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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에 대처하는 10가지 태도 이순신과 9명의 승부사들

이희진, 장준호 저 | 아름다운날 | 2015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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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3876970 / 293쪽 153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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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난세를 이겨내는 최선의 전략은 무엇인가? 임진왜란에 대처한 10명의 승부사들을 통해 난세를 헤쳐나가는 지혜를 배운다 참극을 겪은 역사가 되풀이되는 현상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왜 역사에서 배우지 않는가?’라고 말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떤 일이 일어났고,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냉정하고 세심하게 분석하고 이해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런 태도로는 아무리 역사를 공부해도 실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배울 수가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에는 공백이 존재한다. 그리고 때로는 그 공백이... 난세를 이겨내는 최선의 전략은 무엇인가? 임진왜란에 대처한 10명의 승부사들을 통해 난세를 헤쳐나가는 지혜를 배운다 참극을 겪은 역사가 되풀이되는 현상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왜 역사에서 배우지 않는가?’라고 말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떤 일이 일어났고,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냉정하고 세심하게 분석하고 이해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런 태도로는 아무리 역사를 공부해도 실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배울 수가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에는 공백이 존재한다. 그리고 때로는 그 공백이 오히려 사건의 진실일 수 있다. 임진왜란과 관련된 인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너무나 유명해서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결과일 뿐, 그 이면에 있는 사건의 원인과 결단의 이유 등에 대해서는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여기서 다시 임진왜란과 그에 관여된 인물들에 대해 논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하나는 임진왜란을 전쟁의 당사자인 조선, 일본, 명, 3국의 주요인물을 중심으로 파악함으로써 이 전쟁을 단지 침략자와 방어하는 자,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에서 벗어나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한 인간의 전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 전쟁을 3국의 주요 인물들이 각자 처한 위치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군사력의 강약이나 지위의 고하가 아니라 각자 전란에 임하는 태도가 역사와 인생의 승패를 갈랐다 전쟁의 포문을 여는 자, 그 전장에서 전투를 벌여야 하는 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쟁을 일으킨 군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생각과 그 전쟁의 선봉장인 고니시 유키나가의 목표는 전혀 달랐다. 준비 없이 맞은 황망한 전쟁의 대처 방법 역시 군주인 선조, 최전선의 장수인 이순신, 후방에서 군무를 조정해야 했던 정치가 류성룡의 입장이 제각각이었다. 조선의 청병 요청으로 출전을 결정한 명의 황제 만력제와 황명을 받고 출병한 이여송이 한 마음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들 각자에게는 그들 각각의 상황과 셈법이 있었고, 결국에는 그에 따른 처신이 역사와 인생의 승패를 갈랐다. 우리는 지나간 난세의 역사를 통해 오늘날의 난세를 이겨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가 국제정치적으로 처한 상황이나 어느 때보다 극심한 생존경쟁에 내몰린 개개인들의 처지가 임진왜란의 그 상황과 너무도 비슷하게 닮아 있다. 다만 어떤 사건의 누구를 통해 무엇을 배울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을 뿐이다. 이 책이 어려운 시절에 현명한 선택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 소개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전쟁사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첫 번째 논문인 석사학위 논문을 현대사로 쓰면서 근현대 계통의 학회에서 활동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근현대사연구>에 「미국의 한반도 진주준비와 38선 획정과정에 대한 검토」를, <한국민족운동사연구>에 「미국의 對韓軍事援助政策과 한국전쟁」 「중국의 한국전쟁 개입과 맥아더의 북진의도」 등을 발표하며 근현대사 분야의 학술활동을 이어갔다.
저서로는 ‘살림지식총서’로 펴낸 《한국전쟁사》《고구려왕조실록 1・2》를 비롯해, 《한국전쟁의 수수께끼》와 10년 후 이를 재출간한 《・25 미스터리》에 이어 최근에는 《징비록의 그림자》를 펴냈다. 공저로는 전 시대를 아우른 개설서 《다시 보는 한국사》를 전 국사편찬위원장 이성무 교수와 공동으로 집필했으며, 김우선 선생과 《우리 역사를 바꾼 전쟁들》을, 장준호 교수와 《난세에 대처하는 10가지 태도》등을 집필했다.

* 주요 경력
2004년 :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졸업
2007~2009년 : 한국사학사학회 총무간사
2008년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석사 졸업
2009~현재 : 임진왜란사 연구회 중앙 간사
2011년 : 서강대학교 대학원 한국사 박사과정 수료
2012년~현재 : 웅지세무대학교 한국사 담당 교수
*연구 실적
1. 「壬辰倭亂時」, 「군사」 76호.
2. 「」, 「」 16호.


 

책 속에서


전쟁에 임하는 지휘관으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용병술일 것이다. 전
쟁에 있어서 용병술은 생사를 결정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지휘관이 어
떠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명령체계와 조직을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전투
의 승패가 결정될 수 있다. ..... 그렇다면 이순신은 어떠한 방식으로
자신의 부대를 통합하고 이끌어 갔는가. 27쪽


물론 선조가 일본의 움직임을 전혀 무시했던 것은 아니었다.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한 것도 침략에 대한 우려가 있어 이를 확실하게 판단하
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통신사로 다녀온 복명 사신들의 보고가 엇갈리
면서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 되자 선조 역시 갈피를 잡지 못했다. 정책
결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확고한 리더십을 갖지 못하고 되도록 자신의
위치에서 편안히 안주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려갔다. 선조의 이러한
태도는 전란의 와중에도 변함이 없었고 오로지 자신의 안위를 우선하
는 방향으로만 심화되었다. 49쪽


일본열도를 형식적으로라도 통일한 이상, 그는 열도 안의 모든 다이묘
들을 끌어안아야 하는 입장이 된 셈이다. 그런데 다이묘들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영지가 그들의 모든 기반이 되는 구조에서 욕심을 내는
것은 당연했다. 전국을 통일했다 해도 히데요시가 다이묘들의 도움을
받을 일이 없지는 않다. 문제를 그럴 때마다 도움을 준 다이묘들은 영
지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내란이 한창인 시절에야 적의 편에 선 다이묘
의 영지를 빼앗아 주면 그만이지만, 전국의 다이묘를 끌어안아야 하는
시점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결국 외부에서 영지를 찾아야 하는 구
조가 되는 셈이다. 94쪽


임진왜란 시기 류성룡이 한 역할과 그것이 얻어낸 소산에 비하면 그
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인색했다. 그는 나라를 그르친 간인奸人이었다.
임진왜란의 전후 처리 과정이었던 공신책봉 과정에서도 정당한 정치적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선조는 임진왜란 극복의 공을 명군에게 돌리면
서 명의 청병 사신으로 다녀온 인사들을 1등 공신으로 책봉하였고, 선
조 자신이 의주까지 갔기 때문에 명군을 불러올 수 있었다는 논리를 들
어 자신이 최대의 공로자라고 자처하였다. 이것은 전란의 과정에서 실
추된 권위를 만회하기 위한 선조의 정치적 노림수였다. 176쪽


고니시로서는 조선 침공이 결정되어버린 이상 차라리 자신들이 앞장
서서 전과를 올리는 편이 나았다. 그리고 여기에는 또 다른 의도가 있
었다. 자신들이 전쟁에 앞장서서 전과를 올리면 일단 히데요시의 신임
이 두터워질 것이다. 그러면 이를 이용해서 강화講和를 주선하고 전쟁
을 일찍 끝내려는 발상이었다. 241쪽


이여송의 퇴각 결심은 이미 굳어진 듯했다. 조선 대신과 군사들이 말
하는 것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군사를 이끌어 임진강을 건너와
동파에 잠시 진을 쳤다가 개성으로 돌아왔다.....전의를 상실한 이여송
은 개성에 도착한 날 “날이 개고 길이 마르면 다시 출진할 것이다.”
라고 핑계를 대며 머뭇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이여송의 대군이 개성부에
주둔하자 조선 입장에서는 군량미를 대는 것조차도 버거웠다. 이여송은
군량의 부족을 핑계 삼아 군사를 철수한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264쪽

목차

목차
이순신│어떤 상황에서든 싸움의 주도권을 잡는다
선조│ 내가 살아야 조선이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위기의 돌파구를 밖에서 찾는다
만력제│대국의 재력으로 위기를 버틴다
광해군│현장을 대면하고 현?실적으로 대처한다
류성룡│자리를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신립│우직하게 사지를 향하여
고니시 유키나가│나의 이익이 주군의 뜻보다 우선이다
이여송│실리가 없으면 싸우지 않는다
김충선│국가도 신념에 따라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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