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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찾는 아이 아이를 찾는 사회

조한혜정 저 | 또하나의문화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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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8985635433 / 398쪽 148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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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굳이 해체하려 하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해체되고 있는 기존의 학교에더이상 미련을 두어서는 안된다. 아이들이 학교를 떠날때 이미 학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청소년범죄는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고 자퇴아들은 늘어만 간다.
청소년들의 문제는 항상 있어왔다. 지금은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6,70년대의 청소년들도 그 시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문제아들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그 형식과 모양까지도 같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섹스와 엽기가 판치는 포스트 모더니즘 사회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은 더이상 아이가 아니다. 다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활화산과 같은 존재일 뿐인 것이다. 여기에 그들을 애정어린 눈길로 보는 시선이 있다. 학교를 살릴 수 있는 것은 청소년들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들을 다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1948년 부산에서 태어남.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UCLA 대학에서 인류학 박사를 수료했으며,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강의를 맡고 있음. ‘또 하나의 문화’를 통해 여성문화, 페미니즘 이론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담론들을 제시하고 생산해 왔음. ‘하자센터’를 통해 작업장 학교라는 대한학교를 설립하고, 노리단이라는 사회적 기업을 발족시켜 청소년 문화운동과 대안교육의 다양한 실험을 해옴. 현재 환경운동연합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우정과 환대가 가득한 공동체 마을의 복원을 꿈꾸고 있음. 
저서로 <한국의 여성과 남성>, <성찰적 근대성과 페미니즘 ― 한국의 여성과 남성 2>, 연작 형태의 문화 비평서인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1·2·3>, 교육 현장을 다룬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 아이를 거부하는 사회>, <학교를 찾는 아이, 아이를 찾는 사회>가 있으며, 마거릿 미드의 <세 부족 사회에서의 성과 기질>를 번역했다. 공동 저서로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 <가족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마을로>, <왜, 지금, 청소년?>, <탈분단 시대를 열며: 남과 북, 문화 공존을 위한 모색>, <경계에서 말하다>, <인터넷과 아시아의 문화연구> 등이 있다.  

머리말

책 머리에


1.


서태지가 돌아왔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는 나의 집이 어디인가 생각해 봅니다"
라는 편지를 보냈던 달갱이도 돌아왔다.


이 책은 1996년에 출간된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 아이를 거부하는 사회] 후속편이다. 첫번째 책이 학교를 자퇴하는 아이들을 연구하면서 그들이 '체제 부적응자'가 아니라 '체제 자체의 부적응'을 몸으로 앓고 있는 '시대적 존재'라는 점을 말하기 위해 쓴 것이라면, 이 책은 성큼 들어선 후기 근대적 상황에서 그들과 함께 시대적 위기를 해결해갈 대안을 찾으면서 쓴 책이다. 이제 긴 말은 하지 말자. 한국 십대의 절대 다수가 하루 열 시간 이상을 머무는 한국의 중등 교육 기관은 '창의력과 협력'의 시대에 '순종과 소모적인 경쟁'만을 가르치는 가장 경쟁력 없는 기관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인정하자. 학교는 이제 '물갈이'가 아니라 '판 갈이'가 필요하다. 그리고 다행히 인터넷 시대로 접어들면서 '판 갈이'는 시작되고 있다.


지난 4-5년간 나는 별로 행복하지 못했다. 강의실에서 3분 이상을 집중하지 못하는 일류대 관문을 통과한 아이들, 일주일에 서너 번씩 소주를 고주망태로 마시는 대학생들을 보면서 불행했고, 몸은 학교에 남아 있지만 마음은 이미 학교를 떠나 버린 중고등학교 아이들을 보면서 불행했다. 그러나 이들이 가고 있는 세상을 가만히 따라가 보면서 한편 안도의 숨을 쉬기도 했다. 그들 중에는 인터넷이 만들어낸 광활한 세상 속에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아이도 있었고, 밤새 술 마시고 춤을 추며 '개판'을 치는 듯하더니 파티 기획단을 꾸리고 단단한 기획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아이도 있었다. 내 눈에는 '술집 여자'처럼 차리고 다니던 아이가 실은 대단한 패션 디자이너가 될 소양을 기르고 있는 문화 산업 시대의 아이였고, 24시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틈틈이 작곡을 즐기는 아이는 불안정 고용 시대를 나름대로 즐겁게 살아가는 지혜를 일찌감치 터득한 아이였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홍대 앞 카페를 전전하던 '한심한' 아이는 어느 날 재미난 벤처 회사에 출퇴근 시간 없는 사진 예술가로 고용이 되어 자신이 원하던 '놀면서 일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학생 신분'을 버렸을 때 얻을 수 있는 것과 그것을 고수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의 계산은 각자가 할 일이었다.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가 상징하는 '대량 생산 체제'를 지나 바야흐로 '다품종 소량 생산'의 시대, 소비의 시대, 문화의 시대, 인터넷 혁명의 시대, 고도 관리 시대가 열리고 있다. 무대 세팅이 너무 급하게 달라져 버려, 주연 배우들은 당혹스럽다 못해 그만 그 자리에 멈춰 서 있고 싶어한다. 움직이지 않으려는 기성 배우들의 저항은 자못 완강하다. 참다 못한 조연 배우들은 각본에 없던 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 조연 배우들의 상당수가 십대들이다. 내가 십대들을 따라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각본에 없는 짓을 하던 이들은 사실상 변화의 속도에 맞춰 제 시대를 가는 아이들이었던 것이다. 사회 변화를 감지해 내는 것이 임무인 나는 한동안 변화를 좀더 잘 감지하는 그들 곁에서 그들의 시대 감각에 감염되도록 나 자신을 맡겼었다. 그 아이들이 '괴물'같이 느껴진다면 '괴물' 같은 시대가 오는 것일 터이고, 그들이 '괴물'로 보이는 한 나는 21세기의 삶을 '즐겁게'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 나는 그들 편에서 그들과 함께 시대를 살아 보려 했고, 때론 '괜찮은' 어른으로서 힘닿는 한까지 그들을 돕고자 했다. 그것이 곧 내가 즐겁게 살 길이므로…



2.


십대의 삶을 나의 참여 관찰의 공간으로 삼기 시작한 것은 소비 자본주의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90년대 초반부터였다. 처음에는 청년들과 놀면서 대학 문화, 대중 소비 문화, 그리고 문화 산업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지만, 막상 한 개인의 문화 생활의 질은 그가 고등학교 때 '향유한' 삶의 질에 비례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중등 교육과 십대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내 관심은 크게 세 단계로 옮겨 왔다.


첫 단계는 십대를 이해해 보려는 단계였다. 그러나 십대들을 연구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우선 그들 대부분이 학교라는 곳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없었으며, 그들의 삶의 질은 최악의 수준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갇혀 있는 상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자 하였고, 그들이 좀더 나은 삶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고자 했다. 한마디로 문화 비평가로서 십대의 대변자 역할을 하려 했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때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 아이를 거부하는 사회]를 썼고, '또 하나의 문화' 동인들과 함께 [새로 쓰는 청소년 이야기] 1, 2권을 기획해서 펴냈다

책 속에서

인터넷으로 온갖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된 아이들에게 학교는 배울 것도 없고 재미도 없는 공간이며, 오래 머물다가는 심히 낙후된 인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게 하는 공간이다. 학교를 이탈한 아이들이 성공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아이들은 더 이상 '학생'으로만 머물 생각이 없어진다.


대량 생산 체제를 벗어나는 후기 근대적 시점에서 아이들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은 별로 쓸모가 없으며, 졸업장도 전처럼 그렇게 막강한 힘을 휘두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챈다. 고도 성장 시대처럼 공부 잘한다고 좋은 직장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며, 직장을 얻었다고 평생이 보장되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이 알아차리기 시작한 것이다. 컬러 텔레비전과 수십 개의 채널을 가진 케이블TV, 그리고 피시 통신이라는 소통 매체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더 이상 흑백 텔레비전 시대의 문법이 먹혀들 리 없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자구책을 찾거나 그런 능력이 없을 경우에라도 최소한 '학교에 순응하는 것은 아니다'는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언론을 통해 크게 보도되고 있는 학교 붕괴 내지 학급 붕괴 논의는 이런 현상이 공론화되면서 일어난 것이다.---p.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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