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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어떻게 관용사회가 되었나 근대 유럽의 종교 갈등과 관용 실천

원제 : Divided by Faith

벤자민 J.카플란 저 | 김응종 역 | 푸른역사 | 2015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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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6120490 / 592쪽 152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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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사랑’을 베풀 필요도 없다, 그냥 서로를 인정하며 함께 사는 것! ─갈등에서 시작된 ‘관용’ 사상이 아닌 실천의 역사를 말하다 ‘종교적’ 독선의 시대 최근 이슬람 과격 무장단체 IS가 자행하는 반(反)문명적인 파괴와 학살은 우리를 경악케 하고 있다. 한 IS 소녀 단원은 “나의 목표는 불신자들을 모두 죽이는 것”이라고 전의를 다진다. 어린 소녀의 증오심은 섬뜩하고 끔찍하다. 역사적으로 이슬람은 비교적 관용적인 종교라는 평가를 받아왔기에 이슬람이 이렇게 불관용적인 종교로 돌변한 것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이러한 근... ‘사랑’을 베풀 필요도 없다, 그냥 서로를 인정하며 함께 사는 것! ─갈등에서 시작된 ‘관용’ 사상이 아닌 실천의 역사를 말하다 ‘종교적’ 독선의 시대 최근 이슬람 과격 무장단체 IS가 자행하는 반(反)문명적인 파괴와 학살은 우리를 경악케 하고 있다. 한 IS 소녀 단원은 “나의 목표는 불신자들을 모두 죽이는 것”이라고 전의를 다진다. 어린 소녀의 증오심은 섬뜩하고 끔찍하다. 역사적으로 이슬람은 비교적 관용적인 종교라는 평가를 받아왔기에 이슬람이 이렇게 불관용적인 종교로 돌변한 것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이러한 근본주의적인 불관용이 역사상 처음 나타난 것은 아니다. 20세기에 스탈린의 소련, 히틀러의 독일, 마오쩌뚱의 중국 등지에서 ‘혁명’의 이름으로 자행된 대학살 역시 근본적으로는 불관용이 일으킨 범죄였다. 그것은 소련에서는 사회주의혁명으로, 독일에서는 민족혁명으로,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으로 포장되었으나, 실제로는 반문명적인 폭력에 불과했다. 우리가 동경하는 프랑스혁명 역시 “자유, 평등, 형제애”라는 구호 아래 제노사이드에 버금하는 동족학살을 자행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종교적인 차원에서도 IS는 선배를 가지고 있다. 중세 그리스도교 십자군은 “이교도를 죽이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악을 줄이는 것”이라는 가르침 아래 서아시아의 이슬람세계를 피로 물들였다. 그들은 그것을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정당화했으나 세상에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 근대 종교개혁 이후에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서로 원수가 되어 싸웠다. 가톨릭은 사람을 죽이는 데 뛰어난 반면, 프로테스탄트는 우상을 파괴하는 데 뛰어났다. 유명한 30전쟁으로 독일 인구는 반 토막이 났다. ‘관용’,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공존하는 것 과거에는 이슬람이 관용적이었고 그리스도교가 불관용적이었으나, 지금은 이슬람이 불관용적이고 그리스도교가 관용적이다. 그러나 이 두 거대종교는 모두 ‘유일 진리’를 자처하는 독선적인 종교이기 때문에 ‘불관용’이라는 DNA를 지니고 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리스도교는 지금은 점잖지만 과거의 그 불관용이 화산처럼 폭발할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 끔찍한 불관용 사건이 보도되어 우리를 놀라게 했다. 6월 2일 ‘캐나다 인디언 기숙학교 진실과 화해 위원회’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말까지 100여 년 동안 캐나다의 기숙학교에서 자행된 원주민 자녀 학대 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 독립 직후부터 캐나다 정부는 원주민들을 ‘문명화’ 시킨다는 명분 아래 종교기관에서 운영하는 기숙학교에 소년소녀들의 교육을 맡겼다. 기숙학교의 학생 총수는 15만 명이 넘었는데, 이 가운데 6천 명 이상이 질병, 학대, 영양실조, 화재 등으로 사망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소년소녀들이 성적 학대를 당했다. 캐나다 연방대법관인 베벌리 맥크라칠린은 이 사건을 ‘문화적 제노사이드’라고 규정하면서, “동화(Assimilation)정책은 옳지 않았다. 관용(Tolerance)이 옳은 방향이다”라고 말했다. 동화와 관용. 인간 사회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인종적으로, 종교적으로, 이념적으로,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사람이 모두 똑같을 수는 없다. 그런 사회가 있다면 그곳은 사람들의 사회가 아니라 로봇들의 사회일 것이다. 사회 속에는 항상 다른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동화’는 ‘다른’ 사람들을 ‘틀린’ 사람 혹은 ‘적’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같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교육이나 ‘문명화’ 같은 평화적인 방법을 사용하지만, 그것이 실패할 경우에는 ‘정화’라는 이름으로 ‘추방’, ‘절멸’ 등의 강제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그런데, 캐나다의 경우에서 드러났지만, 역사는 이러한 ‘동화’의 방법이 옳지 않았음을 가르쳐준다. 동화의 대안은 관용이다. 관용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공존하는 것이다. 문명화라든가 구원이라든가 하는 명분으로 ‘사랑’을 베풀 필요도 없다. 그냥 서로를 인정하며 함께 사는 것이다. 지나친 관심을 보였다가 배신감을 느끼는 것보다는 차라리 무관심이 낫다. 신간 ≪유럽은 어떻게 관용사회가 되었나(Divided by Faith: Religious Conflict and the Practice of Toleration in Early Modern Europe)≫의 저자 벤자민 카플란(Benjamin J. Kaplan)은 말한다. 서로 지나치게 사랑할 필요가 없다, 서로 죽이지 않기 위해서. 근대 유럽에서 전개된 종교적 ‘관용’과 갈등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다 벤자민 카플란의 책 제목 대로, 근대 유럽은 “신앙에 의한 분열”로 고통을 겪었다. 종교 갈등과 그에 수반된 세속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다른 종교에게 종교의 자유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종교전쟁 시대에 종교의 자유는 용인이나 시혜의 대상이었으나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면 개인의 자연권이 된다. 그것은 내가 베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자유요 권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의 진보”에 기여한 사람으로는 에라스뮈스, 세바스티앵 카스텔리옹, 피에르 밸, 존 로크, 볼테르 등을 꼽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책의 특징이자 강점은 관용의 ‘사상’이 아니라 관용의 ‘실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관용’에 대한 연구는 주로 위대한 사상가들의 선구적인 관용 사상과 국가주의 정치가들─마키아벨리의 사상을 받아들였거나 계몽주의를 받아들인 계몽전제군주나 정치가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이들의 선구적인 노력 덕분에 관용사상이 진보하고 확산되었다는 식으로 설명하였다. 이 책의 역자인 김응종의 ≪관용의 역사: 르네상스에서 계몽주의까지≫(푸른역사, 2014)도 대체로 이러한 설명 체계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사상’이 아니라 ‘실천’에 초점을 맞출 때 역사의 모습은 달라진다. 카플란은 두 가지 차원에서 기존의 ‘관용의 역사’를 비판한다. 첫째, 그는 근대에 관용이 ‘상승’했거나 ‘진보’했다는 설명을 비판한다. 1648년에 끝난 종교전쟁 이후에도, 심지어는 계몽주의 시대 말기에도, 불관용적인 사건들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1685년 프랑스에서 칼뱅파를 강제개종시킨 사건은 1598년에 칼뱅파에게 종교의 자유를 부여했던 사건에 비해 관용의 ‘후퇴’이며, 1780년 당시 가장 관용적이라고 평가를 받던 영국에서 일어난 고든 폭동 역시 불관용적인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둘째, 카플란은 관용의 ‘사상’이 아니라 ‘실천’으로 시선을 옮기니만큼 관용 사상가가 아니라 관용이라는 사상을 알지도 못하던 보통 사람들을 바라본다. 이들은 관용사상과는 ‘무관’하게 나름대로의 생존을 위해서 갈등을 조정하고 타협하며 살아갔다. 이와 관련하여 ‘공유교회’, ‘비밀교회’, ‘동등권 체제’ 등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다. 유럽은 이러한 위로부터의 노력과 아래로부터의 노력이 결합하여 관용사회로 나아간 것이다. 우리는 관용의 시대에 살고 있는가? 서양에서 관용의 역사는 ‘개인’에게 종교의 자유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카플란이 서양의 사례를 이슬람 세계의 밀레트 제도와 비교하여 설명하는 것도 흥미롭다. 밀레트 제도란, 이슬람 세계에서 이슬람교가 아닌 다른 종교─유대교, 그리스 정교, 아르메니아 정교 등 ─를 믿는 사람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부여한 제도이다. 그런데 밀레트 제도는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에게 종교의 자유를 부여했다. 따라서 밀레트 제도에서는 여러 가지 종교 공동체가 공존했지만, 그 공동체 안에 있는 ‘개인’은 종교의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

저자 소개

벤자민 카플란Benjamin J. Kaplan은 현재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의 네덜란드 사史 교수이다. 《유럽은 어떻게 관용사회가 되었나》 외에도 《칼뱅파와 자유사상가들: 1570~1620년, 위트레흐트의 종파와 공동체》(Clarendon Press, 1995. 이 책으로 1996년 롤랜드 베인튼 상과 필립 샤프 상을 수상했다), 《쿠네곤트의 유괴―계몽주의 시대의 종교 갈등》(Yale University Press, 2014) 등을 썼고, 《네덜란드 역사에서의 경계와 그 의미》(2009)와 《프로테스탄트 국가 내의 가톨릭 공동체들: 1570~1720년 영국과 네덜란드》(2009) 등을 공동 편집했다. 

역자 소개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서양사학과를 졸업했으며(1978), 프랑스 프랑슈콩테 대학교에서 뤼시앵 페브르의 역사학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1987). 1988년부터 충남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아날학파≫(1991), ≪오늘의 역사학≫(공저, 1998), ≪아날학파의 역사세계≫(2001), ≪서양의 역사에는 초야권이 없다≫(2005), ≪페르낭 브로델≫(2006)을 썼으며, 프랑수아 퓌레와 드니 리셰의 ≪프랑스 혁명사≫(1990), 뤼시앵 페브르의 ≪16세기의 무신앙 문제: 라블레의 종교≫(1996), 퓌스텔 드 쿨랑주의 ≪고대도시≫(2000)를 번역했다. 초기에는 ‘아날학파’에 대한 연구를 발전시켜 사학사적인 연구에 집중했으나, 최근에는 17세기의 회의주의자들과 무신론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 뤼시앵 페브르의 ‘16세기의 무신앙 문제’를 계승한 ‘17세기의 무신앙 문제’라는 주제로 연구서를 쓸 계획이다. 

목차

목차
옮긴이의 글
서론
제1부 방해물
I. 신성한 열정 / II. 그리스도교 공동체
III. 발화점 / IV. 하나의 신앙, 하나의 법, 한 명의 왕
제2부 조정
V. 금화 / VI. 경계를 넘어
VII. 사생활의 허구 / VIII. 교회 공유, 권력 공유
제3부 상호작용
IX. 사람의 친구 / X. 위반 / XI. 불신자들
제4부 변화
XII. 계몽주의?
주석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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