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아큐정전

원제 : 阿Q正傳

루쉰 저 | 허세욱 역 | 범우 | 2016년 03월

북트리

정가
$18.00
판매가
$9.90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0.20 (2%P)
출고예상일
2026년 10월 08일 수령예상일 안내
북카트 담기 바로구매하기 위시리스트담기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ISBN : 9788963651415 / 270쪽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중국 신문학의 개척자 루쉰(魯迅)의 대표 작품선 - 〈아큐정전〉 외에 〈광인일기〉, 〈풍파〉, 〈고향〉, 〈고독자〉 작품 수록~! 신해혁명을 배경으로 날품팔이 유랑인인 ‘아큐’의 일생을 그림으로써, 그의 단편집인 〈눌함〉의 책머리에 밝힌 바와 같이 중국민족의 약점을 폭로하였으며, 당시의 중국 사회에 만연한 많은 병폐를 거울 앞에 발가벗긴 채 세워 놓았다. 아큐는 반식민지, 반봉건적인 사회, 더구나 신해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지 못 하는 타성의 사회에서 사명감이나 목적의식이 없으면서 부질없이 혁명의 소용돌 ... 중국 신문학의 개척자 루쉰(魯迅)의 대표 작품선 - 〈아큐정전〉 외에 〈광인일기〉, 〈풍파〉, 〈고향〉, 〈고독자〉 작품 수록~! 신해혁명을 배경으로 날품팔이 유랑인인 ‘아큐’의 일생을 그림으로써, 그의 단편집인 〈눌함〉의 책머리에 밝힌 바와 같이 중국민족의 약점을 폭로하였으며, 당시의 중국 사회에 만연한 많은 병폐를 거울 앞에 발가벗긴 채 세워 놓았다. 아큐는 반식민지, 반봉건적인 사회, 더구나 신해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지 못 하는 타성의 사회에서 사명감이나 목적의식이 없으면서 부질없이 혁명의 소용돌 이 속으로 휘말려, 이윽고 무기력하고 비겁한 노예근성으로 돌아가 그 최후를 공허하게 막을 내리는 하나의 사회적 산물이다. | 이 책을 읽는 분에게 | 이 책에 소개하는 〈아큐정전(阿Q正傳)〉(1921), 〈광인 일기(狂人日記)〉(1918), 〈풍파(風波)〉(1920), 〈고향(故鄕)〉(1921), 〈고독자(孤獨者)〉(1925)는 모두 전기 작품의 백미(白眉)에 속한다. 1921년 12월부터 연재한 〈아큐정전〉은 그 사상성이나 예술성은 물론, 문학사상 그 의의가 크다. 그의 창작 32편 가운데 유일한 중편으로서, 루쉰을 세계에 알린 각광의 거작이다. 신해혁명을 배경으로 날품팔이 유랑인인 ‘아큐(阿Q)’의 일생을 그림으로써, 그의 단편집인 《눌함》의 책머리에 밝힌 바와 같이 중국 민족의 약점을 폭로하였으며, 당시의 중국 사회에 만연한 많은 병폐를 거울 앞에 발가벗긴 채 세워 놓았다. 4천 년간 뒷걸음질 친 중국의 전통 사회가 빚어낸 인간의 심벌로 아큐를 설정하고, 청조(淸朝) 말기의 침체된 봉건 사회 속에서 아큐를 중심으로 한 지방의 토호와 그 가족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권세의 이면과 혁명의 그림자를 희화화하였다. 아큐는, 반식민지, 반봉건적인 사회, 더구나 신해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지 못하는 타성의 사회에서 사명감이나 목적의식이 없으면서 부질없이 혁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이윽고는 무기력하고 비겁한 노예근성으로 돌아가 그 최후를 공허하게 막을 내리는 하나의 사회적 산물이다. 그것을 관통하는 관념의 흐름은, 다름 아닌 ‘정신 승리법’이다. 공허한 영웅주의와 무력한 패배주의에 빠져 자신의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면서 자기 만족에 젖어 있고, 타개하지 못하는 민족적 위기에 살면서도 대국 의식(大國意識)을 버리지 못하고, 물질 생활의 군데군데마다 실패를 안으면서도 정신적인 만족에 그만 현실을 외면해 버리는 것을 뜻한다. 이는 곧 ‘아큐주의(阿Q主義)’이다. 피압박 사회에서 하나의 교활한 대응 방법인 것이다. 바로 민족의 치욕을 잊어버리고, 병을 앓으면서도 의사를 기피하고, 남의 뒤를 따라 부화뇌동하고, 약자에겐 잔인하면서도 강자에겐 아첨하며, 자신의 책임을 곧잘 남에게 미루고,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 지난날의 영광을 자랑하면서, 행복은 오로지 환상에 맡기는 당시의 지성인을 형상화한 것, 거기엔 너무나 맹렬하고 가혹한 자기 민족에 대한 힐책이 담겨 있다. 끝내는 이 건달 아큐가 혁명 소동의 희생이 되어 처형을 당할 때, 그 장면을 그저 구경거리로만 보는 민족애의 노여움과, 아큐에 대한 동류적인 동정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나라의 현실을 쓸쓸한 물거품처럼 느끼게 했다. 루쉰은 여기에서 타락한 지성인, 철저하지 못한 혁명인, 비생산적인 농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고, 동시에 마비된 인간의 병태를 그리기에 과감했다. 그만큼 민족의 독소인 봉건의 병근(病根)을 증오하였다. 루쉰이 〈요극(姚克)과의 담론〉이라는 글 속에서 “미인에게 부스럼이 났을 때, 그것을 감추고 단지 그녀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기보다는, 그것을 지적하면서 그녀로 하여금 수치를 느낀 나머지 의사를 찾게 하는 것이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다”라는 요지를 강조한 것과, 〈소설을 어떻게 쓸까?〉라는 글에서 “나의 소설 소재는 가능한 한, 병태 사회의 불행한 사람에게서 찾는다”라는 창작 자세로 미루어, 그의 창작 목적이 국민성의 개조나 계몽에 있었음을 새삼 증언할 수 있다. 결코 계급의식을 고취하거나 무산 대상을 옹호한다는 사회주의적 작위는 아니라고 본다. 〈아큐정전〉에 일관한 정신 승리법적인 아큐주의를 부각시키기 위한 아큐의 전형은, 분명히 성공적인 예술 기교로 평가되어야만 한다. 1918년 4월, 《신청년(新靑年)》 지(誌)에 발표한 최초의 단편인 〈광인 일기〉는, 그에게는 처녀작일 뿐만 아니라, 중국 신문학사상 최초의 소설인 셈이다. 중국의 봉건적 구세대적 예교(禮敎)를 철저히 공격한 이 작품은, 피해망상증에 사로잡힌 광인을 등장시켜, 그의 무의식적인 동작과 자백적인 넋두리를 통해 예교의 속박과 봉건의 독소를 ‘식인(食人)’에 비유할 만큼 적나라하게 파헤친 것이다. 봉주(封主)와 농민, 노예주와 노예 사이의 인권 침해와, 예절이라는 사회적인 강요 때문에 열녀나 절부(節婦)의 미명으로 희생되어 가는 유가적(儒家的)인 폐쇠 사회에서, 정신 이상자인 광인은 유린되어 가는 개성의 해방과 개성의 존중을 외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구구해자(救救孩子)!”(아이들을 구출하라!)를 부르짖음으로써 새로운 인간 해방을 역설했으며, 하나는 먹고[食人] 하나는 먹히고[被食] 하는, 2천 년 남짓의 장구한 봉건 사회를 비판하였으니, 이는 바로 민족의 계몽이요 인간 회복을 위한 의지적인 문학이었다. 5·4운동 이후에 쓰여진 〈풍파〉에서는, 신해혁명과 그 후의 봉건 군벌들이 혼전을 벌이는 당시 중국 사회를 반영했는데, 하층 인간의 무지가 점철되어 있다. 거기엔 3대를 내려오면서 호미 자루를 던지지 못한 채 쿨리(육체 노동에 종사하는 하층의 중국인, 인도인 노동자) 노릇을 해온 ‘칠근(七斤)’이, 비록 가난과 피로에 허덕이면서도 언젠가는 벼슬아치가 되겠다는 소박한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풍파〉 이듬해 연초에 쓴 〈고향〉에서는, 황폐한 농가를 뒤로 하고 도시로 떠나는 주인공과 그 집 달머슴의 아들 윤토(閏土) 사이의 토양적인 애정과 신분 관계에서 빚어지는 장벽을 그리면서 무한한 희망성을 제시했었다. 끝으로 1925년, 자신의 내면 생활 및 고뇌와 외로움을 생생하게 그린 〈고독자〉가 있다. 중국의 역사 교원인 ‘위연수(魏連幕)’를 주인공으로 하여, 5·4운동 이후 중국의 지식인이 혁명과 이상의 갈등 속에 사색하는 인간은 곧 고독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면면들을 분노와 감상을 곁들여 소극적으로 그려 놓았다. 〈고독자〉는 〈재주서상(在酒棲上)〉 〈추야(秋夜)〉 〈상서(傷逝)〉 〈납엽(臘葉)〉 등의 단편과 함께, 절망과 감상, 회의 등의 어두운 색채를 띠고 있다. 니체의 영향도 보이는데, 그가 단편집 《방황》의 책머리에 굴원(屈原)의 〈이소(離騷)〉 중 “노만만기수원혜(路漫漫其修遠兮), 오장상하이구색(吾將上下而求索)”〔길은 아득히 멀기만 한데, 혼자서 오르락내리락 지기(知己)를 찾네〕을 인용한 것으로 미루어, 루쉰의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일면을 읽을 수 있다. 루쉰은 1918년에서 27년까지 10년 동안 두 권의 단편집 《눌함》 《방황》과, 다섯 편의 잡문집 《분(墳)》 《열풍》 《화개집(華蓋集)》 《화개집 속편》 《이기집(而己集)》, 자전 소설로 《조화석십(朝華夕拾)》, 역사 소품으로는 《고사 신편(故事新編)》, 산문 시집으로 《야초(野草)》 등 10여 권의 창작이 있다. 그 이외에도 《중국 소설 사략(中國小說史略)》 《소설 구문초(小說舊聞秒)》 《당송 전기집(唐宋傳奇集)》 등 세 권의 학술서 기타 역서를 냈다. 1928년부터 사망까지

저자 소개

중국 근대의 대표적인 사상가이자, 작가, 문학사가.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이다. 일본 유학시절 의학을 공부하다가 병든 육체보다 중국인들의 병든 정신을 개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문학으로 전환한다. 봉건주의와 서구 근대라는 이중의 억압 속에서 일생을 중국 현실의 변혁을 위해 살았다. 새로운 역사, 새로운 인간의 탄생을 위해 중국의 문명과 중국 현실을 철저히 해부하고 비판하는 한편, 봉건주의와 근대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독특한 시각을 지닌 문명비판을 전개하였다. 그런 글들은 ‘잡문雜文’ 혹은’잡감雜感’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창조하였고 총 20여 권의 산문집으로 묶였다. 또한 <광인일기>(1918)를 시작으로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하여 <고향>, <아큐정전> 등을 발표하였고, 그의 소설은 ≪방황≫, ≪고사신편≫ 등의 소설집에 실렸다. 루쉰은 중국 근현대인들에게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근현대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일제 시대에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이래 우리 현실을 읽는 거울 역할을 해왔다. 

역자 소개

(1934∼2010)은 전북 임실군에서 태어나서 이리(현 익산시)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한국 전쟁이 발발해 학교를 중단하고 아버지가 차리신 서당에서 2년간 한문 수업을 받았다. 이때의 체험이 중문학을 연구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듯하다. 1959년에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어과를 졸업하고 대만국립사범대학교에서 유학했다. 대만에 체류하는 동안 허세욱은 ≪한국시선≫(1964)과 ≪춘향전≫을 번역해 발간함으로써, 한국 문학을 소개했다. 그가 번역 소개한 한국 시인은 서정주, 박목월, 정지용 등이다. 1968년에는 2개월간 ≪한국 문학 산론≫을 신문에 연재하기도 했다. 대만에서 석사(1963), 박사 학위(1968)를 받고, 귀국해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어과에 조교수로 부임했다. 한국의 문학을 대만에 소개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문학을 한국에 번역해 소개하기도 했다. ≪중국 고대 문학사≫(법문사, 1986)와 ≪중국 현대 시선≫(을유문화사, 1976), ≪중공 현대 대표 시선≫(전예원, 1987) 등이 그런 작업에 해당한다. 또한 <중국 수필의 전통>을 1978년 1월부터 1979년 8월까지 ≪수필문학≫에 연재하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들 때문에 허세욱은 대만뿐 아니라 중화권에서 널리 인정을 받은 듯하다. 2003년에 베이징에서 있었던 ‘허세욱 중문 수필 세미나’는 이례적으로 외국인 작가를 초청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한국외대 도서관장, 한국외대 동양어대학장, 한국 중국 현대 문학학회 회장, 중국 어문 연구회 회장, 한국 수필 문학 진흥회의 부회장,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 중국 연구소 객좌 연구원, 고려대학교 중문과 교수, 고려대 중문과 학과장 및 대학원 주임 등을 역임했으며, 중국 문예협회에서 제정한 ‘중국 문학상’(1970)과 한국 수필 문학 진흥회가 제정한 제6회 ‘현대 수필 문학상’(1987), 임실 문학 대상(2000) 등을 수상했고, 2010년에는 대만 지산 문화 예술 훈장(鷄山文化藝術勳章)을 받았다. 유학한 대만뿐만 아니라 미국(아이오와대, 버클리대, 캘리포니아대, 스탠포드대), 유럽, 중국, 필리핀, 홍콩, 소련(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등을 방문해 강연하거나 연구했다. 
지금까지는 주로 허세욱의 학자로서의 면모를 살펴보았다면, 다음으로는 문예인으로서의 면모를 살펴보고자 한다. 허세욱은 1956년 대학 3학년 재학 중에 <레일의 대화>로 제1회 전국 대학생 시 콩쿠르에서 입상을 할 정도로 일찌감치 문예에 소질을 보였다. 그런데 졸업과 동시에 유학길에 올랐기 때문에 그의 문필 활동은 대만에서 시작되었다. 1961년에 대만에서 중문 시(<이름>, <소원>)를 ≪현대문학≫지에, 중문 수필(<한 그루의 나무>, <피난>)을 ≪작품≫지에 각각 추천받음으로써 문필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작품집은 1969년에 한국에서 처음 발간되었다. 첫 작품집은 시집 ≪청막≫(일지사)이었다. 그러나 이 시집 발간 이후로는 주로 수필을 쓰는 것에 집중했다. 그리하여 1976년에 첫 수필집 ≪움직이는 고향≫(범우사)을 출판한 이래, ≪태양제≫(오거서, 1981), ≪달이 뜨면 꽃이 피고≫(범우사, 1983), ≪인간 속의 흔적≫(보성사, 1990), ≪돌을 만나면 비켜 가는 물처럼≫(화동출판사, 1994), ≪임대 마차≫(세손출판사, 2002, ≪송정 다리≫(수필과비평사, 2008) 등 7권의 수필집과, 대표작을 모은 4권의 수필선을 출간했다. 중문 수필집도 3권 펴냈다. 이 작품집들에 실린 수필은 총 400여 편에 달한다. 기행집까지 아우르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분량에서는 수필에 미치지 못하지만, 시 창작도 꾸준히 해서 한글 시집 2권과 중문 시집도 출간했다. 
이렇듯 허세욱은 학자, 시인, 수필가, 번역가로서 다방면에서 활약했고, 그 범위도 한국을 넘어 대만을 중심으로 중화권 양쪽에 널리 걸쳐 있다. 이 책에서 집중하고 있는 수필의 경우, 허세욱은 고향이나 부모님에 대한 진솔한 감정이나 현대 문명에 대한 반성적 사유를 보이는 수필을 주로 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목차

목차
이 책을 읽는 분에게 · 5
아큐정전 · 21
광인일기 · 163
풍파 · 187
고향 · 205
고독자 · 224
연보 · 267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