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그해 겨울밤 광복 70년 분단 70년… 세월 속에 파묻힌 삽화

신동철 저 | 중앙북스 | 2015년 06월

북트리

정가
$30.00
판매가
$16.50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0.33 (2%P)
출고예상일
2026년 10월 13일 수령예상일 안내
북카트 담기 바로구매하기 위시리스트담기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ISBN : 9788927806592 / 304쪽 152 x 223 (㎜) / 양장본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 19,800
  • 17,100
  • 27,000
  • 17,820

책 소개

출판사 리뷰

분단의 아픔을 지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격변의 시대를 관통해온 한 남자의 생생한 회고록

1945년 민족의 오랜 숙원이던 광복이 도래했다. 하지만 광복의 기쁨도 잠시, 이념적 분열이 한반도를 다시금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분열은 결국 이 땅을 둘로 나누어버렸다. 그리고 7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광복의 환희부터 6·25 전쟁을 거쳐 이 땅의 굵직한 사건들을 몸소 체험하고 취재해온 중앙일보 기자 출신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대한민국 현대사를 생생하게 기록하고자 펜을 들었다.
『그해 겨울밤』은 광복 직후부터 6·25 전쟁 당시 민초들의 삶과 아픔을 저자의 시선을 통해 가감 없이 담아낸다. 반드시 데리러오겠다는 약속만 남긴 채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부모의 심정과 강건해야 한다는 다짐 속에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는 어린 자식의 마음가짐이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가슴 아프게 그려낸다. 결국 부모를 만나기 위해 경원선을 따라 전곡, 성재, 함밭이, 한여울철교를 지나 동두천에 이르기까지 형과 함께 남하하는 과정에 대한 묘사는 한 가족의 아픈 사연을 넘어 현대사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후 언론사 기자로 활동하며 겪었던 다양한 개인사 및 사회적 사건들이 시간 순으로 소개되어 읽는 재미를 더하며, 2003년 출간한 『신문은 죽어서도 말한다』의 출판기념회 뒷이야기를 권말부록으로 수록해 기자로서의 소신도 엿볼 수 있다.

저자 소개


1938년 강원도 김화 태생으로 경복고교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를 졸업했다. 1965년 대한일보사 견습기자로 출발, 중앙일보사 사회부 등을 거쳐 월간부 차장 시절인 1978년 「월간중앙」 자진 정간 파동 때 사표를 썼다가 편집부로 전보됐다. 그 후 이코노미스트 부장(1984), 중앙경제신문 부국장대우 증권부장(1988), 중앙경제 편집국 부국장(1990), 이코노미스트 국장(1993)을 역임했다. 중앙일보사 중국 취재단당(1991), 대한민국 기자 동남아 순방단장(1983)을 맡았고, 1969년에는 월남전 및 파월근로자 실태를 취재했다. 
한국방송개발원(KBI) 상임이사(1994~1997)를 역임하고 이코노미스트 편집고문(1998~2002) 시절인 2000년 3월에는 『20세기 경제 100년을 읽는 22가지 Keyword』(중앙일보 ECONOMIST 刊 · 642쪽)의 기획출판을 주도했다. 현재 교수신문사운영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한국 신문상 수상(1969). 저서로는 『신문은 죽어서도 말한다』가 있다.


 

책 속에서

“동생, 글 한번 써보는 게 어때”
“무슨 글인데요?”
“그거 있잖아. 나하고 단둘이 연천에서 전곡까지 밤새도록 초행길을 걸어 38선을 넘던 1947년 깜깜한 겨울밤의 얘기 말야.”
“아, 그거요? 얘기는 되지요.”
“그때는 동생이 무척 아팠잖아. 걸음도 제대로 못 걷고.”
“그랬지요. 그런데 글이라면 형님이 더 잘 쓰시는 것 아닙니까”
“나도 쓸 수야 있지. 그렇지만 그런 종류의 기록물은 아무래도 철학을 배운 나보다는 역사를 전공한 동생이 엮는 게 주제에 걸맞고 리얼할 것 같아서 하는 얘기야.”
“글쎄요? 빛바랜 어릴 적 체험담을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활자화시킬 가치가 있는지는 얼른 판단이 안 서네요…….”
(……)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우리 형제들은 설날과 추석, 부모님 제삿날 등 해마다 네 번은 큰형님 댁에서 꼭 모이고, 한식·벌초·시제 때는 가급적이면 모두들 고향에 내려가 한나절을 함께 보낸다. 그런데도 그 후엔 “한탄강을 건너 38선을 넘던 얘기를 써보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말은 재론된 일이 없었다.
- 4~5쪽(‘책을 읽는 분들에게’ 중에서)

1947년 이른 봄 어느 날 밤, 어머니는 작은형과 나를 앉혀놓고 중대 발표를 하셨다. 그때 형은 열두 살, 나는 열 살이었다. 철부지 넷째와 막내 젖먹이는 옆에서 잠든 그런 밤이었다.
세월이 어수선하고 공산당이 갈수록 극성스러워 더 이상 여기서 살 수 없어 아버지가 계신 서울로 가신다는 거였다. 집과 가재도구는 모두 버리고 가되, 서울엔 아직 일곱 식구가 기거할 집을 마련하지 못해 일단 동생 둘만 데려가고 형과 나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친척집에 맡겨두고 간다는 것이었다. - 22쪽

내가 철이 들어서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되는 날까지 나는 한 번도 아버지께서 일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아무 일도 안 하시는 무위도식의 표본이었다. 매일 늦잠에서 깨어나 조반상을 받으시면 몇 숟갈 뜨시고는 곧장 밖으로 나가셨다. 저녁엔 몇몇이 어울려 청요릿집에 드나든다는 말도 있었고 기생집에서 세월을 보낸다는 소문도 없지 않았다. - 57쪽

동두천발 서울역행 경원선 열차는 시발지부터 만원이었다. 나는 형의 부축을 받으며 개찰구를 빠져나가 몇 발자국 뛰어서 죽을힘을 다해 객차에 올랐다. 2호차쯤 되는 곳에 자리를 잡아 창가에 앉고 그 옆에 형이, 통로 쪽엔 또 다른 어른이 앉자마자 나는 퍼져버렸다. 당시의 열차는 좌석이 지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 누구든지 먼저 자리를 잡고 앉으면 임자가 되는 그런 식이었다. - 137쪽

만 7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내 집 드나들 듯하던 동숭동 캠퍼스와 이별을 하고 그에 앞서 점 찍어둔 직장에 뚫고 들어가야 하는 만만치 않은 스케줄이 내 앞에 다가와 있었다. 하지만 그때 서울은 조용하지 않았다. 6·3 사태라는, 박정희 정권 출범 이후 가장 격렬하게 벌어진 학생 데모로 인해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최루탄이 터지고 유혈 사태가 발생하는 등 소란하기 그지없었다. - 218쪽

목차

책을 읽는 분들에게

그때 한탄강 물은 明鏡止水였다
아버지의 考終命
天地不仁 春來不似春

권말부록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