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디 에니메이터

넬슨 신 저 | 한울 | 2015년 09월

북트리

정가
$132.00
판매가
$72.60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1.45 (2%P)
출고예상일
2026년 10월 08일 수령예상일 안내
북카트 담기 바로구매하기 위시리스트담기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ISBN : 9788946060524 / 592쪽 239 x 184 (㎜) / 양장본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 10,800
  • 62,100
  • 15,120
  • 15,300

책 소개

출판사 리뷰

“나를 만든 것은 상상력과 용기였습니다.” 핑크팬더를 그리고 옵티머스를 설계한 어느 애니메이터의 이야기 <트랜스포머스>의 옵티머스를 설계하고 <핑크팬더>의 원화 스케치를 그렸으며 <스타워즈>의 ‘광선?검’을 표현한 사람이 있다. 넬슨 신, 그는 1971년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까지만 해도 무명의 만화영화 CF 감독에 불과했다. 도미 후 <더 트랜스포머스>, <핑크팬더>, <대피 덕>, <벅스 바니>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작품 제작에 참여하며 DFE, 마블, 워너브라더스, 도에이 등 애니메이션 분야의 굵직한 제작사들과 함께 일했다. 귀국 후 온 힘을 실은 일은 남북 합작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 2005년, 세상의 주목을 받으며 남북 동시 개봉한 애니메이션 <왕후 심청>이 그것이다. <디 애니메이터>는 꿈과 용기 그리고 상상력만으로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거장이 된 넬슨 신의 자서전이다. 그는 이 책에서 애니메이터로서 할리우드에서 겪은 다양한 일화와 유명 작품의 뒷이야기, 미국의 애니메이션 제작 시스템과 그 주변 국가들의 이야기를 담담히 서술한다. 특히 국내로 복귀해 수차례 북한을 오가며 기획한 남북 합작 애니메이션 <왕후 심청>에 관한 에피소드는 그 자체만으로도 그간 좀처럼 접할 수 없었던 북한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에 대한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옵티머스’, ‘핑크팬더’, ‘광선검’. 홀홀단신으로 세계에 도전해 애니메이션 역사의 한 장이 된 애니메이터 <트랜스포머스>의 ‘옵티머스’를 설계하고 ‘핑크팬더’의 원화 스케치를 그렸으며 <스타워즈>의 ‘광선검’을 표현한 사람이 있다. 그는 한국인이며 1971년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까지만 해도 무명의 만화영화 CF 감독에 불과했다. 어렸을 적에는 6.25 피난길에 올라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겼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시사 일간지 편집국에서 잠시 일하며 자신의 ‘쓸모’에 대해 고민했다. 이랬던 그가 도미를 결심한 것은 1971년 10월 25일. 무일푼, 무연고로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하루를 버티다, 기적처럼 밥 밀스 사장을 만나 애니메이터 어시스턴트로서 애니메이션 인생의 서막을 연다. 그 뒤 루카스 필름의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광선검’ 특수효과를 완벽하게 재현해내며 일약 스타가 된다. 그의 이름은 신능균, 바로 넬슨 신이다. 루카스 필름의 감독과 스태프들을 깜짝 놀라게 한 넬슨 신은 그 후 TV 시리즈 <더 트랜스포머스(The Transformers)>, <타이머(Timer)>, <핑크팬더(Pink Panther)>, <대피 덕(Daffy Duck)>, <벅스 바니(Bugs Bunny)>, <닥터 수스(Dr. Suess)>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애니메이션 작품 제작에 연이어 참여하며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아가기 시작한다. <트랜스포머>를 본 사람이라면 오토봇 진영이 빨간색, 디셉티콘 진영이 보라색 계열로 표현되어 있음을 알 것이다. 이것은 넬슨 신이 채색 부서의 컬러 차트를 보고 순간적으로 떠오른 아이디어를 바로 적용한 것이다. 예술 표현에 있어 ‘퍼스트 임프레션’이 가장 효과적이라 생각하는 넬슨 신의 순발력이 만들어낸 아이디어이다. 단순히 캐릭터뿐만 아니라 배경, 소도구, 레이저 광선의 효과까지도 색으로 구분했다. 이 방법은 매우 효과적이었고 트랜스포머의 원조인 해스브로 토이 컴퍼니에서도 즉각 장난감 상품에 적용하여 팔기 시작했다. 색 분할에 의한 진영 구분이나 애니메이션의 아이디어를 상품화는 이후 많은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 그는 DFE, 마블 프로덕션, 워너브라더스, 도에이도가(東暎動?) 등 애니메이션 분야의 유명 스튜디오와 함께 일하며 당대 할리우드를 이끈 수많은 영화감독과 애니메이션 제작자, 문화인 들과 교류하며 그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다. 근 30년 동안 할리우드에서 라인 프로듀서 등 애니메이션 제작의 요원으로 활약한 넬슨 신이 귀국 후 온 힘을 쏟은 일은 남북 합작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 2005년, 세상의 주목을 받으며 남북 동시 개봉한 애니메이션 <왕후 심청>이 그것이다. '디 애니메이터'는 꿈과 용기 그리고 상상력만으로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거장이 된 넬슨 신의 자서전이다. 그는 이 책에서 성실한 애니메이터로서 할리우드에서 겪은 다양한 일화와 유명 작품의 뒷이야기, 미국의 애니메이션 제작 시스템과 그 주변 국가들의 이야기를 담담히 서술한다. 특히 국내로 복귀해 수차례 북한을 오가며 조선 4?26 아동영화촬영소와 야심차게 기획한 남북 합작 애니메이션 <왕후 심청>에 관한 에피소드는 그 자체만으로도 그간 좀처럼 접할 수 없었던 북한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에 대한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여기에도 애니메이션이 있어요!” 개인의 역사가 전체의 역사로 진화할 때 무언가를 여럿이 같이 한다는 것은 몹시 피곤한 일이다. 내가 힘들지 않더라도 동료가 힘들면 함께 쉬어야 하고, 정작 내가 힘들 땐 같이 걸어야 한다. 모르는 것이 있다면 내 일을 멈추고서라도 가르쳐야 하고, 동료가 실수를 범하면 책임을 함께 물어야 한다. 그렇다면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물리적으로, 문화적으로 먼 거리에 있는 동료와 장편 애니메이션을 함께 제작하는 일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 이 책의 저자 넬슨 신은 지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무려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남북을 수차례 왕복하며 <왕후 심청>이라는 남북 합작 애니메이션을 제작 지휘했다. “예상했던 제작비의 두 배가 넘게 나왔지만 나는 그들의 실적 보고서를 100% 믿었다.” 돈은 중요하지 않았다. 북한의 원도화가(애니메이터 원화가)들과 함께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 그에겐 가장 큰 보람이었다. 넬슨 신은 <왕후 심청>을 제작하며 북한의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과 북한 주민들의 문화와 관습을 관찰했다. 조선 4?26 아동영화촬영소, 평양미술대학교, 평양 영화방송음악단 등 그가 보고 듣고 관찰한 북한의 이야기가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물론 북한에 대한 내용은 이 책의 전체 6부 내용 중 한 부의 내용에 불과하다. ??디 애니메이터??는 넬슨 신이라는 한 애니메이터의 끈질긴 도전과 자유로운 상상력이 어떻게 영화 같은 인생을 이끌어내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기록이자 소설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애니메이터’ 개인의 인생이 어떻게 ‘애니메이션’이라는 한 분야의 역사로 이어질 수 있는지, 그리고 한 사람의 삶 안에 얼마나 풍부하고 값진 지혜와 경륜이 쌓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다. 할리우드에서 작품을 총괄 지휘하는 직책인 라인 프로듀서의 자리까지 오른 넬슨 신은 이후 <드래곤볼>, <원피스> 등을 제작한 일본 도에이도가, 프랑스 앙굴렘 등에 마블 프로덕션의 대표 자격으로 출장하며 세계적인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다. 이렇게 다양한 공간에서 겪은 분쟁과 갈등, 화해와 타협의 에피소드는 그 자체로 세계 애니메이션 제작환경 변화의 곡선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최근 해외로 향하는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과 젊은 애니메이터들에게 적지 않은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자서전은 맞는데요, 그렇다고 자서전은 아니에요.” 물론 이 책은 자서전이다. 그것도 매우 거창한 제목을 달고 있는. ‘디 애니메이터(한 만화가)’라니 뭔가 대단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 같지 않은가? 표지에 등장하는 저자의 표정도 뭔가 심상치 않다.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나 호통을 칠 것 같다. “네 자신이 대피 덕이 되어라!” 그러나 막상 펼쳐보면 무게를 잡고 가르치려 하거나 주구장창 훈계만 일삼는 뭇 자서전과는 다름을 알 수 있다. ‘나 이런 사람이야!’ 하는 본인 자랑과 ‘내가 그땐 그랬지’ 하는 세월 한탄과는 거리가 멀다. 그 대신 지난 반세기 동안 온몸으로 겪은 한국과 미국 애니메이션 시장의 역동적인 변화상을 생동감 있게 담아냈다. 그는 그 변화의 성실한 참여자였으며 당사자였다. 나이 서른을 갓 넘겨 무일푼으로 미국에 건너가 20여 년 뒤 마블의 한국지사 대표 자격으로 귀국해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설립했다. 한국인 최초의 ASIFA(국제애니메이션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할리우드의 수많은 장편 애니메이션이 그의 손길에 의해 탄생했다. 넬슨 신은 자신을 ‘항상 머뭇거리며 부족한 반벙어리’라고 부른다. 무슨 뜻일까? 전쟁터 같은 애니메이션 제작 현장에서 끝끝내 자신만의 소신을 지키며 손해와 무시를 당해온 지난 반세기에 대한 씁쓸한 고백일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후배를 향한 따끔한 훈수를 잊지 않는다. 이 책의 6부 “네 자신이 대피 덕이 되어라”는 애니메이터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정독할 내용이다. 저자의 최종 꿈은 애니메이션 교육자다. 넘칠 듯 차오른 애니메이션에 관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후배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남은 생의 가장 큰 목표라고 한다. 그가 여전히 수많은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과 만나는 이유다.

저자 소개


1937년 황해도 평산에서 출생해 대전 보문고등학교와 서라벌예술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1959년부터 여러 잡지사에 만화를 기고해 만화가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으며, 1960년부터는 서울신문사에 취직해 시사만화를 그렸다. 만화가 이상호와 최초의 애니메이션 CF 칠성사이다 광고를 제작했으며, 그후 신동헌 화백과 함께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 제작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1년 10월 25일, 큰 결심을 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 다양한 직업을 거쳐 드패티-프렐링사의 애니메이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 기간 동안 <타이머(Timer)>, <핑크 팬더(Pink Panther)>, <대피 덕(Daffy Duck)>, <벅스 바니(Bugs Bunny)>, <닥터 수스(Dr. Suess)> 등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1976년 영화 <스타워즈(StarWars)>의 광선검 특수효과를 담당하면서 일약 스타가 되었으며, 그 뒤 마블 프로덕션의 애니메이션 수석 프로듀서로 발탁, TV 시리즈 <더 트랜스포머스(The Transformers)>를 120편이나 제작하는 등 1988년까지 할리우드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1985년 한국에 돌아와 서울에 애이콤 프로덕션(AKOM Production Co.)을 설립한 뒤, 장편 애니메이션 <마이 리틀 포니>를 제작했다. 세계 애니메이션업계의 정보를 국내에 알리기 위해 애니메이션 전문 잡지 ≪애니메이툰(ANIMATOON)≫을 1995년부터 발간하기 시작해, 현재 116호(2015.08.05.)까지 발행했다. 미국 에미상 최우수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상을 3년 연속 수상했으며(1997∼1999년), 2005년에는 최초의 남·북 동시 개봉 애니메이션 <왕후 심청>을 제작했다. 지금은 후학 애니메이터 양성을 위해 저술, 강연, 교육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책 속에서

나는 동네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담벼락마다 낙서를 해댔다. 진흙에 볏짚을 섞어 만든 황토벽. 지금이야 건강에 좋다며 사용하지만 그때의 황토벽은 소박하고 가난한 시골 풍경의 한 자락일 뿐이었다. 산에서 나오는 하얀 석필을 가지고 그 황토벽 담벼락에 기차 그림을 그렸다. 매우 선명하게 잘 그려졌다.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책에 나와 있는 그 기차 모양 그대로, 저 멀리 산이 있고 긴 기차가 달려가는 풍경이 그대로 그려졌다. 그냥 흉내만 내는 게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듯 그리고 싶었다. 담이 길면 기차의 객차는 길어지고, 짧으면 두어 칸 정도가 된다. 기관차가 있고 그다음 객차가 달리고, 화물칸, 끝으로 차장이 타는 조그만 칸이 있는 기차. 물론 기관차의 화통에서 나오는 둥그런 연기도 빠뜨리지 않았다. 내가 그린 기차는 여기저기서 잘 달리고 있었다. 아마도 이것이 내가 평생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살게 된 최초의 운명적인 시작이 아니었을까 여겨진다. _본문 30쪽

“동작을 멈추고, 한 줄로 서라!” 선생님의 목소리는 찢어지는 듯했다. 지금 같으면 별것 아닌 일로 넘어갈 수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선생들은 조선 학생들에게 철저하게 버르장머리를 고치는 식의 교육을 했다. 아이들 예닐곱이 서둘러 줄을 서서 잔뜩 얼어 있었는데, 선생은 느닷없이 팔을 벌려 온 힘을 다해 학생들의 따귀를 때리기 시작했다. 정신 상태가 돼먹지 않았다는 호된 질책이었다. 그 손바닥 힘이 얼마나 세던지 우리는 모두 몸이 공중으로 떴다가 차례로 마룻바닥으로 고꾸라지며 처박히고 말았다. 모두들 파랗게 질려 있었을 것이다. 형제 많은 집 막내로 태어나 여덟 살까지 어머니의 가슴을 만지며 업혀 다닌 나로서는 이런 일들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_본문 36쪽

비행기 위로 올라가려고 접근하니 눈에 잘 띄지 않는 아주 가느다란 줄이 햇빛에 반짝이며 비행기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햇빛이 역광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나는 즉각 소리쳐 철규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것을 건드리면 폭발할 것이라는 걸 즉각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그것은 지뢰를 매설해 놓은 것으로 나에게 지식이나 상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전쟁 속에서의 위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공산군이 그곳을 떠나면서 설치해 놓은 지뢰였다. 내 느낌이 옳았다. _본문 75쪽

루카스 필름에서 온 그 프로듀서는 대형 무비올라를 약간 당겨서 자리를 잡았고 ‘디렉터스 체어(감독의 의자)’를 무비올라 앞에 정돈했다. 그리고 그는 나를 쳐다보며 거기에 앉으라는 제스처를 했다. 내가 겸손하게 팔을 내저었지만 그 자리는 사실상 내가 앉을 자리임이 분명했다. 다들 그 의자에 내가 앉는 것에 수긍했다. 15명 남짓한 사람들이 내 등 뒤에 서서 작은 무비올라의 화면을 주시해서 봤다. 그들은 결과물을 보면서 감탄을 연발했다. 나를 대단하게 평가했다. 나 역시 만족할 만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 한국식대로 겸손해하며 “It's good.(괜찮은데요)”라고 말했더니, 그 프로듀서는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놀라며 물었다. “What you mean by that? It is a great job! (그게 무슨 소리예요? 대단히 잘 했어요!)” _본문 239쪽

차트는 오렌지색 계열과 보라색 계열로 편을 가른 듯 나누어져 있었는데 내 눈에 그것이 들어왔다. 당장 그 자리에서 결정해 오렌지는 오토봇(Autobot, Good Guys)에, 보라는 디셉티콘(Decepticon, Bad Guys)에 적용하도록 하고 장난감이 쏘는 레이저 광선 효과도 오렌지색과 보라색으로 구분을 시켰다. 심지어는 오토봇 진영과 디셉티콘 진영의 배경, 소도구, 시각효과 등을 모두 색을 구분해 사용하도록 지시했다. 이것들은 나의 평소 순발력이었다. 나는 예술의 표현에서 처음 생각한 것이 가장 효과적인 ‘퍼스트 임프레션(First Impression)’이라고 생각한 적이 수없이 많았다. 내가 지정해 놓은 색상은 해스브로 토이 컴퍼니(Hasbro Toy Company)가 생산해내는 장난감에도 즉각 적용되어 상품으로 팔리기 시작했다. _본문 286쪽

진 맥커리 사장이 나에게 비하인드 스토리 하나를 전해줬다. 워너는 일상적으로 가편집을 하여 임시로 사운드와 더빙한 테이프를 만들어 스필버그 감독의 집으로 보냈다. 스필버그의 자택은 뉴욕에도 있고 LA에도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LA에 보낸 테이프를 스필버그의 다섯 살짜리 아들이 먼저 뜯어 보게 되었다. 아마 그 아들도 아버지를 닮아 호기심과 모험심이 뛰어난 모양이었다. 어쩌면 행운이란 말은 이런 일을 두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섯 살짜리 애가 그걸 뜯어서 돌려보니 너무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꼬마는 뉴욕에 있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 온 <타이니 툰>을 봤는데 너무너무 재미있다’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아버지 스티븐 스필버그가 LA로 오기도 전에 <타이니 툰> 애니메이션이 재미있다는 소문이 워너를 통해 세상에 퍼져나갔다고 했다. ‘아버지가 보고 좋아했다’가 아니라 ‘아들이 보고 좋아했다’, 이게 키포인트였다. 이것도 진 맥커리 사장이 신이 나서 말해준 얘기다. 그리고 실제로 스필버그는 진 맥커리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했다. “It's an excellent job! (정말 훌륭해!)” _본문 343쪽

“나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해외동포입니다.” 이렇게 말했더니 “미국놈들이레 다 죽여 버려야 돼!”라고 느닷없이 옆에 서 있던 젊은이가 험한 말을 걸어왔지만 별로 신경이 크게 가진 않았다. 다만, 공식 초대석상에서 감정을 드러내고 달려들듯 말하는 그가 매우 당돌해 보였다. 그렇지만 나는 이들과 처음 만나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기회였다. 나는 “심청전과 관련해 장편 애니메이션을 기획하고 있는데 같이 만들어보지 않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이때였다. 뒤에 있던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사람이 내게 내미는 명함을 받아보니 영문으로 ‘President Kim, Chul-jin(사장 김철진)’이라고 적혀 있었다. _본문 443쪽

그러나 평양방송에서 해외 애니메이션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TV를 통해 시리즈로 방송을 하지 않는다. 하루 방송이 6시부터 시작되면 밤 10시가 좀 넘어 일기예보를 끝으로 방송이 모두 끝나게 된다. 그러나 곧 이어서 예술영화(장편 극영화)를 TV로 보여주기 때문에 호텔 방에서는 마치 심야방송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한국에서처럼 어린이들이 자는 시간에 어린이들을 위해서 심야에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는 일은 없다. 그러나 정규 방송 전 5시쯤에는 보천보 악단의 연주나 어린이들을 위한 만화영화를 보여준다. 때때로 미국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도 볼 수 있다. _본문 468쪽

“이 그림은 얼마나 오래 그렸는가?” “일 년 정도 그렸습니다.” 나는 다시 질문을 했다. “오! 일 년이나? 왜?” 어린이가 다시 대답을 해왔다. “석고상의 이면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뜻밖의 말을 듣고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석고상은 일반적으로 그 자리에 놓은 채로 그림을 그리게 되므로 좀처럼 그 뒤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 어린이는 그림을 그리면서 실제로 그 석고상의 뒤를 가서 보지 않더라도 이면을 간파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것은 사실이다. 어떤 물체를 놓고 오래도록 보고 있자면 그 물건의 뒤를 간파할 수 있다. 그러나 벌써 이 나이에서 그 이면을 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놀라웠다. _본문 475쪽

“Don't just draw Daffy! you have to be a Daffy yourself! (대피를 그냥 그리려고 하지 말고, 스스로 대피 덕이 되어봐!)” 프렐링 사장은 숨 가쁘게 말했다. ‘애니메이션적인 그림을 그려라!’ ‘스스로 그런 행동을 해 보라!’ 위의 말씀들은 우수한 애니메이터가 되는 기초였다. 나는 갓 입학한 신입생처럼 그의 말에 촉각을 세워 들었다. _본문 573쪽

목차

추천사
프롤로그

01 어린 시절 그리고 전쟁의 포화 속에서
1 내가 태어난 고향 | 2 공기총에 맞은 것이 최초의 기억 | 3 평산 신씨 동네의 유래 | 4 세상에 겁 없던 아이, 쇠똥 넣은 코끼리 과자 | 5 장마 진 강?물을 헤엄쳐 건너려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다 | 6 초등학생 때의 공산주의 교육 | 7 6·25전쟁의 시작, 인민군이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다 | 8 전쟁 속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다 | 9 피난길에서의 이별 | 10 중공군의 전투 병법 | 11 소련제 38구경 장총을 쏘며 혼란을 주다 | 12 장난감으로 취급하다 폭발한 지뢰 | 13 천안시장에서 담배와 초콜릿 장사를 하다 | 14 비밀이 얽혀 있었던 대전 선화동 지하실에서의 생활

02 낯선 타향에서 꿈을 좇다
15 다시 살아난 나의 그림재능 | 16 <꼬마 루루>를 보며 만화가를 꿈꾸다 | 17 홀로 그림 그리기로 허기를 달래고 | 18 스승을 찾아 서울로 상경하다 | 19 간신히 입학한 서라벌예술대학 | 20 역마차를 타고 수원에서 통학을 하다 | 21 시사 만화가에서 애니메이션 감독의 길로 | 22 여관에 만화영화 CF 회사를 차리다 | 23 초창기의 한국 애니메이션과 ‘메이드 인 재팬’ | 24 애니메이션 CF가 아닌 실사 CF를 제작하다 | 25 카메라맨의 재치 있는 순발력 | 26 방황의 어두운 그림자

03 핑크팬더에서 광선검, 트랜스포머까지
27 아메리칸 드림, 미국 땅으로 | 28 샌프란시스코에서 도라지꽃에 얽힌 인연 | 29 미국에서의 생활과 교육 | 30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도약으로 | 31 SF의 의 밀스 사장이 내 영주권 스폰서가 되다 | 32 격을 낮춘 애니메이터 어시스턴트 생활 | 33 ‘배수’로 매일 저금하려던 한 달 동안의 계획 | 34 <스타워즈>의 광선검을 만들어 얻은 명성 | 35 아이들을 위한 미국의 일반 주택 | 36 장난이 심해서 골치 아팠던 동료 존 | 37 불안과 긴장 속에서 맡은 감독직 | 38 미국의 애니메이션 역사와 그 수난 | 39 금의환향, 한국에 일을 가지고 돌아오다 | 40 애니메이션 제작의 최고 사령탑, 라인 프로듀서가 되다 | 41 신주쿠의 황제를 따라 도쿄의 한국 주점을 모두 섭렵하다 | 42 <더 트랜스포머스> 미니 시리즈

04 다시 한국으로
43 서울 ‘애이콤 프로덕션’의 탄생 | 44 애이콤 프로덕션의 미래 | 45 장편 애니메이션 <더 트랜스포머스> 이야기 | 46 신앙 속에서 하나의 가정으로 | 47 나의 창의력을 믿어준 부사장 리 건더 | 48 나는 항상 머뭇거리며 부족한 반벙어리 | 49 워너브라더스 <타이니 툰>과 스티븐 스필버그와의 인연 | 50 워너브라더스와 홀인 원 퍼팅게임 | 51 해결사로 프랑스 앙굴렘에 가다 | 52 심슨과의 26년이 넘는 동행, 그리고 뱅크시가 보내온 사과의 그림 한 장 | 53 스티븐 스필버그와 <공룡시대> 홈 비디오를 만들다 | 54 13년 동안 공들여 만든 작품 <내 친구 아서> | 55 한국 애니메이션의 폭발적 인기와 그 쇠퇴 | 56 성공적으로 컴퓨터 시스템을 도입하다 | 57 내가 한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애니메이션 정보 저널 《애니메이툰》 출간 | 58 국제애니메이션필름협회와 ASIFA 코리아

05 <왕후심청>, 북한에서 상영되다
59 장편 애니메이션과 판소리 〈심청가〉의 연구 | 60 안시에서 만난 조선 4·26 아동영화촬영소 파견원 | 61 고려항공으로 평양 순안비행장에 내리다 | 62 대망의 조선 4·26 아동영화촬영소 방문 | 63 조선 4·26 아동영화촬영소 성원들과 식사를 하다 | 64 국가의 주요사업으로 발족한 북한의 애니메이션 창작기구 | 65 평양미술대학교와 애니메이션 | 66 할리우드 스타일과 평양 4·26 시스템 | 67 꿈속에서 그리던 내 고향 남천 | 68 북한의 언어와 주변의 환경 | 69 국제정세의 변화와 <왕후 심청> 제작 | 70 평양에서 작곡하고 연주한 <왕후 심청> OST | 71 윤곽이 보이기 시작한 4·26의 <왕후 심청> | 72 평양 영화방송음악단의 연주 녹음 | 73 반세기 만에 상봉한 누님과 매부 | 74 <왕후 심청>, 디지털 RGB 색상에서 인쇄용 CMYK 색상으로 | 75 <왕후 심청> 필름과 김정일 위원장의 부름 | 76 대한극장 <왕후 심청> 초청 시사회 | 77 <왕후 심청>, SICAF 2004 그랑프리 | 78 어느 유학생이 내게 보낸 논문

06 네 자신이 대피 덕이 되어라!
79 꿈속에서 본 현실들 | 80 애니메이션 교육의 중요성 | 81 애니메이션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 82 “네 자신이 대피 덕이 되어라!”

에필로그
저자약력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