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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과 김구 전 7권세트

시리즈 : 이승만과 김구 (조선뉴스프레스) [8]

손세일 저 | 조선뉴스프레스 | 2015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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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5783634 / 5582쪽 / 8,373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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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대한민국은 어떻게 세워졌는가? - 원로 언론인 손세일의 45년에 걸친 Life Work! 200자 원고지 2만 3000여매! - 현대 한국정치사, 대한민국 건국사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 - 이승만과 김구라는 두 산봉우리에 올라가 봐야 한국현대사가 보인다! 신화(神話)도 미화(美化)도 아닌, 대한민국의 두 국부(國父)의 초상 원로 언론인 손세일씨가 2001년 8월부터 12년 동안 111회에 걸쳐 《월간조선(月刊朝鮮)》에 연재 했던 《이승만과 김구》(전7권)가 드디어 완간됐다. 200자 원고지 2만 300... 대한민국은 어떻게 세워졌는가? - 원로 언론인 손세일의 45년에 걸친 Life Work! 200자 원고지 2만 3000여매! - 현대 한국정치사, 대한민국 건국사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 - 이승만과 김구라는 두 산봉우리에 올라가 봐야 한국현대사가 보인다! 신화(神話)도 미화(美化)도 아닌, 대한민국의 두 국부(國父)의 초상 원로 언론인 손세일씨가 2001년 8월부터 12년 동안 111회에 걸쳐 《월간조선(月刊朝鮮)》에 연재 했던 《이승만과 김구》(전7권)가 드디어 완간됐다. 200자 원고지 2만 3000여장, 전 7권 각권 800면 내외의 대작이다. 하나의 역사적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장기간에 걸쳐 연재한 것은 한국 잡지사상 초유의 일이다. 2013년 7월 연재를 마친 후에는 1년여 동안 《월간조선》에 연재했던 내용을 대폭적으로 수정, 보완하는 작업을 거쳐 이번에 전 7권을 출판하게 되었다. 저자는 이미 1970년에 한 권으로 된 《이승만과 김구》를 출간한 바 있다. 이때로부터 기산하면 45년만에 책이 완간되어 나온 셈이다. 이 책은 출간 이후 ‘한국헌정사 연구의 선구적 성과’(노재봉 전 국무총리), ‘한국 최초의 정치전기학 저서’(김학준 전 《동아일보》 회장)라는 평가를 받았다. 《월간조선》에 연재할 때에는 ‘우리나라 전기문학의 큰 업적’(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으로 평가 받았다.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에서 나온 방대한 기초자료를 두루 섭렵한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신화(神話)와 미화(美化)를 넘어서는 지적 정직함이다. 이승만이나 김구, 둘 중 한 사람만을 경애(敬愛)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들도 여러 군데 나오지만, 저자는 이러한 ‘불편한 진실’에 개의치 않는다. 저자는 두 사람의 네 가지 키 워드로 ▲ 애국심 ▲ 반일감정 ▲ 반공주의 ▲ 기독교 사상을 꼽으면서 “이승만과 김구는 이 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근대적 국민국가를 창건한 대표적인 두 정치지도자이다. 그런 뜻에서 ‘한 나라에 국부(國父)는 한 사람뿐이며 우리나라의 국부는 이승만’이라면서 자신이 국부로 불리기를 단호히 거부한 김구의 겸양에도 불구하고 이승만과 김구는 대한민국의 두 국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이승만과 김구라는 한국현대사의 양대 거인을 중심으로 구한말에서 대한민국 건국에 이르는 시기에 있었던 크고 작은 역사적 사실들을 꼼꼼히 기술하고 있다. 단순히 이승만과 김구라는 두 사람의 비교평전이라는 차원을 넘어, 두 사람을 중심에 놓은 한국현대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현대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절제되고 정확한 문장, 아름다운 우리말을 살려 쓰려는 노력 등도 돋보인다. 방대한 분량이지만, 소설처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한국현대사, 특히 대한민국 건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 책의 구성 제1부 ‘양반도 깨어라. 상놈도 깨어라’(제1, 2권) 1부에서는 이승만과 김구 두 사람의 출생에서부터, 두 사람이 구한말의 격동기를 거쳐 3?1운동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두 사람이 지도자로 성장해 가는 이 기간은 정치학에서 말하는 정치사회화(Political Socialization) 과정에 해당한다. 이 기간 동안 이승만은 과거를 보려다가가 실패를 거듭하던 끝에 과거제가 폐지되면서 좌절한다. 이후 배재학당에 입학해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고, 독립협회에서 활동을 하다가, 고종 폐위음모에 연루되어 25살~30살까지의 5년7개월 동안 감옥생활을 한다. 이 기간 동안 이승만은 일반사회에서라면 도저히 불가능했을 만큼 많은 학문습득과 저술활동을 하고 신문논설을 쓴다. 이후 러일전쟁 후 민영환의 밀사로 미국에 파견되었다가 프린스턴대학 등에서 학업을 마치고 귀국하지만, 105인 사건의 여파로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하와이에 자리잡는다. 같은 시기에 김구는 동학란에 가담했다가 좌절한 후 한때 안중근 의사의 부친 안태훈에게 의탁한다. 이후 치하포 나루에서 ‘국모의 원수를 갚는다’며 일본인 쓰치다를 살해해 1년 10개월 동안 감옥생활을 하다 탈옥한다. 이후 전국을 방랑하다가 애국계몽운동에 투신했으나, 경술국치 후 105인 사건으로 다시 4년 반 동안 감옥생활을 한다. 첫 번째 감옥생활에서 개화파로 변신한 김구는 두 번째 감옥생활을 거치면서는 불굴의 저항적 민족주의자로 거듭난다. 제2부 ‘임시정부를 짊어지고’(제 3, 4, 5권) 2부에서는 두 사람이 3.1운동의 결과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함께 참여하여 1945년 8월 15일에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직업적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는 26년 동안의 정치행태와 두 사람의 관계, 그리고 그들이 처했던 국제정치 및 독립운동자 사회의 상황을 정밀하게 살핀다. 상황변화에 대한 임시정부의 대응은 다섯 차례에 걸친 개헌으로 나타났는데, 저자는 그 개헌의 과정과 문제점을 자세히 분석했다. 대표적인 것이 1925년에 있었던 임시대통령의 탄핵과 면직을 둘러싼 ‘정변’과 개헌이었다. 이승만은 이 시기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통령으로 추대되지만, 위임통치론 주장 등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하다가 결국 1925년 탄핵된다. 독립운동 시기 이승만의 독립운동 방략은 흔히 ‘외교독립론’으로 일컬어지는데, 그 정점은 1933년 제네바회의 참석이었다. 이승만은 1933년1월부터 8월까지 만주사변문제를 다루는 제네바의 국제연맹 회의에 가서 여러 나라의 대표들을 만나고, 《만주의 한국인》이라는 팸플릿을 저술하여 배포하고, 방송과 신문을 통하여 선전활동을 벌인다. 이승만은 제네바 여행에서 평생의 반려자가 된 프란체스카 도너를 만났다. 이후 하와이에서 교육 및 경제사업에 힘쓰지만 실패를 맛보기도 한다. 태평양전쟁을 앞두고 《Japan Inside Out》을 출간하고, 태평양전쟁 기간 중에는 단파방송을 통해 해방이 머지않았음을 고국의 동포들에게 알리면서 오랜 망각에서 벗어나 다시 ‘민족의 지도자’로 떠오른다.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미 정보기관 OSS 및 미 군부와 접촉해 냅코 작전 등 비밀공작을 추진한다. ‘문지기’ 역할을 자처하면서 경무국장으로 임시정부 활동을 시작한 김구는 이후 독립운동가 사회의 알력으로 여러 번 좌초의 위기에 처할 때에도 임시정부를 굳건하게 옹호한다. 김구는 1932년1월과 4월에 잇달아 있었던 이봉창(李奉昌) 의거와 윤봉길(尹奉吉) 의거를 계기로 임시정부의 실질적인 영도자로 떠오른다. 김구는 장개석(蔣介石)과 회담하고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에 한인특별반을 설치하여 한국청년들을 훈련했다. 중일전쟁 이후에는 충칭에 이르기까지 중국대륙을 표랑하면서 임시정부를 지켜냈고, 독립운동세력 내 좌우합작, 광복군의 통수권을 둘러싼 중국 국민당 정부와 갈등 등을 이겨내면서 결국 해방을 맞는다. 제3부 ‘어떤 나라를 세울까’(제 6, 7권) 3부에서는 1945년 10월과 11월에 국민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귀국한 두 사람이 냉전체제라는 새로운 국제정치질서의 전개 속에서 통일독립정부 수립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두고 어떻게 고뇌하고 행동했는가를 기술한다. 저자는 “동유럽제국의 붕괴 이후에 열람이 가능해진 구소련정부문서를 비롯하여 《슈티코프일기》 등 여러 가지 기초자료를 이용하여 정확한 사실 규명에 노력했다”고 말한다. 특히 1946년 10월 폭동, 1948년 4~5월의 남북협상이 철저하게 소련의 지원과 설계 아래 이루어진 것임을 밝힌 대목이 눈길을 끈다. 해방 직후 이승만은 조

저자 소개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저널리즘스쿨과 일본도쿄대학 법학부대학원(국제정치전공)에서 수학했다. 《사상계》 편집장, 조선일보 기자, 동아일보사 《신동아》 부장과 논설위원, 《뿌리 깊은 나무》 편집위원, (사)서울언론문화클럽 이사장 등 언론인으로 활약하다가 정계에 투신하여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저서로 《이승만과 김구》(1970년), 《인권과 민주주의》(1980),《한국논쟁사(Ⅰ~Ⅴ)》(편)(1976) 등이 있고, 역서로 《트루먼회고록(상,하)》(1966) 등 이 있다.


 

목차

목차
[제1권] 양반도 깨어라 상놈도 깨어라 (Ⅰ)
머리말 역사와 개인의 역할
감사말씀
서설 나라를 사랑하는 방법
제1장 왕손의식과 ‘상놈’ 콤플렉스 ?가계와 어린 시절
제2장 과거에 낙방하고
제3장 ‘애기접주’의 해주성 공략
제4장 “배재학당에 가서 화학을 배우라고 말했다”
제5장 청계동의 고‘ 산림’
제6장 청국행과 반일의병활동
제7장 신화가 된 치하포사건
제8장 일간지 시대를 열다
제9장 독립협회의 급진과격파
제10장 위정척사파에서 개화파로 김구의 첫번째 감옥생활
제11장 방랑 끝에 찾아간 마곡사
제12장 기독교 입교와 옥중전도 이승만의 감옥생활(1)
제13장 독서와 시작과 저술 이승만의 감옥생활(2)
제14장 아버지와 약혼녀의 죽음
■ 참고문헌
■ 찾아보기
[제2권] 제1부 양반도 깨어라 상놈도 깨어라 (Ⅱ)
제15장 밀‘ 서’ 가지고 미국으로
제16장 예배당과 학교의 개설
제17장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나다
제18장 을사조약 파기투쟁의 행동대
제19장 외아들 태산의 죽음
제20장 “양반도 깨어라! 상놈도 깨어라!”
제21장 한국인 최초의 정치학 박사
제22장 YMCA 한국인 총무와 신민회 황해도 총감
제23장 기독교국가 건설의 꿈
제24장 활빈당 두목 ‘김 진사’ 김구의 두 번째 감옥생활
제25장 하와이 한인사회의 ‘황금의 해’
제26장 동산평 농장의 도박풍습 퇴치
제27장 국민회를 장악하다
제28장 “한국인이 주인인” 학교와 교회 한인기독학원과 한인기독교회
제29장 국제연맹의 위임통치 청원
제30장 혁명으로서의 3·1운동
■ 참고문헌
■ 찾아보기
[제3권] 제2부 임시정부를 짊어지고(Ⅰ)
제31장 “이승만 박사는 어디 있소?”
제32장 인형 속에 숨겨 온 한성정부 문건
제33장 임시대통령과 경무국장
제34장 헤게모니로서의 자금
제35장 공산당도 흥사단도 거부하고
제36장 구미위원부의 내분과 미국 의원단의 방한
제37장 “임시대통령 각하, 상해에 오시도다 ”
제38장 워싱턴회의의 한국대표장
제39장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에 몰려간 ‘혁명가’들
제40장 국민대표회의와 공산주의 비판
제41장 한인기독학원 학생들의 고국방문
제42장 「임시대통령유고」 결의에 맞서 「재외동포에게!」 선포
제43장 탄핵되는 임시대통령
제44장 태평양회의에 참석한 한국대표들 맞아
■ 참고문헌
■ 찾아보기
[제4권] 제2부 임시정부를 짊어지고(Ⅱ)
제45장 국무령 되어 다시 헌법 개정
제46장 하와이 섬에 동지촌 건설
제47장 잠은 임시정부 청사에서 자고
제48장 한국독립당 조직과 동지식산회사의 파산
제49장 동지미포대표회의 배반자들
제50장 “일본 천황을 왜 못 죽입니까?” 이봉창의 일본 천황 저격사건
제51장 “뒷날 지하에서 만납시다” 윤봉길의 홍구공원 폭파사건
제52장 중국농촌 보고 사대사상 통박
제53장 제네바로, 모스크바로
제54장 낙양군관학교의 한인특별반
제55장 “하와이에는 이 박사 혼자만 오십시오”
제56장 남호에 배 띄우고 임시의정원 회의
제57장 새 예배당 건축하고 하와이 떠나
제58장 임시정부 대가족의 ‘만리장정’
제59장 한국독립당 창당과 광복군총사령부 창설
■ 참고문헌
■ 찾아보기
[제5권] 제2부 임시정부를 짊어지고(Ⅲ)
제60장 미일전쟁 경고한 『일본내막기』
제61장 주석과 주미외교위원장
제62장 울분 참고 「광복군행동준승」 받아들여
제63장 워싱턴에서 한인자유대회 열어
제64장 “이 몸을 태평양 물고기 뱃속에…” 『백범일지』 하권 집필
제65장 단파방송으로 국내외 동포에게 봉기 선동
제66장 임시정부의 좌우합작
제67장 주석직 사퇴하고 됴쿄로
제68장 “‘적당한 시기’는 5년도, 50년도 될 수 있어…” 카이로선언의 즉시 독립 유보 규정
제69장 “연합위원회를 택하시든지 이승만을 택하시든지…”
제70장 국내에 침투시킬 특수공작반 훈련?「냅코작전」과 「독수리작전」
제71장 얄타비밀협정설로 미국 여론 흔들어
제72장 1945년 8월(1)
제73장 1945년 8월(2)
■ 참고문헌
■ 찾아보기
[제6권] 제3부 어떤 나라를 세울까(Ⅰ)
제74장 미군 진주와 양분되는 정국
제75장 조선인민공화국의 주석과 내무부장
제76장 평양시민중대회에 나타난 ‘김일성 장군’
제77장 33년 만에 귀국한 ‘국민적 영웅’
제78장 공산당도 참가한 독립촉성중앙협의회
제79장 “내가 왔으므로 정부가 돌아온 것이다”
제80장 “공산당은 제 조국으로 가라”
제81장 조선민주당의 창당과 신의주 학생들의 봉기
제82장 ‘새로운 독립운동’으로 신탁통치 반대투쟁
제83장 비상국민회의 최고정무위원회가 민주의원으로
제84장 미소공위 파동 속에 지방순회
제85장 정읍발언과 민족통일총본부 설치
제86장 중간파 중심으로 좌우합작 추진
제87장 남북한에 별도의 조선로동당 결성
제88장 총파업과 도시폭동과 슈티코프의 지령
제89장 과도입법의원 의원선거에서 압승
제90장 방미외교로 국내 정파들 조종
제91장 다시 열린 미소공동위원회에 참가 거부
■ 참고문헌
■ 찾아보기
[제7권] 제3부 어떤 나라를 세울까(Ⅱ)
제92장 마침내 유엔총회로
제93장 유엔총회의 결의를 보고
제94장 “제주도 한 모퉁이에 수립해도 한국중앙정부”
제95장 “이승만 박사의 이름은 마술적 위력을 가졌다”
제96장 단독정부수립이냐 남북협상이냐
제97장 “38선을 베고 자살이라도 하겠다!”
제98장 투표율 90% 넘은 제헌국회 선거
제99장 내각책임제냐 대통령중심제냐
제100장 “좋은 시계 속처럼 돌아가는 정부 만들 터”
제101장 대한민국 건국의 여섯가지 기초
제102장 남북공산주의자들의 도전
제103장 “대한민국은 한국의 유일한 합법정부”
제104장 정계개편과 청년단체의 통합
제105장 반민족행위자 처벌 방법 논쟁
제106장 주한미군의 철수와 국회프락치사건
제107장 “이 박사 덕분에 쌀밥 먹게 되었다”
제108장 경교장의 총성
■ 참고문헌
■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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