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고예상일 안내
주문하신 상품이 한국에서 현지 배송을 위한 출고단계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날짜입니다. 상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부적인 사정으로 인해 출고예상일에 다소 오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여러 상품(예약상품포함)을 함께 주문하신 경우 출고예상일이 가장 늦은 날짜에 맞춰 함께 배송됩니다.

ISBN : 9788958289074 / 256쪽 153 x 225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
배기성
-
투퀴디데스
-
아쉴 음벰베
-
김성대
- 20,700
- 31,500
- 22,500
- 26,010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우리 역사상 두 번째 국가, 부여 그 기원과 역사에 관한 가장 객관적이고 충실한 연구 부여는 중국 동북 지방의 쑹화강 유역을 중심으로 예맥이 세운 고대국가로, 수준 높은 문화를 영위하면서 고조선?에 이어 우리 역사상 두 번째로 국가 체제를 마련했다. 그 지배 세력의 일부가 이동해 고구려와 백제와 발해를 건국했고, 나아가 가야와 신라의 문화에까지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부여는 우리나라 고대국가 발전의 중요한 연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껏 부여의 역사는 한국 고대사의 중심에서 밀려나 있었다. 대부분의 역사서에서 중앙집권적... 우리 역사상 두 번째 국가, 부여 그 기원과 역사에 관한 가장 객관적이고 충실한 연구 부여는 중국 동북 지방의 쑹화강 유역을 중심으로 예맥이 세운 고대국가로, 수준 높은 문화를 영위하면서 고조선에 이어 우리 역사상 두 번째로 국가 체제를 마련했다. 그 지배 세력의 일부가 이동해 고구려와 백제와 발해를 건국했고, 나아가 가야와 신라의 문화에까지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부여는 우리나라 고대국가 발전의 중요한 연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껏 부여의 역사는 한국 고대사의 중심에서 밀려나 있었다. 대부분의 역사서에서 중앙집권적인 고대국가가 성립하기 전의 초기 국가로 간략히 언급될 뿐이고, 학계의 연구도 활발하지 못했다. 『처음 읽는 부여사』는 ‘국내 1호 고조선 박사’인 한국교원대학교 송호정 교수가 그동안 고대사의 변방에 있었던 부여의 역사를 한국 고대국가의 출발점이자 원류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국내외 연구 성과를 종합해 저술한 책으로, 부여의 기원부터 성장과 쇠퇴, 제도, 생활과 문화에 이르기까지 지금껏 부여에 관해 밝혀진 모든 것을 집대성한 최초의 단행본이다. 출간 의의 왜 부여의 역사에 주목해야 하는가? 부여는 고조선 후기인 기원전 3세기 무렵에 등장해 중국 한나라와 밀접하게 교류하고, 주변의 유목국가와도 길항 관계를 유지하면서 만주 지역의 역사를 주도해 나갔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선조 이래 다른 나라에 패해본 적이 없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3세기 중엽까지는 강력한 군사력과 통치력을 소유했고, 494년 고구려에 최종 귀속되기까지 700여 년 동안 명맥을 유지했다. 이렇게 긴 역사를 이어간 부여에 대해 우리는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같은 중앙집권적인 고대국가로 성장하지 못한 초기 국가의 하나 정도로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무엇보다 고조선과 고구려 중심의 역사 서술이 이어져 온 데다가, 문헌 자료는 물론 그것을 보충할 고고학 자료 역시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여의 역사는 한국 고대국가의 출발점으로서 재평가되어야 한다. 고구려, 백제, 발해는 부여의 후손임을 자처하며 자랑스러워했고, 신라와 가야 문화에서도 부여의 영향이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부여는 오늘날의 중국 지린성과 헤이룽장성 등 고대국가의 발전 과정에서 우리 민족이 품으려고 노력한 지역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국가로, 우리 역사의 각 시기마다 끊임없이 호출되는 이름이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고려시대 이래로 부여가 우리 역사 속에서 어떻게 서술되고 인식되었는가를 시대별로 개괄하고 있다. 부여는 영토 확장의 욕망이 표출되거나 우리 역사의 독자성을 강조해야 할 때마다 주목받던 대상이었다. 저자는 현재 한중일 사학계의 연구에 이르기까지 부여사 연구의 역사를 총정리하며 부여가 우리 역사에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이름임을 보여주고 있다. 부여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려는 랴오허 문명론 한국과 중국 간의 심각한 분쟁과 갈등을 일으켰던 동북공정은 지난 2007년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지만, 중국에서는 ‘랴오허 문명론’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동북 지역의 역사를 상고시대부터 중국사로 편입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랴오허 문명론’은 최근의 고고학 발굴 성과를 바탕으로 랴오허 일대를 중화 문명의 발상지로 본다. 이 지역에서 꽃핀 신석기 문화인 홍산문화를 황제黃帝의 후예들이 일으킨 것으로 전제하고, 이후 그 일대에서 발원한 모든 민족은 황제의 자손들이며 그들의 역사는 중국사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이 논리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 발원한 예맥족은 중화민족의 일부가 되고, 그들이 세운 고조선, 고구려, 부여는 중국 왕조의 정치적 지배를 받은 고대의 지방정권으로 전락한다. 최근 중국 학자들은 이 논리에 기초해 다양한 견해를 쏟아 내고 있다. 그 일단을 중국 선양의 랴오닝성박물관 부여 전시장의 설명에서 발견할 수 있다. 부여는 중국 역사상 중요한 소수민족이다. 적어도 한 초漢初에 이미 중국 동북 지역 중부의 쑹랴오 평원에서 활동했다. 이 평탄하고 비옥한 땅에서 부여인은 700여 년간 살았고, 동북 지구의 경제와 문화 발전에 탁월하게 공헌했다. 부여는 건국 이래 한 왕조에 신하로서 복속했으며 그 관계를 친밀하게 유지했다. - 35쪽 그러므로 부여사를 충실히 연구하고, 그 결과를 잘 갈무리해 학계는 물론 대중과 공유하는 일은 한국 고대사의 전체상을 복원하고, 그것을 우리의 역사로서 분명히 자리매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 책은 그 출발점이 되어 줄 것이다. 고고학 발굴 성과에 기초한 객관적이고 충실한 연구 저자 송호정 교수는 지린, 선양 등 만주 지역을 수십 차례 답사하고, 중국 연구자들과도 수시로 교류하며 중국 동북 지역의 고고학 발굴 성과를 꾸준히 수집하고 검토해 온 동북아 고대사 전문 연구자이다. 고대사에 대한 다양한 추론과 상상이 제기되는 가운데서도 언제나 “역사는 주장만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정확한 사료와 발굴 자료를 통해 실증해야 한다”는 신념을 고수해 온 저자는 이 책에서도 문헌 자료가 부족한 시기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고고학 자료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여도 문헌 기록이 많지 않은 초기 국가인 만큼 발굴된 자료들을 통해 지리적 위치를 확정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과제다. 그는 이 책에서 최근의 고고학 발굴 성과에 기초해 부여의 중심지였던 현재의 중국 지린시와 그 주변에서 발견된 기원전 8세기 이래의 여러 문화 유형을 소개하고 있다. 부여 건국 이전의 선주민 문화인 바이진바오-한수 문화와 시퇀산 문화의 시기와 특징, 주요 출토 유물을 소개한 뒤, 그다음 시기에 형성된 파오쯔옌식 문화의 주요 유적과 유물을 검토하며 근래에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파오쯔옌식 문화를 부여 문화로 간주한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는 파오쯔옌식 문화에 속하나 유물 하나하나에서는 크고 작은 차이가 보이는 라오허선 유적, 시차거우 유적, 차이란 묘지 등의 발굴 결과를 구체적으로 검토하며 이곳들을 둘러싼 국내외 학계의 다양한 견해를 소개한다. 저자는 여전히 곳곳에서 발굴이 진행 중이고, 이미 발굴된 자료들 중에는 제대로 공개되지 않은 것들도 많기 때문에 특정 문화 유형이나 유적을 부여의 것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한 부분까지만을 엄격하게 제한해 서술한 이 책은 부여의 역사에 관한 가장 객관적이고 충실한 연구라고 평가할 수 있다. 주요 내용 부여의 기원 부여의 건국설화인 동명 설화를 보면 부여는 북쪽에서 쑹화강 유역으로 남하한 세력이 건국했을 가능성이 크다. 설화의 기본 줄기는 왕이 탁리국에서 엄호수를 거쳐 부여까지 망명해 도읍을 정했다는 이주移住 전설이다. 옛날 북방에 탁리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그 왕의 시녀가 임신을 했다. 왕이 그녀를 죽이려 하자, 시녀는 “달걀만 한 크기의 기운이 제게 떨어져 임신했습니다.” 했다. 그 뒤에 아들을 낳았다. 왕이 그 아이를 돼지우리에 버리자 (돼지가) 입김을 불어 주어 죽지 않았고, 마구간에 옮겨 놓았더니 말도 입김을 불어 주어 죽지 않았다. 왕은 천제의 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해 그 어머니에게 거둬 기르게 하고는 이름을 동명이라 하고 항상 말을 기르게 했다. 동명이 활을 잘 쏘자, 왕은 자기 나라를 빼앗길까 두려워 죽이려고 했다. 이에 동명이 달아나 남쪽의 엄호수에 이르러 활로 물을 치니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 동명이 물을 건넌 뒤 물고기와 자라가 흩어져 버려 추격하던 군사는 건너지 못했다. 동명은 부여 지역에 도읍하고 왕이 되었다. 이렇게 북이北夷의 땅에 부여국이
목차
머리말 4
1 | 우리 역사 속 부여의 의미 11
고려 시대의 부여사 인식 ㆍ 조선 시대의 부여사 인식 ㆍ 일제강점기의 부여사 인식
해방 이후 부여사 인식
2 | 부여의 기원 42
부여라는 이름에 대해 ㆍ 부여의 건국설화, 동명 설화 ㆍ 부여를 세운 종족, 예맥
부여의 건국 시기 ㆍ 탁리국의 위치 ㆍ 첫 부여국, 북부여 ㆍ 동부여에 대한 고찰
3 | 부여의 성쇠 65
부여의 영역 ㆍ 부여와 고구려의 세력 경쟁 ㆍ 중국과 밀접한 교류 ㆍ 부여의 왕성
부여의 멸망과 부흥 운동
4 | 부여의 제도 100
중앙의 통치 조직 ㆍ 지방 통치 조직 ㆍ 부여와 삼국 초기의 정치체제 ㆍ 신분제도
5 | 부여인의 생활 123
가족 ㆍ 신앙 ㆍ 경제 ㆍ 예술 ㆍ 주거 ㆍ 법률 ㆍ 장례
6 | 부여와 중국 동북 지방의 고대 문화 139
초기 부여의 문화와 변천 ㆍ 바이진바오-한수 문화 ㆍ 시퇀산 문화 ㆍ 파오쯔옌식 문화
라오허선 유적 ㆍ 시차거우 유적 ㆍ 차이란 묘지 ㆍ 부여 관련 고고 문화의 명명
맺음말 167
주 171
연표 208
참고 문헌 211
사료 212
찾아보기 2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