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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소크라테스 생, 하나님, 그 밖의 사소한 주제들에 관한 대화

원제 : Socrates in the City: Conversations on

에릭 메택시스 저 | 박명준 역 | 새물결플러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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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6409374 / 568쪽 148 x 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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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는 격언을 남겼다. 바꿔 말하면 인간이란 자신과 세계를 성찰할 줄 아는 존재다. 그러나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은 좀처럼 자신의 삶을 성찰할 기회나 여력이 없다. 이에 작가이자 문화평론가인 에릭 메택시스는 뉴욕에 사는 전문직 종사자들을 위해 “도시의 소크라테스”라는 모임을 만들고, 정기적으로 유명 연사들을 초청하여 인생과 세계와 기독교 신앙 전반에 관하여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주제들을 놓고 토론하는 장을 만든다. 존 폴킹혼, 피터 크...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는 격언을 남겼다. 바꿔 말하면 인간이란 자신과 세계를 성찰할 줄 아는 존재다. 그러나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은 좀처럼 자신의 삶을 성찰할 기회나 여력이 없다. 이에 작가이자 문화평론가인 에릭 메택시스는 뉴욕에 사는 전문직 종사자들을 위해 “도시의 소크라테스”라는 모임을 만들고, 정기적으로 유명 연사들을 초청하여 인생과 세계와 기독교 신앙 전반에 관하여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주제들을 놓고 토론하는 장을 만든다. 존 폴킹혼, 피터 크레이프트, N. T. 라이트, 오스 기니스, 알리스터 맥그래스, 프랜시스 콜린스 등이 이 모임에서 “과학 시대에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고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해를 추구하는 기독교 신앙”, “무신론의 황혼”, “인류의 미래가 예의에 달려 있는 이유” 등의 내용으로 강연을 했고, 강연 후에는 참석자들과 심도 있는 질의응답을 주고받으며 기독교 신앙과 삶의 관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장시켰다. “도시의 소크라테스”는 다루지 못할 만큼 큰 질문은 없다, 더 크고 어렵고 복잡할수록 좋다, 더 좋다는 기치하에 삶과 신앙과 세계에 대한 핵심 질문들을 모두 다루려고 노력한다. 이들의 강연과 대화는, 시종일관 전문가적인 깊이와 엄밀성을 놓치지 않는 동시에 재치와 유머감각을 마음껏 뽐내는 지성의 향연으로서 부족함이 없다. “도시의 소크라테스”는 모임에서 행해진 강연을 기록한 결과물로서,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짚어봐야 할 삶의 주제들을 한 데 모아놓은 지혜와 진리의 보물 창고와 같다. 성찰하는 삶과 더불어 생각하는 기독교 신앙을 고민하고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책과 더불어 맑고 풍성한 지성의 우물에 튼튼한 두레박을 내리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책속으로 추가 예의는 잘못된 형태의 관용과 어떻게 다를까요? 이렇게 표현해보죠. 무엇인가를 믿을 수 있는 권리가 곧 어떤 이가 믿는 모든 것이 옳다는 뜻은 아니다. 이 문장에서 앞의 절반은 자유와 양심의 문제이지만 뒤의 절반은 터무니없는 이야기입니다. 무언가를 믿을 수 있는 권리는 절대적입니다. 그것은 양심의 자유 속에 소중히 간직된 권리지만, 그렇다고 한 사람이 믿는 모든 것이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누군가 믿는 바가 조리가 없을 수도 있고 사회적 재앙을 가져올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해악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예의가 뜻하는 바는, 우리가 동의하지 않을 때라도 시민이란 틀 안에서 행동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9강 예의를 위한 변론: 우리의 미래가 예의에 달려 있는 이유” 중에서)

저자 소개

  • 저자 : 에릭 메택시스
기독교 성직자. 이론물리학자. 신학자. 영국의 기사작위(KBE), 왕립학회의 펠로우(FRS). 폴킹혼은 케임브리지 대학교 퀸스대학의 전 학장이자 펠로우이다. 폴킹혼은 세계 과학과 종교학회의 초대회장을 역임했고, 2002년에는 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을 수상했다.

역자 소개

  • 역자 : 박명준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기독교 출판사 “복있는사람”의 편집장으로 6년간 책을 만들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현재 세 아이의 아빠이자 번역가로 살아가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교회사의 보화』(IVP 역간), 『붉은 하나님』(새물결플러스 역간), 『인생의 사계절』(아바서원 역간), 『레몬나무 아래서』(북인더갭 출간 예정) 등이 있다.

 

책 속에서

달리 말하면,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진화의 과정은 피조물이 창조주가 창조 세계에 부여한 가능태(potentiality)를 충분히 실현하는 방법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바로 그 은사야말로 사랑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창조 세계에 주셨으리라 기대할 만한 것 아닐까요. 사랑의 하나님이 마치 꼭두각시 조종하듯이 우주를 조종하시지는 않으실 테니 말이죠. 그래서 저는 자신을 만들어가는 창조 세계, 진화하는 세계가 완성품으로 주어진 세계보다 훨씬 위대한 선(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비용이 따르는 선입니다. 왜냐하면 가능태가 겪는 복잡한 여정에는 필연적으로 위태로운 절벽과 막다른 골목이 있기 때문입니다. (“1강 과학 시대에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중에서)

두 번째는 소망, 즉 미래를 향하는 믿음입니다. 자궁이 우리 우주의 전체였던 때를 생각해봅시다. 그 안에 있을 때 여러분은 자궁이 우주 전체라고 생각했겠죠. 거대한 우주라고 말이죠. “이 자궁에서 나간 뒤에도 생명이 있을까?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겠지.” 여러분은 생명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이 죽을 때 이런 일이 다시 있을 텐데, 그때 여러분은 이 땅에서 겪는 고통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는 자궁일 뿐입니다. 작은 태아였을 적에 여러분은 이렇게 말했을지 모릅니다. “나한테 왜 발이 있지? 내가 왜 발길질을 하지? 길도 없는데 말이야.”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이생에서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의 99퍼센트는 다음 생을 위한 준비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다음 생애에 대해 이해하는 수준은, 아마 우리 집 개와 고양이가 인간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일 겁니다. (“2강 고통을 이해하다” 중에서)

온전하든 부서졌든, 정상이든 비정상이든, 젊든 나이 들었든 우리 인간성 전체를 좀먹으며 인간 존엄성의 기초를 허무는 또 다른 세력들이 있습니다. 집단 생물학과 계량 경제학의 관점은 이를 수행하기 위해 인간이 고안해낸 두 가지 방법입니다. 이런 접근법들이 의료계의 사고방식과 의료 행위에 이미 버젓이 침투했으며, 의료 윤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종종 길 건너에 있는 시카고 대학교 의예과에 가서 의료 윤리라는 필수 과목을 듣는 학생들과 세미나를 하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복잡하고 실제적인 도덕 문제와 동떨어진 교과서를 내다 버리라고 말합니다. (“5강 우리는 누구인가?: C. S. 루이스와 인간의 문제” 중에서)

아시다시피 우리 문화권에 있는 사람 대부분이 하나님이란 단어는 한 가지 뜻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신약을 가르칠 때 저는 대학 교회 교목 일을 했습니다. 학교에 갓 입학한 학부생 가운데—그중에는 영국 성공회 사제를 처음 만나는 이들도 있었는데 무척 긴장하더군요—제게 다가와 이렇게 말하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저를 자주 보기 어려우실 거예요. 저는 하나님을 믿지 않거든요.” 저는 그런 학생들에게 으레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신을 믿지 않는다는 건가?” 그러면 학생들은 어쩔 줄 몰라 합니다. 너무도 빈번하게 그들이 걸려 넘어지는 문제는, 구름 위에 앉아서 이 땅을 내려다보다가 우리에게 화가 나서 어떤 사람은 천국으로 보내고 어떤 사람은 지옥으로 보내는 긴 수염 달린 노인입니다.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자네에게 아주 좋은 소식을 말해주지. 그런 신은 나도 믿지 않는다네.” (“7강 순전한 기독교: 이해를 추구하는 기독교 신앙” 중에서)

1793년 프랑스 대혁명 때로 되돌아가면, 공포 정치가 궤도에 올라 세상이 갈수록 폭력적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는 프랑스 대혁명의 무신론적 일면이었습니다. 롤랑 부인은 날조된 고발에 따라 처형을 받기 위해 혁명 광장의 단두대 앞으로 끌려 왔습니다. 그녀는 정치적으로 불편한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단두대로 끌려가는 길에 그녀는 자유의 여신상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자유여, 너의 이름으로 어떤 범죄가 자행되고 있는가!” 요점이 뭔지 아시겠죠. 만일 하나님이 없다면,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우리는 다른 것들을 격상시키고 맙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택해서 격상시키면, 격상된 그것은 결국 사이비 신격을 차지합니다. 프랑스 대혁명의 경우, 자유가 그러했습니다. (“8강 무신론의 황혼: 현대 세계 불신앙의 흥망성쇠” 중에서)

예의는 잘못된 형태의 관용과 어떻게 다를까요? 이렇게 표현해보죠. 무엇인가를 믿을 수 있는 권리가 곧 어떤 이가 믿는 모든 것이 옳다는 뜻은 아니다. 이 문장에서 앞의 절반은 자유와 양심의 문제이지만 뒤의 절반은 터무니없는 이야기입니다. 무언가를 믿을 수 있는 권리는 절대적입니다. 그것은 양심의 자유 속에 소중히 간직된 권리지만, 그렇다고 한 사람이 믿는 모든 것이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누군가 믿는 바가 조리가 없을 수도 있고 사회적 재앙을 가져올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해악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예의가 뜻하는 바는, 우리가 동의하지 않을 때라도 시민이란 틀 안에서 행동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9강 예의를 위한 변론: 우리의 미래가 예의에 달려 있는 이유” 중에서)

목차

목차
도시의 소크라테스: 서문
- 에릭 메택시스
1강 과학 시대에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 존 폴킹혼
2강 고통을 이해하다
- 피터 크레이프트
3강 아버지 역할의 의미
- 폴 비츠
4강 무신론자가 좋은 시민이 될 수 있는가?
- 리처드 존 뉴하우스
5강 우리는 누구인가?: C. S. 루이스와 인간의 문제
- 진 베스키 엘슈테인
6강 훌륭한 인생: 인생의 목적과 의미, 진리를 찾아서
- 찰스 콜슨
7강 순전한 기독교: 이해를 추구하는 기독교 신앙
- N. T. 라이트
8강 무신론의 황혼: 현대 세계 불신앙의 흥망성쇠
- 알리스터 맥그래스
9강 예의를 위한 변론: 우리의 미래가 예의에 달려 있는 이유
- 오스 기니스
10강 신의 언어: 인간 게놈을 바라보는 신앙인의 자세
- 프랜시스 콜린스
11강 선이 어떻게 악에 맞서는가?: 본회퍼의 삶과 죽음이 주는 교훈
- 에릭 메택시스
감사의 말
강연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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