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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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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사회학을 왜 하는가? 사회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 사회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책은 바우만 사상의 정수와 ‘사회학’이라는 학문의 본질을 66개의 대담 속에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사회학이란 무엇이며 왜 필요한지, 오늘날 사회학의 위기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으며 어떻게 직면해야 하는지, 유동적인(liquid) 현대 세계에서 ‘사회학적 상상력’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왜 사회학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사회학을 읽어야 하는지, 나아가 사회학의 정치성과 윤리성,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사회학의 임무와 지식인의 역할, 사회학적 대화의 기술, 문학과 예술과 은유의 힘, 비판사회이론과 공공사회학의 길, 인간의 자유와 해방 등에 대한 바우만의 성찰을 섬세하고도 힘 있는 언어로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바우만 자신의 저작에 담긴 원칙, 사회학자로서 자신의 삶과 생애 이력에 대한 성찰, 유동적 현대 세계에서 사회학자의 소명 등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 왜 위기인가? 오늘날 사회학은 아카데미 내부에 안전하게 뿌리내린 듯 보이는 하나의 제도적 분과학문이다. 하지만 바우만은, 대중으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한 채 표류하며 거의 쓸모를 잃어가는 위기의 학문이 바로 사회학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사회학은 일종의 과학의 모습을 취한 ‘마법’이 되어, 사회학이 분석하고 탐구하고 서술하는 인간 존재의 삶으로부터 고립되어가고 있다.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지속적인 물신화, ‘가치중립성’에 대한 집착, 난해한 전문용어의 발전, 전문가주의를 이용한 각종 도구의 차용 등 이 모든 것이 사회학과 사회학이 탐구하는 세계 사이에서 장벽으로 기능한다. 그리고 이 장벽을 넘지 않는 사회학만이 과학적이고 객관적이라고 평가된다. 이렇듯 ‘과학적’.‘객관적’이라는 바리케이드 뒤에 숨은 사회학자들은 자신들의 학문적 통찰을 정책 입안자에게 판매하거나, 권력자가 연구기금 제공 등으로 자신을 구매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그 결과 사회학은 자성 능력을 잃어버리고, (세계도 지속되고 사회학도 지속되지만) 사회학과 세계는 좀처럼 만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오직 ‘사회학만이 사회학을 구원할 수 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 그러한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사회학자는 자신을 과학이라는 세계의 가치중립적인 기술자가 아니라, 자신 또한 세계에 관여하는 행위의 주체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막스 베버의 다음과 같은 경고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시대에 만연해 있는 우상의 면전에서 차가운 머리를 유지하고, 필요한 경우 지배적인 흐름을 거슬러야 한다.” - 사회학은 과연 쓸모가 있는가? 바우만은 무엇보다 우리가 ‘온전히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사회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당신은 왜 사회학을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전쟁(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지치고 황폐한 조국(폴란드)으로 돌아왔을 때, 우주의 신비를 향하던 젊은 시절의 열정을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간의 비참한 리얼리티로 이동시키리라 결심했습니다. 그로부터 벌써 70여 년이 지났지만, 사회학을 처음 시작하도록 만들었던 동기는 여전히 시사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본문 71쪽) 각자의 걱정거리와 고민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에게 사회학은 쓸모가 있다. 사회학은 그러한 걱정거리와 고민이 사실은 역사의 특정 순간의 공적인 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학은 당대의 경험과 삶의 이야기(내러티브)를 결합할 수 있다면 쓸모 있다. 반면 정보만을 제공하는 사회학은 쓸모없으며, 사회학이 권력에 팔려간다면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이 펼쳐지는 동시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사회학의 책무이며, 나아가 사회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인간의 삶을 질적으로 변화’시키려는 포부를 품고 있다. 그렇기에 바우만은 인간 경험(체험)과의 끊임없는 대화와 ‘깨어있음’을 통해, 우리의 일상생활 속 상식을 의문시하라고 호소한다. 이는 우리가 단지 이 시대의 피해자로 머무르지 않고 고유의 역사를 창출해내는 능동적인 인간으로 변신하기 위해, 현재의 세계에 의문을 품기 시작해달라는 요청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바우만은 사회학자의 헌신적 소명을 강조한다. “사실 사회학자라는 우리의 소명은, 더 이상 낭만적일 수 없는 이 시대에 인간적 가치를 옹호하는 용기와 그에 대한 일관성 있는 태도, 그리고 인간적 가치에 대한 충성심이 심사되는 영역이 될 것입니다.” (본문 75쪽) “우리 시대의 아고라는 시장 가판대로만 가득 차 있고, 상품을 사고팔려는 사람들만 허용할 뿐입니다. 정보 역시 사고파는 경우에만 유통되지요. 하지만 이제 그러한 안타까운 상황을 바꾸기를 원한다면 첫 번째로 할 일은, 바로 아고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114쪽) “가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사회학의 임무도 사명도 아닙니다. (…) 다만 사회학의 소명은, 가치의 선택이 실현 가능하다고 사람들이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사회적으로 발생한 삶의 여러 문제들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을 혼자 찾아내야 한다는 책임감에 지친 개인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입니다. (…) 사회학이 맞닥뜨리고 있는 것은 어떤 특정한 가치 체계가 아니라, 마거릿 대처에 의해 널리 퍼진 ‘대안 따위는 없다’와 같은 태도입니다.” (본문 135~136쪽) 이 책은 사회학의 쓸모를 믿어 의심치 않는 바우만의 증언과도 같다. 바우만의 메시지는 분명하고 힘이 있다. 구체적인 사람들의 경험으로 이뤄진 ‘당대’에 천착한 설명을 내놓을 수 있을 때, 사회학은 쓸모 있다(useful). 반면 그저 정보를 제공하고 권력에 기꺼이 팔려갈 때, 사회학은 쓸모없는(useless) 것이 된다. 그리고 세상의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살아가는 시대 속에서 그들 자신의 삶을 바꿔내는 데 도구가 될 수 있다면 사회학은 뭔가 해낸(successful)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회학의 궁극적 목표이며, 사회학의 쓸모란 결국 이런 것이다. 이 책에서 ‘사회학’이라는 하나의 분과학문을 ‘학문’ 일반으로 치환하고 ‘사회학자’라는 특정 주체를 ‘지식인’ 전체로 호명해도, 바우만의 충고와 비판은 오늘날 한국과 세계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 세대는 ‘역사의 대리인(historical agent)’이 천천히, 그렇지만 무자비하게 해체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 적어도 한 세기 동안 지식인들은 해방을 담당할 ‘역사의 대리인’으로 ‘노동자 계급’을 선택했습니다. (…) 마르크스의 잊을 수 없는 문장을 따르면, 노동자 계급은 전체 인간 사회를 해방시키지 않으면 자신을 해방시킬 수 없고, 인류 전체의 비참함을 종식시키지 못하면 자신의 비참함 또한 종식시키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일단 이러한 가능성이 노동자 계급에게 귀속된 이래, 이들이 안전한 피신처를 제공해주리라 기대해도 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 지식인들의 혼란의 원천이 바로 ‘역사의 대리인’의 분명한 소멸 때문임을 명확히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식인들은 처음으로 ‘운동’으로부터의 분리, 그리고 ‘운동’과의 소통의 붕괴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 본문 78~86쪽
알파벳 X, Y, Z 순서의 끝이든 역사, 모더니티, 계급사회, 산업사회, 독서문화와 독서공중, 책, 그리고 세계 그 자체의 끝이든, ‘끝’은 제가 살아오는 동안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너무 자주 언급되었습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인간이 행해오던 익숙한 방식은 이미 작동을 그만두었고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는데, 그 변화가 제기하는 새로운 도전에 적합한 새로운 방식은 여전히 머릿속의 설계로만 머물고 있을 뿐입니다. (…) 사회학의 소명은 명백하게 변화하고 있는 세계에 방향 설정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사회학은 이러한 소명을, 변화를 철저하게 추적하고 그 결과뿐만 아니라 변화가 요구하는 적합한 삶의 전략들을 꼼꼼히 분석할 때 완수할 수 있습니다. 세계는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방향 설정을 수정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사회학적 탐구의 본질적인 습관이며, 사회학이 제공할 수 있고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라고 저는 믿습니다. - 본문 103~104쪽
점차 개별화되고 있는 유동적인 현대 사회에서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문제의 해결이 사회적 권력으로부터 개인들의 어깨 위로 냉혹하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 저는 무엇보다도 윤리적 책무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사회학은 우리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바로 이 윤리적 책무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윤리적 본분을 명예롭게 이행하기 위해서 사회학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 경험과의 지속적인 대화에 관여해야만 합니다.
사회학자가 대화를 나누면서 수행해야 하는 이중의 역할이 있습니다. 사회학은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고, 익숙하지 않은 것을 익숙하도록 해야 하죠. 사회학자가 이 두 가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개별적인 위험에 처해 있을 때 개별적인 수단을 이용해) 각자 알아서 수행하도록 기대 또는 강요되는 직면한 과제에서, 각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요인이 무엇이고 종속시키고 있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알아채고 명료하게 드러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 본문 177~178쪽
소비주의가 만연한 환경은 분산과 고립, 배제의 경향을 지닙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생산자 사회의 모든 속성을 압축적으로 정의내려줄 수 있는 생산자 개념의 원형인데,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귀속되었던 역할에 버금가는 ‘집합적 행위자’를 소비자 사회에서 찾는 것은 거의 힘들어졌습니다. 오늘날 ‘프레카리아트(precariat)’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개념을 대체하고 있습니다만, 프레카리아트는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박탈되고 강등되고 고통 받고 굴욕당하고 있는 모든 인간을 총칭하는 포괄적인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프레카리아트는 오늘날의 사회비판이 구원이라는 희망을 부여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닙니다. 프레카리아트라고 명명된 집합체는, “함께 맞서고 함께 패배한다”라는 정서를 “각자의 힘으로 스스로 알아서 도망가라”는 정서로 대체한다고 비판받기도 하지요. 즉 프레카리아트는 (고독하게 고통 받는 사람들을 역사적 행위자로 단결시켜주리라 기대했던) 연대가 뿌리를 내리거나 번창할 수 있는 토양은 아닌 셈입니다. - 본문 221~222쪽
사회학이란 무엇인가?
사회학을 왜 하는가?
사회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
사회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역자 후기: ‘지금’ ‘여기’에서, 사회학에게 쓸모를 묻다 _노명우(사회학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