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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집

최치원 저 | 이상현 역 | 한국고전번역원 | 2016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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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9778830 / 464쪽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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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원의 문집 《고운집(孤雲集)≫ 번역 출간 “선생은 실로 우리 동방에서 처음으로 출현한 문학가였다.” 신라 말 고운 최치원의 글과 사적 등을 수록한 문집 《고운집》 은 어떤 책인가 여우도 미녀로 변신할 수 있고 너구리도 서생이 될 수 있다네 누가 알겠는가 사람과 다른 짐승들이 사람 모양 똑같이 하고 호리는 줄을 몸을 바꾸기야 어려울 것이 있으리오 정말 어려운 것은 마음을 잡는 일이지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고 싶거들랑 마음의 거울 닦고서 비춰 보시기를 - ‘고의(古意)’ 중에서 돛 걸고 푸른 바다 배를 띄우니 장풍 만리의 기분과 통한다 할까 뗏목을 탄 한나라 사신도 생각이 나고 약 캐러 간 진나라 아동들도 떠오르네 허공 밖에 걸려 있는 해와 달이요 태극 속에서 나온 하늘과 땅이로세 봉래가 지척의 거리에 보이니 나도 잠깐 선옹을 찾아볼거나 - ‘바다에 배를 띄우고’에서 …………………… 《고운집(孤雲集)》은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이 당나라에서 신라로 귀국 후에 지은 저작을 후손들이 모아 간행한 것으로 신라와 당나라의 양국의 역사는 물론 신라 말의 정치와 사회를 살피는 데 중요한 사료로서의 가치가 있다. 최치원의 저자의 시문은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 간행으로 당 나라 때 지은 작품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으나, 귀국한 뒤의 대부분의 산문과 당나라에 있을 때의 약간의 시는 여러 문헌과 금석문 등에 흩어져 있었다. 이에 후손 최국술ㆍ최면식 등이 악부ㆍ동문선ㆍ야사ㆍ승전(僧傳) 등에서 저자와 관련된 기록을 모아 1926년에 두 종류의 《고운선생문집(孤雲先生文集)》을 간행하였다. 하나는 6월에 후손 최국술이 노상직의 서문을 받아 간행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겨울에 후손 최면식 등이 이상영의 서문을 받아 간행한 것이다. 이 책은 최국술본(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문집 3권 2책을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표점영인하여 간행한 ‘한국문집총간’ 제1집 소재 《고운집》을 번역한 것이다. 다만, 권2,3에 실려 있는 일명 ‘사산비명(四山碑銘)’은 학계의 연구 성과를 종합적으로 검토ㆍ반영한 이우성 교주본 《신라사산비명》(아세아문화사, 1995)의 원문을 채택하여 번역하고 소주는 번역하지 않았다. 최국술본 《고운집》 권수에는 노상직의 중간서(重刊序), 후손 최국술이 쓴 편집서(編集序), 목록(目錄) 및 고운선생사적(孤雲先生事蹟)이 실려 있으며, 목록에는 저자의 총 저작목록인 권외서목(卷外書目)이 첨부되어 있다. 사적은 《삼국사기》ㆍ《동국통감》ㆍ《동사찬요》 등의 사서류와 가승, 그 밖에 저자의 유적ㆍ사원(祠院)ㆍ치제문ㆍ제문ㆍ‘단전요의(檀典要義)’ 등에서 저자와 관련된 자료를 초록(抄錄)한 것이다. 권1에는 부(賦), 시(詩), 표(表), 장(狀), 계(啓), 기(記)가 실려 있으며, 대부분 《동문선》에 수록되어 있다. 시는 오언고시, 오언절구, 칠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율시 등 문체별로 편차되어 있으며, 표(表)와 장(狀)은 귀국후에 지은 신라왕의 대작(代作)으로 당 나라에 보낸 국서이다. 기(記)는 불교관계의 글이다. 권2에는 〈무염화상비명(병서)〉과 〈진감화상비명(병서)〉이 실려 있다. 전자는 탑비가 충남 보령 성주사지(聖住寺址)에 남아 있으며 국보 제8호로 지정되어 있고, 후자는 탑비가 경남 하동 쌍계사(雙溪寺) 경내에 남아 있으며 국보 제47호로 지정되어 있다. 권3에는 〈대숭복사비명(병서)〉과 〈지증화상비명(병서)〉이 실려 있다. 전자는 탑비가 현재 남아 있지 않은데, 신라 왕실에서 사원을 세운 내력을 담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후자는 탑비가 경북 문경 봉암사(鳳巖寺) 경내에 남아 있으며 보물 제138호로 지정되어 있다. 권3에는 이 밖에도 찬(贊) 3편이 실려 있다. 권2, 3에 실려 있는 4편의 비명은 네 곳의 산에 있기 때문에 통틀어 ‘사산비명’으로 불리는데, 귀국후 왕명을 받들어 지은 것으로서, 당시에 유행한 ‘사륙변려문(四六騈驪文)’으로 쓰였다. 권미에는 1926년에 쓴 후손 최재교의 발문이 실려 있다.

저자 소개

신라 말기의 학자, 문장가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해운(海雲), 호는 고운(孤雲)이다. 경주 사량부(또는 본피부) 출신이다. 857년(헌안왕1)에 태어나 868년(경문왕8) 12세의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하여 7년 만인 874년에 빈공과에 합격하였다. 그 뒤 고변(高騈)의 종사관으로서 문한의 임무를 담당하였다. 29세 때 신라에 돌아와 시독(侍讀)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신라 신분체제의 한계와 국정의 문란함을 깨닫고 외지로 나가 태산군·천령군·부성군 등지의 태수를 역임하였다. 894년에는 시무책 10여 조를 진성여왕에게 올려 문란한 정치를 바로잡고자 하였으나 끝내는 승 현준(賢俊) 및 정현사(定玄師)와 도우(道友)를 맺고 가야산에 은거하였다.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908년(효공왕12) 말까지 생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현종 때 내사령(內史令)에 추증되고 문창후(文昌侯)에 추시(追諡)되어 문묘에 배향되었다. 저술로는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 《금체시(今體詩)》, 《잡시부(雜詩賦)》, 《중산복궤집(中山覆需集)》 등의 시문집과 사서(史書)인 《제왕연대력(帝王年代曆)》, 불교관계 글인 《부석존자전(浮石尊者傳)》, 《석순응전(釋順應傳)》, 《석이정전(釋利貞傳)》 등이 있었다. 오늘날에는 《계원필경》, 《법장화상전》, 《사산비명》만이 전한다. 

역자 소개

1949년 전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쳤으며, 민족문화추진회(한국고전번역원 전신) 국역연수원 상임연구부를 졸업하였다.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교육원에서 《제자선독》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역사의 고향》, 논문으로 〈추사의 불교관〉 등이 있다. ‘조선왕조실록’ 번역에 참여하였으며, 《계원필경집》, 《고운집》, 《목은집》, 《택당집》, 《계곡집》, 《포저집》, 《간이집》, 《가정집》, 《도은집》, 《고산유고》, 《원감국사집》, 《대각국사집》, 《죽석관유집》, 《침굉집》, 《기암집》, 《부휴당대사집》, 《사명당대사집》 등의 번역서가 있다.

목차

일러두기

해제 : 최치원의 저술과 고뇌, 그리고 역사 탐구 / 곽승훈

원문제목 찾아보기

고운집 중간서

고운 선생 문집 중간 서문〔孤雲先生文集重刊序〕[노상직(盧相稷)]

고운집 편집서

고운 선생 문집 편집 서문〔孤雲先生文集編輯序〕[최국술(崔國述)]

고운 선생 사적

삼국사 본전〔三國史本傳〕
동국통감〔東國通鑑〕
동사찬요〔東史纂要〕
삼국유사〔三國遺事〕
가승〔家乘〕
여지승람〔輿地勝覽〕
단전요의〔檀典要義〕
최고운의 난랑비 서문 및 삼국사〔崔孤雲鸞郞碑序及三國史〕
동사보유〔東史補遺〕
서유구의 《계원필경》 서문〔徐有矩桂苑筆耕序〕
서악지〔西岳誌〕
숙묘가 병자년(1696, 숙종22)에 무성서원에 치제한 제문〔肅廟丙子武城書院致祭文〕
학사당에서 평상시에 제향하는 축문〔學士堂常享祭文〕
정조가 친히 제문을 지어 화성의 교궁에서 치제할 때 문창공에게 올린 축문〔正祖御製華城校宮致祭時文昌公祝文〕
계림사를 옮겨 세울 때 고유한 축문〔桂林祠移建時告由祝文〕[후손 최종석(崔鍾奭)]
낭산 독서당의 유허비〔狼山讀書堂遺墟碑〕[이원조(李源祚)]
백연사의 기문〔柏淵祠記〕[황경원(黃景源)]
태인 유상대의 비기〔泰仁流觴臺碑記〕[조지겸(趙持謙)]
청학동의 비명〔靑鶴洞碑銘〕[정두경(鄭斗卿)]
계림사를 옮겨 세운 뒤의 상량문〔桂林祠移建上樑文〕[후손 최국술(崔國述)]
청도 영당의 기문〔淸道影堂記〕[노상직(盧相稷)]사원〔祠院〕

고운집 제1권

부(賦)
새벽의 노래〔詠曉〕

시(詩)
우흥〔寓興〕
접시꽃〔蜀葵花〕
강남의 여인〔江南女〕
고의〔古意〕
가을밤 비 내리는 속에〔秋夜雨中〕
우정의 밤비〔郵亭夜雨〕
도중에 짓다〔途中作〕
요주 파양정에서〔饒州?陽亭〕
산양에서 고향 친구와 작별의 이야기를 나누며〔山陽與鄕友話別〕
우강역정에 제하다〔題芋江驛亭〕
봄날에 지우를 불러도 오지 않기에〔春日邀知友不至〕
서경 김 소윤 과 작별하며 남겨 준 시〔留別西京金少尹 〕
금천사 주지에게 주다〔贈金川寺主〕
재곡 난야의 독거하는 승려에게 주다〔贈梓谷蘭若獨居僧〕
황산강 임경대〔黃山江臨鏡臺〕
가야산 독서당에 제하다〔題伽倻山讀書堂〕
장안의 여사에서 이웃에 거하는 우신미 장관에게 주다〔長安旅舍與于愼微長官接隣〕운문 난야의 지광 상인에게 주다〔贈雲門蘭若智光上人〕
운봉사에 제하다〔題雲峯寺〕
당성에 나그네로 노닐면서 선왕의 악관에게 주다〔旅遊唐城贈先王樂官〕
윤주 자화사 상방에 올라〔登潤州慈和寺上房〕
가을날에 우이현을 다시 지나면서 이 장관에게 부치다〔秋日再經??縣寄李長官〕
오 진사가 강남에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며〔送吳進士 歸江南〕
봄날의 새벽에 우연히 쓰다〔春曉偶書〕
모춘즉사 시를 지어 사신으로 간 벗 고운에게 화답하다〔暮春?事和顧雲友使〕
장 진사가 시골에서 병중에 부친 시에 화답하다〔和張進士 村居病中見寄〕
바다에 배를 띄우고〔泛海〕
여지도에 제하다〔題輿地圖〕
고소대〔姑蘇臺〕
벽송정〔碧松亭〕
희랑 화상에게 증정하다〔贈希朗和尙〕
호원 상인에게 부치다〔寄顥源上人〕

표(表)
신라 하정표 〔新羅賀正表 〕
양위표〔讓位表〕
기거표〔起居表〕
사사위표〔謝嗣位表〕
사은표〔謝恩表〕
북국이 위에 있도록 허락하지 않은 것을 사례하며 올린 표문〔謝不許北國居上表〕
조서 두 함을 내린 것을 사례한 표문〔謝賜詔書兩函表〕
백제가 사신을 보내 북위에 조회한 표문〔百濟遣使朝北魏表 〕

장(狀)
숙위하는 학생과 수령 등을 차견하여 입조하게 한 장문 〔遣宿衛學生首領等入朝狀 〕
숙위하는 학생을 번국으로 방환해 주기를 주청한 장문〔奏請宿衛學生還蕃狀〕
신라의 왕이 당나라 강서의 고 대부 에게 보낸 장문〔新羅王與唐江西高大夫 狀〕
예부 배 상서 에게 보낸 장문〔與禮部裴尙書 狀〕
청주 고 상서에게 보낸 장문〔與靑州高尙書狀〕
태사 시중에게 올린 장문〔上太師侍中狀〕

계(啓)
양양 이 상공에게 관급을 사양하겠다고 올린 계문〔上襄陽李相公讓館給啓〕

기(記)
신라 가야산 해인사 결계 도량의 기문〔新羅伽倻山海印寺結界場記〕
선안주원 벽의 기문〔善安住院壁記〕
신라 수창군 호국성 팔각등루의 기문〔新羅壽昌郡護國城八角燈樓記〕

고운집 제2권

비(碑)
무염 화상 비명〔無染和尙碑銘 〕
진감 화상 비명〔眞監和尙碑銘 〕

고운집 제3권

비(碑)
대숭복사 비명〔大嵩福寺碑銘 〕
지증 화상 비명〔智證和尙碑銘 〕

찬(讚)
화엄 불국사의 석가여래상을 수놓은 당번에 대한 찬〔華嚴佛國寺繡釋迦如來像幡贊 〕
대화엄종 불국사의 아미타불상에 대한 찬 〔大華嚴宗佛國寺阿彌陀佛像讚 〕
순응 화상에 대한 찬〔順應和尙贊〕
이정 화상에 대한 찬〔利貞和尙贊〕

고운집 발

발〔跋〕 [최재교(崔在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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