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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2027692 / 279쪽 125 x 1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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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젊은 시절 한때밖에 돌아볼 게 없다는 건, 인간이 결국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뜻일 거야 그땐 미처 알지 못했던 슬픔의 진원지로 끝 모를 길을 떠난 삶의 순례자들 2007년 『달의 바다』로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한 정한아가 두번째 소설집 『애니』를 출간했다. 네 권 통틀어 3년 만의 책이고, 소설집으로는 6년 만이다. 삼십대 중반이 된 작가가 서른 살부터 써온 8편의 소설들엔 이십대의 그것과는 다른 변화의 기미가 두드러진다. 정한아 특유의 긍정과 성장의 서사, 위태롭지만 찬란하게 빛나는 동시대의 젊음을 빚어내던 문장들은, ... 젊은 시절 한때밖에 돌아볼 게 없다는 건, 인간이 결국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뜻일 거야 그땐 미처 알지 못했던 슬픔의 진원지로 끝 모를 길을 떠난 삶의 순례자들 2007년 『달의 바다』로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한 정한아가 두번째 소설집 『애니』를 출간했다. 네 권 통틀어 3년 만의 책이고, 소설집으로는 6년 만이다. 삼십대 중반이 된 작가가 서른 살부터 써온 8편의 소설들엔 이십대의 그것과는 다른 변화의 기미가 두드러진다. 정한아 특유의 긍정과 성장의 서사, 위태롭지만 찬란하게 빛나는 동시대의 젊음을 빚어내던 문장들은, 이제 시간의 흐름 속에 묻힌 삶의 상처를 품고 그 근원들을 세심하게 매만져 복원해낸다. 무언가를 영영 잃었기 때문에, 혹은 무엇을 끝내 잊을 수 없기에 저마다의 사정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은 그 상흔을 치유하기 위해 각자 슬픔의 진원지를 향해 느린 발걸음을 옮긴다. 미약한 서로의 도움을 받아 진실을 똑바로 응시하고 수긍하면서, 삶의 밑바닥에 이르러 비로소 작은 애도에 도달하는 『애니』의 소설들은 한없이 길을 걷는 순례자의 여정을 닮아 있다. 어떤 상처는 영원히 남는다 아이를 낳으면 모성애는 저절로 생기는 걸까? 어린 시절은 누구에게나 따스한 기억인가? 결혼과 출산으로 생겨나는 사회단위, ‘가족’은 너무 많은 신화와 당위로 이루어져 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상처를 적립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마땅하다고 치부되는 가족에게서 사람들은 사랑만큼 많은 상처를 받게 된다. 정한아의 소설에 등장하는 가족은 이상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엄하지만 믿음직한 아버지, 자상하고 살뜰한 어머니, 말 잘 듣고 쾌활한 아들딸은 어디에도 없다. 아버지가 바람을 피운다거나(「빈방」) 어머니가 알콜중독이다(「그랜드 망상 호텔」). 이도 저도 아니라면 일이 너무 바빠 주변을 챙길 여력이 없거나(「오픈하우스」), 아예 죽고 세상에 없다(「신행(新行)」).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자식들도 저마다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 거식증에 걸리고(「오픈하우스」) 제대로 된 관계를 맺지 못하며(「그랜드 망상 호텔」) 자기를 망가뜨릴 것이 뻔한 남자와 결혼하고(「신행」) 이혼한 뒤 쉽게 일자리를 갈아치우며 부모에게 손을 벌린다(「애니」). 상처는 마치 운명처럼 자식의 자식들에게까지 대물림될 것만 같다. 가족은 완벽한 안식처가 아니라, 어디 하나쯤 부족한 구성원들 사이에 사랑과 당위를 덧발라 지탱해놓은 위태로운 구조물에 가깝다. 정한아의 소설 속 상처받은 사람들은 대개 이러한 ‘가족’ 구성원 가운데 하나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으로든, 우연이든 운명이든, 그들은 자신을 자꾸 건드리는 상처의 근원 쪽으로 꾸준히 향해 간다. 자신을 버린 아내와 과거에 손을 꼭 잡고 보았던 시시한 영화들(「애니」)이나, 가족여행에서 알콜중독 어머니를 홀로 가둬두었던 호텔방(「그랜드 망상 호텔」), 어머니가 이모부에게 살해당할 때 끼었던 은반지와 이모부가 피우고 있던 잎담배(「신행」) 등의 매개체를 거쳐, 슬픔의 진짜 진원지인 자신의 기억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과거에 대한 애도를 수행하기라도 하듯, 자신을 부서뜨릴 만큼 큰 아픔을 감수하고 과거의 사건들을 하나씩 재구성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정한아의 소설은 차분하게 감정선을 조절하면서 서술자의 의식을 추적해나간다. 하나씩하나씩, 그는 자신을 허물어뜨리는 동시에 그 절망의 심연에서 다시 올라올 마지막 순간을 기다린다”(이소연). 피로와 수치를 씻지 못하고 방에 갇힌 어머니. 열쇠는 눈앞의 테이블 위에 있었다. 윤슬은 언제든, 그 열쇠를 가지고 옆방에 가서 문을 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불이 꺼진 방에서 자정이 다 될 때까지 텔레비전을 보던 그녀는 아버지가 돌아왔을 때 자는 척 눈을 감았다. 자신이 어째서 눈을 감고 있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무엇에 대해 눈을 감았던 것일까. _「그랜드 망상 호텔」에서 잠시 마주친 순례의 동반자들 상처받은 사람들이 제 상처의 먼 진원지를 향해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긴다. 그 길에 끝이 보이지 않을 때, 정한아의 소설에서 슬픔을 해소하고 애도를 완성하도록 돌보는 역할은 곁에 항상 있는 사람이 아닌, 고유의 상처를 지닌 ‘완벽한 타인’의 몫이다. 상처의 진원지를 향한 각자의 길 위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들은 잠시 함께 걷는다. 미래를 기약하려 현실을 축내가며 애써 분양받은 아파트가 깡통주택이 되어버린 부부. 저녁이 있는 삶도 아기까지도 맞바꾼 미래가 날아가고 의미 없이 살아가던 그들은 부모에게 외면당한 조카를 잠시 맡게 된다. 조카가 제 몸처럼 돌보던 아기인형이 망가져버리자, 아내는 조카와 언 흙에 뜨거운 물을 부어가며 땅을 파 “영원히 그녀만의 비밀로 남겨둘 참이었”던 아기 손싸개를 인형과 함께 묻고, 자신같이 고통받기를 바라며 유산 후 불임이 되었다고 속여온 남편에게 사실을 고백한다(「예언의 땅」). 아내를 움직인 것은 조카다. 몰랐던 누군가를 만나 비로소 애도에 가까워지는 예는 『애니』의 다른 소설에서도 빈번하게 등장한다. 어쩌면 그들에게 “유일하게 과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 옛 영화를 기억하는 두 사람일 「애니」의 운전 강사 ‘권’과 배우 ‘마리아’는 운전 교습을 통해서 자신을 떠나버린 아내와 교통사고가 남긴 각자의 트라우마를 잊어낸다. 떠나버린 아버지와 넋이 나간 어머니가 채우지 못한 자리를 대신해주는 베이비시터와 중학생(「빈방」)도, 하룻밤 상대(「그랜드 망상 호텔」), 섭식장애 치료소 동기(「오픈하우스」)도 마찬가지로 서로를 목적지 근처까지 데려다주고 있다. 잠시 마주친 누군가를 통해 비로소 자신을 과거에 대한 집착에서 끄집어내는 것이다. 정한아가 소설에서 기대하는 것도 딱 그만큼이 아닐까. 어느 날 어느 때 문득 마주친 누군가에게 이 소설들이 “작은 쓸모가 있기를” 바란다는 그는,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을 찾는 작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소요되는 기간이 점점 길어진다 하더라도 도착지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별다를 것 없는 이야기였다. 실패한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를 특별하다고 느끼고, 앞으로 좋은 시절이 올 거라고 믿고, 그날이 오리라는 것은 너무나도 요원하지만, 그 둘만은 굳건히 믿고, 또 믿는 그런 이야기. 권은 어둠 속에서 오래전 그 여배우의 얼굴이 희미하게 드러나는 것을 보았다. _「애니」에서 책속으로 추가 나는 블랙커피 한 잔으로 끼니를 때우고, 비스킷 한 조각으로 하루를 견뎠다. 살이 빠지면서, 내 몸은 점차 그 윤곽을 드러냈다. 골반이 솟아올랐고, 팔꿈치 뼈가 튀어나왔고, 구슬처럼 동그란 손목뼈가 도드라졌다. 연구실에 들어서면, 동료들이 즉각적으로 내 몸을 훑어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실장과 완전히 헤어질 무렵 내 몸무게는 35킬로그램으로 떨어져 있었다. 그즈음엔 이미 내 몸에 대한 관심이 더욱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알몸으로 거울 앞에 서면, 갈비뼈를 하나하나 세어볼 수 있었다. 단단하고, 깨끗하고, 영원한 뼈…… 「오픈하우스」
어머니가 그녀의 집에 머문 날은 겨우 닷새였다.
어머니는 다시 윤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응답하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어머니에게서 숨어 살겠다고 다짐했다. 나도 살아야 해,라고 그녀는 중얼거렸다. 마치 어머니가 그녀의 숨통을 틀어쥐고 있다는 듯, 그녀가 틈을 보이기만 하면 언제든 그 끔찍한 삶을 전가할 것이라고, 하지만 누구도 타인의 삶을 대신 살 수는 없다고 변명했던 것이다.
「그랜드 망상 호텔」
아빤 먹는 입밖에 관심이 없어요? 딸애는 지겹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곤 했다. 그래, 그에게는 그것이 신앙이고 삶이었다. 택시를 몰 때는 손님을 한 명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서 주먹밥을 먹고 페트병에 오줌을 받으며 달렸다. 그는 그런 자신이 부끄럽지 않았다. 마지막에 아내는 점점 침묵 속으로 내려앉았지만, 그는 문제가 뭔지도 몰랐다.
아내는 쪽지 한 장 남기지 않고 그를 떠났다. 그녀가 가방도 꾸리지 않고 오직 몸만 빠져나갔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비로소 부끄러움을 느꼈다. 아내는 자신을 떠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무슨 의미였을까? 그는 아내에게 묻고 싶었다.
「애니」
별 보기가 끝난 후, 그녀는 나를 데리고 부엌 옆방으로 갔다. 짐작건대 아들이 쓰던 방인 것 같았다. 방 안에는 ㄷ자 모양으로 나무 책상과 옷장, 침대가 놓여 있었다. 그 방은 빈방 같지 않았고, 외출한 주인이 금방이라도 돌아올 것처럼 보였다. 옷장 앞에 걸려 있는 스웨터, 뾰족하게 깎아놓은 연필이 가득한 연필꽂이, 침대맡에서 째깍거리는 소리를 내는 알람시계가 그랬다. 문득, 그가 지금 어디 있는지 몹시 궁금해졌다. 하지만 어쩐지 그런 것을 물을 수는 없었다. 그 방에 고인 무게가 내게도 느껴졌던 것이다.
「빈방」
캄캄할 때 집을 나간 어머니는 해가 뜰 무렵에야 두 손 가득 무거운 짐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집에 들어올 때 함께 묻어 들어오는 차가운 새벽 공기의 냄새, 어머니의 끙 하는 신음 소리, 그리고 사각거리며 겉옷을 벗는 소리…… 그제야 지은은 안도하며 다시 잠들 수 있었다. 지은은 그때 어머니의 나이가 지금의 자신보다 어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언젠가 지은은 어머니에게 무슨 생각을 하며 그 세월을 보냈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어머니는 지은을 이상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생각 같은 것은 해본 적이 없다.”
그것이 어머니의 대답이었다.
“너무 많은 걸 생각하지 마라. 누구나 자기 덫에 걸리는 거란다.”
「예언의 땅」
미로는 방 안을 정리하는 데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청소 상태도 썩 깨끗하지 않았지만 침대만큼은 성역을 지키듯 관리했다. 외출했던 옷을 입고 그 위에 앉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물론, 몸을 씻지 않으면 시트 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했다. 그녀의 유일한 사치는 좋은 이불과 베개를 사들이는 것이었다. 그녀는 퇴근 후, 뜨거운 물로 씻고 나와 깨끗한 이불을 덮고 누우면 죽어서 천국에 간 기분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것이 그녀의 두 가지 소망이었다. 고통 없이 죽는 것과 천국에 가는 것.
「러브레터」
아버지는 가족들을 두고 혼자 떠나는 일을 다시는 하지 않았다. 그는 삶을 되찾기로 마음먹었고, 이영과 일영은 그에 부응하고자 노력했다. 이영은 미대에 가서 아버지를 실망시켰지만, 일영은 명문대 공과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그들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 상처는 너무나 끔찍해서, 꽁꽁 싸매고 잊어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어머니는 깊이 가라앉아버린 섬처럼 느껴졌다. 가끔 그곳에서 기포가 떠오르거나 물 밑으로 뭔가가 스쳐 지나가는 듯해도, 애써 들여다보지 않는 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신행(新行)」
제이유에게는 부족함 없이 자란 사람 특유의 밝은 빛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고급 외제 차를 타고, 일련번호가 붙은 라이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한도가 없는 신용카드를 쓴다는 차원의 ‘빛’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보다 훨씬 단순하게, 얼굴에서부터 드러나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의 얼굴이 뭔지 모를 불안과 조급함,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면, 그의 얼굴은 늘 느긋한 장난기로 반짝거렸다. 그는 어떤 일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르게 말해서, 그는 세상만사에 무심했다. 나는 그와 같은 전적인 무심함, 자아도취적인 무심함은 이전에도 후에도 본 적이 없다. 그는 오직 즐거움을 찾기 위해 사는 사람이었고, ‘크눌프’에 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해먹」
나는 블랙커피 한 잔으로 끼니를 때우고, 비스킷 한 조각으로 하루를 견뎠다. 살이 빠지면서, 내 몸은 점차 그 윤곽을 드러냈다. 골반이 솟아올랐고, 팔꿈치 뼈가 튀어나왔고, 구슬처럼 동그란 손목뼈가 도드라졌다. 연구실에 들어서면, 동료들이 즉각적으로 내 몸을 훑어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실장과 완전히 헤어질 무렵 내 몸무게는 35킬로그램으로 떨어져 있었다. 그즈음엔 이미 내 몸에 대한 관심이 더욱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알몸으로 거울 앞에 서면, 갈비뼈를 하나하나 세어볼 수 있었다. 단단하고, 깨끗하고, 영원한 뼈……
「오픈하우스」
목차
그랜드 망상 호텔
애니
빈방
예언의 땅
러브레터
신행(新行)
해먹
오픈하우스
해설 애도, 맥동하는 희망의 몸짓_ 이소연
작가의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