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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최초의 제사 지침서

이언적 저 | 김순미 역 | 민속원 | 2016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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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28508594 / 248쪽 232 x 1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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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가례 연구의 선두에 있는 회재 이언적의 『봉선잡의』를 풀어내다.

가례 연구의 선두에 있는 회재 이언적의 『봉선잡의』는 우리 풍속을 중심에 놓고 서술하고 있어서 주체적인 정신이 돋보이는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의 예전인 『국조오례의』를 고려했고, 무엇보다도 조선의 시속례時俗禮와 생활수준을 고려하여 가감할 수 있게 대체적인 틀만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제례에서 형식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겨야할 본래의 뜻을 되새기라는 의미에서 『예기』, 『논어』 등에서 채록한 글로 『봉선잡의』하편을 만들어 제례의 본의本意를 재삼 강조하고 있다.

저자 소개

(李彦迪) 
1491년(성종22)~1553년(명종8).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복고(復古), 호는 회재(晦齋)‧자계옹(紫溪翁)이다. 초명은 적(迪)이었는데 중종(中宗)의 명으로 언적(彦迪)으로 고쳤다. 외숙인 손숙돈(孫叔暾)을 사사하였다. 1514년(중종 9) 문과 별시에 급제하였다. 이후 이조 정랑‧장령‧밀양 부사 등을 거쳐 1530년(중종 25) 사간원 사간이 되었다. 김안로(金安老)의 기용을 반대하다가 파직되었다. 귀향한 후 경주(慶州) 자옥산(紫玉山)에 독락당(獨樂堂)을 짓고 성리학 연구에 전념하였다. 1537년에 홍문관 교리로 서용되었다. 이후 전주 부윤‧대사성‧대사헌‧홍문관 부제학‧한성 판윤‧우참찬‧이조 판서 등을 거쳐 1542년(중종37) 좌참찬이 되었다. 1543년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다가 이듬해 병으로 사임하였다. 1545년(인종1) 다시 출사하여 좌찬성이 되었다. 인종이 승하하자 원상(院相)을 맡았다. 을사사화(乙巳士禍)가 일어나자 판의금부사로 추관(推官)에 임명되어 위사공신(衛社功臣)에 녹훈되고 여성군(驪城君)에 봉해졌으나 곧 사직하였다. 1547년(명종2)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이 일어나자 연루되어 강계로 유배되었다가 죽었다. 학문적으로는 주희(朱熹)의 주리론(主理論)에 입각한 이우위설(理優位說)을 주장하여 손숙돈(孫叔暾)‧조한보(曺漢輔) 등과 무극태극논쟁(無極太極論爭)을 벌였고, 이황(李滉)에게로 계승되는 영남학파 성리설의 선구가 되었다. 저술로는 《구인록(求仁錄)》, 《대학장구보유(大學章句補遺)》, 《중용구경연의(中庸九經衍義)》, 《봉선잡의(奉先雜儀)》 등이 있다. 종묘에 배향되었고, 1610년(광해군2) 문묘에 종사되었다. 시호는 문원(文元)이다.

목차

서문

해제

봉선잡의 上

봉선잡의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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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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