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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탐욕 신 자본주의는 문제가 아니라 답이다
원제 : Money, Greed, and God: Why Capitalism Is the Solution and Not the Problem
ISBN : 9788985277723 / 328쪽 142 x 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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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이 책 《돈, 탐욕, 神》의 밑바탕은 저자가 풋내기 성인일 때 품었던 한 가지 의문이다. 과연 자본주의가 기독교의 도덕성 및 세계관과 어울리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기독교 윤리와 모순된다면, 크리스?천인 자신은 자본주의자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답을 찾았고, 자본주의자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의문을 갖게 된 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중요한 요소들을 간과했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즉, 자유시장경제가 번성하려면 경쟁만이 아니라 법의 지배와 협력, 안정된 가정, 자기희생, 만족을 뒤로 미룬 헌신, 미래의 희망에 근거한 기꺼운 위험 감수... 이 책 《돈, 탐욕, 神》의 밑바탕은 저자가 풋내기 성인일 때 품었던 한 가지 의문이다. 과연 자본주의가 기독교의 도덕성 및 세계관과 어울리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기독교 윤리와 모순된다면, 크리스천인 자신은 자본주의자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답을 찾았고, 자본주의자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의문을 갖게 된 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중요한 요소들을 간과했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즉, 자유시장경제가 번성하려면 경쟁만이 아니라 법의 지배와 협력, 안정된 가정, 자기희생, 만족을 뒤로 미룬 헌신, 미래의 희망에 근거한 기꺼운 위험 감수와 같은 미덕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지나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현대 사회들이 부닥친 어려운 문제들을 풀려면, 경제적인 사실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자본주의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랬듯이, 가장 먼저 우리의 생각을 흐리게 하는 뿌연 안개를 걷어내라고 권한다. 아래의 것들이 그가 말하는, 우리의 잘못된 믿음들에서 비롯하는 의문들과 그것들에 대한 그의 답이다. 1. 우리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없는가? 우리는 이 물음에 답하기에 앞서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 곧, ‘무엇과 비교해서 공정하냐’는 것이다. 어느 사회가 그것을 대신할 사회보다 더 공정하다면, 만인 평등의 유토피아에 비해 ‘불공정하다’고 해서 헐어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유토피아와 비교한다면, 어떤 현실 사회는 물론 현대 자본주의 사회도 좋아 보일 수 없다. 모든 것이 시원찮게 생각되고 왜곡되어 보일 것이다. 시장에서의 임금과 노동의 자유로운 교환이 노예제도처럼 보이고,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은 적자생존의 표본으로 여겨지고 심지어는 도둑질과 헛갈릴 것이다. 또 은행 업무는 고리대금이나 착취와 다르지 않은 것으로 생각될 것이다. 하지만 실현 가능한 체제들끼리 비교한다면, 현대 자본주의는 어느 것보다 공정하고 바람직할 것이다. 물론 지금 모습의 우리 사회에 만족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더 공정한 사회, 더 공정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노력한다면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우리는 그 같은 망상에 이끌린 행동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20세기에 배웠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사회주의만큼 극명하게 보여준 예는 없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제3의 길’을 찾는다면서, 역시 사회주의를 좇는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 2. 좋은 의도는 결과에 우선하는가? 물론 그렇지 않다. 철학자 에티엔느 질송은 “경건한 마음이 솜씨를 대신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올바른 의도를 가졌다는 것과 일을 올바르게 한다는 것은 별개라는 의미이다. 탑승객들을 염려하여 비행기를 안전하게 착륙시키고자 하는 비행사의 바람이 비행기를 실제로 안전하게 착륙시키는 그의 능력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들에서 우리의 동기를 믿고 안심하는 것은 도덕적 방종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에는 세 가지 결과 가운데 하나가 따른다. 즉, 도움이 되거나 아무런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흔히 우리는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거나 애써 외면한다. 최저생활임금, 공정무역, 대외원조, 정부 복지사업 등의 경우가 그렇다. 예컨대 대외원조는 여러 차례의 재난구호 원조처럼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제3세계의 빈곤 해결책으로는 완전히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 나라를 빈곤하게 만드는 부패한 독재자들의 버팀목 구실을 했을 뿐이다. 많은 정부 복지사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 40년 동안 미국인들은 혼외출산과 아동빈곤, 노숙, 약물남용 등 모든 사회적 문제를 정부가 해결해주기를 기대해왔다. 이와 함께 정부의 몸집은 계속 커졌다. 미국 역사의 절반이 훨씬 넘는 기간에 걸쳐 연방정부의 지출은 국민 1인당 연간 20달러(현재 가치) 안팎이었지만, 지금은 무려 1인당 1만 달러가 훨씬 넘는다. 1960년대 중반 존슨 대통령이 추진한 ‘빈곤과의 전쟁’은 ‘빈민과의 전쟁’이 되어버렸다. 수조 달러를 쏟아 붓고도 승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나쁜 경제 ? 사회적 문제들을 만들어냈다. 미국 사회복지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 즉 가족의 붕괴와 사생아 출산, 다음 세대로 떠넘겨지는 의존 상태 등은 모든 통계에 분명히 드러난다. 우리는 동정심에서는 오래 갔지만 분별력에서는 곧 바닥을 드러낸, 인기를 얻었던 많은 정책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3. 자본주의는 불공평한 경쟁을 부추기지 않는가? 흔히 자본주의는 서로 잡아먹고 먹히는 냉혹한 경쟁과 적자생존의 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거래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라고 하는, 이른바 제로섬 게임의 착각에 빠졌을 때의 생각이다. 건강한 자본주의는 강자가 약자를 파괴하는 정글의 법칙에 지배되지 않는다. 부족한 것이 있는 한 경쟁은 언제나 있지만, 법의 지배에 근거한 시장경제에서 힘의 논리는 경쟁자를 앞서는 방법이 되지 못한다. 자유시장의 모든 참여자는 소비자들의 필요와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힘을 다한다. 경쟁자보다 소비자들에게 더 잘 봉사하고자 하는 성실과 창의가 경쟁의 토대이다. 결코 자본주의가 불공평한 경쟁을 부추기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시장의 경쟁은 거의 언제나 독점보다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사실 자본주의를 특징짓는 것은 경쟁보다는 자유로운 상호 협력과 의존이다. 가령 자그마한 MP3 플레이어 하나가 시장에 선보이기까지의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면, 자신이 그것의 탄생에 기여한다는 것은 모른 채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일을 하는, 수십 가지의 언어를 말하는 수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이들의 상호 협력과 의존이 자본주의의 토대이다. 그리고 이 같은 협력과 의존을 가능케 하는 것이 자유시장이다. 물론 MP3 플레이어를 머릿속에 그리고 또 실현시키는 기업가의 비전은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첫 단계이다. 4. 내가 부유해지면 누군가는 가난해지지 않는가?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비난이 세계 어디서나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문제를 더 깊이 들여다보면, 많은 사람의 진정한 걱정은 어떤 사람들은 부유한데 다른 사람들은 가난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한 사람의 부가 다른 사람의 가난을 가져온다는 믿음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내가 부유해지면 누군가 그만큼 가난해지지 않는가 하는 걱정이다.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풍요의 시대에 살게 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빈곤에 대해 일종의 죄의식까지 느끼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많이 가진 사람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갖기가 더욱더 어려워지는 것은 한 사회의 부가 고정되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부는 옮겨질 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유물론적 사고에 갇힌 사람들의 생각일 뿐이다. 인류 역사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듯이, 한 사회의 부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끊임없이 커졌다. 새로운 부는 물질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우리가 물질을 어떻게 생각하고 특징짓고 변형시키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창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부가 당신의 빈곤을 가져오지는 않는다고 해도, “자본주의 고유의 악덕은 축복의 불공평한 배분이다”라는 처칠의 언명은 지금도 우리를 붙잡는다. 그래서 국가를 공정한 부의 분배자로 만들려는 유혹 또한 우리를 사로잡는다. 하지만 국가는 물론 그 어떤 조직도 그런 구실을 할 수 없을뿐더러, 열정적으로 그 같은 시도를 했던 곳마다 재앙적인 결과를 겪었다는 사실
목차
서론. 크리스천이 자본주의자일 수 있는가?
1장 우리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없는가?
2장 좋은 의도는 결과에 우선하는가?
3장 자본주의는 불공평한 경쟁을 부추기지 않는가?
4장 내가 부유해지면 누군가?는 가난해지지 않는가?
5장 자본주의의 토대는 탐욕이 아닌가?
6장 언제나 기독교는 자본주의에 맞서지 않았는가?
7장 자본주의는 추한 소비지상주의 문화를 낳지 않는가?
8장 우리는 모든 자원을 거덜낼 것인가?
결론. 모든 것이 함께하여 선을 이루게 하라
추천하는 글. 자본주의 미덕을 다시 생각한다 - 이상돈(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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