란다. “사는 게 힘들어도 나의 ‘자리’는 변함없었으면 좋겠다”는 부동심(眞如)의 점검과 “어쩌다 찾아온 근심으로 공부하면서 쏜살같은 시간 살다 갔으면” 한다는 압축된 그의 언어는 독자로 하여금 많은 부문을 보완하면서 읽게 한다. 그것들은 곧 나의 문제로 환원(還元)되고… 그의 글에는 이런 힘이 있다. 통찰의 깊은 울림이 있다. -맹난자(수필가)

목차

목차
책머리에
제1부 사찰 풍경 속 이야기
아침 | 삼월 | 기다림 | 나비처럼 | 나에게 | 기적을 꿈꾸며 | 너의 언어 |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서 | 아름다운 날 | 설경 | 사랑 | 고백 | 가을에는 | 인간과 가을 | 아침바다 | 입적(入寂) | 화택(火宅) | 기도 | 산사의 가을 | 너의 흔적 | 겨울숲 | 하늘과 구름 | 오늘도 | 운주사 석불 |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 돌담 위의 낙엽 | 수수께끼 | 나무도 운다 | 석탑 | 약속 | 너와 나 |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 | 청운사 연밭 | 운명 | 편지 | 길과 나 | 봄에 | 새처럼 | 가을굿 | 달 | 길이 있어야 하는 이유 | 법당 | 세상 | 낙수 | 갈대 앞에서
제2부 산사로 가는 길
산사(山寺)로 가는 길 | 일신수필(馹迅隨筆) | 어머니의 관세음보살 | 아버지 | 중년(中年) | 적선(積善) | 텅 빈 운동장 | 꿈꾸다 죽은 늙은이 | 노란 리본 | 무명(無明) | 침몰
제3부 절로 향하는 마음
의성 고운사(孤雲寺) | 김제 망해사(望海寺) | 남해 용문사(龍門寺) | 삼척 신흥사(新興寺) | 논산 관촉사(灌燭寺) | 여주 신륵사(神勒寺) | 경주 분황사(芬皇寺) | 영천 운부암(雲浮庵) | 완주 화암사(花巖寺) | 공주 신원사(新元寺) | 연기 비암사(碑巖寺) | 김제 금산사(金山寺) | 포항 오어사(吾漁寺) | 남원 실상사(實相寺) | 서산 개심사(開心寺) | 영천 거조암(居祖庵) | 영암 도갑사(道岬寺) | 김제 흥복사(興福寺) | 울진 불영사(佛影寺) | 김천 청암사(靑巖寺) | 경주 기림사(祇林寺) | 공주 동학사(東鶴寺) | 해남 대흥사(大興寺) | 영월 법흥사(法興寺) | 순창 구암사(龜巖寺)
제4부 절 속의 문화 읽기
안동 영산암(靈山庵) | 사천 다솔사(多率寺) | 강진 무위사(無爲寺) | 군위 인각사(麟角寺) | 해남 일지암(一枝庵) | 고창 선운사(禪雲寺) | 화순 운주사(雲住寺) | 김해 은하사(銀河寺) | 예산 수덕사(修德寺) | 영주 부석사(浮石寺) | 봉화 청량사(淸凉寺) | 순천 선암사(仙巖寺) | 통영 용화사(龍華寺) | 곡성 태안사(泰安寺) | 순천 불일암(佛日庵) | 경주 불국사(佛國寺) | 인제 오세암(五歲庵) | 구례 연곡사(?谷寺)
해설 산승(山僧)이 바랑을 메고 세상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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