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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의 워털루 전투 유럽의 운명을 바꾼 나폴레옹 최후의 결전

빅토르 위고 저 | 고봉만 역 | 첵세상 | 2015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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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0139333 / 208쪽 145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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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세계를 지배하려 했던 문제적 영웅 나폴레옹 워털루 전장에서 운명적인 몰락을 맞이하다 빅토르 위고가 그려낸 인간과 전쟁의 장엄한 서사시 “워털루는 단순히 하나의 전투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의? 얼굴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1815년 6월 18일, 벨기에 중부 워털루 지역 일대에서 한 시대를 호령했던 나폴레옹의 운명이, 나아가 유럽 전체의 운명이 갈렸다. 유배지 엘바 섬에서 탈출하여 재기를 노리던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웰링턴과 블뤼허가 이끄는 영국-프로이센 연합군에게 패배한 것이다. 이로써 백일천하는 종지부를 찍었고 마침내 나폴... 세계를 지배하려 했던 문제적 영웅 나폴레옹 워털루 전장에서 운명적인 몰락을 맞이하다 빅토르 위고가 그려낸 인간과 전쟁의 장엄한 서사시 “워털루는 단순히 하나의 전투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의 얼굴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1815년 6월 18일, 벨기에 중부 워털루 지역 일대에서 한 시대를 호령했던 나폴레옹의 운명이, 나아가 유럽 전체의 운명이 갈렸다. 유배지 엘바 섬에서 탈출하여 재기를 노리던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웰링턴과 블뤼허가 이끄는 영국-프로이센 연합군에게 패배한 것이다. 이로써 백일천하는 종지부를 찍었고 마침내 나폴레옹의 시대가, 유럽 대륙에 대한 프랑스의 지배가 막을 내렸다. 전쟁사에서 워털루 전투만큼이나 극적이고, 이후에도 오래도록 막대한 파장을 일으킨 전투는 찾아보기 힘들다. 본래 굴곡진데다 밤새 비가 내려 질척해진 전장에서 각국 명장들의 치열한 전략과 전술, 치명적인 오판과 실수, 여기에 우연과 천운까지 어우러져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박빙의 승부가 펼쳐졌고, 혼전 끝에 승패가 갈렸다. 운명을 건 전투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살다가 1821년 영욕의 생을 마쳤다. 전투 이후 유럽의 주도권은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넘어갔으며, 혁명의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민주주의에 반대하고 군주제를 옹호하는 빈 체제가 성립되어 유럽의 질서가 대대적으로 재편성되었다. 이처럼 역사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꾼 전환점이 된 워털루 전투는 ‘19세기의 돌쩌귀’, ‘유럽 역사의 분수령’이라 일컬어진다. 전투의 전개 과정과 승패를 가른 요인, 이후에 미친 영향에 대해 분석하는 수많은 기록이 남겨졌고, 다양한 연구가 행해졌다. 일세를 풍미한 영웅의 몰락과 한 시대의 종언이라는 점에서 어떤 강렬한 영감을 주었는지, 역사가들뿐만 아니라 바이런, 테니슨, 발자크, 스탕달 같은 소설가들도 워털루 전투를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 빅토르 위고도 그의 대표작《레 미제라블》에서 워털루 전투를 다루었다. 이 책은 제2부〈코제트〉의 제1편〈워털루〉에서 워털루 전투에 대해 집중적으로 서술한 3∼18장을 발췌하여 번역한 것으로, 옮긴이주 110여 개를 달고 관련 삽화와 기록화, 지도를 수록하는 한편 충실한 해설을 덧붙여 보다 입체적으로 전투의 전개 양상과 당시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장엄하고 극적인 묘사, 비장미 넘치는 위고의 문체가 돋보이는 이 책은 여느 역사책보다 흥미진진하게 워털루 전투의 전모를 파악케 해줄 것이다. 벨기에 전적지를 찾아가 나폴레옹이 마지막 분투를 벌이다 결국 패배하고 만 현장을 꼼꼼히 답사하고 이 책을 쓴 위고는 한때 전 유럽을 지배했던 천재적 전략가 나폴레옹도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는 교훈을 전해준다. 그리고 영웅들의 이면에서 싸우다 죽어간 이름 모를 병사들에게 연민 어린 시선을 던지면서 그들의 희생과 고통을 일깨운다. “패배가 패자를 위대하게 만들었다” ― 승자보다 패자가 더 유명한 전투 “모든 사람은 결국 자신의 워털루를 만난다 Every man meets his Waterloo at last.” 노예제 폐지를 주장했던 19세기 미국의 사회 개혁가 웬델 필립스의 말이다. 누구나 일생에서 큰 실패를 겪기 마련이라는 뜻으로, ‘워털루를 만난다 meet one’s Waterloo’라는 표현은 영어에서 ‘큰 패배를 맛보다’라는 의미의 숙어로 굳어져 사용된다. 한편, 스웨덴 혼성 그룹 아바ABBA는 그들에게 1974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의 대상을 안겨준 곡〈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은 워털루 전투에서 항복했지./ 나도 거의 같은 식으로 사랑의 운명을 만났다네./ 책장에 진열된 역사책은 언제나 반복되고 있지”라고 노래한 바 있다. 앞의 예들은 워털루 전투가 ‘커다란 패배’ 혹은 ‘운명적인 굴복’의 대명사로 자리 잡을 정도로 사람들의 기억에 깊이 각인된 역사적 대사건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정작 승리를 거둔 영국의 냉철한 전략가 웰링턴, 프로이센의 노장 블뤼허의 존재감은 흐릿하고, 오히려 패배한 나폴레옹의 존재감이 강렬하여 워털루 전투는 ‘승자보다 패자가 유명한 전투’로 회자되기도 한다. 천부적인 전쟁 지휘관으로 명성을 드날렸던 나폴레옹이 이 전투에서 패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 책에서 드러난 패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밤새 내린 비로 포병대가 이동하기 어려운 악조건 속에서도 승리를 과신하며 인력을 잘못 배치하고 적을 과소평가했다. 이틀 전에 벌어진 리니 전투에서 무찌른 프로이센군을 추격해 섬멸하지 못한 것도 패착이었다. 나폴레옹 휘하 그루시 장군의 부대는 프로이센군을 찾느라 엉뚱한 곳을 헤매다 시간을 허비했고 결국 프로이센군이 영국-네덜란드 연합군에 합류해 전투의 대세를 바꾸어놓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러한 오판에 갖가지 실수와 우연까지 겹쳐 결국 프랑스군은 연합군에게 격파당하고 만다. 프랑스군이 유리한 고지를 점할 뻔하다 막판에 역전당한 워털루 전투는 무려 6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낳으며 단 하루 만에 결판이 났다. 위고는 이 책에서 전투 상황에 따라 낙관과 자만, 분노와 절망을 오가는 나폴레옹의 모습을 낭만주의적 필치로 장중하게 그리면서, 이 문제적 영웅에 대해 자신 나름의 평가를 내리고 있다. 아울러 미셸 네, 술트, 데를롱, 캉브론, 그루시 등 프랑스군의 장군들은 물론 웰링턴, 블뤼허, 오라녜 대공, 픽턴, 뷜로 등 영국-프로이센 연합군의 장군들을 사료에 기반하여 생동감 있게 묘사함으로써 역사적 사실성을 더해주고 있다. 19세기 유럽의 근대를 추동한 분수령 올해는 워털루 전투가 일어난 지 꼭 200년이 되는 해로, 유럽 전역에서 전투의 의미를 되새기고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6월 18일 벨기에 워털루 지역 일대에서 각국 군인들의 복장을 하고 전투를 재현하는 행사와 기념식이 대대적으로 열렸고, 프랑스에서는 관련 전시회 4개가 동시에 진행 중이다. 벨기에가 워털루 전투의 기념물인 ‘사자상’(프랑스군의 대포를 녹여서 만든 것이다) 이미지를 넣은 기념주화를 발행하는 과정에서 프랑스와 갈등을 빚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이 전투로 쓰라린 패배를 당하고 영국에게 주도권까지 빼앗긴 프랑스로서는 심기가 불편할 만도 한 일이다. 워털루 전투를 두고 프랑스, 영국,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등 참전국의 입장과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유럽 통합의 전기가 된 사건이라는 점에서는 목소리를 같이했다. 전투 이후 유럽에는 오스트리아의 재상 메테르니히가 주도한 ‘빈 체제’가 성립하면서 전체적인 질서가 재편되었고 왕정으로 돌아가려는 복고적 움직임이 대거 일어났다. 이로써 자유와 평등의 이념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가던 혁명과 전쟁의 시대가 저물고, 안정을 추구하는 구체제가 부활하면서 평화의 시대가 찾아왔다. 이 반동적인 움직임 속에서도 혁명의 성과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이제 위정자들은 언제든지 새로운 나폴레옹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민중의 힘을 항상 의식하면서 정책을 펼쳐나가게 되었다.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역사학자인 폴 존슨은 저서《근대의 탄생》에서 유럽 근대의 진정한 시작을 워털루 전투가 일어난 1815년 이후로 보았다. 20년 가까이 계속되며 유럽을 포화에 휩싸이게 한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안정을 되찾으면서 산업과 과학, 문화 영역에서 수많은 변화와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찍이 나폴레옹은 그의 법전으로 신분 및 출신과 관계없는 유능한 인재 등용, 능력에 따른 출세

저자 소개

19세기 프랑스 문학의 전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 프랑스의 대표 작가다. 1802년 브장송에서 태어나 나폴레옹 휘하에서 장군을 지낸 아버지를 따라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에서 지냈다. 파리로 돌아와 처음에는 파리 이공대학(Ecole Polytechnique)에 진학하려고 했으나 이미 문학적인 재능을 인정받아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1822년 시집 《오드(Les Odes)》를 출간한 이후로 시작 활동을 계속했다. 1827년 유명한 《크롬웰 서문(Preface de Cromwell)》을 발표해서 낭만주의 문학 이론을 표방하고, 1830년 희곡 《에르나니(Hernani)》의 상연으로 낭만주의 문학의 수장이 되었다. 이후 1843년까지 장편소설 《파리의 노트르담(Notre-Dame de Paris)》(1831)과 《동방시집(Les Orientales)》(1829)을 비롯한 주옥같은 다섯 권의 서정 시집, 그리고 여러 평론과 기행문을 출간했다. 또한 《에르나니》(1830) 외 일곱 편의 희곡을 1843년까지 지속적으로 출판했다. 
초기에 그는 부르봉 왕조를 지지하는 왕당파였지만 1848년 2월 혁명 이후 입법의회 의원에 선출되면서 민주주의자로 변모했다.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1851년 12월)에 의한 집정에 항거해 국외로 망명했다. 긴 망명 생활은 그의 작품 세계 전체 판도를 규정지을 만큼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에 풍자 시집 《징벌 시집(Les Chatiments)》(1853)을 시작으로 대표 서정 시집인 《관조 시집》(1856)과 서사 시집인 《세기의 전설》(1859), 사후에 발간된 미완의 주요 시집들인 《사탄의 종말》《신》 등과 더불어 중요한 소설들인 《레 미제라블》(1862) 《바다의 일꾼들》(1866) 《웃는 남자》(1869)를 집필했다. 예술론을 피력한 평론집 《윌리엄 셰익스피어》(1864) 외 수많은 미발표 원고를 남기기도 했다.
1870년 제2제정이 무너지고 공화제가 부활된 후에 귀국하여 이듬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가 말년을 보냈던 파리의 엘로 거리는 그의 80세 생일을 기념하여 ‘빅토르 위고 거리’로 개칭되었다. 1885년 5월 22일 향년 83세로 별세했는데 프랑스 정부는 국장으로 그를 예우했다고 전해진다. 


 

역자 소개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마르크 블로크 대학(스트라스부르2대학)에서 〈혁명과 반혁명?바르베 도르비이〉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충북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몽테뉴, 루소, 레비스트로스의 사상을 새롭게 조명하고 성찰하는 한편, 프랑스 소설을 번역·소개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빅토르 위고의 워털루 전투》, 《프랑스 혁명》, 《역사를 위한 변명》, 《인간 불평등 기원론》, 《법의 정신》, 《방드르디, 야생의 삶》 등이 있다.

목차

목차
1 1815년 6월 18일

2 A

3 전투의 불가해함

4 오후 4시

5 무척 기분이 좋은 나폴레옹

6 황제가 길잡이 라코스트에게 질문하다

7 예기치 못한 일

8 몽생장 고지

9 나폴레옹에게는 나쁜 길잡이, 뷜로에게는 좋은 길잡이

10 근위대

11 비극적인 결말

12 마지막 방진

13 캉브론

14 지도자의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15 워털루를 인정해야 할 것인가?

16 신권神權이 다시 일어서다

해설 | 나폴레옹, 1815년 6월 18일- 고봉만

옮긴이의 말 | 워털루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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