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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7186525 / 176쪽 127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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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유능한 전문가들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더 무능력해진다 오늘날의 사회는 실로 ‘전문가 사회’라 불릴 만하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가장 먼저 호출되는 사람이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견해는 우리 사회와 개인의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일리치와 공저자들은 이 책에서 현대의 전문가 신화를 남김없이 벗겨낸다. 전문가는 우리의 타고난 능력을 무능력으로 만듦으로써 삶을 지배한다. 육아, 심리, 교육, 인간관계, 심지어는 삶의 지향까지 그들에 의해 결정된다. 전문가에 의해 시민은 ‘고객’으로, 국... 유능한 전문가들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더 무능력해진다 오늘날의 사회는 실로 ‘전문가 사회’라 불릴 만하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가장 먼저 호출되는 사람이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견해는 우리 사회와 개인의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일리치와 공저자들은 이 책에서 현대의 전문가 신화를 남김없이 벗겨낸다. 전문가는 우리의 타고난 능력을 무능력으로 만듦으로써 삶을 지배한다. 육아, 심리, 교육, 인간관계, 심지어는 삶의 지향까지 그들에 의해 결정된다. 전문가에 의해 시민은 ‘고객’으로, 국가는 ‘기업’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고, 우리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공동의 정치 역시 실종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전문가 사회의 허구를 꿰뚫어 봄으로써 가능성의 존재인 인간을 회복하기 위한 지침서이기도 하다. 출판사 서평 유능한 전문가들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더 무능력해진다. 전문가들은 어떻게 우리를 돕고, 가르치고, 마침내 군림하는가 “20세기 후반의 가장 급진적인 사상가”(더 타임스). “인간 조건에 대한 깊은 통찰 위에서 현대 사회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비판한 사상가”(피터 버거). “가장 급진적인 휴머니스트”(에리히 프롬). 이반 일리치에 대한 평가들이다. 1970년대와 80년대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일리치는 그 뒤로 차츰 잊혀가는 듯했으나, 2002년 사후 오히려 재조명을 받으면서 그의 저서들 또한 현대의 고전으로 부활하고 있다. 이 책 『전문가들의 사회』는 『그림자 노동』과 함께 (전9권, 2017년 완간) 1차분으로 출간된 책이다. 오늘날의 사회는 실로 ‘전문가 사회’라 불릴 만하다. 개인과 사회에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가장 먼저 호출되는 사람들이 전문가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지식과 견해는 이 사회를 지탱하는 버팀목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일리치와 공저자들은 이 책에서 현대의 전문가 신화를 남김없이 벗겨낸다. 전문가들은 그들의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이 사회에 대해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로 주장하고, 다시 문제의 ‘해결사’를 자처함으로써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을 강화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전문가들의 이런 권력이 우리들의 타고난 능력을 무능력으로 만듦으로써 가능하다는 점이다. 스스로 필요를 찾고 충족할 줄 아는 인간 능력을 훼손하고 불구화하는 것이야말로 전문가 사회의 작동 원리이다. 전문가들이 이렇게 사회의 필요와 충족을 독점하면 시민은 ‘고객’으로, 국가는 전문가들의 ‘기업’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고, 우리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정치 역시 실종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전문가 사회의 허구를 꿰뚫어 봄으로써 가능성의 존재인 인간을 회복하고, 자율성과 긍지에 기초한 공동체를 다시 세우기 위한 지침서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과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가? 전문가들은 전통적으로 자신의 지식을 사회 문제나 타인을 돕는 데 쓰는 숙련된 직업인들로 존경을 받아왔다. 종교, 법률, 의료에서 군사, 교육, 복지, 산업관리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존재는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오늘날 이들의 봉사는 의심받고 있다. 혹시 그들은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는 명분으로 그들의 이익만을 챙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문성을 내세워 부지불식간에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 사회만 봐도 이런 의심에는 일부 타당한 면이 있다. TV에는 매일처럼 의사, 변호사들이 출연해 우리들의 생활습관, 인간관계, 심리문제에 참견한다. 경제전문가들은 차트를 들고 나와 주식과 부동산 구입을 가르친다. 4대강 개발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공학자들, 원전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은 더 심각한 경우다. 전문가들은 과연 누구이며 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이 책은 단순히 전문가들의 특권을 비판하는 책이 아니다. 저자들이 전문가들의 선의나 사명감까지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원제인 “Disabling Professions” 즉 ‘무능하게 만드는 전문직’이라는 뜻 그대로, 저자들은 전문가 우위 사회가 나머지 사람들을 모자라고 쓸모없는 존재로 만드는 이데올로기 위에 서 있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선의에서 자신들이 가진 지식과 해결책을 주장하지만, 결국은 인간의 필요와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하는 권한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 사회는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필요’와 그것에 대한 전문가적 ‘충족’을 통해 끝없는 성장을 도모하고, 그럼으로써 소수의 이익을 보장하는 사회라고 한다. 그런 과정에서 인간은 실로 수동적이고 더욱 쓸모없는 존재가 될 뿐이다. 시민은 어떻게 전문가의 충실한 ‘고객’이 되는가? 이반 일리치가 전문가 지배를 거세게 비판하는 것은 그만큼 인간 존재의 자율성과 가능성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일리치는 ‘전문(傳聞) 증거 배제의 원칙’이라는 법적 원리를 들어 인간 자신의 자결권에 대해 말한다.(26~28쪽) 이 원칙은 제3자의 경험이나 소문은 법적 판단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원리인데, 일리치는 우리가 직접 경험하고 판단하지 않은 사실을 우리 운명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런데 전문가 지배 사회는 바로 이런 시민의 자결권을 유예하는 데 본질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에 대한 의존과 예속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이 사회에 몇 가지 환상이 깊게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사용가치보다는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교환가치)를 구매할 때 욕구가 더 잘 충족될 수 있다는 환상이다. 소비자는 비록 풍요를 누리겠지만 욕구를 스스로 충족하는 기쁨을 모른 채 상품에 취해 얼빠진 상태가 된다. 그러나 전문가적 서비스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마비와 정체는 피할 수 없고, 결국 만족은 후퇴하는 ‘역생산성’(counterproductivity)을 면치 못한다. 그럼에도 전문가 서비스는 이미 우리의 욕구에 대해 ‘근본적 독점’(radical monopoly)을 이룬 상태이므로 우리는 무력감에 빠질 수밖에 없고, 더욱더 전문가의 처방을 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기술 진보라는 환상이다. 기술 진보란 더 단순하고 편리한 방법으로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인데, 전문가들은 자신들이 내놓은 난해하고 복잡한 기술을 더 나은 것으로 보이게 함으로써 근본적 독점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전문가적 보증으로, 뭔가를 아는 전문가들이 보증한 것이야말로 더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넷째는 자유와 권리의 혼동인데, 상품을 살 수 있는 권리를 마치 자유인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이런 권리를 부여하는 전문가의 지배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다섯째는 자가 처방에 대한 면허를 발부하는 일이다. 필요한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낼 줄 알던 사람들이 전문가적 서비스에 종속되고 나면, 이제 전문가들은 ‘자조’(self-help)라는 명분을 들어 이런 서비스를 스스로 이용하는 일마저 하나의 자격으로 ‘허가’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전문가들의 독점은 더욱 공고해진다. 일리치는 전문가 서비스의 근본적 독점에서 벗어나려면 절제와 내핍에 기반한 생활양식의 기쁨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이 우리에게 부여한 ‘필요’에서 벗어나는 일, 다시 말해서 자족의 능력을 키움으로써 스스로의 자유를 지키는 새로운 사회 기풍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 제2장 우리를 불구로 만드는 전문가들) 의료는 어떻게 사회 문제를 ‘질병’으로 만드는가? 전문가들의 지식을 공적으로 활용하는 것과 그들이 규범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뭔가를 안다고 해서 무엇이 좋은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전문가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들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를 결정할 뿐 아니라, 어떻게 이런 판결을 강제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결정한다. 그들은 물건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서비스를 왜 강제로 이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특별하고 독점적인 권한을 주장한다. 작금에는 전문직들이 너무나 발전한 나머지 고객화된 시민에 대한 보호감독자 역할뿐 아니라, 이 병동화된 세계의 형태까지 결정하려 들고 있다. (…) 성직자 계급이 영원한 구원을 약속하듯이, 전문가 집단은 일반 대중의 세속적 이익에 대해 그것의 해석자, 보호자 및 공급자로서의 적통(嫡統)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이런 종류의 전문가 권력은 엘리트라는 신분 자체가 전문가적 지위를 통해 확보되고 정당화되는 사회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전문가 권력이란 사회에 대해 처방을 내릴 수 있는 특권을 말한다. 이런 처방 권력은 산업체제 내에서 이 체제에 대한 통제권을 부여해준다. 따라서 산업체제의 구성원들이 해야 할 일까지 좌우하는 전문가 권력은 그 범위와 기원 모두에서 특이하고도 새로운 것이다. (20-21쪽)
의료적 관점에서 볼 때 질병이란 고통스럽고 바람직하지 않은 것, 따라서 제거되어야만 하고 제거될 수 있는 것으로 치부된다. 바로 이런 ‘제거’의 측면이 있기에 사회 문제나 불유쾌한 사회 현상을 질병과 동일시할 때는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개인의 질병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질병 역시 ‘질병’으로 정의하는 한 개인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제거해야 할 대상이 되니까. 게다가 사회 문제를 질병으로 이름 붙이는 과정에는 대단히 중요한 힘의 불균형이 존재한다. 질병이란 오로지 특별히 지정된 면허취득자와 수임자들, 즉 의사들만이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니까. 상황이 이렇게 되면 환자 후보는 자신을 환자로 낙인찍는 진단에 대해 항변할 권리조차 주장하기 어려워진다. 만일 환자가 실제로 자신에 관한 일에 반대를 표하면 사회적 수사(修辭)가 다시 등장하여 쟁점을 흐린다. 즉 이 사람에게는 병이 있으므로 자신에게 무엇이 좋은지 잘 알지 못하며, 자신이 하는 행위에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 확실히 알지 못한다는 식이다. 반면 진단-치료자들은 당연히 자기들이 ‘안다’고 생각한다. 진단을 내리는 이들 전문가가 볼 때 환자의 행위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까. (86쪽)
우리는 사랑을 필요라고 말한다. 돌봄도 필요이며, 서비스도 필요다. 서비스 제공자들은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사람들이다. 국민은 필요의 집합이며, 사회는 필요로 이루어져 있다. 경제는 이 필요들을 충족시키도록 조직되어야 한다. 서비스가 주요 사업인 현대 사회에서는 정치적 현실도 이에 맞춰져 있다. 사회의 중심에 있는 ‘필요’는 서비스 전문가들과 그들이 내거는 경제성장에 적절한 수입을 올려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사랑’과 ‘돌봄’의 가면은 이런 사실을 숨김으로써 대중으로 하여금 전문가들의 이해관계를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만든다. 서비스 경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필요를 만들어낸다는 점을 가린다. 메디케어, 에듀케어, 주디케어뿐 아니라 사회적 케어, 심리적 케어에 이르기까지 모든 돌봄이 원래부터 있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인 양 표현된다. 그것들이 사실은 서비스 제공자들과 그들이 떠받치고 있는 경제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점은 설명되지 않는 것이다. (101쪽)
목차
발행인 머리말
1장 우리를 불구로 만드는 전문가들 (이반 일리치)
2장 의료 만능 사회 (어빙 케네스 졸라)
3장 서비스 사회의 정치학 (존 맥나이트)
4장 변호사와 사법 독점 (조너선 캐플런)
5장 베이비시터가 된 장인들 (할리 셰이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