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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3027778 / 211쪽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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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정운천, 그는 왜 함거에 올랐나 2011년 그는 LH공사 전주 이전을 위해 힘썼다. 그러나 진주로 최종 결정되었다. 선거에 낙선했으니 그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그러나 책임을 통감하고 도민?께 용서를 빌어한다고 생각한 그는 함거에 올라 1주일간 석고대죄했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무릎도 펴지 못하고 갇혀 있으니 몸이 굳어 움직이기조차 힘들었으나 도민들의 위로와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 정운천, 쉬운 길보다는 옳은 길을 택하는 사람 정운천은 안주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가 일신의 안락을 구하는 사람이었... 정운천, 그는 왜 함거에 올랐나 2011년 그는 LH공사 전주 이전을 위해 힘썼다. 그러나 진주로 최종 결정되었다. 선거에 낙선했으니 그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그러나 책임을 통감하고 도민께 용서를 빌어한다고 생각한 그는 함거에 올라 1주일간 석고대죄했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무릎도 펴지 못하고 갇혀 있으니 몸이 굳어 움직이기조차 힘들었으나 도민들의 위로와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 정운천, 쉬운 길보다는 옳은 길을 택하는 사람 정운천은 안주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가 일신의 안락을 구하는 사람이었다면 그의 인생행로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그는 ‘우리’를 위하는 일이라면 어떤 위험과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도전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의 인생은 늘 시련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어렵사리 세 번의 도전 끝에 원하던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고, 대학을 졸업하고는 모두가 떠나려는 농촌으로 내려가 25년 외길을 걸었다. 비닐하우스 안에 벽돌집을 짓고 5년 5개월을 살면서 농민들을 하나로 묶었고, 그 힘을 바탕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패배의식에 젖은 농촌에 희망의 밀물시대를 열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이명박 정부의 초대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이 되었을 때는 의 광우병 보도로 촉발된 촛불의 광풍에 휩싸였다. 졸지에 ‘국민 건강을 팔아먹은 매국노’가 되었지만,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소통을 위해 광화문 촛불광장을 찾아갔다. 승산이 없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2010년 지방선거 때에는 전북지사 선거에 출마하여 18.2%, 2012년 총선에서는 비례대표로 출마하라는 제안을 뿌리치고 전주 완산을 국회의원후보로 출마하여 35.8%의 표를 얻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비록 연거푸 두 번 낙선했지만 지역장벽이 결코 넘지 못할 벽은 아니라는 희망의 씨앗을 뿌렸고, 그 씨앗은 지금도 꾸준히 자라고 있다. 정운천, 편한 길을 놔두고 험한 길을 택한 까닭은? 쉬운 길, 편한 길을 놔두고 그는 왜 굳이 어렵고 험한 길을 택했을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물은 고이면 썩는다. 30년 동안 지속된 일당의 독주는 필연적으로 여러 가지 병폐를 양산했다. 무엇보다 ‘주민을 위한 정치’가 사라졌다.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되는 정치구조에서 지역발전이나 민생을 위한 정치는 뒷전이 된다. 공천권을 쥐고 있는 지도부의 눈치를 살피고 비위를 맞추는 것이 먼저다. 그 결과 5대 도시의 영광을 자랑하던 전주의 모습은 사라졌다. 고향을 떠나고 싶어 하는 도민이 늘고 있으니, 어쩌다가 내 고향전북이 이렇게 되었는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전북의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일당 독주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 책속으로 추가 ] 방법을 찾지 못하고 고심하고 있는 중에 청와대에서 2월 18일 최고위원 부부 초청 만찬이 생겼다. 새해를 맞아 덕담이나 나누자고 마련한 만찬이니 업무 얘기를 꺼낼 자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자리밖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 나는 마음을 굳히고 김 원내대표에게 지원을 부탁했다. “청와대 만찬에서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원내대표께서도 뒤에서 지원사격을 해 주십시오.” 이틀 뒤 만찬은 편안하게 덕담을 주고받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나는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만찬이 끝나갈 무렵 대통령 곁으로 다가가 엑스포 문제를 거론했다. p.81 새만금개발청 설립과 기금운용본부 유치. 전북의 2대 현안이자 도민들의 숙원사업이 연이어 해결된 것은 대선이라는 특수 상황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여야의 협력이 크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당과 야당, 야당과 여당이 전북 발전을 위해 뜻을 모으고 힘을 합쳤기 때문이다. 특히 전북에 국회의원 한 명 없는 새누리당이 한 축을 담당했다는 점을 언론에서는 높게 평가했다. p.94~95 “비례대표 어떻습니까? 농업계에 기여를 많이 하신 농민 대표이시고 당에도 충분히 공헌을 하셨습니다. 게다가 취약 지역인 호남 대표이시니…….” 19대 총선이 10개월 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 중앙당에서 비선을 통해 의향을 물어 왔다. 비례대표를 신청할 생각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지역구 출마와 비례대표, 순간 나는 마음이 흔들렸다. 당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전북이었다. 금배지를 목표로 한다면 두 말할 필요 없이 비례대표를 신청해야한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지역장벽을 넘어 여야가 공존하는 정치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쌍발통 전북을 만들어 멈춰선 전북의 수레바퀴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들어도 지역구 의원이 되어야 한다. p.99~100 아주머니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경로당의 어르신들도, 거리에서 마주친 젊은이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반응이었다. 더는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한나라당에 대한 거부감이 뼛속까지 녹아 있었다. 한 달 가까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시민들을 만났지만 돌아오는 것은 한숨뿐이었다. 2년 전 전북지사 선거에서 20%에 가까운 지지를 받은 만큼 민심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한나라당에게 전북은 여전히 황무지였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직접 부딪쳐 보니 회의감이 밀려왔다. 너무 무모한 결정이었을까? 지금이라도 비례대표로 돌아설까? p.104 “충남은 3당이 균형을 이루어 과학벨트, 세종시 건설 등 큰 발전을 이끌어 냈습니다. 영남에서도 쌍발통 통로가 열리고 있습니다. 영남 출신 인사들이 민주당 지도부에 입성했고, 문재인, 조경태 후보 등 야당의원도 서너 명 탄생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제 지역에 기반한 정치구조는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전북에서도 집권당 의원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전북은 또다시 외로운 섬으로 고립될 것입니다…….” p.111 언젠가 내가 한 상가에 들렀을 때 중년의 한 여성 유권자가 이렇게 말했다. “사실 난 정치 잘 모르고, 정운천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다만 딸이라는 아이가 ‘아빠를 꼭 뽑아 달라.’며 명함을 주는데, 누가 시켜서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진심이 느껴졌어요. 자식의 존경을 받는 부모라면 믿어 볼 만하다고 생각하고 정 후보님을 지지할 생각입니다.”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아이들이 고맙고 미안했다. p.116 선거운동이 중반으로 접어들었을 때, 나는 그것이 대답 없는 메아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다 유세차 주변을 돌면서 유심히 살펴보니 동조하고 환호하는 사람들은 일부 지지자들뿐이었다. 대다수 주민들은 관심이 없었다. 귀를 막고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 나는 참모들을 시켜 며칠 동안 시민들의 반응을 조사했다. 결과는 같았다. 부정적인 반응이 더 많았다. 시끄러우니 제발 좀 조용히 해 달라……. 선거운동이 주민들과 괴리되어 후보자와 그 관계자들만의 잔치가 되고 있었다. p.119 30년간 지속된 지역주의의 벽은 그 오랜 기간만큼이나 높고 두터웠다. 한 명이라도 바꿔야 한다는 호소, 유권자 입장으로 패러다임을 바꾼 선거운동, 그리고 온 가족의 혼신을 다한 간절함으로도 지역장벽이라는 높은 산을 넘지 못했다. 여론조사에서 밀리자 민주당 후보는 도의원, 시의원 등 조직을 총동원해 ‘미워도 다시 한 번’을 읍소했다. 정운천을 찍는 것은 이명박을 찍는 것이라며 지역주의 감정을 부추기고 이용했다. p125 전북에는 30여 년 동안 민주당 일당의 독주가 계속되었다. 70~80년대에는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쟁취한다는 대의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민주화가 완성된 90년대 이후에도 달라진 것이 없다. 민주화의 성지라는 전북에서 민주주의
당락에 관계없이 LH공사를 전주로 유치하겠다고 공약했었다. 지사에 당선이 되었다면 직에서 물러나는 것으로라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겠지만, 낙선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며칠을 고민했다. 역경을 만날 때마다 멘토로 따르고자 했던 이순신 장군을 생각했다.
임진왜란 때 지은 죄 없이 죄인이 되어 함거를 타고 한산도에서 한양으로 압송되는 장군의 모습을 회상했다.
“그래 함거에 들어가 도민께 석고대죄를 청하자.” p.17
함거 생활이 이어지자 몸에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깨가 결리고 팔다리가 저렸다. 뼈마디가 쑤시고 근육이 굳고 무력해져서 결국 혼자서는 일어서기도 힘들었다. 헬멧을 눌러 쓰고 얼굴을 가린 한 사람이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가며 함거를 향해 쪽지 한 장을 던졌다. 쪽지에는 ‘쇼하지 마시오’라고 적혀 있었다. 육체적 고통보다 더 힘든 것은 진심조차 받아들일 수 없는, 상처받은 시민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손가락질하며 비난하는 사람들 사이로 나의 손을 잡아 주며 격려하는 시민도 늘고 있었다. p.21~22
LH공사 유치 실패가 남긴 가장 큰 교훈은 여야가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여당에도 전북의 입장을 대변하고 반영할 통로를 열어야 한다. 그래야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의 일당 독주, 중앙과의 소통 부재, LH공사 유치 실패 또한 이 악순환의 고리가 빚어낸 산물이었다.
먼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30년간 지속된 악순환의 고리를 선순환 구조로 바꾸는 것. 그것이 LH공사 유치 실패가 남긴 교훈이자 오늘의 전북에 주어진 시대적 사명일 것이다. p.23~24
도당위원장으로 취임한 지 열흘이 지난 2012년 8월 9일, 나는 전북도청 종합상황실에서 김완주 지사를 비롯한 도청 간부들과 마주앉았다. 취임 후 첫 대외 행사로 마련한 전북도와의 정책
협의회 자리였다. 새누리당 전북도당과, 민주당이 독점하고 있는 전북도와의 정책 협의를 위한 만남. 감회가 새로웠다.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광경이었다. p.29
현역 의원이 한 명도 없는 전북이다. 나 또한 기껏해야 원외위원장일 뿐이다. 대선정국이 본격화되었다고 해도 자신의 지역구도 아닌 전북을 위해 앞장서 총대를 메고 도와줄 의원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도민들의 숙원을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손 놓고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나는 박근혜 후보와의 직접 면담이 길이라고 생각했다. p.37~38
방법을 찾지 못하고 고심하고 있는 중에 청와대에서 2월 18일 최고위원 부부 초청 만찬이 생겼다. 새해를 맞아 덕담이나 나누자고 마련한 만찬이니 업무 얘기를 꺼낼 자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자리밖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 나는 마음을 굳히고 김 원내대표에게 지원을 부탁했다.
“청와대 만찬에서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원내대표께서도 뒤에서 지원사격을 해 주십시오.”
이틀 뒤 만찬은 편안하게 덕담을 주고받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나는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만찬이 끝나갈 무렵 대통령 곁으로 다가가 엑스포 문제를 거론했다. p.81
새만금개발청 설립과 기금운용본부 유치. 전북의 2대 현안이자 도민들의 숙원사업이 연이어 해결된 것은 대선이라는 특수 상황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여야의 협력이 크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당과 야당, 야당과 여당이 전북 발전을 위해 뜻을 모으고 힘을 합쳤기 때문이다. 특히 전북에 국회의원 한 명 없는 새누리당이 한 축을 담당했다는 점을 언론에서는 높게 평가했다. p.94~95
“비례대표 어떻습니까? 농업계에 기여를 많이 하신 농민 대표이시고 당에도 충분히 공헌을 하셨습니다. 게다가 취약 지역인 호남 대표이시니…….”
19대 총선이 10개월 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 중앙당에서 비선을 통해 의향을 물어 왔다. 비례대표를 신청할 생각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지역구 출마와 비례대표, 순간 나는 마음이 흔들렸다. 당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전북이었다. 금배지를 목표로 한다면 두 말할 필요 없이 비례대표를 신청해야한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지역장벽을 넘어 여야가 공존하는 정치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쌍발통 전북을 만들어 멈춰선 전북의 수레바퀴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들어도 지역구 의원이 되어야 한다. p.99~100
아주머니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경로당의 어르신들도, 거리에서 마주친 젊은이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반응이었다. 더는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한나라당에 대한 거부감이 뼛속까지 녹아 있었다. 한 달 가까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시민들을 만났지만 돌아오는 것은 한숨뿐이었다. 2년 전 전북지사 선거에서 20%에 가까운 지지를 받은 만큼 민심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한나라당에게 전북은 여전히 황무지였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직접 부딪쳐 보니 회의감이 밀려왔다. 너무 무모한 결정이었을까? 지금이라도 비례대표로 돌아설까? p.104
“충남은 3당이 균형을 이루어 과학벨트, 세종시 건설 등 큰 발전을 이끌어 냈습니다. 영남에서도 쌍발통 통로가 열리고 있습니다. 영남 출신 인사들이 민주당 지도부에 입성했고, 문재인, 조경태 후보 등 야당의원도 서너 명 탄생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제 지역에 기반한 정치구조는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전북에서도 집권당 의원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전북은 또다시 외로운 섬으로 고립될 것입니다…….” p.111
언젠가 내가 한 상가에 들렀을 때 중년의 한 여성 유권자가 이렇게 말했다.
“사실 난 정치 잘 모르고, 정운천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다만 딸이라는 아이가 ‘아빠를 꼭 뽑아 달라.’며 명함을 주는데, 누가 시켜서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진심이 느껴졌어요. 자식의 존경을 받는 부모라면 믿어 볼 만하다고 생각하고 정 후보님을 지지할 생각입니다.”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아이들이 고맙고 미안했다. p.116
선거운동이 중반으로 접어들었을 때, 나는 그것이 대답 없는 메아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다 유세차 주변을 돌면서 유심히 살펴보니 동조하고 환호하는 사람들은 일부 지지자들뿐이었다. 대다수 주민들은 관심이 없었다. 귀를 막고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
나는 참모들을 시켜 며칠 동안 시민들의 반응을 조사했다. 결과는 같았다. 부정적인 반응이 더 많았다. 시끄러우니 제발 좀 조용히 해 달라……. 선거운동이 주민들과 괴리되어 후보자와 그
관계자들만의 잔치가 되고 있었다. p.119
30년간 지속된 지역주의의 벽은 그 오랜 기간만큼이나 높고 두터웠다. 한 명이라도 바꿔야 한다는 호소, 유권자 입장으로 패러다임을 바꾼 선거운동, 그리고 온 가족의 혼신을 다한 간절함으로도 지역장벽이라는 높은 산을 넘지 못했다.
여론조사에서 밀리자 민주당 후보는 도의원, 시의원 등 조직을 총동원해 ‘미워도 다시 한 번’을 읍소했다. 정운천을 찍는 것은 이명박을 찍는 것이라며 지역주의 감정을 부추기고 이용했다. p125
전북에는 30여 년 동안 민주당 일당의 독주가 계속되었다. 70~80년대에는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쟁취한다는 대의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민주화가 완성된 90년대 이후에도 달라진 것이 없다. 민주화의 성지라는 전북에서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에 의해 일당의 독점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 결과가 지금의 전북이다.
경제는 침체되고, 교육은 부진하고, 의식은 퇴화되고, 고향을 등지는 도민들이 늘고 있는 전북……. p.140
목차
머리말- 화합과 소통의 시대를 향하여
1장 함거에서 보낸 일주일
호남제일문 앞에서
책임을 함거 속에 안고
2장 대선정국을 전북 발전의 기회로
쌍발통 수레, 첫 바퀴를 달리다
대선정국에서 기회를 보다?
공짜는 없다
폭소의 3분 연설
3장 새만금개발청 설립, 그 뒷이야기
화합과 소통을 위하여
새벽 고속도로를 달리다
무데뽀, 찐드기가 되어
30분을 확보하라
22일의 기적
4장 두 번의 실패는 없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유치
대선정국의 뜨거운 감자
해법은 법이다
김무성 총괄본부장과의 인연
기금운용본부 이전
저도 차 좀 타겠습니다
절치부심이 성과로
5장 새로운 도전, 19대 총선
내가 선택한 길
시민 속으로 녹아들다
단 한 명만이라도 바꿔 주십시오
가족과 함께 가다
이상한 선거운동
여론은 벽을 넘었는데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6장 멀고도 험한 소통의 길
희망의 불씨, 13.2%
3무(無) 전북을 넘어서
사건에 대한 우리의 반응과 태도
지혜 중에 으뜸은 ‘때를 아는 것’
7장 전북 발전을 위한 제언
전라감영 복원
김제공항을 항공정비공항으로
전북을 푸드폴리스로
한식세계화의 메카 익산
새만금을 동북아의 식품 허브로
화보- 내가 걸어온 길
부록- 언론기사 & 칼럼
“기금운용본부 소재지 논란 종지부 찍었다”(2015. 08. 19)
정운천 전 장관, 남다른 정치파워 위엄 뽐내(2015. 07. 06)
“전북현안 내가 챙길 것”(2015. 04. 07)
친생태지역으로 변하는 왕궁단지(2015. 08. 23)
쌍발통 정치시대가 열리는가?(2015. 06. 28)
전북정치 ‘메기효과’ 절실한 때(2015. 04. 06)
맺음말- 나의 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