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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6550616 / 456쪽 125 x 1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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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내가 버나드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봤던 것처럼 내 아이들 벤과 베스도 내가 죽어가는 것을 보게 되는 특권과 선물을 받기를…… 그러면 그들의 수태와 탄생이 시작되는 세대의 순환이 완성될 것이다. 이러한 순환, 즉 인간의 삶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순환, 충만한 순환은 일반적으로 의료 시스템에 의해 깨지게 된다. 순환 속에 있는 지금 이 순간, 버나드는 나에게 정말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나는 어떤 면에서 그의 경험이 나의 몸, 정신, 마음, 영혼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낀다. 내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경험보다 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더 좋은 유산이 무엇일까!
여기 이 자리에서는 정말 많은 이들이 동참한다. 병원에서는 오직 전문가들만이 죽음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뿐이다. 환자들, 친척들, 친구들은 말없이 누워 있거나 앉아 있다. 다시금 나는 버나드와 마릴린의 지혜를 기억한다. 집에서만, 오직 집에서 일상을 유지할 때만, 가족과 친구들은 적극적으로 죽음에 동참할 수 있다.(‘3. 죽어가는 과정은 죽음이 아니다’ 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내가 버나드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봤던 것처럼 내 아이들 벤과 베스도 내가 죽어가는 것을 보게 되는 특권과 선물을 받기를…… 그러면 그들의 수태와 탄생이 시작되는 세대의 순환이 완성될 것이다. 이?러한 순환, 즉 인간의 삶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순환, 충만한 순환은 일반적으로 의료 시스템에 의해 깨지게 된다. 순환 속에 있는 지금 이 순간, 버나드는 나에게 정말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나는 어떤 면에서 그의 경험이 나의 몸, 정신, 마음, 영혼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낀다. 내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경험보다 내 아이들에게 줄 수 있... 내가 버나드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봤던 것처럼 내 아이들 벤과 베스도 내가 죽어가는 것을 보게 되는 특권과 선물을 받기를…… 그러면 그들의 수태와 탄생이 시작되는 세대의 순환이 완성될 것이다. 이러한 순환, 즉 인간의 삶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순환, 충만한 순환은 일반적으로 의료 시스템에 의해 깨지게 된다. 순환 속에 있는 지금 이 순간, 버나드는 나에게 정말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나는 어떤 면에서 그의 경험이 나의 몸, 정신, 마음, 영혼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낀다. 내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경험보다 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더 좋은 유산이 무엇일까! 여기 이 자리에서는 정말 많은 이들이 동참한다. 병원에서는 오직 전문가들만이 죽음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뿐이다. 환자들, 친척들, 친구들은 말없이 누워 있거나 앉아 있다. 다시금 나는 버나드와 마릴린의 지혜를 기억한다. 집에서만, 오직 집에서 일상을 유지할 때만, 가족과 친구들은 적극적으로 죽음에 동참할 수 있다.(‘3. 죽어가는 과정은 죽음이 아니다’ 중에서) 죽어가는 과정은 죽음 아니다. 죽어가는 과정은 광휘에 찬 삶의 다른 모습이다! 저자는 동생 버나드가 식도에 생긴 악성 종양으로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첨단 테크놀로지에 빼앗긴 삶의 죽음을 반추한다. 동생 버나드는 저자 자신처럼 책을 많이 읽거나 사회의 높은 자리를 차지하지 않은 평범한 인물인데 의료기기에 몸을 맡기지 않고 그 ‘죽어가는 과정’을 하나의 삶으로 만든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Dying is not death'인데 동생 버나드가 ’죽어가는 과정‘을 얼마나 훌륭히 살아냈는가를 표현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저자는 그것을 하나의 충만한 순환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충만한 순환이 첨단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의료체계에 의해서 깨졌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던 이반 일리치의 그 유명한 혹에 대한 일화에서도 저자의 관점은 드러난다. 아마도 ‘일리치의 혹’에 대한 상세한 고찰은 이 책의 백미 중 하나일 터인데, 일리치는 ‘치료 행위’ 자체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병, 즉 자신의 목에 난 혹을 의술을 통해 물리적으로 떼어냈을 때 자신의 총체성이 깨진다고 판단해 치료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즉 일리치에게 중요했던 것은 치료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행위가 존재에 끼치는 영향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근대의 의료체계는 병이나 질환을 존재와 관계없는 대상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저자인 리 호이나키는 그러한 존재에 대한 무례가 근대가 만든 테크놀로지 문명의 본질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저자의 입장은 중세철학과 신학에 그 근거 기반을 두고 있다. 가톨릭 수사로서, 그리고 문명비판의 전위로서 리 호이나키의 통찰력은 신에 대한 철저한 믿음이 밑바탕되는 것이다. 그러나 호이나키의 ‘신’은 삶을 심판하는 도덕적인 초월자가 아니다. 도리어 그의 신은 삶과 세계에 내재해 있다. 삶과 세계에 내재해 있는 신을 근대문명이 추방한 것이며, 우리는 지금이라도 테크놀로지 문명에게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테크놀로지에 저당 잡힌 삶과 죽음 그렇다면 저자는 근대의 테크놀로지 문명을 어느 지점까지 비판하고 있는가. 이 책 10장 〈백장미단〉에서 저자는 히틀러의 나치 정권이 매우 계획된 통치를 했다고 설파하면서 그 합리성이 역설적으로 독일 국민의 반합리성을 가져왔다고 비판한다. 합리성의 이름으로 우리 삶에 내재해 있는 ‘신성’을 파괴한 극단적인 예가 바로 나치라는 것이다. 가톨릭 수사로서 호이나키는 나치를 신학적 관점에서 비판한다. ‘적그리스도’는 실체가 모호한 사탄이 아니라 근대의 테크놀로지 문명의 모습으로 출현한다고 보는 게 저자의 근본 입장이다. 하지만 근대인이 근대문명이 제공하는 테크놀로지의 편리를 과연 어디까지 거절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이 ‘우정’이며 이 ‘우정’ 절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의료 시스템과 대면할 때, 이반 일리치는 특별한 예리함으로 우정의 중요성을 실감나게 강조한다. 순수한 친구는 많은 경우에 중요하지만, 특히 테크놀로지에 침범되는 죽음을 피하고 자신만의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일리치는 이런 사람을 아미쿠스 모르티스amicus mortis, 즉 ‘죽음을 함께 맞이하는 친구’라고 부른다. 그는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가 죽음에 임하는 것을 도울 능력과 의지를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도, 나에 대한 그의 사랑은 사사로운 이익을 생각지 않는다. 그는 가슴에서 우러난 선량함으로 나를 사랑한다. 그는 여러 징후로 나타나는 현대적 기술의 모호함과 문제적 성향에 대한 인식과 나라는 인간에 대한 친밀한 지식을 통합할 수 있다. 진정한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우리의 영혼은 서로 어울려 드러난다. “아미쿠스 모르티스”amicus mortis, 즉 죽음을 함께 맞이하는 친구”라는 개념은 이렇게 탄생한다. 저자에게 죽음의 문제는 곡해된 영생의 의미도 아니고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는 초월의 문제도 아니다. 죽음은 오로지 삶의 문제인 것이다. 죽음을 삶과 떼어내 사고하거나 대할 때 우리는 죽음을 ‘죽음 장사꾼’에게 넘기고 그들에게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이것은 명백히 자본주의 체제에 복속되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을 강제하는 것은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의료 체계이다. 이 의료 체계가 죽음을 우리로부터 떼어놓고 상품화시킨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죽음보다도 ‘죽어가는 과정’ 혹은 그 과정의 진입하기 시작하는 병과 고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죽음을 멀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저자인 리 호이나키의 입장은 명확하다. 역으로 테크놀로지 문명이 우리를 진실되지 못한 고통에 얽어맨다고. 저자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불길하고 무서운 생각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어쩌면 그가 지금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반복된 의학적 개입, 놀라운 현대적 최첨단 건강관리가 가져온 필연적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불행은 그가 살아오면서 겪은 많은 고통을 훨씬 넘어서는, 전적으로 부자연스럽고, 가공할 정도로 왜곡된 것이다. 이 사람에게서 우리는 현대적 의료 관리가 야기한 고통을 볼 수 있다. 악의 얼굴을 말이다. 그렇다면 보통 병과 고통의 상태가 아닌 건강 상태는 무엇인 걸까. 그것 또한 테크놀로지 문명이 짜놓은 그물에 갇힌 개념에 불과하다. 나는 현대사회의 건강에 대한 추구가 순전히 병적인 집착일지도 모르며, 개인의 안녕에 대한 왜곡된 신성화일지도 모른다고 경계한다. 가장 먼저 생각할 일을 놓치고 있다. 이반 일리치가 언급했듯이, “현재를 향유하는 능력은 건강을 추구하는 일에 의해서 무력해졌다.” 근대인들은 언제나 건강을 추구하는 일에 진력을 다하다가 “현재를 향유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근본주의적인 저자의 주장은 적지 않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의 생활과 관념이 저자의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테크놀로지의 압도적인 환경 속에서 진실한 삶이 무엇인지 깊이 헤아리지 못하는 것 또한 삶이 테크놀로지 문명에 오염되어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며칠 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공지능과 인간의 바둑 게임은 그것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일각에서는 이런 현상을 가능케 한 자본주의적 구조를 먼저 인식하자고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테크놀로지 문명에 대한 근원적인 비판이 부재하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도구적 동물이라는 고전적 명제도 있지만, 지금의 테크놀로지는 도구의 차원을 넘
나는 세계가 환상, 다시 말해서 현대 서양 의학이 우리를 더 건강하게 만들고 있다는 혼란스러운 망상으로 뒤덮여 있음을 본다. 그런 착각은 어떤 의미로는 실재가 시스템 그 자체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의료 시스템은 전문가의 지위 확대가 불러온 자만심과 소비에 길들여진 대중의 탐욕을 통해 번성했다. 진짜 문화는 배제된 채, 뿌리가 없고 균열된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길을 잃고 절망하며 공포에 떨고 있다.
관습적인 소비 행태에 몰두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오직 하나뿐인 곳, 살기 좋고 편안한 자리를 우리 손으로 직접 파괴했다. 그리고 이제 고칠 수 없는 묘비명을 썼다. “인간의 격정을 지배한 것은 네크로필리아(시체애호증)였다.”
—「머리말」 중에서
하지만 기술과학이 현대의 삶을 전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보험회사들이 요구하는 조치도 있고, 관료적 절차도 여전히 필요하다. 다른 전문가들과 반드시 상담을 해야 하며 이론적 근거들도 궁리해야만 한다. 적당한 독약이나 기구가 선택되어야 하고, 서류들을 작성해야만 한다. 필요한 서명도 반드시 받아내야 한다. 오직 그런 경우에만 죽음에 이를 수 있다.
기술사회에서 적절하게 여겨지는 죽음은 그런 방식으로 일어난다. 결국 현대 과학이 끼친 주요한 영향 중 하나는 각 개인을 더욱 더 무력하게 만들고, 자율성을 점점 더 남김없이 제거한다는 것이다. 죽음은 반드시, 즉 복지 전문가들과 성실한 관료들의 통제 밑으로 완전히 들어가야 한다.
― 1장「나 자신으로 죽기 위해」, 20쪽.
정말 많은 사람들이 친족들을 살균되고 인간미 없는 의료 시스템의 첨단 기술세계로 보낸다. 병원 직원들은 면회 시간 전에 매우 세심하게 환자들을 준비시킨다. 방문객들은 ‘역겨운’ 어떤 것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한 절차들은 실제로 비용이 더 비싼 기관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오히려 잘 관리되는 환자들이 갇혀 있는 병동과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인간 축소의 현실을 더 많이 목격했다. 많은 비용이 요구되는 시설에서는 혐오스럽게 보일 가능성이 있는 모든 것들이 제거되고 살균된다.
― 3장 「죽어가는 과정은 죽음이 아니다」, 97쪽.
우리는 고대 그리스의 책들을 공부하고 한 주에 한 번씩 그에 관한 짧은 논문을 썼다. 나는 호메로스, 투키디데스, 플라톤, 아리스토파네스, 소포클레스, 그리고 아이스킬로스를 기억한다. 『파이드로스』를 읽은 뒤 나는 걷는 것과 사유하는 것, 대화와 삶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 사이의 관계에 대해 호기심을 가졌다. 내가 훗날 알게 되고 존경하게 된 독일인들처럼, 소크라테스와 파이드로스는 일리소스 강을 따라 전원 속을 걸어 플라타너스 나무가 있는 곳, “온갖 여름의 소리와 향기로 가득한” 장소를 찾아 가 잔디에 앉았다.
― 5장「나의 죽음과 함께 걷기」, 155쪽.
1980년대 초반 그의 얼굴 한편에 있는 혹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을 때 의사인 친구 쿠엔틴 영은 종양과 관련해서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는 일리치가 상태를 검사하고 치료하는 데 정말 관심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어떤 전략을 생각해냈다. 그는 시카고에서 종양학자들이 참석하는 간담회에 일리치를 초대하도록 속임수를 썼다. 미리 통지를 받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일리치를 둘러쌌을 때, 종양학자 한 사람이 주사기를 꺼내서 재빨리 그의 혹에서 조직검사를 위한 유체를 뽑아냈다. 소동을 일으키기 싫어서 일리치는 저항을 하거나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몇 년 뒤 일리치의 친구가 그 사건에 대해 일리치가 뭐라고 했는지 기록했다. “이제 나는 강간당하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아.”
― 6장「고통을 견디는 능력」, 190쪽.
백장미단에 대한 모든 이야기들은 모두 하나로 일치한다. 아직 서른이 채 되지 않은 세 젊은이들은 체포된 순간부터 단두대의 칼날이 그들의 목을 내려칠 때까지 사람들이 경외심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는 침착함과 용기를 보여주었다는 것. 레크 말레체벤은 비밀 원고에서 한스와 조피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들의 빛나는 용기 속에서 잘 살아온 삶의 최고봉을 획득했다.” 그는 그들의 묘비에 이런 말들을 새겨 넣기를 바랐다. “죽는 법을 아는 사람은 결코 노예가 될 수 없다Cogi non potest quisquis mori scit.”
― 10장「백장미단」, 338쪽.
목차
머리말 _9
1. 나 자신으로 죽기 위해 _14
2. 오후의 선물 _48
3. 죽어가는 과정은 죽음이 아니다 _67
4. 저물어가는 시간 속의 제리 _127
5. 나의 죽음과 함께 걷기 _152
6. 고통을 견디는 능력 _182
7. ‘아니오’라는 대답의 도덕적 아름다움 _213
8.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는가 _248
9. 얼음송곳 청년 _291
10. 백장미단 _327
11. 죽음을 감싸 안는 것 _374
12. 건강 추구 : 또 다른 키메라? _408
주석 _426
옮긴이의 말 _4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