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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41915201 / 1392쪽 225 x 1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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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 가운데 학자들이 ‘하느님을 만나는 인간의 길’이라 일컫는 삼부작이 있다. 교부가 자기 인생의 여정에서 하느님을 만나던 길을 묘사한 『고백록』, 인류가 구세사救世史의 여정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길을 정리한 『신국론』, 그리고 인간이 자기 내면의 성찰에서 삼위일체 하느님의 모상을 발견하는 길을 분석한 『삼위일체론』이다. 이 책 『삼위일체론』의 신학적 사색은 다른 두 작품보다 훨씬 원숙하여 교부의 모든 신학서 가운데 단연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책은 제1-7권의 전반부, 제8-15권의 후반부로 나뉜다. 전반부는 성경에 근거한 삼위일체 신앙의 이론적 해설, 후반부는 인간 지성을 분석하여 당신 모상으로 그 지성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삼위일체 구조를 추정해 가는 철학적 논변이다. 특히 후반부는 인간의 영혼에 관한 철학 일변도의 깊은 성찰과 분석을 담고 있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적 인간학’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출판사 리뷰
삼위일체에 관하여 논하는 이 글을 읽을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의 붓이, 신앙의 출발점을 무시하면서 이성理性에 대한 미숙하고 비뚤어진 사랑에 속는 사람들의 모략중상을 겨냥하여 경계하는 데 있음을 알아둘 것이다.(103쪽)
인간들의 오류 가운데 도저히 묵과하기 어려운 것이 둘 있다. 진리가 드러나기 전에 [무엇을 진리라고] 억측함이 그 하나이고, 진리가 이미 드러난 다음에도 억측하던 허위를 옹호함이 다른 하나이다. 내가 간절히 빌고 바라거니와, 하느님께서 진리를 발견하는 데나 거룩한 성경을 논하는 데 너무 상반되는 이 두 가지 악덕에서 제발 나를 지켜 주시고, “큰 방패 같은 호의와” 당신 자비의 은총으로 나를 덮어 주셨으면 한다. 여하튼 나로서는 성경을 통해서든 창조계를 통해서든 하느님의 실체를 탐구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을 생각이다.(215쪽)
과연 성부는 성자가 아니고 성자는 성부가 아니며, 성령은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불리지만 성부는 아니고 성자도 아니므로 그분들은 응당 셋이다. 그래서 [동사를] 복수로 언표하여 “나와 아버지는 하나입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사벨리우스파가 말하듯이 [동사를 단수로 하여 아버지와 나는] ‘하나입니다’라고 하지 않고 [동사를 복수로 써서] ‘하나입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무엇이 셋이냐고 묻는다면 인간 언어가 크게 부족하여 곤욕을 치른다. ‘세 위’라는 말은 말을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어서 한 말이다.(529쪽)
하느님 자신이 크기 자체이시며, 하느님이 크신 것은 [당신 자체인] 그 크기에 의해서다. 또 바로 그래서 우리가 하느님이 세 존재라고 말하지 않듯이 하느님이 세 위대함이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는 존재함과 위대함이 동일하다. 같은 이유로 우리는 위대한 세 분이라는 언표를 쓰지 않고 위대한 한 분이라고 언표하며, 위대함에 참여하여 하느님이 위대하신 것이 아니라 오직 위대하신 당신 자신으로 인해서 위대하시다고 하니, 하느님 친히 바로 자신의 위대함이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선하심과 영원하심과 전능하심에 관해서도 같은 말이 성립한다.(531쪽)
형언할 수 없는 사물들에 관해서 무엇인가 말을 하기 위해서, 무슨 방도로도 말할 수 없는 내용을 어떻게든지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해서 우리네 그리스인들은 ‘한 존재, 세 실체’라는 개념을 썼고, 라틴인들은 ‘한 존재 혹은 실체, 세 위격’이라는 개념을 썼다. 이미 언급했듯이, 우리말 즉 라틴어로는 ‘존재’나 ‘실체’나 달리 알아듣지 않는 까닭이다. 또 언표하는 내용을 겨우 ‘수수께끼처럼’ 알아듣는 지경에서는, [삼위일체를 두고] 과연 그것이 “세 무엇이냐?”라는 질문이 나올 때 무엇인가 말을 하려면 이렇게라도 언표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성부께서 성자가 아니시라고 언표되고, 성령은 하느님의 선물이므로 성부도 아니시고 성자도 아니시라고 언표되는 터에, 참된 신앙은 셋이 있다고 고백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세 무엇이냐?” 혹은 “세 누구냐?”라는 질문이 나올 때는 어떤 종種이나 유類를 가리키는 명칭을 찾아내야 하고 그것으로 이 셋을 내포해야 하는데 그런 명칭이 도무지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성의 탁월함은 일상 언어의 구사력을 까마득하게 초월하기 때문이다. 무릇 하느님은 언표되는 것보다 생각하는 대로가 더 진실에 가깝고 생각하는 것보다 존재하시는 대로가 더 진실에 가깝다.(625-627쪽)
그분들에게 공통되는 것이 위격位格이라는 점이므로 ‘세 위격’이라는 언표를 하기로 한다면 […] 왜 ‘세 하느님’이라고 불러서는 안 되는 것일까? 성부께서 위격이시고 성자께서 위격이시고 성령께서 위격이시고 그래서 삼위三位이심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성부께서 하느님이시고 성자께서 하느님이시고 성령께서 하느님이신데 왜 삼신三神이 아니신가? 또 형언할 수 없는 결속에 의해서 이 셋이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시라면 한 위격은 왜 아니라는 말인가? 성부든 성자든 성령이든 각자를 개별적으로 하느님이라고 부르면서도 하느님을 ‘세 하느님’이라고 부를 수 없다면, 우리가 비록 각자를 위격이라고 부른다고 하지만 ‘세 위격’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 아닌가? 성경이 ‘세 하느님’이라고 부르지 않기 때문에 그런가? 하지만 성경 어디도 ‘세 위격’이라는 언급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발견하지 못한다. 사실 성경은 이 셋을 ‘세 위격’이라고도 ‘한 위격’이라고도 언표하는 일 없으므로 […] 말을 하고 토론을 할 필요에서 ‘세 위격’이라는 언표를 하는 것이고, 성경이 그렇게 언표하기 때문이 아니라 성경이 [이런 표현에] 반대하지 않기 때문에 쓴다. 만약 우리가 ‘세 하느님’이라는 표현을 한다면 성경은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너의 하느님께서는 한 분이신 하느님이시다”라고 하면서 반박할 것 아닌가? 그렇다면 왜 ‘세 존재’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되는가, 성경이 언표하지도 않지만 반대하지도 않는데? 만일 ‘존재’가 셋에게 공통된 종種적 명칭이라면 왜 ‘세 존재’라고 언표하면 안 되는가?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이 ‘세 사람’이고 사람은 사람들 모두에게 공통된 종적 명칭이듯이 말이다. ‘존재’가 종적 명칭이 아니고 유類적 명칭이라면, 사람과 짐승과 나무와 벌과 천사가 ‘존재’라고 언표되는 이상, 왜 저 셋이 ‘세 존재’라고 언표되면 안 되는가? 말 세 마리가 ‘동물 세 마리’라고 언표됨과 마찬가지로 월계수 세 그루가 ‘나무 세 그루’라고 언표되고 돌 세 개가 ‘물체 세 개’라고 언표되듯이 말이다. 그러고도 삼위의 일체성 때문에 ‘세 존재’라고 언표하지 않고 ‘한 존재’라고 언표한다면, 같은 단일성을 이유로 ‘세 실체’라고 하거나 ‘세 위격’이라고 하지 말고 ‘한 실체’라거나 ‘한 위격’이라고 하면 왜 안 되는가? ‘존재’라는 명칭이 저분들에게 공통되므로 각자가 단독으로 ‘존재’라고 언표되어야 한다면, 그에 못지않게 ‘실체’니 ‘위격’이니 하는 용어 역시 저분들에게 공통된다. 우리가 한 말은 우리네 어법에 따라서 ‘위격들’에 관해서 언표하는 것이 그리스인들의 어법에 따르면 ‘실체들’에 관해서 언표하는 것과 같은 내용이라고 알아들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저 사람들이 ‘세 실체, 한 존재’라고 언표하는 것을 똑같이 우리는 ‘세 위격, 한 존재 혹은 실체’라고 언표한다.(631-635쪽)
삼위일체 안에는 완벽한 동등이 있어서 그 신성에 관한 한 성부가 성자보다 더 위대하지도 않을뿐더러, 성부와 성자가 함께라고 해서 성령보다 더 위대한 무엇일 수도 없다. 아울러 이 셋 중의 어느 개별 위격이든 간에 삼위일체 자체보다 더 못한 무엇이 아니다.(661쪽)
“무엇을 사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은 아무도 하지 말아야 한다. 형제를 사랑하고 사랑 자체를 사랑하라! 사랑하는 대상인 형제를 아는 것보다도 사랑하는 능력인 사랑 자체를 더 잘 아는 까닭이다. 그러면 형제보다는 하느님이 더 잘 알려지는 분일 수도 있다. [하느님이] 더 현전하시므로 그분이 더 잘 알려지는 분이다. [하느님이] 더 잘 알려지는 것은 그분이 더 내밀한 분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더 잘 알려지는 것은 그분이 더 확실한 분이기 때문이다. 사랑이신 하느님을 포옹하고 사랑으로 하느님을 포옹하라.(709쪽)
유일하신 주 하느님이시여, 삼위일체 하느님이시여, 내가 이 책에서 이야기한 것에서 무엇이든지 당신 것이면 당신의 사람들도 그렇게 알아보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혹시 내 것이면 당신께서 나를 용서하시고 당신의 사람들도 나를 용서하게 해 주십시오. 아멘.(133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