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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6120513 / 520쪽 153 x 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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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현대 프랑스인들에게 ‘과거사’란 무엇인가 프랑스 현대사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수치스럽고 분열적인 독일강점기 프랑스의 협력과 저항 깊이 읽기 과거사 청산, 우리나라의 경우와 프랑스의 경우 14명과 9만 8,000명 1948년 10월 12일, 일제강점기에 자행되었던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처벌하기 위해 제헌국회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반민특위는 활동에 들어가기 전부터 친일행각을 벌였던 경찰간부들의 암살 위협에 시달려야 했고, 활동 시작 이후에는 안보상황이 위급한 때 경찰을 동요시켜서는 안... 현대 프랑스인들에게 ‘과거사’란 무엇인가 프랑스 현대사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수치스럽고 분열적인 독일강점기 프랑스의 협력과 저항 깊이 읽기 과거사 청산, 우리나라의 경우와 프랑스의 경우 14명과 9만 8,000명 1948년 10월 12일, 일제강점기에 자행되었던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처벌하기 위해 제헌국회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반민특위는 활동에 들어가기 전부터 친일행각을 벌였던 경찰간부들의 암살 위협에 시달려야 했고, 활동 시작 이후에는 안보상황이 위급한 때 경찰을 동요시켜서는 안 된다는 이승만의 견제와 비협조로 인해 제대로 활동할 수 없었다. 활동 기간 동안 특위는 총 취급건수 682건 중 기소 221건, 재판부의 판결건수 40건의 성과를 내는 데 그쳤다. 체형은 고작 14명이었다. 실제 사형집행은 1명도 없었으며, 체형을 받은 사람들도 곧바로 풀려났다. 1944년 6월 26일, 프랑스 공화국 임시정부는 독일강점기(비시 체제 혹은 비시 프랑스. 독일과의 휴전협정이 체결된 1940년 6월부터 파리가 해방된 1944년 8월까지, 혹은 독일이 항복한 1945년 5월까지) 나치에 협력했던 대독협력자 처벌을 위해 부역자 재판소Cour de Justice를 설치했다. 이외에도 최고재판소Haute cour de justice, 공민재판부chambre civique 등 새로운 재판소들을 만들어 대규모의 사법적 숙청을 행했다. 해방 직후 대독협력자 처벌을 위해 설치된 이 재판소들에서 대독협력 ‘혐의’자로 서류 검토된 이들만 무려 35만 명이었고, 실제로 유죄가 선고된 자들로 범위를 좁혀도 약 9만 8,000명에 달했다. 여전히 지속되는 ‘미완’의 과거사 일제강점기가 한국 현대사에서 돌이키고 싶지 않은 아프고 부끄럽고 혼란스러운 시기인 것과 마찬가지로, 독일강점기는 프랑스 현대사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수치스럽고 복잡하고 분열적인 시기다. 분명 대처 방법은 달랐다. 9만 8,000명과 14명 사이의 간극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강점기’의 기억이 끊임없이 환기되고 분출되고 재분출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리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얼마 전 현 대통령의 동생의 일제강점기 관련 망언을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프랑스에서는 2014~15년 파리 도심 한복판에서 ‘독일강점기 대독협력’을 가리키는 〈협력〉 전시회가 열려 독일강점기에 대한 기억을 되살렸다. 여전히 지속되는 ‘미완’의 과거사다. 여러 해 전부터 독일강점기 프랑스의 대독협력과 레지스탕스 및 전후戰後의 과거사 청산 문제를 연구해온 이용우 교수(동덕여자대학교 국사학과)는 《미완의 프랑스 과거사―독일강점기 프랑스의 협력과 레지스탕스》에서 바로 이 프랑스의 “지나가지 않은 과거” 독일강점기에 주목한다. 저자는 대독협력자와 그에 대한 처벌 문제(1부), 홀로코스트와 그에 대한 비시 정부의 협력 문제(2부), 나치 독일과 대독협력자들에 맞서 싸운 레지스탕스 관련 문제(3부) 등을 살피면서 독일강점기 프랑스 과거 청산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심화시킨다. 나아가 이러한 연구가 우리에게도 여전한 ‘과거사 청산’ 문제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과거사 청산은 우리에게도 낯익은 문제다. 물론 일제강점기 점령과 협력의 기간, 정도, 성격은 이 지구 반대편 나라와 매우 다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과거사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이 책이 한국 사회의 과거 청산 문제 해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독협력자, 어떤 처벌을 받았고 어떻게 사면되었나 가장 수치스런 용어 ‘콜라보’ 프랑스인들에게 “협력Collaboration”은 ‘독일강점기 프랑스의 대독협력’을 의미한다. 독일강점기는 프랑스인들의 기억 속에서 언제나 “암울한 시기”였다. 역사상 여러 차례 유럽 최강국이었고 100년 전만 해도 영국 다음으로 많은 식민지를 보유한 나라이자 언제나 문화강국임을 자부하던 프랑스가 이웃나라에게 4~5년간 점령을 당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충격이자 수치였다. 오늘날의 프랑스인들에게 누군가를 지칭하는 가장 수치스런 역사적·정치적 용어로 ‘콜라보collabo’가 언급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독일강점기 프랑스의 대독협력자를 가리키는 ‘협력자collaborateur’의 약칭인 ‘콜라보’가 70여 년이 지나도록 수치스런 용어로 남은 것은 그만큼 독일강점기 4년간이 오늘날까지도 프랑스인들에게 끔찍한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대독협력자, 국민부적격죄 그리고 사면법 1부 〈대독협력자: 인식, 처벌, 사면〉에서는 이러한 대독협력자들의 문제를, 강점기가 아니라 해방 직후부터 1950년대 초까지의 시기를 통해 살핀다. 1장 〈협력자, 반역자, 콜라보〉에서는 해당 시기에 대독협력자가 어떻게 인식되었는지를 당대의 중앙일간지, 시사주간지, 잡지 논설, 법령, 소설 등에 대한 분석을 통해 알아본다. 2장 〈새로운 범죄의 탄생: 국민부적격죄〉에서는 해방 후 대독협력자 재판에서 ‘반역죄’나 ‘적과의 내통 죄’에 비해 훨씬 덜 알려졌지만 독특하면서도 가장 보편적으로 부과된 죄목인 ‘국민부적격죄’를 분석한다. 3장 〈사법적 망각: 관용이냐, 복권이냐?〉의 주제는 사면이다. 해방 후의 대독협력자 ‘숙청’ 국면을 종결지은 “사법적 망각”에 해당하는 1951년과 1953년의 사면법 제정 과정을 다룬다. 홀로코스트, 비시 정부는 어떻게 협력했나 홀로코스트 정책 협력, 가장 끔찍한 ‘국가적 협력’ 독일강점기 4년 내내 비시 정부가 추구한 대독협력 정책을 지칭하는 ‘국가적 협력’은 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부문에 걸쳐 진행되었다. 비시 정부는 ‘의무노동제’를 통해 65만 명의 프랑스 국민을 강제로 독일 공장으로 보냈고, 항독抗獨운동 탄압을 위해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고 준군사조직인 ‘프랑스 민병대’를 창설했으며, 나치 독일의 유대인 박해 정책에 발맞추어 ‘유대인지위법’을 제정하고 ‘유대인문제총국’을 설치했다. 이러한 비시 정부의 국가적 협력이 야기한 최대의 비극이자 가장 끔찍한 측면은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정책에 적극 협력한 것이었다. 비시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기에 독일군의 점령을 받지 않은 지역에서 유대인들을 독일 측에 기꺼이 내준 유일한 국가였다. 게다가 독일 측에서 요구하지 않은 16세 미만 유대인들까지 강제이송 대상에 포함시켰다. 그 결과 모두 약 7만 3,000명의 유대인들이 아우슈비츠 등의 절멸수용소들로 끌려가 학살당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비시 정부의 명령으로 프랑스 경찰에 의해 검거되어 프랑스 내 수용소들에 수감되었다가 이송된 이들이었다. 비시 프랑스에서의 유대인 문제 그리고 벨디브 사건 2부 〈국가적 협력과 홀로코스트〉는 독일강점기/2차 세계대전기의 경험 가운데 1980년대 이후 특히 주목받게 된 홀로코스트와 그에 대한 비시 정부의 협력에 집중했다. 4장 〈강점기 프랑스의 유대인 박해와 홀로코스트 협력〉에서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비시 정부의 협력뿐만 아니라 강점기 초기의 유대인지위법들에서부터 유대인문제총국, ‘아리안화’, 유대인 수용소들에 이르기까지 유대인 박해 문제 전반을 살핀다. 5장과 6장은 벨디브 사건에 초점을 맞춘다. ‘벨디브Vel’ d’Hiv 사건’은 1942년 7월 16~17일 파리 지역의 유대인 약 1만 3,000명을 검거한 사건으로, 규모도 규모지만 점령지구였음에도 게슈타포가 아니라 전적으로 프랑스 경찰력이 작전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단연 가장 충격적이고도 끔찍한 사건이었다. 5장 〈반세기 만의 단
목차
책머리에
제1부 대독협력자: 인식, 처벌, 사면
1장 협력자, 반역자, 콜라보
2장 새로운 범죄의 탄생: 국민부적격죄
3장 사법적 망각: 관용이냐, 복권이냐?
제2부 국가적 협력과 홀로코스트
4장 강점기 프랑스의 유대인 박해와 홀로코스트 협력
5장 반세기 만의 단죄: 비시 경찰 총수 부스케
6장 반세기 만의 사과: 벨디브 사건
제3부 레지스탕스: 역사, 기억, 논쟁
7장 레지스탕스의 탄생: ‘인류박물관’과 ‘북부해방’을 중심으로
8장 초기 레지스탕스의 비시-페탱 인식
9장 칼뤼르 사건과 아르디 재판
10장 1993년의 장 물랭 사건
11장 1997년의 오브락 사건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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