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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치차오 평전

셰시장 저 | 김영문 역 | 글항아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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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7352738 / 1304쪽 152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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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개인 전기를 중국 근대사로 써내는 일은 오직 량치차오의 경우에만 가능하다.”

역사의 전진을 추동한 ‘신민新民’ 량치차오 사후 출간된 전기 가운데 가장 객관적이고 가장 상세하며 가장 방대한 평전!

개인 전기를 중국 근대사로 써내는 일은 오직 량치차오의 경우에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량치차오는 위대한 역사적 존재로서 중국 근대사에 등장하는 각종 요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정치적·사상적·문화적 측면에서도 그러하고 국내 및 국외 관계망 속에서도 다 그러하다.
_류짜이푸(디아스포라 지식인, 작가·문학평론가)
시각이 참신하고 자료가 알찬 데다 견해도 독창적이어서 아주 훌륭한 저서라 할 만하다.
_우쓰(『염황춘추炎黃春秋』 전 편집장)

량치차오는 백과전서적 인물이다. 드넓은 바다와 같은 그의 일생을 책 한 권으로 파악하기란 진실로 쉽지 않은 일이다. 셰시장은 문학과 사학을 함께 공부했고, 량치차오 연구의 기본 소양을 잘 갖추고 있다. 그가 이 책에서 량치차오의 일생을 이처럼 분명하고 전면적으로 파악·분석한 것은 참으로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다.
_레이이(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연구원)

이 책은 량치차오의 생애와 경력을 날줄로 삼고 그가 중국 근현대사의 대표 인물 14명과 교류한 내용을 씨줄로 삼아, 량치차오라는 인물과 그가 견지한 사상의 역사적 가치 및 현재적 의의를 새롭게 평가한다. 이 책이 씨줄로 삼은 인물은 캉유웨이·황쭌셴·탄쓰퉁·왕캉녠·탕차이창·쑨중산·장타이옌·양두·위안스카이·차이어·장바이리·딩원장·후스·쉬즈모다. 이 책은 이처럼 역사를 ‘사람과 사람’ 중심으로 보는 얼개에 기대 량치차오의 삶을 풍요롭게 조명하면서, 각 인물 간의 관계와 이들이 시대와 벌이는 장엄한 파노라마를 펼쳐 보여준다.
아울러 저자는 청나라 말기와 중화민국에 이르는 대변동의 국면에서 당대 지식인이 겪은 고통과 방황 및 고난에 찬 탐색과정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중국뿐 아니라 우리의 전통과 근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량치차오라는 필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 책은 그 관문으로 들어서는 출발점 역할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역사의 전진을 추동한 ‘신민新民’ 량치차오, 그의 사후 출간된 전기 가운데 가장 객관적이고 가장 상세하며 가장 방대한 평전! “개인 전기를 중국 근대사로 써내는 일은 오직 량치차오의 경우에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량치차오는 위대한 역사적 존재로서 중국 근대사에 등장하는 각종 요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정치적·사상적·문화적 측면에서도 그러하고 국내 및 국외 관계망 속에서도 다 그러하다.” _류짜이푸(디아스포라 지식인, 작가·문학평론가) “시각이 참신하고 자료가 알찬 데다 견해도 독창적이어서 아주 훌륭... 역사의 전진을 추동한 ‘신민新民’ 량치차오, 그의 사후 출간된 전기 가운데 가장 객관적이고 가장 상세하며 가장 방대한 평전! “개인 전기를 중국 근대사로 써내는 일은 오직 량치차오의 경우에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량치차오는 위대한 역사적 존재로서 중국 근대사에 등장하는 각종 요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정치적·사상적·문화적 측면에서도 그러하고 국내 및 국외 관계망 속에서도 다 그러하다.” _류짜이푸(디아스포라 지식인, 작가·문학평론가) “시각이 참신하고 자료가 알찬 데다 견해도 독창적이어서 아주 훌륭한 저서라 할 만하다.” _우쓰(『염황춘추炎黃春秋』 전 편집장) “량치차오는 백과전서적 인물이다. 드넓은 바다와 같은 그의 일생을 책 한 권으로 파악하기란 진실로 쉽지 않은 일이다. 셰시장은 문학과 사학을 함께 공부했고, 량치차오 연구의 기본 소양을 잘 갖추고 있다. 그가 이 책에서 량치차오의 일생을 이처럼 분명하고 전면적으로 파악·분석한 것은 참으로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다.” _레이이(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연구원) 이 책은 량치차오의 생애와 경력을 날줄로 삼고 그가 중국 근현대사의 대표 인물 14명과 교류한 내용을 씨줄로 삼아, 량치차오라는 인물과 그가 견지한 사상의 역사적 가치 및 현재적 역사를 ‘사람과 사람’ 중심으로 보는 얼개에 기대 량치차오의 삶을 풍요롭게 조명하면서, 각 인물 간의 관계와 이들이 시대와 벌이는 장엄한 파노라마를 펼쳐 보여준다. 아울러 저자는 청나라 말기와 중화민국에 이르는 대변동의 국면에서 당대 지식인이 겪은 고통과 방황 및 고난에 찬 탐색과정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중국뿐 아니라 우리의 전통과 근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량치차오라는 필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 책은 그 관문으로 들어서는 출발점 역할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출간 의의 첫째, 지금까지 출판된 전 세계의 량치차오 전기 중에서 가장 상세하고 방대한 양이다. 중국어 원문으로 무려 70만 , 한글 번역으로는 거의 130만 자에 달한다. 둘째, 저자 셰시장은 신문사 편집기자 출신의 문학평론가 겸 문화비평가다. 그는 중학교 2학년을 마치고 공장으로 하방되어 중국현대사의 굴곡을 그대로 겪은 지식인이다. 이후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런민 대학人民大學에 진학하여 신문학을 전공했고, 대학 2학년 때 중국신문사中國新聞史 강의를 들으면서 량치차오를 알게 된 이후 평생토록 량치차오를 연구해오고 있다. 그는 기존 학계의 연구 동향에 밝으면서도 기존 학파에 구애되지 않고 독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저술을 할 수 있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그의 위치가 이번 『량치차오 평전』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셋째, 기존 량치차오 전기들이 연대순에 따라 사건 중심으로 단순하게 서술된 것에 비해 이 『량치차오 평전』은 량치차오를 중심에 놓은 인물 열전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마치 사마천의 『사기열전』의 서술방식을 본뜬 듯하다. 이런 방식으로 저자는 량치차오의 생애를 날줄로 삼고 중국 근대 대표 인물 14명을 씨줄로 삼아 중국 근대사 전체를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그 14명의 인물은 캉유웨이康有爲, 황쭌셴黃遵憲, 탄쓰퉁譚嗣同, 왕캉녠汪康年, 탕차이창唐才常, 쑨중산孫中山, 장타이옌章太炎, 양두楊度, 위안스카이袁世凱, 차이어蔡鍔, 장바이리蔣百里, 딩원장丁文江, 후스胡適, 쉬즈모徐志摩 등이다. 이들의 이름만을 살펴봐도 량치차오가 중국 근현대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량치차오 평전이면서, 중국 근대 인물 열전이고, 중국근대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기존의 중국 근현대사나 중국 근현대 인물 전기가 대부분 중국사회주의 혁명사의 노선에 따라 이념 중심으로 단선적 기술에 치우쳤다면 이 책은 량치차오를 중심에 놓고 중국근대사의 다양한 모색 과정을 풍부한 원전 자료를 통해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국혁명사에서 부르주아 지식인 혹은 개량파 지식인으로 낙인찍힌 주요 지식인들의 활동상이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다. 폭력 혁명을 배척하고 개량과 입헌에 입각하여 새로운 중국을 건설하자고 주장한 이들의 논리는 중국혁명사 뒤편에 잠복되어 있었지만 문화대혁명 이후 서서히 중국 개혁의 흐름을 타고 중국 내에서 발언권을 강화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 책은 최근 중국 지식인의 이러한 모색의 일단을 잘 보여주고 있다. 20세기에 철저히 왜곡된 20세기의 거인 중국에서는 1980년대에 베이징출판사에서 출판한 『량치차오 평전梁啓超傳』이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량치차오를 높에 평가하기는커녕 짓밟고 있었다. 량치차오는 중국 근대 시기 위대한 계몽사상가다. 중국사회가 고대에서 현대로 나아가는 역사 전환기를 살아낸 위대한 개혁가다. 그러나 저자는 량치차오를 본받을 것 하나 없는 사람으로 서술하고 있었고 결국 역사의 전진을 방해한 반동 인물로 낙인찍고 있었다. 20세기 하반기 30년의 중국은 ‘혁명은 신성하다’는 사조가 모든 것을 압도할 때여서 급진주의가 세상을 뒤덮었고, 이 와중에 량치차오도 자연스럽게 ‘역사의 죄인’이 되었다. 류짜이푸는 이를 “30년 전의 공포”라고 말했다. 류짜이푸에 따르면 이번 셰시장解璽璋의 새 저서 『량치차오 평전』이 나오고서야 량치차오의 삶과 그의 역사적 위상이 오롯이 복권되었다. 이번 평전은 전반부 3장에서만 량치차오의 출신, 혼인, 가정생활을 서술하고, 그 나머지 모든 장에서는 량치차오와 중국 근대 역사 인물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이는 바로 ‘사람’을 중심으로 삼은 구성이다. 같은 논리로 말하자면, 역사를 ‘사람’ 중심으로 보겠다는 것이다. 전기傳記 서술에서 이러한 구상과 얼개는 ‘세가世家’와 ‘열전列傳’을 역사의 핵심으로 삼은 『사기史記』의 서술방법과 유사하지만, 이 책에서는 수미일관한 주인공이 한 사람 더 보태져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주인공과 등장인물이 모두 타당성을 얻는 가운데 논리적 맥락이 분명하게 이어지며 역사성에다 문학성까지 갖추고 있다. 저자의 문체는 량치차오 문체와 아주 유사하다. [그것은] ‘량문체梁文體’라 불러도 좋을 만한 것이었다. 량치차오의 문체는 중국의 고대 문언문文言文이 현대 백화문白話文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문체로, 5·4 백화문운동의 선구적 문체라 할 수 있다. ‘량문체’의 탄생은 그 자체만으로도 거대한 문화변혁이라 할 정도였다. 량치차오 문체는 고의로 ‘고아古雅하게’ 보이려는 학문 태도를 타파했다. 동성파桐城派 문체를 타파했을 뿐 아니라 장타이옌과 우루룬吳汝綸 문체를 타파했다. 량치차오는 분명하고 유창한 문체를 힘써 추구했고 논리적 진술과정에 정감이 스며들도록 했다. 량치차오는 스스로 언급한 대로 “붓끝이 항상 정감을 띠도록 하면서筆端常帶情感” 심오한 내용을 쉽게 서술하는 가운데 통쾌하고 거침없는 문체를 형성했고, 이에 따라 그의 문체는 중국 전역을 뒤흔들었다. 1000쪽에 이르는 셰시장의 이 책은 ‘량문체’에 의해 지탱되고 또 이치와 고증을 한데 버무려넣는 량 씨의 학문방법이 잘 어울려 있어서, 고금古今 두 가지 언어가 주는 참맛까지 음미할 수 있다. 폭력과 혁명의 단선적 근대사 서술에 일침 량치차오가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90년이 거의 다 되었다. 그는 살아서 체포·수배·비난·매도의 고통을 겪었고, 죽어서도 질책·조롱·폄하·비판을 당했다. 그런데 근래 20~30년 동안 개혁의 바람이 중화의 대지를 휩쓸고 ‘폭력 숭배’가 점차 퇴색하면서 량치차오의 이름도 다시 향기를 발하고 있다. 중국 국내에는 량치차오를 평론한 문장이 우후죽순처럼 발표되었고, 중국 역사는 마침내 량치

저자 소개

 解璽璋
1953년 베이징 출생. 저명한 문학평론가이자 문화비평가다. 그의 경력에는 중국현대사를 거치며 지식인이 겪은 굴곡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중학교를 2년 반 다니다가 베이징화공北京化工 제2공장으로 하방되어 노동자 생활을 했고, 당시 함께 하방된 대학생으로부터 중국 고전문학을 배우면서 노동자신문을 편집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때의 편집 경력이 바탕이 되어 런민대 신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2학년 때 중국 신문사新聞史 과목을 들으며 량치차오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졸업 논문도 량치차오에 관해 썼다. 졸업 후에는 『베이징일보北京日報』와 『베이징만보北京晩報』 편집 기자 생활을 하며 다양한 문예평론을 발표했다. 량치차오에 관한 공부를 계속 해오다가 2012년 4년간의 집필 끝에 무려 70만 자가 넘는 『량치차오 평전梁啓超傳』을 출간했다. 이 밖에도 『한 사람의 독서사一個人的閱讀史』 『소음과 적막喧囂與寂寞』 『아속雅俗』 등의 저서가 있다.

역자 소개

경북 영양에서 태어나 어려서 한문을 익혔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받고, 한국연구재단 박사후과정에 선발되어 베이징대에서 유학했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에서 『중한사전』을 교열했고,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에서 국내 최초로 『문선역주』(공역) 완역본을 출간했다. 경북대·대구대·서울대 등지에서 오랫동안 강의했다. 광주 무등공부방, 부산 한국해양대 CEO인문학아카데미, 현대자동차정몽구재단 온드림독서클럽 등을 통해 인문학 관련 강의를 했다. 현재 인문학 연구서재 청청재靑靑齋 대표로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과 관련된 인문학 서적을 저술·번역하고 있다. 대표 역서로 『책 도둑의 최후는 교수형뿐이라네』 『자치통감을 읽다』 『량치차오 평전』 『독서인간』 『아Q 생명의 여섯 순간』 『동주열국지』(전6권, 한국일보 출판문화상 ‘번역 부문’ 최종 후보) 『독재의 유혹』 『문선역주』(전10권, 공역) 『루쉰과 저우
쭈어런』(공역, 문광부 우수교양도서) 『루쉰, 시를 쓰다』(역주, 학술원 우수학술도서)가 있고, 저서로 『노신의 문학과 사상』(공저) 등이 있다.

목차

목차
서문 _ 류짜이푸劉再復
제1장 신후이 소년: 량치차오 가계
조부: ‘의리’를 강구하고 ‘절개’를 중시하다 | 조부의 가르침 아래 ‘소년등과 하다’ | 부모: 수신과 구제 | 소년 시절에 청운의 큰 뜻을 품다
제2장 집안 가득 뛰어난 인재: 량치차오와 자녀들
동서양 장점을 융합한 아버지의 자식교육 | 폐부에서 우러나온 자연스럽고 순수한 부성애 | 셴얼 쓰순: 량치차오의 유능한 조수 | 쓰청 교육: 학문은 모름지기 흥미를 느껴야 한다 | 량쓰융: 부친의 지지하에 고고학자가 되다 | 량쓰중: 그의 정치 열정이 부친에게 인정을 받다 | 량치차오의 다른 자녀들 | 신민을 길러내다
제3장 서로 존경하고 서로 알아주다: 량치차오의 혼인과 애정
총명하고 강인한 리 부인 | 힘든 일을 감내하며 원망도 두려워하지 않은 왕 부인 | 홍안紅顔의 젊은 지기 허 소저
제4장 서생으로서 나라에 보답하다: 량치차오와 캉유웨이(상)
난하이 성인 캉유웨이 | “사상계의 일대 폭풍” | 재목이 가득했던 만목초당 | 갑오회시 | 캉유웨이와 량치차오, 그리고 공거상서 | 신정과 「황제에게 올리는 세번째 상소문」 | 『만국공보』 발간 및 강학회 | 스승과 제자가 처음으로 의견이 갈리다 | 보국회의 단명 | 무술유신으로 팔고문을 폐지하다 | 경사대학당과 상하이역서국 | 무술변법은 왜 실패했을까?
제5장 서로 다른 길을 가다: 량치차오와 캉유웨이(하)
일본에 도움을 구하다 | 보황운동 | 새로운 사상과 지식의 유혹을 받다 | ‘새로운’ 국민: 자유 쟁취와 민권 신장 | 『청의보』에서 『신민총보』까지 | 공교 보호의 입장을 버리다 | 캉유웨이의 ‘반혁명’ | 사제 간의 갈등, 관계 악화 | 진화공사 사건으로 보황회가 붕괴되다 | 량치차오와 신해혁명 | 캉유웨이와 량치차오의 결별
제6장 스승과 벗을 겸하다: 량치차오와 황쭌셴
인경려 주인 황궁두 | 독서냐 구국운동이냐? | 시무학당을 주관하다 | 후난 신정 | 평생 스승과 벗을 겸하다
제7장 간담상조肝膽相照: 량치차오와 탄쓰퉁
프레지던트로 뽑힐 만한 탄쓰퉁 | 사방을 방랑하던 탄쓰퉁의 소년 시절 | 탄쓰퉁: 학문과 사상의 대전환 | 치국 방략: ‘독단적 통치술’을 ‘합의적 통치술’로 바꾸다 | 업무와 독서 두 가지 모두 그르치지 않다 | “후난의 선비는 관직에 등용할 만하다” | 시무학당에서 영재를 기르다 | 민지를 계발한 남학회 | 유신파와 수구파가 물과 불처럼 대립하다 | 무술변법, 백일유신 | 탄쓰퉁의 옥중 마지막 편지, 진짜인가? 가짜인가?
제8장 시대를 알고 사무에 통달하다: 량치차오와 왕캉녠
같은 스승 밑 동문으로 깊은 우의를 맺다 | 함께 『시무보』를 창간하다 | 협력에서 원한으로
제9장 뜨거운 피를 조국에 바치다: 량치차오와 탕차이창
황상이 폐위되다 | 캉유웨이와 량치차오의 황제 보위 | 류양 지사 | 시무학당에서 우의를 맺다 | 탕차이창과 캉ㆍ량 | 『청의보』: 유신의 목구멍이 되다 | 부상扶桑에서 학교를 열다 | 량치차오: 변화에 뛰어난 호걸 | 경자년 황제 보위勤王를 위한 거사
제10장 근세 영웅의 쌍벽: 량치차오와 쑨중산
쑨중산과 캉유웨이는 왜 친교를 맺을 수 없었을까? | 량치차오가 쑨중산을 흠모하며 연합을 시도하다 | 호놀룰루로 간 후 쑨중산과 물불 같은 관계가 되다
제11장 적이면서 벗: 량치차오와 장타이옌
『시무보』의 두 건필 | 존경심과 적개심 사이 | 무술정변 이후 두 사람의 사상 분열이 가속화하다 | 량치차오의 미국 유람기 | 보황과 입헌 그리고 배만혁명 | 장타이옌이 서재로 물러난 뒤 둘 사이가 점차 멀어지다
제12장 나 홀로 인재를 아끼다: 량치차오와 양두
젊은 기상으로 시무학당에서 재능을 겨루다 | 일본에서 다시 만나 서로가 서로를 아끼다 | 철도 부설권 쟁취와 입헌 참여, 두 사람의 긴밀한 협력 | 신당 성립, 영도권 귀속문제로 의견 차이가 생기다 | 정문사를 설립해 어려운 틈새에서 분투하다 | 양두, 민국의 ‘제사’가 되려는 꿈을 꾸다가 불문으로 은퇴하다
제13장 성공 직전의 실패: 량치차오와 위안스카이
만청 시기의 첫번째 합작 | 위안스카이 타도가 캉과 량의 주요 목표가 되다 | 민국 시기의 재합작 | 량치차오가 재정문제와 정당문제를 이야기하다 | 량치차오의 귀국과 출로
제14장 뜻이 같고 생각도 일치하다: 량치차오와 차이어
량치차오 마음에 쏙 든 애제자, 차이어 | 광시에서 군사훈련을 하며 대사를 도모하다 | 우창봉기에 호응했지만 종족혁명은 주장하지 않다 | 량치차오가 귀국해 국가 건설에 참여하는 것을 적극 지지하다 | 혁명 성공 후 군대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 윈난 경영에 고심하다 | 량치차오의 건국 방침 | ‘제2차 혁명’이 남긴 화근 | 스승과 제자가 손을 잡고 위안스카이의 황제 등극에 반대하다 | 국가를 위해 싸우고, 인격을 위해 싸우다 | 각 성이 독립하자 우울증과 조급증으로 사망한 위안스카이 | 대세가 안정되었지만 일본에서 세상을 떠나다
제15장 시대의 고난을 함께하다: 량치차오와 장바이리
일본에 유학해 명성을 멀리까지 떨치다 | 학교를 잘 운영하지 못하면 자살하겠다 | 량과 장이 낙담해 함께 정치 소용돌이에 말려들다 | 독일에 선전포고를 해야 하는가? | 정계를 은퇴하고 함께 유럽을 여행하다 | 5ㆍ4운동 배후의 량치차오 | 유럽여행 인상기 『구유심영록』 | “중국을 위해 약방문을 찾다” | 한 편의 서문이 뜻밖에도 한 권의 저서가 되다 | 문화전파에 진력하다 | 연성자치 및 각 성 입헌
제16장 나이를 잊은 사귐: 량치차오와 딩원장
소년 천재 딩원장 | 영국 유학이라는 모험 | 귀국하여 취업하다 | 지질학 선구자 | 유럽 견학 후 베이징대학과 접촉하다 | 후스와 사귀다 | 지식인의 정치토론 | ‘정신의 기황을 구제하다’ | 과학과 현학 논쟁 | 쑹후 시정독판 | 량치차오가 세상을 떠난 후 딩원장이 뒷일을 처리하다
제17장 앞사람을 잇고 뒷사람을 계도하다: 량치차오와 후스
소년 후스, ‘량 선생에게 무궁한 은혜를 입다’ | 후스와 량치차오는 언제 처음 만났는가? | 학술 논쟁과 기세 싸움 | ‘국학서목’ 논쟁 | 신문화 제창이 꼭 구문화 배척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전환기의 길을 연 선봉장
제18장 사제지간의 정의情誼: 량치차오와 쉬즈모
사제지간의 정의 | 재능이 넘치는 쉬즈모 | 린후이인과의 사랑 때문에 장유이와 이혼하다 | 쉬즈모는 왜 눈앞의 박사학위를 포기했나? | 타고르의 중국 방문 | 루샤오만과 사랑을 나누고, 『신보』 부간을 접수하다 | 주례가 신랑을 훈계하다 | 량치차오도 세상을 떠나고, 시인도 천상으로 날아가다
제19장 적막한 량치차오 사후
량치차오에 대한 평가가 사람마다 다르다 | 잦은 변화에도 자신이 세운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은 량치차오 | 적막한 사후 | 량치차오를 새롭게 인식하다
저자 후기 / 옮긴이의 말 / 부록: 중국 근현대 인명 중한 발음 비교표
참고문헌 /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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