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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에 시작하는 처음 인문학 미술과 문학으로 만나는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에세이

정수임 저 | 북멘토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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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3191508 / 216쪽 15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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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스마트폰에 마음을 빼앗기고 경쟁에 상처 입은 청소년들에게 건네는 한마디
“우리, 인문학을 시작해 볼까?”

과도한 경쟁, 끝없는 이기심, 극단적인 증오의 시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멘토는 인문학이어야 한다


“벌써부터 흔들리지 마. 친구는 너의 공부를 대신해 주지 않아.”
한 사교육업체가 내놓은 광고 문구가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다. 경쟁 앞에선 우정도, 친구도 필요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이 문구는 우리 사회가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보여 주는 단적인 예다. 누가 이 말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경쟁 구도의 과열 속에서 우정과 연대, 공감과 소통의 의미를 잃어 가고 있다.
현직 고등학교 국어교사가 펴낸 『14살에 시작하는 처음 인문학』은 우리가 잃어 가고 있는 진정한 의미의 소통과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관계.소통.불안.소비.저항.생태’라는 주제 아래 문학과 미술 작품, 철학과 인문사회과학 책들을 넘나들며 이 모두를 관통하는 사유를 끄집어냄으로써 우리 사회의 문제를 들추어낸다. 그러면서도 저자의 시선은 시종일관 아이들 위에 군림하고 명령하는 어른의 시선이 아니라, 뒤늦게 사춘기를 겪는 어른, 두 아이의 엄마이자 교사로 사는 삶이 힘들고 외로운 한 개인의 이야기라서 따뜻하다. 그 따뜻함 위에 흔히 고전이라고 일컬어지는 책과 그림이 얹어지면서 세대를 넘나드는 공감으로 확장된다.
어른들이 청소년들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은 “내가 어렸을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자신 안에 갇힌 경험치가 아니라, 고전으로 남아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꾸준히 읽힐 인문학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 무한한 인문학의 세계 안에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자신의 길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고, 역사적 사실과 오류가 있으며, 서늘한 비판 정신이 살아 있다. 그 길로 가는 첫 관문이 이 책이 되기를 바란다.

나를 알아 가는 길, 공감과 소통으로 함께 가는 길

저자가 이 책에서 여러 번 강조하는 것은 ‘자아 찾기’다. 자기 결정권을 빼앗긴 아이들은 공부는 학원 선생에게, 자신의 미래는 부모에게 저당 잡힌다. 무엇이 되고 싶다거나 무엇을 하고 싶다는 의지나 소신은 잊은 지 오래다. 가장 적극적으로 미래를 모색하고 자신을 알아 가야 할 때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남들에게 지지 않는 인생을 살기 위해 획일적인 길을 간다. 생각할 기회와 권리마저 빼앗긴 아이들에게 저자는 박성우의 시와 빈센트 반 고흐의 삶과 안광복의 책을 건넨다. 그리고 자신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정확하게 알아야만 타인을 사랑하고 그들과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현대사회의 고독과 관계의 단절을 염려하는 저자의 시선은 개인을 넘어 사회와 역사에까지 확장된다.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을 언급하면서 그 역사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왜 잊혀서는 안 되는지, 왜 하나의 에피소드로 끝나면 안 되는지 이야기한다. 저자가 현기영의 「마지막 테우리」에서 제주4.3을 되새기고, 박상률의 『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에서 광주5.18을 각인하는 이유도, 권력의 비겁함과 잔인함으로 인해 벌어졌던 현대사의 비극을 알아야만 다시는 권력의 야욕과 독재에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자본이 정의이자 권력인 세상, 그 안에서 파괴되는 자연과 인간성

“돈이 곧 권력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는 자본이 곧 경쟁력이며 능력이 되는 사회를 살고 있다. 금수저, 은주저, 흙수저 같은 신계급론이 자연스럽게 거론되는 사회에서 자본과 소비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어쩌면 공허한 외침일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소비 앞에 버려지는 인간의 존엄성, 자본 앞에 무릎 꿇는 인간의 권리에 반기를 들고 저항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수학과 산수의 전혀 다른 삶을 이야기한 박민규의 단편소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와 재개발 문제를 다룬 조세희의 단편소설 「뫼비우스의 띠」, 용산참사를 다룬 이시영의 시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를 저자가 꺼내 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본의 유무에 따른 불평등한 삶의 구조적 문제를 이해해야만 그에 대한 해결책과 대안을 토론하고 논쟁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를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정신은 죽은 것이다. 그에게는 어떠한 권리와 권한도 찾아올 수 없다.
소비하고 개발하고 생산함으로써 문명을 이룩한 인류는 자연 또한 얼마든지 이용하고 개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인간의 호기심은 인류의 삶을 진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멈출 줄 모르는 과욕으로 이어지면서 수많은 폐해를 낳았다. 환경문제, 빈곤문제, 지역 격차 등 생태계 파괴로 인한 문제는 사회.정치적인 문제로까지 전이된다. 저자는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을 예술적 감수성으로 그려 낸 이문재의 시, 장욱진의 그림, 케테 콜비츠의 판화 작품 등을 거론하면서, 자연과 공존한다는 것의 의미와 생명에 대한 존중을 다시금 호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문학의 세계로 이끄는 길잡이 책

저자는 자신의 아픔을 위로받기 위해 책과 그림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얼마나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얼마나 단단한 사유를 얻었는지 자신의 경험을 청소년과 나누려 한다. 인문학의 힘은 삶에 대한 힘으로,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인간을 향한 진정성으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수많은 질문과 혼란 속에 놓인 청소년들을 현장에서 가르치는 교사로서, 그리고 그들처럼 미래에 대한 고민과 삶에 대한 버거움으로 힘들어하는 인생 선배로서, 저자는 내면에 담아 두었던 진솔한 이야기를 인문학을 통해 소통하고 싶어 한다.
어떤 삶을 꿈꾸고 어떤 인생의 행로를 정할 것인가는 자신에게 달려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 선택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을 주지 않는다. 조금만 늦으면 마치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벌써 뒤처진 인생을 사는 것처럼 호들갑이다. 그래서 자기계발을 하라고 부추기고, 그 나이에는 얼마만큼 돈을 모으고 얼마만큼 책을 읽어야 하며 얼마만큼 경험을 해야 하는지 세대론을 들먹이며 겁을 준다. 인문학은 이 시끄럽고 수선스러운 세상에서 고요한 사색이 가지는 힘을 이야기한다. 인문학을 통한 사색의 힘, 사유의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이 책은 그 넓고 깊은 인문학의 세계로 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저자 소개

용인 흥덕고등학교 국어 교사
부드러움과 따뜻함으로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관찰하며 아이들과 행복한 학교생활 중인 교사. 때때로 사람보다 매력적인 책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길 즐기며, 읽고 쓰는 기쁨을 아이들과 나누며 살고 있다. 
저서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고등 소설 - 상(2014)[개정판]》,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고등 소설 - 하(2014)[개정판]》

책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색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학교나 사회가 제시하는 비슷한 삶을 살아가려면 자신을 ‘응시’하고 돌아볼 기회가 적었을 수도, 조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남들과 달라지는 것이 두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몽테뉴가 말했듯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경험은 자신이 저 자신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자신이 저 자신임을 이해하기 위한 첫 걸음은 수많은 것 사이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 아닐까. 마치 박성우가 풋풋한 연두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처럼, 고흐가 노란빛에서 자신의 열정을 발견한 것처럼 말이다. 물론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능성과 열정뿐 아니라 한계와 단점을 응시하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16~17쪽

솔직한 것이 미덕이 아닌 세상이 되어 버린 것 같지만 솔직한 것만큼 무섭고 강한 것 또한 없다. 자연의 일부인 안개는 인간의 힘으로 걷어 낼 수 없지만 마음속 안개를 걷어 내고 서로를 신뢰하고 의지한다면 프리드리히의 그림 속 안개산쯤이야 거뜬히 오를 수 있다. 그런 날이 온다면 프리드리히의 그림도 수정되어야 한다. ‘안개 바다 위에 홀로 선 방랑자’가 아니라 ‘안개 바다 위에 함께 서 있는 방랑자들’로 말이다. -52쪽

릭턴스타인의 <행복한 눈물> 속 여인이나 「삼포 가는 길」에서 만난 세 사람을 지나 체 게바라가 떠오른 이유는 그만큼 타인의 삶을 연민하고 공감하며 생각을 실천한 이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대부분의 사람은 체 게바라처럼 열정적 삶을 살아 낼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만난 사람들을 위해 거짓 눈물이 아닌 진심의 눈물을 흘리며 상처를 보듬고 살아갈 수는 있지 않을까.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우리의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라고 했던 체 게바라의 말을 기억하면서. -66쪽

에밀 졸라가 진실을 말했기에 치러야 했던 대가, 화연과 미라가 진실을 말했을 때 겪어야 하는 대가 앞에서 우리는 망설인다. 이런 망설임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이런 망설임을 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망설임과 마주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뭉크의 <절규>와 같은 태도다. 자신의 이기심과 안일함을 마주할 때 생겨난 놀라움과 두려움이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놀라기만 하고 두려워만 한다면 변할 수 없다.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아무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할 것”이라 말한 에밀 졸라의 말을 믿어 본다. 진실은 전진하고 있으며 아무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할 것이므로. -88~89쪽

그렇다면 최저 시급이 6,030원인 대한민국은 어떨까. 열심히 일한 만큼 보상받고 평등한 삶을 이어가고 있을까. 대답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아마 대부분은 고개를 저을 것이다. 오히려 오래도록 이어진 팍팍한 현실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연대를 부수고 나만 잘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고민하고 있을지 모른다. 서로 부딪치고 밟고 누르며 나만 우뚝 서길 바라는 마음까지 부추기며 말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스펙을 쌓아도 미래를 내다보기 점점 힘들어지는 세상은 「농무」 속 농부들의 연대와 달리 불안하다. 그리고 그 불안을 떨쳐 내기 위해 우리는 또 다시 경쟁하고 경쟁하기를 반복한다. 영화 <설국열차>가 서로 다른 칸을 만들어 내다 결국 탈선하고 전복된 것처럼 불안과 경쟁만이 계속된다면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기차도 안전하지 않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어느 칸에 타고 있을까. -106쪽

이시영과 제프 쿤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얼마만큼의 자본을 소유하고 소비할 수 있는가에 따라 사람의 됨됨이와 안목까지 결정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전혀 다른 입장에 선 화가와 시인이지만 이들의 시선이 머문 곳이 ‘자본에 따라 결정되는 가치’라는 점에서 그들은 같은 곳에 서 있다. 두 작품의 표현 방식과 시각은 다르지만 끊임없이 자본의 소유와 소비를 권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이제 두 작가의 눈을 통해 본 세상의 모습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자. 혹시 비싼 물건을 사고 치장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애쓰고 있지는 않은지, 소비하지 않고 살 수는 없지만 소비하는 것만으로 삶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쯤 되돌아봐야 할 때다. -139~140쪽

이제 마르시아스의 고통을 담고 있는 그림 앞에 다시 선다. 그림을 보며 긴장하거나 인상을 찌푸리지 말고 그가 왜 무모하게 아폴론에게 도전했는지 궁금해하며 남은 사티로스들의 행동을 상상해 보아야 한다. 그것이 이미지가 준 최초의 자극에 대항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제주의 푸른 바다를 뒤덮었을 선홍빛 핏빛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날 이후 ‘그들’이 되어 버린 제주의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방식, 위로하는 방법,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이야기해 보는 것이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다. -157쪽

장욱진의 그림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말해 준다. 나무와 새가 어우러져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었듯, 새의 똥이 나무에게 영양분이 되어 주고 나무가 새에게 열매를 내주듯 우리의 삶도 한쪽으로 치닫는 것이 아니라 어우러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마치 시골빵집의 천연균이 부패를 통해 밀가루를 부풀리고 빵을 만들어 냈던 것처럼 말이다. 천연균으로 만든 빵을 누구나 먹을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천연균과 함께 누구나 순환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도요새는 다시 동진강에 찾아올지 모른다. -1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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